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빛과 몸의 언어로 말하는 감정들…무용극 '사랑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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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 무용극 '사랑에 미치다'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무용수들의 모습. 그비다룸스튜디오 제공

때로는 집어삼킬 듯 강렬한 몸부림으로,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몸짓으로 감정을 형상화한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빛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감정의 진폭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이처럼 사랑을 두고 벌어지는 남녀 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낸 무용극 ‘사랑에 빠지다’가 지난 17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수원문화재단의 ‘2022년 방방곡곡 문화공감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공연에선 안무가이자 발레무용수인 윤전일의 공연 단체 ‘윤전일 Dance Emotion’을 중심으로 현대무용수, 발레무용수와 한국무용수들이 출연해 무대를 빛냈다.

서로 사랑하지만, 가까워 지는 여자의 죽음 앞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의 무용과 심리 상태에 따른 조명과 음악의 변화를 잘 배합해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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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 무용극 '사랑에 미치다'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무용수의 모습. 그비다룸스튜디오 제공

공연은 한 남자의 격렬한 몸짓이 무대 전체를 물들이는 현대무용 파트로 시작한다. 표현의 폭이 크고 풍성한 몸짓부터 손가락 만을 이용하는 작고 세밀한 움직임까지, 무용수가 전하는 몸의 언어를 통해서 혼자 있는 남자의 복잡한 내면이 드러나는 구간이다. 이어지는 남녀의 이야기는 낭만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가도 순식간에 좌절과 절망으로 둘러싸이는데, 이 과정에서 빛의 색감이 달라지면서 무대를 물들이는 방식과 그에 따라 맞춰 전개되는 다양한 음악이 말 없이 진행되는 무용극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독특하게 소리를 전혀 쓰지 않는 구간도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연인의 숨소리와 옷깃 소리, 몸을 맞댈 때 나는 미세한 소리만이 존재하고 관객들은 숨죽여 남녀의 사연에 몰입하게 된다.

극의 절정에 다다르면, 얼굴과 손을 맞대며 마음을 나누던 여자가 결국 쓰러지고 남자는 심란한 마음을 드러낸다. 여자가 점점 멀어져 가다가 길게 늘어뜨린 하얀 천 속으로 사라진 뒤, 천에 비친 여자의 실루엣은 주황빛으로 물들고, 공허한 심정을 느끼는 남자의 공간이 초록빛으로 변한다. 여자가 천 속으로 사라진 뒤 보이는 남자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천이 놓여 있는 곳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느껴진다.

‘사랑에 미치다’는 연인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나 동기, 명분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거나 신음하고, 어떻게 고통 받거나 낭만에 빠지는지 다채로운 표현법을 곁들여 조명할 뿐이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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