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전 사고로 유럽·한국 ‘탈핵 바람’
中 동남부 수백기 발전소… 韓 대비 시급
인류가 건설한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는 고도의 과학 기술이 모인 총 집합체다. 그만큼 안전하다고 여겼고 사고에 대비한 3중, 4중의 안전장치가 있다. 하지만 재앙에 가까운 방사선 누출 사고는 인재와 자연재해에서 모두 자유롭지 못했다.
최초의 원전 사고는 지난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에서 일어났고 1986년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는 인재로 인한 대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해,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전 사고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에서 일어났다. 이들 국가는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과 인재들을 보유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당시 세계 2위 국력을 가졌고 기술대국이라는 일본에서도 원전 사고는 반복됐다.
이들 사고는 주변 지역을 초토화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는 수백~수천㎞까지 방사능이 누출돼 주변국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인접국 일본뿐 아니라 공격적으로 원전을 늘리는 중국의 원전 사고 위협은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동남부 해안을 따라 수백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데 산둥 반도의 경우 인천 등 수도권과 불과 300킬로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인재로 시작한 3대 사고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한국 내 원전 사고와 함께 중국의 원전 사고에 대비하고 ‘동아시아 탈원전’을 주변국과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 세계 최강대국, 원자력을 가장 먼저 상용화한 미국에서의 원전 사고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 원전 2호기에서 원자로의 냉각장치 파열로 핵연료가 누출됐다. 가동한 지 3개월만이었다.
발전소 2호기를 거의 전출력으로 운전하다가 물을 공급하는 펌프에서 고장이 일어난 것이다.
경수로 안을 냉각하는 긴급노심냉각장치가 작동했지만 직원이 계량을 오판해 냉각장치 작동을 멈추게했고 냉각장치가 파열됐다.
대량의 핵연료가 외부로 누출됐고 핵발전소 인근 80km 이내의 주민 가운데 임신부와 아동들이 일시적으로 대피했다. 일부 주민들은 피폭됐다.
원자로도 사용불능이 됐다. 약 10억 달러의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을 봤다.
스리마일섬 사고 조사특별위원회의 ‘케메니보고’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기술의 불완전함, 규제행정의 결함, 방재계획의 결여 등을 사고원인으로 지적했다.
미국 원자력 발전사상 최대의 사고였고 원전을 가진 세계 각국에 원자력 누출사고의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 인재에 의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전 유럽을 떨게 하다
1986년 4월 26일 구소련 연방이던 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수차례에 걸친 수증기·수소·화학 폭발이 일어났다.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로 알려진 이 사태도 인재였다.
지역 정치인과 원자력발전소 책임자가 원전을 가동한 성과를 내고 중앙 정부에 보고하기 위해 무리하게 가동한 결과였다.
후에 밝혀진 얘기지만 원전은 자체적 결함도 있었다. 구소련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를 알고도 침묵했다. 상명하복식 경직된 공산당 조직 체계와 원전 직원들의 무책임함이 인류 최대의 방사선 누출 사고를 만들어냈다.
체르노빌 사고 원인은 인재중에 인재였던 셈이다.
원전 사고 직후 2명의 직원은 그자리에서 사망하고, 원자로 등은 파괴됐다. 발생한 화재의 소화작업에 나선 직원과 소방대원들은 심각한 방사선에 노출돼 대부분 사망했다.
원자로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 2천명은 모두 강제 이주됐지만 6년간 발전소 해체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5천722명과 이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천510명이 사망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고, 수천㎞ 떨어진 한국 일부 지역에서도 낙진이 검출됐다
■ 지진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사고도 인재
2011년 3월11일 14시 46분 일본 동북 지방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으로 쓰나미(tsunami)가 발생해, 해안을 덮쳤다. 쓰나미로 수만명이 사망하고 센다이와 후쿠시마 일대는 쑥대밭이 됐다.
전원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전의 가동이 멈췄고 방사선 누출 사고가 났다.
당초에는 10m가 넘는 쓰나미를 예상하지 못한 자연재해로 여겼지만, 이미 10년 전 일본 내에서는 ‘최대 15.7m 쓰나미’가 몰려올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 결과를 내놨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당시 보고를 받은 도쿄전력 간부들은 토목학회에 수치 타당성을 검증시키는 등 시간을 끌다가 묵살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쓰나미 방재를 위한 방재 시설은 10m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비용이 문제였다.
더 높은 방조제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백억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2009년 도쿄전력 주요 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도 당시 지진대책 담당 부장이 “14m 높이의 쓰나미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당시 경영진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100만t의 오염수가 방류되거나 저장탱크에 쌓여있고 일본 곳곳에서는 방사능 핫스팟(방사능이 모여있는 구역)이 발견되고 있다. 수백㎞ 떨어진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일본의 중심부인 도쿄도까지 방사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다.
■ 인재에 의한 원전 사고… 유럽과 한국에서 탈핵 바람을 일으키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전 반대 여론이 강했던 유럽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탈핵’ 운동 바람을 일으키는 결정타가 됐다. 사고 직후 독일은 2022년까지 17기인 모든 원전을 완전 폐쇄하기로 했다. 2011년 17기의 원전 중 8기가 즉각 영구 정지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탈핵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츠벤덴도르프 원전은 1978년 완공됐지만 가동도 하지 않은채 폐쇄했다. 세계 2위의 원전 대국 프랑스도 2025년까지 원전 17기를 폐쇄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50%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도 탈핵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묻기 위해 투표를 했고, 유권자 58.2%가 탈원전을 선택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7년 본격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첫 발걸음이다. 문제는 탈원전을 두고 국내 반대 여론이 크다는 것이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갈등을 풀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또 자국의 동남부 해안을 따라 엄청난 수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중국의 원전 사고에 주변국인 한국은 대비가 필요하다.
앞선 3번의 대형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주변국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미란다 슈로이어 뮌헨공대 교수는 “많은 주변국들이 핵에너지 없는(탈원전) 독일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며 “소통과 지원을 통해 주변국의 원전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재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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