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무더위도 얼어 붙는 극한의 공포, ‘멘’·‘곡비’…제26회 BIFAN 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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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 스틸컷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지난 7일 개막해 어느덧 오는 17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호러, 고어, 스릴러 등 장르 영화 마니아에게 BIFAN은 오랜 기간 단비 같은 존재였고, 이번에도 역시 반응이 뜨거운 작품들이 여럿 있다. 그 중 개막작 <멘>은 지난 13일 정식 개봉을 통해 열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곡비>는 8일 GV회차에 이어 9일과 16일 상영에도 편성돼 그 인기를 입증했다.

■ 외면하고 회피할 때 증폭되는 근원의 공포…<멘>

<멘>은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편을 잃은 주인공 하퍼의 심리를 따라가는 일이다. 하지만 <멘>은 관객이 하퍼의 내면에 가까워질 수 없게 한다. 얼굴이 같은 남자들이나 허물을 벗듯 잉태와 출산을 반복하는 남자들을 만나는 하퍼가 마지막에 무엇을 마주하는가?

사실 <멘>은 관객의 입장에선 남자들의 온갖 형태가 지시하는 바를 곱씹어 보아야 하는 영화지만, 하퍼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그들이 나타내는 상징적인 면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이때 영화는 하퍼가 직면하는 공포의 형태를 강조할 뿐, 그가 자신의 내면 상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대신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하퍼의 내면을 짓누르던 근원의 공포는 무엇이었나.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또렷해지는 순간이 되면, 하퍼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야만 한다. 마침내 짓는 그의 엷은 미소가 과연 해방감을 말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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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비’ 스틸컷

■ 알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처절한 무력감의 공포…<곡비>

<곡비>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와 마스크를 쓴 대만 국민들이 나오기 때문에, 팬데믹을 통과하는 현실 속 관객들이 일상의 감각을 다시금 환기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곡비>는 시작과 동시에 대만을 최악의 아수라장으로 바꿔버린다. 모든 윤리적 안전장치가 제거된 극단의 상황을 가정한 채 관객을 지옥도로 안내하는 셈이다. 익숙한 감각이 곧바로 낯선 감각으로 바뀔 때, <곡비>는 ‘영화니까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귀를 찢는 듯한 사운드와 피칠갑의 현장을 버무려 금기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이성을 잃고 눈이 벌겋게 충혈돼 뒤틀린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는 존재들이 맥락과 설명이 동반되지 않은 채로 속속들이 출몰한다. 이들은 용납될 수 없는 살육과 고문 등 잔혹 행위를 즐긴다. 이때 <곡비>가 제목 그대로 정말 ‘슬픈’ 영화라면,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행동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성이 마비되거나 정신을 잃은 다른 영화 속 좀비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들의 잔혹한 행위가 나열되는 것보다도 더 몸서리치게 무서운 건, 알면서도 통제 불가능한 무력감이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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