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공연단 '바람, 다녀가셔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현시대를 살아가는 ‘애증의 부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공감을 느낄 대사다. 서로가 사랑하는지, 소중한 가족인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 평생을 모르고 살지만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이니까’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마음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노부부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눈가를 적시며 공감을 산 연극이 3일간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에서 진행된 수원시립공연단의 가족극 <바람, 다녀가셔요>다.
공연은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각자의 진심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젊은 시절 자신을 구하다 불구가 된 ‘김씨’를 마음에 품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온 ‘순자(손숙)’과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 번 해준 적 없는 남편 ‘박씨(이순재)’가 ‘사는 방식’을 보여준다.
<바람, 다녀가셔요>의 순자는 ‘가정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모습을 박씨는 ‘무뚝뚝하고 괴팍한 남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노부부지만 한 번도 자신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짜증 섞인 걱정과 무심한 듯 챙겨주는 말이 전부다. 특히 순자는 첫사랑인 김씨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알고 있는 박씨는 김씨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연 속 둘은 평생을 싸워온 사람들처럼 짧은 대화를 하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과거에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결혼하는 부부들이 많았다. 이혼도 흔치 않아 의무적으로 살곤 했다. 그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고 사는 것’이다. 이는 순자가 남편과 못살겠다며 집을 뛰쳐나온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착해서 그런 거야, 너가 조금만 더 참으면 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더 참으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막연한 심정을 표현했다.
또한, 순자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박씨의 걱정뿐이다. “우리 영감 바지만 널고 갈게요, 닭 사료 주는 것을 잊었어요”라고 말하며 쉽게 떠나지 못하는 순자의 모습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엄마, 아내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바람, 다녀가셔요>는 특별한 명대사, 명장면이 없다. 그저 묵묵히 관객 깊은 곳에 있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진심을 느끼게 한다. ‘애증의 부부’의 정 많은 말과 행동을 통해 큰 울림을 안겨준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는 박진수씨(57)는 “공연 내내 울컥하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공연 속 부부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부부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들의 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와닿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김은진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