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기필, 윤이상 특유의 색채를 그의 고향 통영에서 온전히 그려내다

▲ 경기필 통영1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그러나 죽어서도 이념 논란 끝에 고향땅을 밟지 못한 비운의 작곡가 윤이상.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26일 그의 고향 통영에서 음악회를 열고 윤이상 작품 특유의 정서와 색채를 온전히 그려냈다.

 

경기필은 윤이상의 고향에서 그의 대표작을 연주함으로써 특별한 공간적 감흥을 더하는 동시에, ‘동서양이 음악으로 교감하다’를 주제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레퍼토리로 구성해 음악회에 대한 관심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날 연주는 1960년대 기존의 음악 문법을 무력화하고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혁신적인 리게티의 <론타노>를 시작으로 궁중무용 ‘춘앵무’를 선율로 표현한 윤이상의 <무악>, 윤이상의 제자였던 호소카와의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탄식>, 윤이상의 대표곡 <예악>, 교향곡에 가까운 구성을 보여주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순으로 진행했다.

 

동서양의 작품이 교차 연주됐지만, 각 작품에서 시공간의 경계는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곡은 관객에게 그로테스크한 미지의 것에 쫓기는 듯한 속도감을 안겼다가 현의 떨림이 빚은 비정형의 형상을 그리게 하는 등 시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었다.

 

특히 경기필 성시연 상임 지휘자는 단호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손끝의 떨림까지 집중하며 악보를 구현했고, 단원 역시 90여 분에 달하는 연주 내내 날 선 긴장감을 유지하며 고난도 기술을 선보였다.

 

난해함과 낯섦으로 연주자를 괴롭게 한다는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는 긴장감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서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연주를 주고받았다.

 

전통 궁중음악처럼 ‘박’으로 시작하는 예악 연주에서는 동서양 악기가 빚어내는 덩어리진 선율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듯한 독특한 음색이서로 공격하다가 마치 작곡가의 고향인 통영의 심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이날 솔리스트들의 협연도 돋보였다. 중저음의 비장한 낭독으로 시작한 소프라노 서예리는 오페라를 보는 듯한 인상적인 감정 표현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고, 유려한 기술을 빈틈없이 선보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역시 수차례의 박수갈채 끝에 앙코를 무대를 가졌다.

 

한편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경기필은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예술의전당(9월9일), 폴란드 카토비체(9월15일),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받아 베를린 뮤직 페스티벌(9월17일)에서도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어서 향후 평가가 주목된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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