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향연, ‘세헤라자데’로 춤추다...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리뷰]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1주년을 기념해 1989년 첫선을 보인 ‘교향악축제’가 올해로 37회를 맞았다.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전국 18개 교향악단이 참가한 이번 축제의 10번째 무대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11일 장식했다. 이 밖에도 2일 인천시향, 4일 수원시향, 20일 경기필 등 경기·인천 교향악단이 무대에 섰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제공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의전당 제공

 

전국 교향악단의 18개 음색이 한 무대에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목표로 전국의 교향악단이 한 무대에 오르는 유일무이한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 교향악축제엔 특히 젊은 지휘자들과 역대 최다 해외 협연자가 출연해 클래식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4월 11일 금요일 무대에 오른 부천필은 앞서 1일 제4대 상임지휘자 프랑스 출신의 아드리앙 페뤼숑을 위촉했다. 2014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정식 데뷔한 페뤼숑은 2021년 라무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약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까지 서울시향의 수석 팀파니스트로 클래식 팬들에게 각인된 음악가다.

 

페뤼숑은 10일 부천아트센터에서 같은 레퍼토리를 미리 선보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여자 주인공 ‘세헤라자데’를 주제로 한 두 작품 라벨의 ‘세헤라자데: 요정 서곡 M.17’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Op.35’를 처음과 끝에 연주하고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Op.26’을 박지윤의 협연으로 올렸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예술의전당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예술의전당 제공

 

색채의 향연, ‘세헤라자데’로 춤추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세헤라자데: 요정 서곡’은 1898년 초연 당시 “러시아 악파를 서투르게 흉내 낸 거친 데뷔작”이라는 비평을 들었다. 여기서 비교된 ‘러시아 악파’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1888년)로 부천필은 두 작곡가가 다른 색채로 풀어낸 ‘세헤라자데’를 한 무대에서 연주했다.

 

1988년 창단한 부천필의 연주력은 그간 소화해 온 레퍼토리만으로도 증명이 된다. 쇤베르크, 바르토크 등 20세기 작품을 국내 초연했으며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가졌다. 무엇보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말러 시리즈는 우리나라에 말러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국내 클래식계의 한 획을 그었고 국내 최정상 오케스트라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날 교향악축제에서 페뤼숑이 이끄는 부천필은 앞으로 보여줄 시너지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페뤼숑이 이끄는 부천필의 음색은 ‘파도’ 그 자체였다. 오보에로 시작된 선율의 흐름을 현악기가 받고 화려한 금관이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현악기의 음색은 때로는 소극적으로, 때로는 큰 무리를 지어 요동쳤다. 페뤼숑의 손짓에 따라 음색이 출렁였고 ‘공기 반 소리 반’의 미덕이 오케스트라에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모티브를 둔 ‘세헤라자데’가 ‘바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모르더라도 부천필의 입체감 있는 연주가 망망대해의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에서는 높고 거친 파도의 움직임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바다와 신밧드의 배’, ‘칼린더 왕자의 이야기’,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바그다드의 축제-바다-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배’ 등 악장마다 붙은 표제가 상상의 틀을 잡아줬다면 부천필의 연주는 관객을 바다에 떠 있는 배 위로 이끌었다. 특히 전곡에 걸쳐 등장하는 세헤라자데 모티브와 바이올린 솔로는 때마다 다른 호흡과 감정으로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다.

 

한편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며 실내악 연주에도 조예가 깊은 연주자다.

 

연주 전부터 브루흐 협주곡 중 ‘가장 풍부하고 유혹적’이라는 평을 듣는 작품 1번을 섬세하고 부드러운 박지윤의 바이올린이 어떻게 발현해낼지 귀추가 주목됐다. 박지윤의 바이올린은 브루흐 협주곡이 요구하는 물리적인 ‘세게’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의 부드럽고 풍성한 음색을 무기로 우아함의 절정을 보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라벨의 ‘하바네라 풍의 소품’도 신비로운 하프 반주와 어우러져 박지윤의 바이올린을 더욱 매혹적으로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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