소신있는 교육 펼 수 있게… 정치적 입김 사라져야 ‘진정한 교육자치’
“교육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를 전제로 교육자들이 ‘전통적 스승관’의 기반을 가지고 원칙과 소신을 통한 참다운 교육을 펼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육자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지난 2002년 4월22일 민선 제4대 경기도교육감에 취임해 2005년 5월까지 3년여간 경기교육을 책임졌던 윤옥기 전 교육감(79)은 정치권이 교육자들을 유무형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최근의 실태가 우려된다고 걱정부터 앞섰다.
그는 “대한민국은 해방 후부터 교육자를 우대해 왔다”며 “심지어 군정시절에도 이같은 기조는 유지됐고, 이를 통해 교육자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민선 교육감 시대 20년을 맞아 교육자치는 어느정도 됐다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동안 60점 이상 되지는 않겠는가”라며 “특히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 모든 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던 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현재는 일선 학교장들에게까지 정치적 입김이 전달되고 있다”며 “현 교육감의 정책도 기존에 있던 전통적 스승관을 담기에는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사회변화에 민감한 교육문제가 발생하는 등 일부 교육자치가 퇴보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일선 학교장들이 “과거와 달라진 교육환경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소신있게 교육을 펼치기 어렵다”면서 최근의 현실을 극복하고 진정한 교육자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육, 외길인생 43년
윤 전 교육감과의 만남을 위해 찾은 의정부 자택은 그가 걸어 온 교육족보와 다름이 없었다.
서재 벽 한면에는 교육과 관련한 책들이 담긴 책장이, 그 반대편에는 수십장의 사진이 깨알같은 설명의 글과 함께 붙어 있었다.
사진속에는 그가 40년 넘게 교육계에 종사하며 치열하게 살아 온 인생의 족적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득표율 표로, 이를 중심으로 2002년 도교육감으로 당선된 사진과 설명 등이 벽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왼편에는 초등학교 교장과 도교육청 국장 및 지역교육장 시절의 활동사진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2005년 퇴임까지 교육감으로서의 발자취가 남아있었다.
그는 “퇴임 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직접 만든 것”이라는 자랑(?)과 함께 사진 한장한장에 대한 추억담을 풀어나갔다.
어느새 80세를 바라보는 윤 전 교육감은 말을 이어가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열정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열정으로 인터뷰는 무려 5시간 가량 계속됐다. 외길인생으로 43년간 몸담았던 교육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설파하며….
■ 교사에 대한 존경과 믿음, 그리고 소신
윤 전 교육감은 과거 초등학교 6학년 담임으로 근무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교육장의 딸이 제자로 있었는데, 숙제를 해오지 않아 5차례 회초리를 때렸다”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자 나와 학생들간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그 학생의 어머니는 ‘(엄마인) 내 말도 듣지 않고 숙제를 하지 않아 속으로 학교에서 따끔하게 알아듣도록 혼났으면 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윤 전 교육감은 선생과 학부모간에 상통하는 믿음과 존경이 있었던 시절이라고 했다.
물론 과거와 같은 체벌이 어려워졌다는 데는 공감했다. 그러나 학생과 선생이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까지 치닫는 현 실태는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을 마치 동네 아줌마나 아저씨처럼 생각하는 것이기에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만 결코 아이들이 나쁜 게 아니다”라며 “질풍노도의 시기에 부모에게도 반발하고 갈등을 겪는 시기가 아닌가”라고 학생들에 대해 무한 애정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갈수록 교육세태는 암담해질 수 밖에 없다”며 “풀어줘야할 것도 있지만 학교의 규율을 정해서 좀더 엄격한 인격도야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도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최근들어 급격히 사라진 애교심과 교사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부활해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면, 당연히 교권조례도 만들어 교사들이 소신있는 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며 “교사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현 시점에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줘야 교육이 살고 나라가 산다”고 균형있는 교육정책 마련을 주문했다.
윤 전 교육감은 민선교육감의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지만, 교육의 자주성과 특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변화에 연연하지 않고 독립적인 교육 정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 선출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감 재임시 소신있게 교육만 생각하며 정책을 추진할 수 있던 배경에는 나를 뽑아준 교원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갔기 때문”이라고 우회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교사와 학생, 서로 싸우는 현실 안타까워
스승에 대한 믿음 부활해야 미래도 있어
교권조례 제정해 교사들 권위 살리고
학교규율 정해 ‘인격도야의 장’ 만들어야
교육자치, 학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필요
■ 교육자치, 지역사회의 관심이 중요
현 교육세태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그는 교육감으로 재직했던 당시 교육자치를 이루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되짚어 봤다.
윤 전 교육감은 우선 학교장과 교사들이 시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했던 점을 떠올렸다.
그는 “일선 시ㆍ군의 각종 교육시설을 비롯해 연수원과 교육원을 만들었고, 도교육청도 리모델링 및 주차장 확보 등 근무여건 개선에 힘썼다”며 “이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좋은 근무여건을 제공하고자 힘썼던 이유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기도청과 공동으로 ‘교육협력사업’을 추진해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으로 교육자치를 실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교육문제는 학교 혼자만의 힘이 아닌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속에 함께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했고 그 인식을 확산하는데 주력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 도교육청과 도청은 경기도 교육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전국 처음으로 교육협력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경기도청에 교육협력관을 파견해 교육협력사업 계획의 방향 설정 및 의견 조정 역할을 담당하게 한 결과, ‘농어촌 중ㆍ소도시 교육 여건 개선’, ‘튼튼한 공교육 기반 조성’ 등 3대분야 17개 과제가 선정됐다.
이후 3천억원이 넘은 돈을 교육협력사업에 투자하면서 농어촌과 대도시간 교육불균형이 개선됐고, 602개 병설 유치원에 종일반 운영 및 3개의 대안학교가 개교했다. 또한 특수학급에 특수교원 보조원 배치 등을 시행하게 됐고 외국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등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 200명을 배치하는 등의 여건을 만들었다.
윤 전 교육감은 “교육문제에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3개교의 외국어고등학교(특목고) 신설을 지원하는 등으로 외국어 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교육협력사업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윤 전 교육감과의 5시간 넘는 만남은 한편의 교육 파노라마를 보는듯 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소외된 북부지역에 양질의 교육서비스 제공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경기북부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한 사실을 꼽고 싶다”
윤 전 교육감이 재임시 교육자치에 가장 큰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지역적으로 서울이 경기도의 중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발전된 남부지역과 접경지역으로 인한 각종 규제로 낙후된 북부 지역간에 교육격차가 심화돼 북부지역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며 불만이 고조됐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실제 경기도는 2000년 2월부터 의정부에 경기도제2청사를 개청해 북부지역 10개 시ㆍ군 주민에게 보다 양질의 일반 자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윤 전 교육감은 2002년 교육감 출마 당시 경기북부지역 주민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강화하고 교육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경기도제2교육청사 신설을 공약했었다.
이후 2003년 12월 경기도제2교육청사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2004년 2월에는 100만인 서명추진위원회 발대식과 함께 서명에 돌입했으며, 같은해 6월30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입법안을 제출해 12월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국 2005년에는 4월 26일 경기도제2교육청사가 개청하게 됐다.
그는 “1964년 경기도교육청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한 이후 41년만에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다”며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121만여명의 주민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등 도민들의 적극적 지원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또한 2005년 당시 교육인력자원부와 동두천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공립으로는 전국 최초의 동두천외국어고등학교를 개교했다.
2004년 4월에는 의정부시에 경기북부교육관을 설립해 교직원 회의 및 연수와 학생들의 교육문화 활동을 위한 행사를 분산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4과 체제이던 고양교육청과 남양주교육청을 국 단위 지역교육청으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그는 “북부지역에서 오랫동안 교편생활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에 소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며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자치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자부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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