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잊힌 독립운동가가 있다. 수원에서 32명의 기생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 열사다. 기생이라는 이유로 김향화 열사에 대한 자료와 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며 32명 기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다. 삼일절을 앞두고 경기아트센터가 서울예술단과 함께 19일부터 21일까지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열사의 삶을 되살렸다. 창작 뮤지컬 <향화>다.
적막이 흐르는 무대 위, 매일신보 퇴역 기자(강상준)는 오랜 수소문 끝에 만나고 싶던 ‘그녀’를 만난다. 기자는 그녀의 오래전 소식을 묻고 여러 번 거절하던 그녀가 입을 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순이(송문선ㆍ김나니)는 일제강점기, 아버지 김인영이 앓아눕게 되자 곤궁한 집안 사정으로 15세 어린 나이에 수원까지 시집을 간다. 이 장면에서 ‘#5. 내 나이 열다섯’을 통해 어린 나이 집안 사정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어린 순이를 표현했다. 배우의 애절한 목소리와 조명을 거의 쓰지 않은 어두운 무대로 연출했으며 어린 순이와 혼례복을 입은 순이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 서글픈 그녀의 마음을 잘 나타냈다.
3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수원으로 야반도주하자 순이는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 인력거를 몰던 나승현(신상언)의 도움으로 수원 권번에 들어간다. 순이는 고된 수련으로 향화(香花)라는 이름으로 수원 일패기생으로 거듭나며 ‘#14. 내 이름은 향화’를 부르기 시작한다. 북과 장구를 연주하고 검무로 수련한 향화가 마침내 수원 일패 기생으로 다시 태어난 장면을 보여준다. 기생인 만큼 진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일렬로 북을 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장구춤과 검무 역시 화려하지만 절제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향화는 32명의 기생과 함께 1919년 3월29일 수원경찰서와 화성 봉수당에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된다. 공연은 ‘#25. 우리의 이름은 그리고 너의 이름은’을 부르며 33명의 기생 이름과 얼굴을 담은 <조선미인도감>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이번 공연은 모처럼만에 열린 뮤지컬 공연으로 코로나19 속 침체된 공연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뮤지컬의 넘버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 대신 큰 박수를 보냈다.
경기아트센터는 철저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50% 좌석 허용인 현재의 방역 지침보다 더 강화해 관객석의 30%만 열었다. 본격적인 시즌제 공연을 앞두고 열린 이번 무대는 코로나19 속 도민들이 안전하게 다양한 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주인공 ‘향화’역을 맡은 김나니 소리꾼은 “곧 봄이 와서 꽃이 필 것이다”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모두가 조금만 더 희망을 가지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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