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다 안성 비닐하우스 농민들, 농작물 피해 속출

“순식간에 비닐하우스가 잠겨버렸어. 이 근처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올해 다 망했지 뭐”

3일 오후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일대 시설하우스 농가에서 농민 K씨(50)는 흙탕물에 잠긴 하우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안성에는 지난 1일부터 집중호우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314㎜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려 농가 곳곳이 물바다로 변했다.

상추와 얼갈이 등을 재배하는 K씨의 하우스는 지대가 낮은 쪽에 있는 터라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농사에 쓰이는 약품통부터 의자 등이 차오른 빗물 위로 떠다니고 있었고, 사이사이로 부유물도 나뒹굴었다.

K씨는 전날 오전 7시께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리자 부리나케 논으로 달려왔지만, 순식간에 하우스를 비롯한 일대가 강처럼 변하는 상황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둑방 일부를 걷어냈지만 빗물은 빠지지 않았다. 속수무책이었다.

K씨는 “이곳에서 2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데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이라며 “주변에 비가 많이 와도 이곳은 절대 안 오는 ‘혜택받은 땅’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비가 오니 하늘에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KakaoTalk_20200803_160916718_02

사태가 나아지더라도 곧 찾아오는 겨울은 농민들에게 더 큰 걱정거리다. 겨울철 난방을 떼는데 목돈이 필요해서다. K씨는 “여름에 돈을 모아놔야 겨울철을 버틸 수 있는데, 빚만 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19년째 같은 곳에서 얼갈이와 근대, 아욱 등 약 2만5천㎡ 가량의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전경연씨(54)는 지금 상황이 악몽 같다고 토로했다. “비닐하우스에 물이 성인 남성 허리까지 찼다. 하우스 밖 울타리까지 빗물이 넘쳤고, 정전으로 양수가 마저 작동되지 않았다”고 당시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전씨의 하우스에서 현재 건질 수 있는 농작물은 단 하나도 없다. 물이 빠진다 해도 물에 거름이 다 씻겨나가 농사를 지으려면 약 두 달가량이 소요된다. 전씨는 “8월만 보고 지금까지 투자를 해왔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망치를 맞은 기분”이라며 “이번 일로 하우스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월급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 이날 오전 8시 기준 도내 농작물 피해는 총 1천43ha로 잠정 집계됐다. 이중 안성이 714ha로 가장 많고, 이천 210ha, 여주 87ha 순으로 대부분 중부 내륙에 집중돼 있다.

박석원ㆍ김해령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