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자 시조시인
K. 이 영문자가 한국 문화의 진원으로 거듭날 줄이야.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만방에 드높이고 있는 K-바람. 유사 이래 최대의 문화적 확장임을 일깨우듯, 세계 곳곳에서 만나는 현지 외국인의 한국어 사용도 빈번하다. 특히 자국어 사랑에 진심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마켓에서 본 ‘한글교본’은 즐거운 충격이었다.
돌아보면 K가 우리 문화며 국격을 높인 지는 꽤 됐다. 케이팝부터 드라마, 영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날로 우뚝해지는 위상에 덩달아 우쭐해진다. K뷰티와 K푸드로 통칭되는 간편식(라면, 김밥)이며 고급 미식이 세계인을 사로잡는 소식도 연일 신명을 올린다. 더러 외국에서 먼저 유행하고 국내로 인기를 잇는 제품도 있다니, 세계인의 반응이 그만큼 빠르고 넓다는 것이겠다.
그럼 우리의 고전은 어떠한가. 한국의 뿌리 깊은 정신의 고전도 그만큼 세계인을 매혹하고 있는지. 서양의 고전음악에서는 일찌감치 세계적 음악가를 많이 배출하며 K클래식의 위력으로 알려졌다. 그와 달리 우리의 고전인 국악은 비교가 무색할 만큼 인지도가 미미하다. 국외 공연에서는 판소리 등 국악만의 예술성에 매료당하는 외국인이 많다지만, 국내에서는 아주 소수만 즐기니 말이다. 상대적으로 더 외로운 고군분투가 ‘전통’을 달고 있는 한국적 예술(인)의 운명이자 현실인 것이다.
그런 중에 번쩍 외신을 타고 온 반가운 소식이 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한국의 문화 교류로 고전인 시조를 시랑 낭독하는 문화제를 열었는데, 거기서 시조를 직접 쓴 대학생 수상자가 나온 것이다. 프랑스 청년의 한글 시조를 화면과 지면에서 보는 순간 묘한 감동이 실려 왔다. 사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몇몇 뜻있는 이들의 활동에 힘입은 시조운동이 시작된 지 한참 됐고, 현지에서의 창작도 꾸준히 넓혀 왔다. 한국의 고전을 찾다 시조를 발견하고 향유와 함께 창작을 견인하는 시조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지금은 창작시조로 묶어낸 외국인의 시조집도 간간이 나오는 상황이다.
시조(時調)는 K문학의 종가로 불린다. 고려 말부터 한국적 정서와 삶과 자연을 노래해 온 민족 시가인 까닭이다. 근대 들어 창(唱)과 분리한 후부터는 가사만으로 현대의 정형시라는 양식적 정립을 다시 했다. 그런 시조 공부를 미국에서 시작한 배경에는 일본의 단형시 하이쿠가 있었다. 일본의 전통시인 하이쿠는 일찍부터 미국으로 들어갔고, 중등 과정에서 배우고 쓰며 일본 정신문화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와는 좀 다른 전개지만 이제는 프랑스에서도 시조를 쓰는 젊은이들이 나왔다니, 놀라운 문화적 사건이다. 우리네 청춘들은 잘 모르거나 안 읽고 안 쓰는 시조를 어쩌면 외국인이 더 잘 쓰는 경우도 나올 수 있겠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국뽕’ 같지만, 한때 전국을 뒤흔들었던 광고 문구다. 국악에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덧대며 국민적 신명을 올렸다. K문화의 놀라운 확산 속에서 새삼 소환해 보는 ‘우리 것’의 기억이다. 찾아보면, 한복이나 국악 가미한 BTS 공연이 기록을 경신하듯, 우리 고전이며 시조가 함께할 길도 더 있을 테다. K라는 특별한 대문자에 한국 문화의 본류인 고전을 특별한 희망으로 또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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