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동성애, 노부모 부양….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지만 선뜻 나서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나온다. 단순히 이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왜 말할 수 없었는지, 말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하며 자연스럽게 위로를 준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 올랐던 수원시립공연단 제15회 정기공연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이다.
공연은 도시개발로 폐관을 앞둔 영화관 ‘레인보우 씨네마’를 배경으로 한다. 폐관을 앞뒀지만 등장인물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영화관을 나가 무엇을 할지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무덤덤하게 영화관 정리에 나선다. 폐관을 계기로 영화관 주인 조한수와 초대 주인 조병식, 한수의 아들 조원우 3대가 모이고 폐관을 도우러 온 태호, 희원, 수영, 정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학교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한수, 병식, 원우와 서로 사귀고 있지만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겨야 하는 태호와 원우, 치매를 앓는 부모를 홀로 모시며 힘들어하는 정숙,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무서워 인형 탈을 쓰고 지내는 수영 등 각자가 가진 고민을 서서히 공유한다. 서로의 아픔을 말하지만 활기찬 분위기가 계속된다.
단순히 폐관을 앞둔 동네의 작은 영화관 속의 이야기를 다루는 줄 알았던 공연은 한수의 죽은 둘째 아들 원식의 언급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원식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해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 한수,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으로 동생의 아픔이 왜곡될까 봐, 또 자신이 외면당할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산 원우가 대립하면서 이들이 그동안 묻혀둔 속마음을 쏟아낸다.
등장인물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동안 관객들 역시 외면당하거나 외면했던 문제에 공감하며 같이 눈물을 보였다. 20대의 젊은층부터 50대의 눈물을 훔치는 한 남성까지. 지난 3월 수원시립공연단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첫 정기공연을 선보인 구태환 예술감독은 정의신 작가와 관객에게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했다.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의 대사와 몸짓은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뜻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무거울 수 있는 것들을 등장인물들만의 농담으로 풀어나가 아픔을 위로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모처럼만에 위로 받는 인생극을 한 편 봤다는 반응부터 작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가슴이 뭉클하다는 반응이었다.
20대 자녀와 함께 연극을 관람한 이지현씨(56)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잔잔한 감동이 남아 특별한 시간이었다"면서 "지쳐있는 요즘, 이런 따뜻한 공연을 만나게 돼 좋았다"고 밝혔다.
김은진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