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오류 빠진 가면 쓴 현대인…수원시립공연단의 ‘억울한 여자’ [공연리뷰]

연극 '억울한 여자'에서 ‘유코’ 역을 맡은 홍민아 배우(가운데)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수원시립공연단 제공

 

억울함을 토로하는 여자. 여자는 왜 억울할까? 무엇이 그를 억울하게 만들었을까? 가면 쓴 현대인들은 살아가는 내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소통 속의 단절을 느끼는 한 여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장난 현대사회의 단면이 드러난다.  

 

수원시립공연단의 정기 공연 연극 ‘억울한 여자’가 24일부터 26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공연됐다. 구태환 연출은 쓰치다 히데오의 희곡을 특별히 각색하는 대신 원작의 결을 살려 작업했다. ‘도쿄’ 등의 지명, ‘가사하라 유코’ 같은 배역명 등이 모두 일본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다. 국내 관객에게 익숙하게 하려면 현지화 작업을 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수원시립공연단의 ‘억울한 여자’는 그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다.

 

구태환 연출은 “특히 대화의 연속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리듬으로 인물의 심리를 빚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관객들이 무대 위 배우들이 느끼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2002년 일본에서 집필됐던 이 작품이 2008년 한국 초연을 거쳐 다시 2023년 수원에서 상연될 때 어떤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 걸까. 무대 위 배우들이 각자의 배역을 지금 이 시점에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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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억울한 여자'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수원시립공연단 제공

 

일본의 어느 지방 소도시의 한 커피숍이 연극의 주 무대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만남의 광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근황을 나누고 마음을 확인한다. 주인공 유코는 다카다가 쓴 그림책을 읽고 그에게 흥미를 느꼈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잘 이해하는 작가인 그의 팬을 자처해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유코는 네 번째 결혼, 다카다는 재혼이다. 연극을 보다 보면 이전의 세 남편이 왜 유코의 곁을 떠나갔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과연 유코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 남편들이 그를 떠나간 건지 의구심이 커진다. 

 

유코는 자신의 마음을 전부 내보일 때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진정성 있고 문제 없다고 여긴 행동이 세상 사람들에겐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유코를 둘러싼 사람들은 언제나 많지만, 그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다. 세상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유코 역시 세상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소통의 오류’에 빠진 셈이다.

 

연극을 다 보고 나면 느껴지는 단어는 ‘불편함’, ‘위선’, ‘고립’이다. 인물들의 대화는 시종 삐걱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가 아닌, 적막감과 머뭇거림이 쉴 새 없이 머문다. 일부러 딱딱하게 선을 긋는 사람도 있고, 과도한 친절로 무장해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숨기고 비위를 맞추는 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사람도 많다. 이 과정에서 말을 뱉기 전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상대방 역시 그 정적을 충분히 감지한다. 관객들도 그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을 그대로 목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극은 관객을 무대 장치로 압도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진행되는 연극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 대화 사이를 파고드는 공기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만 받아들이며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면 배척한다. 그와 같은 소통의 단절과 오류가 현 시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각자의 자화상을 제공한다는 점이 지금 이 연극이 우리의 내면에 다가올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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