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 정여울

2004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작가 정여울은 2006년 출간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를 시작으로 최근작 ‘감수성 수업’, ‘데미안 프로젝트’까지 40권 이상 문학·예술·여행·심리학 등 주제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다. “읽기와 쓰기를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해왔다”는 작가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 또 한 사람의 용기 “시인은 시의 힘으로, 음악가는 음악의 힘으로, 화가는 그림의 힘으로, 엄마는 엄마의 용기로, 청년은 청년의 열정으로 이 엄혹한 민주주의의 겨울에 맞서자…그 모든 용기의 별자리들이 모여 끝내 세상을 지키는 아름다움의 바리케이드로 솟아오르리니.”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에 관해 정 작가가 쓴 칼럼의 일부다. 작가는 이 혹독한 겨울에 맞선 시민들의 힘을 ‘별자리로 만든 바리케이드’로 표현하며 우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정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치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쓴 칼럼에서처럼 ‘2024,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시민들의 촛불, 응원봉, 행진, 노래들 속에서 찾아낸 ‘용기’ 또한 그렇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이 언제든 단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용기도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 또한 되찾게 됐습니다.” 계엄 사태의 비참함이 있기 전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했다. 특히 광주 5·18, 제주 4·3 등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투명하게 적어 내린 한강 작가의 작품과 대비된 현실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러나 정 작가는 역사 속 사건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하는 우리들에게 과거의 고통보다는 희망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한강 작가가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고 말한 대목이 정말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저는 광주가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살해당하고, 폭력에 희생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또 다른 보통명사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 작가는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대표작에 대한 강연 연사로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의 작품과 관련된 강연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등단 이래 매년 2~3권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작가다. 문학, 글쓰기 등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여행 등 ‘애호가’ 수준을 넘어선 취향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는데 미술은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좋아하게 됐습니다. 음악, 문학, 미술, 여행, 그리고 심리학이 제 마음속에서 일종의 콜라주를 만들어가며 매일매일 그동안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느낌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배우고 느끼고 사랑하는 것들로 일종의 ‘힐링 패키지’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제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그 힘으로 ‘상처입은 치유자’가 타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문장 이런 작가의 비전을 담은 책이 ‘감수성수업’이다.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잘 느끼고 감동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성이라는 것은 기록함으로써 진짜 내 것이 된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일상을 장악하면서 종이에 일기를 쓴다든가 사진을 인화하는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도 그 기억을 소중히 저장하지 않게 돼 버렸죠. 저 역시 읽고 쓰기가 직업임에도 어떤 때는 너무 피로하고 힘들어 기록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여지없이 그 좋은 감성이 날아가 버리고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려요. 감성을 기록하는 것, 그때그때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들의 감수성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 ‘문장’으로 반드시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정 작가가 문장으로 기록하는 영역은 넓고도 깊다. 작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많은 글과 이야기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저는 아주 힘든 날에도, 우울하거나 슬픈 날에도, 읽기와 쓰기만은 멈추기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저에게 읽기와 쓰기는 불안과 우울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술과 문학의 발자취를 좇는 여행길도 정 작가에겐 새로운 영감이 된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때의 느낌, 그것 자체가 새로운 글감이고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은 여행이 되고 여행은 일상이 되는 삶을 살며 다양한 주제를 모아 성실하게 글로 풀어낸다. 한편 지난 2024년 11월 11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8회 서점의날 기념식’에서 정 작가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이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정 작가는 “계속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용기와 응원을 선물받은 느낌”이라며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여러 구상을 전했다. “미술과 음악에 대한 글을 새롭게 써볼 생각이고 제가 사랑하는 어떤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억압받고 차별당하면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정 작가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읽는 것에서도 큰 치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기억, 꿈, 사상’,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 등 네 작가의 작품은 항상 곁에 두고 지낸다고. 정 작가는 이들의 글을 통해 응원을 받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용기, 나도 어렵지만 그래도 더 어려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배웠다. “독자들도 너무 아프고 외로운 순간, 책 속의 문장이 힘이 돼 주고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순간이 있길 바랍니다. 책 속의 문장이 항상 내 마음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끊이지 않고 상영된다면 우리는 힘들 때마다 그 마음속 영화관에 앉아 아름다운 문장의 힘을 꺼내보며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책이 그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인데 1년에 책 한 권은 읽어야지 [설 특집]

새해 목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인데 1년에 책 한 권은 읽어야지 지난해 발표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새해 다짐 중 ‘독서’는 빠지지 않는 목표인데 독서율은 물론이고 도서구매율도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젊은 세대 사이 ‘책 읽는 것은 멋지다’는 유행이 일고 있어 그 시류에 편승하며 2025년에도 또 한 번 ‘독서’를 다짐해 본다. ■ 책 읽는 문화, 텍스트힙 지난해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출판업계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역대 최단기간인 엿새 만에 100만 부 이상 판매로 이어졌고 지난해 10월~11월 중순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중 절반 이상이 한강 작가의 작품이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일주일간 한강 작가 작품 외에도 국내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 늘었고 특히 소설, 시, 희곡 등 문학도서 판매량이 약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 전부터 젊은 세대 내에서는 ‘글을 읽는 것이 멋지다’는 의미의 텍스트힙(Text hip)이 유행하며 책 읽기 붐이 일고 있었다.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30대 독서율은 각각 74.5%, 68.0%로 성인 종합독서율 43%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역대 최대 인파가 몰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관람객 넷 중 3명이 MZ세대였다. 텍스트힙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기존에 책(Book)과 바캉스(Vacance)를 엮어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북캉스족도 덩달아 늘고 있다. 여행 가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해 각 대형 및 온라인 서점은 물론이고 여행업계에서도 ‘북캉스 패키지’를 만들어 젊은 세대의 ‘책 유행’을 독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책마저 SNS 과시용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한 독립서점 관계자는 “이렇게라도 책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느는 것 자체가 환영할 일”이라며 반겼다. 그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벗고 어떤 면에서든 책을 좋아하는 것부터 독서의 시작”이라며 “손에 쥐고,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면 한 줄이라도 읽게 되고 그렇게 책과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30세대가 이용하는 온라인 미디어 ‘어피티’가 MZ세대 1천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MZ세대로 분류되는 연령의 최근 3개월간 1인당 평균 독서량은 5.62권이었다. 응답자들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로 ‘여가 및 취미 활동’으로 꼽았고 ‘자기계발 및 성장’, ‘지식 습득’, ‘스트레스 해소’, ‘학업 또는 업무 관련’ 순으로 나타났다. 이 세대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소설’(48.9%)이 차지했고 자기계발서(16.9%), 비즈니스·경제서(15.8%), 에세이(10.2%), 학술서적(3.8%) 순이었다. 독서율과 관련해 설문에 참여한 30.7%가 ‘독서 친화적인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특히 최근 걸그룹 멤버의 책 읽는 모습을 따라 하는 등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는 답변도 있었다. ■ 10명 중 6명…1년간 책 한 권도 안 읽어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 이미지투데이 한편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0%에 그쳤다. 이는 10명 중 6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로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했다. 1994년 독서실태조사 실시 이후 역대 최저치다. 이에 문체부는 지난해 4월 18일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시행하는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비독자의 독자 전환과 책 친화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한 이번 계획은 2028년까지 성인의 종합독서율을 50.0%로 설정하고 3.9권이던 독서량을 7.5권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아울러 독서의 유용성을 인식하는 지표는 독서 가치 재발견 등 다각화된 정책을 통해 2023년 67.3%에서 2028년 75.0%까지 높일 계획이다.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율과 독서량, 구입량 등 독서 지표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등 여가생활에서 독서에 대한 선호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검색의 생활화, 동영상 시청 등 정보 습득 경로의 다양화, 디지털 매체·콘텐츠 이용 비중 증가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단, 전자책 독서율 증가 등 긍정적 변화도 관찰됐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60세 이상 노년층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 23.8%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20대는 2021년 대비 3.6%포인트 감소한 74.5%로 나타났고 30대와 40대 종합독서율은 각각 68.0%, 47.9%였다. 소득에 따른 독서율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월평균 소득이 5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의 독서율은 54.7%였으나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인 경우 독서율은 9.8%에 불과했다.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량 3.9권 중 특히 종이책 독서량은 1.7권에 그쳤다. 도서 구입량도 종이책이 1.0권인 데 비해 전자책이 1.2권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독서 장애 요인으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1.3%) 순으로 조사됐다. 초·중·고교생 종합독서율은 95.8%로 2021년 대비 4.4%포인트 상승했고 연간 종합독서량은 36.0권으로 같은 기간 1.6권 더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에 쓰는 시간은 평일 하루 평균 82.6분, 휴일에는 89.0분으로 집계됐다. ‘도서관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학생이 85.4%, ‘독서모임 등 독서 활동을 경험했다’는 학생은 52.3%였다. ■ 국민의 ‘독서권’ 보장해야 한편 지난해 5월 9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주최로 ‘제1회 책읽는사회 독서정책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의 핵심 화두는 문체부의 2023년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 예산 전액 삭감 조치였다. 지역 서점의 문화 활동 지원, 출판사 대상 우수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등 관련 예산 60억원가량을 모두 삭감한 것과 관련해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중앙정부 차원의 독서진흥 정책과 예산이 한순간 증발해 도서업계의 후유증이 크다”고 밝혔다. 앞서 문체부가 발표한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에 대해선 “비독자를 독자로 전환하기 위한 독서 친화적 사회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타당하다”며 “그러나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문체부 내 독서진흥과(가칭)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 문체부에는 출판인쇄독서진흥과에서 독서 담당 사무관과 주무관이 독서정책을 담당할 뿐 실제 업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행정조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독서정책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한국독서문화진흥원(가칭) 설립, 국민 모두에게 1년에 책 1권을 구입하도록 지원하는 국민 독서수당 지급 등 실질적인 독서 진흥안이 제안됐다.

우리동네 독립서점_열다책방

서점이건 도서관이건 책보다는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다. 그렇게라도 대중이 책에 관심을 갖고 독자로 유입되는 과정도 유의미한 일이지만 ‘열다책방’은 공간을 소비하기보다는 ‘책’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책방 주인은 ‘책’이라는 믿음으로 손님들과 소통한다. 공간보다 ‘책’에 집중한 서점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열다책방은 2022년 4월 동춘동 상가건물 3층에 문을 열었다. 눈에 잘 띄는 1층에 비해 다소 접근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방문객들은 생각지 못한 곳에 있어 더 귀하고 책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책방지기 김은철씨도 손님들이 열다책방이라는 공간보다는 책 자체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기를 바란다. “독립서점을 ‘공간’으로 소비하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커피도 마시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서점을 찾는 것도 유의미하지만 아쉽게도 저희 열다책방은 그런 공간이 아니에요. 그저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에 가깝고 저도 그런 곳이 되길 바랍니다. 손님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하려고 노력합니다.” 서점의 본질인 책을 앞세우는 열다책방답게 서점에 들어서면 아담한 규모에 꼼꼼하게 채워 넣은 책들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읽고 싶은 책’입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출판계 소식지 등을 통해 다양한 책 정보를 수집하고 그중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읽을 만한 책’을 선별하고요. 문학, 비문학, 독립출판물의 비율이 대략 4 대 4 대 2 정도 되는데요. 이 비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유지하는 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들어온 책들은 특정 주제에 맞게 묶어 평대를 구성한다. 시의성 있는 정보들을 고려해 책방지기의 주관이 더해져 주로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선정한다. 사회과학 분야가 주를 이루고 자연과학 및 예술 분야도 비중을 맞추려 노력한다. ‘K공대생 열다, 책방’ 많은 독립서점이 그렇듯 열다책방도 독서모임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8~9회의 독서모임이 열리고 책방지기뿐만 아니라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단골 몇 명을 각 모임의 리더로 위촉해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열다 북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 한국소설, 인문학, 과학 도서 읽는 모임을 각각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무척 즐겁습니다. 독서모임 참가자들도 가치 있는 시간이 되도록 A4용지 5~6장 분량의 발제문을 제공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는 편입니다.” 책방지기 김은철씨는 2010년 송도 소재 건설회사에 취업하면서 연수구에 살게 됐다. 2022년 3월 퇴직 후 같은 해 4월 지금의 자리에 열다책방을 오픈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게 된 순간부터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은 계기, 책방을 열면서 계획하고 실행한 과정 등을 담은 책 ‘K공대생 열다, 책방’을 독립출판물로 출간했다. “일해야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면 저는 보다 정신적인 가치에 비중을 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조직은 ‘주인의식’을 강조하지만 진짜 ‘내 일’이 하고 싶기도 했고요. 아파트를 짓는 일도 분명 사회에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물질적 가치를 위해 정신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부분의 책은 인간의 정서와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만족스럽습니다.”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시리뷰]

세월호 참사 당시 합동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 단원고를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서 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벌어진 사회적 참사에 대해 예술이 전하는 기억, 위로, 바람의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10년이 되는 봄을 맞아 경기도미술관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4월 12일부터 진행된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여전히 각종 재난을 겪는 우리 사회에 위로를 전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사회적 상생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은 참사 당시 합동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에 위치해 있으며 단원고를 마주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안산의 공동체로 함께해 온 미술관은 10주기를 추념하며 재난의 상흔에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전시 제목인 ‘우리가, 바다’는 세 가지 ‘바다’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재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해야 함을 의미하는 ‘우리가, 바(로보)다’, 둘째는 재난을 겪는 사회에서 주변을 바라보면서 전해야 할 위로를 담은 ‘우리가, 바(라보)다’, 마지막은 재난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함께 이뤄야 할 바람을 담은 ‘우리가, 바(라)다’이다. ‘우리가, 바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과 고통을 내포한 ‘바다’가 이전과 같은 바다가 될 수는 없지만 생명과 순환을 상징하는 ‘바다’의 의미를 소환해 사회적 재난을 비춰 보고 있다. 이번 전시에 ‘내 마음의 수평선’으로 참여한 안규철 작가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게 된 사건이었다”며 “‘우리가 어떻게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 작가의 작품 ‘내 마음의 수평선’은 누구나 예술작품 창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작은 조각에 담긴 관객의 마음이 윤슬이 되고 수평선이 된다. 이는 그림을 완성하는 공동체인 동시에 사회구성원 모두 아픔을 함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공동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전시장 한가운데 재생되고 있는 댄스필름 ‘내 이름을 불러줘’는 안무가 송주원이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몸짓으로 하나하나 새겨 추모하고 애도하는 작품이다. 여백의 공간에서 오직 무용수의 몸짓만이 드러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며 관람객이 바라보는 장면에 공간과 작품을 덧입힐 수 있도록 설치했다. ‘우리가, 바다’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벌어진 사회적 참사에 대해 예술이 전하는 기억, 위로, 바람의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중 김지영 작가의 ‘파랑 연작’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과거에 발생한 32개의 서로 다른 재난 상황을 신문 보도 사진을 바탕으로 표현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한 32개의 그림을 채운 각각의 파란색은 재난에 대한 서슬푸른, 빛바랜, 차가운, 잊혀진, 아득한 우리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하다.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은 “전시를 통해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재난을 대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공동체로서 함께 고민해야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4일까지.

아이돌 굿즈만 있나? 지역과 문화를 품은 '굿즈의 세계'

굿즈 마케팅은 브랜드를 알리고 소비를 늘리는데 더 없이 좋은 마케팅이다. 최근 늘어난 기획전과 무분별한 굿즈 출시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늘어났다는 시선도 있지만 경기문화재단의 ‘지뮤지엄샵’과 인천 강화군 ‘진달래섬’은 각자 예술과 지역 공동체를 상품에 녹여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특이점을 찾아라 몇 년 전 BTS 멤버 RM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관람한 후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한 장에 해당 전시는 물론 굿즈까지 유행이 된 사건이 있다. RM이 방문한 전시는 반가사유상 두 점이 상설 전시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었다. 그는 전시 관람 사진과 더불어 작업실 사진을 게재했는데,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반가사유상 굿즈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순식간에 완판되며 ‘뮷즈(뮤지엄+굿즈)’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은 2010년대 후반부터 품절대란을 일으키며 ‘국립 굿즈’라는 평을 들었다. 한글을 테마로 한 문구·사무용품을 비롯해 패션소품 등 소장가치 높은 상품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판매하며 ‘굿즈 맛집’으로 통했다. 굿즈 마케팅은 브랜드를 가장 쉽게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해당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팬심과 소비심리를 공략하는 것으로 대부분 해외에선 특정 브랜드나 연예인의 기획 및 홍보상품을 머천다이즈(merchandise·MD)로 부르나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굿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굿즈 시장은 굿즈를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굿즈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굿즈의 시작점은 1990년대 소위 ‘기념품’으로 불리던 연예인 포스터나 사진이었다. 별다른 가공 없이 가수의 음반을 사면 끼워주던 포스터는 이제는 음반마다 다른 포토카드가 들어있어 팬들로 하여금 같은 음반을 여러 장 사게 만드는 마케팅으로 진화했다. 아이돌 시장이 커지면서 공식 굿즈 외에도 팬들이 직접 아이돌의 사진을 가공해 스티커, 파우치, 휴대폰 케이스 등을 만드는 문화도 형성돼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홍보와 기획을 더해 본격적인 굿즈 마케팅을 펼쳐온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매년 연말 음료 17잔을 마셔야 얻을 수 있는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이 마케팅은 ‘스벅 덕후’를 양산하며 컵, 텀블러, 원두 등 기존의 MD상품의 판매를 동시에 끌어올렸으며 연말에만 해오던 굿즈 마케팅은 이젠 썸머 레디백, 썸머 체어 등 시즌별 행사로 확산됐다. 굿즈 마케팅은 출판시장에서도 활발하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후 책값에 대한 가격 경쟁이 사라지면서 알라딘을 필두로 교보문고, 예스24 등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굿즈 증정 및 판매를 시작했다. 알라딘은 2015년 홈페이지에 ‘굿즈 샵’을 오픈해 상품 가치가 있는 판매 제품이라는 인식을 정착시켰다. ‘굿즈’를 넘어 ‘뮷즈’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실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등 일곱 곳의 각 뮤지업숍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 오던 상품 개발을 2012년부터 ‘지뮤지엄숍’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통합 운영, 관리하고 있다. 뮤지엄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해 오던 방식은 코로나19 이후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관람객이 방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스토어 운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고 2021년 지뮤지엄숍 온라인스토어가 탄생한 것. 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김진아 대리는 온라인스토어 운영에 대해 “뮤지엄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상품 구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세대의 취향과 요구에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문화재단 산하 일곱 곳의 뮤지엄에서 내놓는 굿즈의 차별점은 각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작품을 활용해 상품을 개발한다는 점이다. 경기도박물관은 서화, 도자기를 활용한 상품 개발이 많고 경기도미술관은 미술관 로고를 디자인화해 ‘문양’을 개발한 후 문양을 입힌 에코백, 문구류, 텀블러 등을 개발하는 식이다. 백남준 선생의 TV 브라운관을 본떠 만든 백남준아트센터의 ‘색동가방’ 제품은 국내는 물론 외국인 관람객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리는 “소장품이 많은 박물관일수록 상품화할 콘텐츠가 많아 유리하다”며 “기관의 특성과 작품에 담긴 뜻을 고루 살려 상품 가치로 표현 바로 소비로 이어지게끔 살피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뮤지엄 굿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김 대리는 “소비를 이끄는 힘은 ‘필요성’보다는 ‘소장 욕구’가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유물이나 작품의 본질을 굿즈에 담아내는 정성보다는 소비를 끌어낼 수 있는 특이점과 당위성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덧붙였다. 인천 강화군의 ‘진달래섬’은 2013년부터 약 10년간 지역 문화기획, 로컬 콘텐츠 제작, 로컬 공간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협동조합 청풍이 강화도의 좋은 물건을 선보이고자 문을 연 로컬 소품숍이다. 2020년부터 운영 중인 진달래섬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관광기념품보다는 강화도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로컬 상점, 창작자, 장인이 만든 물건을 소개하고 협업하며 강화도를 소개하고 있다. 진달래섬 관계자는 가장 인기가 많은 굿즈로 강화도의 천연 작물인 ‘소창’을 꼽았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은 실로 건강하게 짜는 천연 작물로 만든 손수건, 행주, 패브릭 포스터 등 무형광 소창 제품들을 제작·판매하고 있다”며 “강화도 특산물 ‘순무’로 만든 순무차 등 다양한 먹거리 제품도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진달래섬에서 생산·판매되는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강화도를 담아내고 있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진달래섬 관계자는 “강화도 주변을 감싼 서해는 동해의 넘실거림과는 거리가 먼 잿빛의 갯벌과 낙조에 가까운 만큼 강화도만의 풍경과 특색, 아름다움을 담긴 물건을 소개하겠다”고 전했다.

'그림으로 책과 더 친해져요'... 군포 그림책꿈마루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 등 가족을 위한 날이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림책 도서관으로서의 역할과 전시 및 카페가 갖는 휴식 공간이 있어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군포 그림책꿈마루를 소개한다. ■ 한국 그림책의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 지난해 9월 개관한 군포 그림책꿈마루는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다. 지하 1층의 주요 시설물은 열람실(그림책움), 아카이브실, 전시실(상설, 기획), 수장고, 수정원 등으로 열람실은 483㎡에 그림책 1만8천28권을 갖추고 있다. 그림책 특성상 대여는 불가하나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외에도 어른 그림책, 해외 그림책 원서, 국내 그림책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도서관 내에서 자유롭게 열람 가능하다. 아카이브실은 기획전, 체험, 교육에 이용할 수 있는 자료, 희귀 도서, 그림책 기증본 도서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림책꿈마루가 제시하는 ‘한국 그림책의 흐름’에 따르면 우리나라 그림책은 세종 16년에 편찬한 ‘삼강행실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광복 직후인 1946년 발간한 ‘토끼와 원숭이’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첫 단행본 그림책으로 이 책의 원화와 신문기사, 해석 등이 아카이브실에 전시돼 있다. 그림책꿈마루 조성 초기엔 전국의 그림책 작가를 포함해 그림책 관련 인물·단체에서 자료를 기증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림책 콘텐츠 개발 세미나, 한국 창작 그림책 아카이브 구축 운영 등 다양한 학술용역과 세미나, 전시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한국 그림책 주요 작가회 회원 3명과 경기 중부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대표 작가 3명 등 총 6명의 구술 채록 영상을 제작해 그림책 기록관으로서의 의미를 갖췄다. 이처럼 그림책꿈마루는 그림책을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한국 그림책의 역사를 구축하는 기록관, 그림책의 예술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박물관 기능 등 복합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 배수지에서 도서관으로 그림책꿈마루가 세워진 터는 1991년 산본신도시 개발과 동시에 군포 배수지로 개발된 곳이었다. 안양 포일정수장에서 끌어온 물을 보관했다가 각 가정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배수지로 개발됐으나 1993년 군포시 관내에 새로운 정수장이 준공되면서 운영이 중지됐고 2005년 3월 잠시 그라운드 골프장으로 조성돼 사용되기도 했다. 2009년 11월 용도폐지 이후 한동안 방치됐고 2017년 시책추진보전금 공모사업 ‘넥스트경기 창조 오디션’에서 대상을 받으며 우승상금 100억원과 시비 76억원 등을 투입해 타당성 조사, 설계공모를 거쳐 전시·체험·교육 등 그림책 관련 문화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그림책꿈마루가 탄생했다. 도서관 곳곳엔 배수지였던 흔적을 남겨뒀다. 배수지에 담긴 물이 각 가정으로 나가는 집수정(배관출구)이 보존돼 있고 배수지를 받치던 기둥은 로비 기둥으로 재활용했다. 또 그림책움 입구 정면에는 물이 들어오던 배관 입구를 동그란 창으로 남겼다. ■ 전 세대를 아우르는 그림책 우리나라에서 그림책을 비롯한 아동·청소년문학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20년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2년 이수지 작가가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단순히 유아를 위한 책을 넘어 문학성, 예술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장르로 성장하고 있다. 그림책꿈마루도 개관 당시 그림책이 갖고 있는 기존의 교육적 이미지 외에 예술적 가치를 확대하고자 개관 특별전 ‘세상은 얼마나 큰가!’를 올해 2월까지 개최했다. 또 개관일인 2023년 9월 1일 이태수 작가의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를 주제로 한 그림책 세상 북 토크를 열었다. 배경이 군포시 산본인 작품으로 군포시민 100여명과의 대화가 더 큰 의미를 가졌다. 한편 그림책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고 연령별로 그림책 감상과 체험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뿐 아니라 초중고교 및 대학생, 성인 등 10인 이상의 단체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유료 프로그램으로 관람 시간 및 코스에 따라 나뉜 꿈 코스, 꿈마루 코스, 미소 코스 등 3개 코스 프로그램을 연중 접수할 수 있다. 그림책꿈마루는 ‘그림책=어린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을 구비하고 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외 평소 만나기 힘든 독립출판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읽고 싶은 주제의 그림책을 사서에게 문의하면 맞춤으로 추천을 받을 수 있다. 한편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관내 지역아동센터 13개소를 방문해 시설마다 그림책을 후원하고 그림책꿈마루 견학코스도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6월 2일까지 이태수 작가의 원화 전시 ‘늦은 날개짓, 새잎 틔우다’를 개최해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15점, ‘알록달록 무당벌레야’ 15점 등 총 30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서양 음악사의 정점’에 도전하는 ‘젊은 거장’의 피아니즘 [공연리뷰]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지난달 5일 부천아트센터 프라임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부천을 찾았다. 트리포노프는 스무 살 무렵부터 콩쿠르에 참가해 ‘콩쿠르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많은 수상을 기록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참가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의 연주를 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모든 것, 그 이상을 가졌으며 그의 연주는 섬세한 동시에 신 들린 듯하다”고 평했다. ■ 과감하고 학구적인 레퍼토리 트리포노프가 ‘젊은 거장’으로 전 세계 클래식 팬들에게 추앙받는 가장 큰 이유는 한 시즌 동안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때때로 흥행을 고려하지 않은 듯 과감하고 학구적인 곡들로 구성하는 편인데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그랬다. 서울 롯데콘서트홀(4월 1일)에서 트리포노프는 ‘Decades’라는 부제에 걸맞게 알반 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바르토크, 코플랜드, 메시앙, 리게티, 슈토크하우젠, 존 애덤스, 코릴리아노 등 20세기 작곡가들의 피아노 독주곡을 시기 순으로 연주해 마치 강의하는 음대 교수 같다는 평을 들었다. 다음 날 예술의전당의 프로그램은 부천아트센터 연주와 동일했으며 마지막 곡 ‘Hammerklavier’를 부제로 달았다. 전반부는 장필리프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집 a단조, RCT5’,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 K.332’,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Op.54’를 연주했고 후반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B♭장조, Op.106, Hammerklavier’를 배치했다. 롯데콘서트홀에 비해 대중에게 익숙한 작곡가들의 작품이었지만 부천아트센터에서의 프로그램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품들이었다.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집과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거기에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를 하루에 몰아 연주한다는 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집중력과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 개성과 본질의 경계에 있는 해석 이날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던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는 음악적으로 곡의 특징을 담은 제목은 아니다. 그저 셈여림 조절이 안 되던 과거 건반에서 두드려 소리내는 방식의 개량된 ‘피아노포르테’를 뜻하는 독일어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현대 피아노포르테의 특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곡이라고 볼 수 있다. 1악장부터 두드러지는 셈여림은 이 곡의 기술적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만 트리포노프는 피아노의 음량을 어떻게 하면 자유자재로 크고 충실하게 낼 수 있는지 간파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분명 가장 큰 소리, 포르테시모(ff·아주 세게)를 내고 있는 모습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몸짓이 대비돼 조금 이색적이기까지 했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의 백미는 단연 3악장이다.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서양 음악사의 정점”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이 악장은 한 음 한 음 소리를 잃어가는 베토벤의 절절함이 기도처럼 연주된다. 여기에서 트리포노프는 시종일관 보여온 개성있는 연주와 해석을 잠시 멈추고 가장 곡의 본질에 가까운, 정석적이고도 사색적인 연주를 보여줬다. 이어지는 4악장은 3악장의 고귀한 분위기는 가져가되 다소 빠른 템포로 전환돼 함머클라비어와 함께 베토벤 후기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과 자주 비교된다. 합창 4악장과 함머클라비어 4악장, 두 악장을 듣다 보면 소리를 잃어가는 베토벤은 아직 이 세상 사람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됐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이 ‘죽음’이라는 어둠의 세계가 아닌 이면의 세계의 시작이었던 것으로, 모든 것을 초월한 경계에 올라 슬픔도 기쁨도, 환희도 절망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품고 품다가 그 자체의 진주알을 뱉어낸 듯하다. 이날 트리포노프가 연주한 함머클라비어는 말년의 베토벤이 갖고 있던 만감 중 자신에게 닥친 온갖 고난을 이겨낼 강인함과 끝까지 도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느끼게 하는 연주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베토벤 소나타에 있어 교과서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가 작품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해석을 추구하는 편이라면 트리포노프는 자신만의 언어, 색채, 해석을 온전히 보여주는 연주였다. 그리고 각자 느끼는 생소함의 크기는 다르더라도 그가 세계적으로 가장 바쁜 연주자이자 ‘젊은 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납득 가능한 해석과 연주였다.

‘문화재’의 새이름 ‘국가유산’

5월 17일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지난 60여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명칭과 분류 체계도 5월 중순부터 ‘국가유산’ 체제로 탈바꿈한다. 국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누고 각 유산의 특성에 맞는 보존·전승 활동도 지원한다. ■ 문화·자연·무형유산으로 분류 이달 17일부터 문화재라는 이름과 분류체계를 국가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환하고 문화재청 또한 국가유산청으로 조직 명칭을 변경한다. 이는 17일부터 시행되는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른 것으로 국가유산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변화된 문화재 정책 환경을 반영하고 유네스코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국가유산 체계로 전환한다고 제정 이유를 밝힌바 있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유형문화재(국보·보물), 무형문화재, 기념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민속문화재를 60년 동안 고수해 왔다. 국가유산기본법은 문화재 명칭과 분류체계 개선을 통해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를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유산으로 명칭을 변경 확장하고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세부 분류해 국제기준인 유네스코 체계와 부합하도록 하고 ▲이를 통틀어 국가유산이란 용어를 채택해 문화재 체제를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취지다. 또 ▲기존의 문화유산을 지정·등록문화재 중심으로 보호하던 것에서 미래의 잠재적 유산과 비지정유산들까지 보호하는 포괄적 보호체계로 전환하고 ▲보존·관리 중심에서 활용·향유·진흥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민의 국가유산 향유 권리, 온전한 가치의 계승, 보존과 활용의 조화, 교육·홍보, 산업·육성 기반 조성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유산 보호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아울러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 우리 국가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처음 등재된 1995년 12월 9일을 기념해 매년 12월 9일을 국가유산의 날로 정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기본법이 국가유산 보호 정책의 최상위 기본법으로 자리해 그 아래 3개법(문화유산법, 자연유산법, 무형유산법)을 재편·정비했다. 국가유산이란 기존의 문화재를 대체하는 말로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통칭하는 말이다. 새로운 분류에 따라 문화유산은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을 말한다. 국가지정 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등 기존의 유형문화재와 국가민속문화유산(민속문화재) 그리고 기념물로 묶였던 사적이 문화유산에 포함한다. 자연유산은 동물, 식물, 지형,지질 등의 자연물 또는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으로 국가지정 자연유산에는 천연기념물, 명승 등 사적을 제외한 기존의 기념물이 자연유산으로 분류된다. 무형유산이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돼 공동체, 집단과 역사,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된 무형의 문화적 유산을 말하는데 기존의 무형문화재가 명칭 전환된다. 개편된 국가유산 분류체계에 따라 문화·자연·무형유산 유형별 특성에 맞는 보존과 전승을 강화한다. 특히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전통재료의 안정적인 수급관리와 품질관리를 위해 9월 경북 봉화에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가칭)’를 개관하고 전통재료 인증제도(2024년 아교, 안료 기와·전돌, 한지→2025년 철물)를 처음으로 시행한다. 또 지난해 제정한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2023년 3월 21일)에 따라 자연유산 분야의 종합적·전문적인 보존, 연구, 활용을 위해 ‘국립자연유산원’ 설립을 추진한다. 무형유산 분야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무형유산 전승 저변을 확대하고 올해 최초로 국가무형유산 우수 이수자를 대상으로 전승활동 장려금을 신설(270여명 대상·연간 16억원)해 안정적인 전승활동을 지원한다. ■ 유산별 맞춤 보호체계 구축할 것 주민이 거주하는 국가유산과 그 주변의 낙후된 정주기반시설을 개선해 국가유산과 주민의 공존 및 상생을 도모하는 ‘국가유산 경관개선 사업’(2024년 5개소 대상 경관개선 가이드라인 마련·5억원)을 신규 지원한다. 매장유산 발굴 분야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생활밀접형 건설공사를 대상으로 지원했던 진단조사(표본·시굴조사) 비용을 올해 확대 지원(2023년 150건, 30억원→2024년 250건, 50억원)해 서민과 영세업자의 부담을 완화한다. 한편 올해부터는 향후 5년간 ‘기후변화 대응 국가유산 보존관리 기술개발’에 총 231억원을 투입하고 올해 산·학·연을 대상으로 국가유산 피해 회복과 적응관리 2개 기술개발 분야의 6개 과제를 지원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풍수해로부터 국가유산의 피해 예방과 최소화를 위해 장마, 집중호우, 태풍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인 4~6월을 ‘풍수해 예방 특별 안전점검’ 기간으로 지정해 집중 점검하고 초기 신속 복구를 위한 긴급보수비도 2023년 37억원에서 올해 41억원으로 확대한다. 또 산지나 계곡 등 자연재난 취약지역에 위치한 국가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자연재난 취약 국가유산 보호사업(1단계)’을 추진한다. 우선 올해부터 내년까지 전국의 취약지역에 있는 국가유산 360여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후 적절한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이후부터 2028년까지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국가유산에 대한 방재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유네스코 유산의 등재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국제사회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해 유네스코 유산 신규 등재를 확대한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여부가 올해 말 결정될 예정이고 올해 등재 신청하는 ‘반구천의 암각화’(세계유산)와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인류무형유산)이 성공적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국내외 역량을 집중한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존 국내 체계에서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이 기념물 카테고리에 함께 분류돼 있었으나 유네스코 체계상 사적은 문화유산, 명승·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으로 돼 있어 분류체계가 상이했다”며 “국가유산 체계가 전환됨에 따라 국제기준의 분류체계로 재정비(기념물→문화유산 또는 자연유산)돼 세계유산 등재 시 신청유산을 국제기준과 일관된 체계에 따라 명시해 명확하게 유산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유산 명칭 변경과 관련해 “각 유산의 다양한 특성을 반영한 보호원칙의 재정립 등 우리 유산의 가치 제고 및 선제적 보호체계 구축 등 국민 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유산 보호 정책으로 나아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동네 독립서점_책방연두

‘책방연두’에서는 잠깐이라도 독립된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 24시간 언제라도 들러 책도 읽고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동네주민들에게 ‘다정한 책방’으로 불리는 곳이다. ■ 24시간 다정한 책방 ‘책방연두’는 2020년 군포시 오금동에서 문을 열어 지난해 7월 현재 위치인 부곡동으로 이전했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해 독서모임하기에 적합한 곳을 찾다가 군포에 자리잡았다. 서점에 구비된 책들은 “인문학적 사유가 바탕이 됐을 때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장 강신영씨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방연두는 도서관처럼 책을 볼 수 있는 책방으로 꾸몄습니다. 학창 시절 돈이 없을 때, 책방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꺼내 읽던 기억이 남아 있어 비록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맘편히 책을 훑어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책방연두가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인으로 24시간 운영된다는 점이다. 북클럽 회원이라면 아무 때나 들러 책을 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공간 이용도 자유롭다. “회원이 아닌 경우엔 오전 10시에서 오후 9시로 제한을 두긴 했지만 동네에 언제든 들를 공간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긴 영업시간을 선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인 운영이라는 명칭이 별로 정감이 가질 않아 ‘자율 책방’으로 명명하고 있어요. 자율 책방을 시작한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지만 이용하는 분들의 반응이 좋아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방연두가 자율 책방 방식을 택한 이유는 책방 운영만으로는 임차료 등 책방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강 씨는 책방 외에도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는 환경에서 그렇다고 책방 문을 자주 닫아 놓는 것도 책방을 찾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 자율 책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책방 이용객들 대부분이 책을 사러 온다기보다는 아늑한 공간에서 개인 업무를 보는 작업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구비해 둔 책이 인문학 중심이어서인지 구매율이 높진 않네요.” ■ 사유하는 것과 살아있는 것 강씨가 책방을 열면서 염두에 뒀던 일 중 하나는 독서모임이다. 서점을 중심으로 규모는 작아도 내실 있는 독서모임이 꾸준히 진행되길 희망했다. “정기 독서모임 중 ‘화요 인문학 읽기 모임’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6주간 읽어내는 모임인데 그동안 읽고 나눴던 책이 많은 편입니다. 에리히 프롬, 헤르만 헤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경식, 신형철 등의 글들을 읽었습니다. 화요모임 외에도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소소하게 철학 읽기’, ‘사회적 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임 구성원들과 종종 영화를 함께 보며 나누기도 합니다.” 강씨는 책방연두라는 독립된 공간이 일상 속 지친 이들에게 잠깐의 자유와 쉼이 되길 바란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는 것과 살아있는 것은 같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책방연두에서 살아있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우리동네 독립서점 '여름서가'

‘여름서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인연을 맺고, 공간을 공유한다. 고민 많은 20대에겐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책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겐 여름서가 공간을 권하며 친구가 된다. 좋은 선배가 운영하는 책방 ‘여름서가’는 2022년에 경기대 후문에 문을 열었다. 대표 김민식씨는 서점을 오픈하기 전부터 광교역 근처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했다. 그 경험을 살려 인근 대학생들이 독서의 장점을 느끼고 취업 상담이나 인생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길 바라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신이 갖고 있던 20대 때의 고민을 떠올리며 좋은 선배 역할을 하고 싶었다. “자기 발전에 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력의 시간은 짧게 갖는 것이 좋다’며 결과를, 성과를 지향하는 듯한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 전에 분명한 건 그 노력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겁니다. 어떤 경험도 소중하다는 것이 저의 가치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꿈꾸는 분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여름서가는 시, 비문학, 문학,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구성해 들여놓는다.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어도 나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책이 자기계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북클럽을 운영했던 경험, 그리고 독서모임 회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책들로 서가를 꾸미고 있습니다. 저는 잘 읽히고 좋아하는 문체를 발견했을 때 30쪽만 집중해서 읽기를 권하고 싶어요. 점점 빠져들고 뒷이야기가 궁금하면 그 책은 ‘인생책’이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책 외에도 공간을 공유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여름서가는 오픈하면서부터 수많은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중 독서모임은 수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클럽으로 성장했다. “서점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사를 진행해본 것 같아요. 매주 3~4회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주말 오전에 진행하는 모임이 만석일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독서모임 못지않게 독자들이 반기는 행사는 ‘저자와의 만남’이다. 평소 만나기 힘든 저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서울 외 지역에서는 기회를 찾기 쉽지 않다. “지난달 15일에는 ‘즐거운 남의 집’의 저자 이윤석, 김정민 작가를 초대해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은 독자들이 독서모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꾸준히 진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여름서가만의 굿즈 판매를 시작으로 플리마켓을 기획하고 있고, 팝업스토어 행사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름서가는 지난해 12월부터 예약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손님은 서점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음료와 공간을 제공한다. 물론 예약하지 않은 손님도 그 시간에 서점 이용이 가능하다. “신경 써서 꾸며 놓은 공간인데 서점에서 책만 파는 게 뭔가 아쉽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이 공간을 더 오랫동안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약제를 떠올렸습니다. 예약제의 장점은 저희가 준비한 커피와 차를 드시면서 기증 도서가 꽂힌 공유책장을 맘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외에도 독서 관련 콘텐츠를 구상하고 운영 중이니 편히 오셔서 즐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