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만나 완벽해진 뮤지컬, 관객을 울리다
죽음 앞에서 인권·주권 부르짖는 무대 위 농민들 횃불에 공감대
감각적인 세트와 조명은 필수다. 여기에 공연장 밖을 나설 때 관객이 절로 흥얼거리는 뮤지컬 넘버 두세곡 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거듭 연상되는 춤을 비롯한 강렬한 장면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대극’으로서 관객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만한, 보편적이면서도 시의적절해 더없이 강렬한 이야기여야만 한다. 성남문화재단이 자체 제작해 지난 1~4일 상연한 뮤지컬 <금강, 1894>는 이 같은 ‘이야기의 힘’을 증명했다.
이 작품은 신동엽 시인의 장편 대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1994년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선보였던 동명 가극을 대중이 선호하는 뮤지컬로 재구성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로 2015년 더 뮤지컬 최고의 창작 뮤지컬상을 수상한 김규종이 연출하고 뮤지컬 <프랑겐슈타인>과 <모차르트>로 잘 알려진 이성준이 작곡 겸 음악감독을 맡았다.
드림팀으로 불릴만한 제작진의 호흡은 서곡부터 빛났다. 호랑이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산하(山河)를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영상막에 우리 민족 특유의 근성과 힘을 상징적으로 풀어낸 서곡은 절묘했다. 영상과 음악은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촘촘한 호흡을 자랑했다.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무대 세트도 20여 명 이상의 대규모 출연진의 자유로운 동선을 보장하는 등 돋보이는 미장센이었다.
일부 주조연이 명확치 않은 대사 전달, 불협 화음, 감정 보다 강약 조절로 승부하는 노래 등으로 감정이입을 끊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봉준 역을 맡은 박호산과 그를 따르는 많은 농민 역의 단역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버금가는 감동적인 연기와 하모니를 선사했다.
특히 초연에서 기립 박수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전국을 뒤덮은 2016년의 촛불’이다. “이 땅의 주인은 백성”을 비롯해 죽음 앞에서도 인권과 주권을 부르짖는 무대 위 농민들의 대사에 객석 곳곳에서 눈물 흘리며 탄식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장 밖에서 촛불을 들었던 관객들은 무대 위 농민이 횃불을 드는 순간, 실패한 그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하듯 눈물과 박수로 화답했다. 시국(時局)이 완성한, 그래서 가슴 아픈 관객의 감정이입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상연한다면 그 반응은 어떨까. 1년 여 전,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던 성남문화재단의 ‘돌발 행동’을 부추기고 싶어진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