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갈이’ 교수 179명 무더기 기소
허위저자 ‘권위’-원저자 ‘인세’-출판사 ‘매출’ 이해 얽혀
연구실적으로 제출한 교수 56명이 1차 퇴출 대상될 듯
교육부 “엄중 처리 주문”… 檢 “전담팀 구성 수사 확대”
검찰 수사로 드러난 대학 교수 사회의 ‘표지갈이’는 허위 저자와 원저자, 출판사 등 3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조직적인 담합 범죄였다.
허위 저자는 연구실적을 제출하고 학문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표지만 바꾼 책을 자신이 쓴 책으로 둔갑시켰고 원저자는 이공계 서적 출판을 꺼리는 출판업계의 현실 앞에서 출판 기회와 인세를 확보하기 위해 표지갈이를 묵인했다. 또 출판사는 전공서적의 재고처리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표지갈이를 적극 활용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번에 적발된 허위 저자 56명은 호봉 승급과 재임용 심사 등을 위해 표지갈이 서적을 소속 대학에 연구 실적으로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연구 실적을 제출하기 위해 출판사 측에 단독 저자로 허위 등재한 표지갈이 서적 출간을 요구한 교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교수들은 출판사에서 무단으로 본인이름을 등재한 것이라고 허위 진술하거나 표지갈이 서적을 연구실적으로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다가 뒤늦게 들통나기도 했다.
이들이 동원한 표지갈이 수법은 단순한 ‘표절’ 수준을 넘어선다. 책 제목조차 바꾸지 않은 채 책 배경색의 일부만 바꾼 뒤 허위 저자를 추가해 출간한 경우도 있었고, ‘토목XX입문’을 ‘토목XX개론’이라고 제목만 바꿔 허위 저자를 끼워넣은 책도 있었다.
이외에도 같은 책을 표지 디자인만 바꿔 2009년 12월, 2015년 3월, 2015년 9월 등 3차례나 발간하기도 했으며 제목을 바꾼 뒤 원저자의 이름은 아예 빼버리고 허위저자를 단독 저자인 것처럼 발행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표지갈이가 1980년대부터 성행해 왔지만 원저자·허위 저자·출판사 간 이해관계가 얽혀 그동안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이공계 전공 서적이 대학 서점 등을 중심으로 소량 판매된다는 점 또한 적발을 어렵게 했다.
이처럼 30여년간 암묵적으로 존재해왔던 표지갈이 범죄의 실체가 드러내면서 대학가에도 대규모 교수 퇴출 사태가 빚어지는 등 후폭풍이 불가피하게 됐다. 벌금 3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은 교수는 재임용하지 않는 것이 대학가의 일반적인 관례인데다 교육부마저 해당 교수들에 대한 엄중 처리 방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퇴출 대상 1호는 표지갈이 서적을 호봉승급, 재임용 심사 등을 위해 연구 실적으로 제출한 혐의로 정식 재판을 받게 될 허위 저자 56명이다. 이와 함께 약식기소된 교수들의 경우도 허위저자는 1천만원, 원저자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각각 받은 만큼 퇴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교육부는 지난달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훈령 개정을 통해 연구내용, 결과에 기여가 없는데도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사례를 ‘부당한 저자표시’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의거, 교수들을 해당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에 통보해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주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내 한 대학 관계자도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들끓는 비난 여론을 감당하면서까지 해당 교수를 재임용할 대학이 있겠는가”라며 현재 대학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김영종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는 “저자만을 수시로 바꾼 서적들이 강의교재로 채택되고 연구실적으로 제출됐음에도 표절 여부, 실제 저작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강의 교재나 연구실적 제출 자료 심사를 강화하는 등 대학의 연구부정행위 검증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연구부정행위 전담 수사팀을 편성해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저자 등재 기준을 연구윤리 지침에 반영하는 방안을 교육부 등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의정부=박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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