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임용 교육청 위탁 채용’ 겉돈다

사립학교 교사 채용 과정에서 비리를 방지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 중인 ‘교원 임용 교육청 위탁채용 제도’에 참여하는 인천지역 학교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웅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17개 시도별 사립학교 위탁채용 현황’에 따르면 인천지역 사립학교 중 위탁채용 제도에 참여하는 학교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원임용 교육청 위탁채용 제도’는 사립학교 교원 채용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청과 학교법인이 MOU(업무협약)를 맺고 전형절차 일부를 공립 중등교사 임용시험과 동일한 방법으로 위탁해 시행하는 제도를 말한다. 인천시의 경우 2013년부터 올해까지 5년동안 지난해 단 1곳이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위탁채용 제도에 참여하는 사립학교는 전무했다. 전국에서 위탁채용 제도 참여가 전무한 곳은 인천과 세종시 2곳 뿐이다. 그러나 세종시의 경우 사립학교 수가 1곳에 불과한 점을 고려했을 때 인천의 참여율이 훨씬 저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천 뿐 아니라 전국 참여율 역시 저조한 편이었다. 전국 기준 2013년에는 7.4% 학교만 참여했고, 2014년에는 7.8%, 2015년에는 8.9%, 2016년에는 8.1%, 2017년에는 9.9%로 단 한 번도 10%를 넘어서지 못했다. 노 의원은 “이사장 친인척 낙하산 채용비리, 임용 대가성 뇌물 등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며 “고질적인 사학적폐 교사 채용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위탁채용제도를 더욱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희기자

거액 받고 ‘폭탄업체’에 불법대출…잿밥 욕심 ‘은행 지점장’ 법원, 징역5년 중형 선고

단기간에 거액의 허위 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뒤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폐업하는 이른바 ‘폭탄업체’ 운영자에게 골프 접대와 함께 수천만원을 받고 불법대출을 해준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은행 지점장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KEB 하나은행 서울 모 지점장 A씨(54)에게 징역 5년에 벌금 9천900만원을 선고하고 4천7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 골프강사인 대출 브로커 B씨(47)의 지인으로부터 총 현금 4천800여만원을 받아 챙기고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인 근로자 파견업체 대표 C씨(48)로부터 기업 운전자금 3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A씨에게 “대출을 도와주면 성사금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 A씨는 이러한 제안을 받고 “대출금의 10%를 대출 실행 전 사례금으로 달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도움을 받아 불법대출에 성공한 C씨는 이른바 ‘바지사장’을 두고 폭탄업체를 운영하면서 총 9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금융기관 직원으로 일반인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고 금융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했다”며 “대출 실행과 관련해 받은 금품과 향응 액수가 적지 않고, 범행의 대부분을 부인하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경희기자

[무너진 교권] 상. 설 곳 잃은 교사들

교육은 나라의 근간을 세우는 일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 남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그러나 최근 적극적인 교사 지도가 아동학대로 비화해 고소·고발의 빌미가 되는 등 교사들의 지위가 땅에 떨어져 교권회복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본보는 각박해져 가는 교실의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책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교사는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1학년 B군을 지도하면서 애를 먹었다. B군은 툭하면 친구들을 폭행하고, 수업시간에 난동을 부리는 등 심각한 폭력 성향을 보였다. A교사는 그때마다 B군을 끌어안고 말렸다. 물어뜯고 발길질을 당했지만, 친구를 때렸을 때는 사과해야 한다며 아이를 달랬다. 그러다 지난 4월, 같은 반 학부모가 B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자 B군 지도에 애를 써 고맙다던 B군 부모는 A교사가 B군을 끌어안고 말리는 통에 신체적 억압을 받았고,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았다며 시교육청과 국민권익위에 A교사를 신고했다. A교사는 조사끝에 최근 무혐의를 받았다. #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C교사는 얼마전 20여년간 지켜온 교사직을 내려놨다. 수업시간마다 소리 지르고 학생들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던 D양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 때문이다.C교사는 수차례 D양을 불러 타일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한차례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 경찰 수사 결과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C교사는 더이상 학생들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며 올해 초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근 교사들의 교권이 땅에 떨어지면서 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15일 일선 교사들과 교육단체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몰려 속앓이를 하는 사례가 올해만 수십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져 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이 오갔을 때, 원인이 된 상황은 무시되고 정서적 감정 학대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위강 푸르미가족봉사단장은 “최근 인천 모 여중 학생들이 교사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등의 협박이 있었지만, 교사는 이를 못 들은 척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지도하기보다는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을 포기해버리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박승란 인천시 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학생 인권만 강조되다 보니 문제 학생이 아닌 일선 교사들이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는 현상이 빈발한다”며 “‘내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생각이 아이들로 하여금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게 만들고, 무조건 법으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희기자

“마사지 재능기부, 마음도 어루만져요” 과천시 마사지 봉사단체 ‘웃음꽃 피는 발사랑’ 현문정 회장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 돼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전달됩니다.” 마사지 봉사단체인 ‘웃음꽃 피는 발사랑’을 이끄는 현문정 회장은 봉사는 남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며 어려운 이웃, 소외계층을 품는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천시 대표적인 재능기부단체인 웃음꽃 피는 발사랑은 2008년 마사지 동호회 회원을 중심으로 결성돼 현재까지 홀몸노인과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과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재능기부박람회, 평생학습축제 등에서 활동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현 회장은 청소년에게 아로마 핸드 마사지 등 각종 마사지를 가르치며 청소년들과 함께 과천시 관내 경로당과 복지시설에서 마사지 봉사를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청소년에게 형식적인 봉사가 아닌 진정한 봉사활동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현 회장도 봉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자녀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현 회장의 자녀와 자신도 봉사가 생활 일부분이 됐다. “학생들에게 마사지를 교육한 후 경로당을 찾아 마사지 봉사활동을 할 때 아이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손을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자신의 희생으로 어려운 이웃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바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시작된 것”이라고 현 회장은 말한다. 현 회장이 빠트리지 않는 봉사활동이 또 하나 있다. 월드비전 코칭센터의 교육강의다. 그는 이곳에서 유대인 자녀교육의 기초인 하브루타 대화법을 비롯해 지문 인적성 검사, 다중지능개발코칭 등을 강의하고 있다. 하브루타 교육은 질문과 대화를 중심의 토론식 학습법으로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논리적 사고를 키워 줄 뿐만 아니라 상호 간 토론과 의사소통의 능력을 길러준다고 한다. 현 회장은 “강의를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늘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도 하루빨리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인성ㆍ창의성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 회장은 바람은 소박하다. 자신의 봉사활동으로 누군가 희망을 품고 이 사회가 건강하고, 밝아지는 것. 그리고 교육받은 학생들이 진정한 봉사자로 활동하는 것이다. 과천=김형표기자

악취 주범 ‘가좌하수분뇨통합처리시설’ 오명 벗을까?

인천시가 서구와 동구 일대 주민의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서구 가좌동 가좌하수분뇨통합처리시설의 악취 원천 봉쇄 방안을 검토한다. 15일 시에 따르면 총 216억원의 예산을 들여 가좌하수분뇨통합처리시설 증설사업을 추진한다. 시는 내년 1월까지 환경부의 환경 영양평가 협의내용 변경 결과를 담은 용역을 완료하고 2월 공사에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가좌분뇨처리장은 지난 2009년 약 35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조성됐다. 이곳에서는 강화·옹진군을 제외한 인천 전 지역의 분뇨가 처리된다. 하지만, 인천지역 분뇨 발생량이 당초 계획보다 늘어남에 따라 증설 요구가 이어졌다.현재 가좌분뇨처리장 처리 용량은 하루 1천780t인 데 반해 분뇨 발생량은 지난 2013년 기준 2천30t을 넘어서는 등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증설 공사가 완료되면 분뇨 처리량이 2천580t으로 증가한다. 문제는 악취다. 가좌분뇨처리장은 악취 민원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악취 민원은 시설이 위치한 서구 가좌동을 넘어 석남동, 동구 송림동 일대 등 사업대상부지 반경 5㎞에 달했다. 시가 악취 민원이 발생한 4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악취가 발생 이유로 침전지 수로·설비의 개방형 조성과 악취 포집 용량이 적은 점 등이 지목됐다. 이번 증설 공사를 하면서 개방형 최종침전지 수로·설비에 밀폐형 덮개를 씌우고 바이오필터 탈취기를 설치하는 시설 전체를 밀폐하는 이유다. 문제는 분뇨차량이 가좌분뇨시설로 드나드는 진출입로와 분뇨를 옮겨 담는 시설 등이 여전히 개방형으로 남아 악취 민원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곳 악취를 근본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분뇨차량 진출입로를 지하화해야 하는데, 추가 투입 예산(약 100억원)이 만만치 않다. 실례로 지난 13일 열린 제244회 임시회 종합건설본부에 대한 업무보고 자리에서 건설교통위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지적하자, 시는 예산이 추가로 마련돼야 진출입로 지하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 관계자는 “가좌분뇨처리장의 진출입로를 지하화 하기 위해서는 약 100억원의 예산이 투가로 필요한 상황”이라며 “시의회가 적극적으로 도와 준다면 지화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주영민기자

“다이소로 인한 동네문구점 침체 주장 사실과 달라”

다이소는 15일 최근 일부 문구단체의 ‘동네 문구점 침해’ 주장과 관련, 특정기업을 지목해 적합업종 지정 및 사업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다이소는 이날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등 문구 관련 단체 3곳이 조사 발표한 설문에 대해 이해당사자 등이 다이소를 지목, 조사 발표한 설문결과가 객관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이소 관계자는 “다이소는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의 32개 회원사와 협력업체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속적인 업체 수의 확대와 거래규모 증가로 동반성장을 이뤄 오고 있는 만큼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의 최근 주장은 전체를 대변하기 어렵다”면서 “아울러 동네 문구 소매 시장에는 온라인 시장을 비롯 알파와 같은 문구 전문점의 영향이 더 큼에도 불구, 다이소만을 특정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전혀 논리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 이유로 온라인을 통한 문구 구매액은 지난 10년 사이에 4배 가까이 성장했으며, 알파를 포함한 국내 5대 문구 유통사의 매출은 2011년 3천200억 원에서 2016년 4천50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고 다이소 측은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을 비롯 (사)한국문구인연합회,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으로 구성된 문구 관련 단체 3곳은 전국 459개 문구점을 대상으로 진행한 ‘다이소 영업점 확장과 문구업 운영실태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이소로 매출 하락했다고 답한 문구점이 92.8%에 달했다는 것이 골자다. 권오탁기자

[경기천년 999+1, 경기도의 思想과 思想家] 31. 동서양 사상을 신앙으로 잇다-광암 이벽

▲ 광암 이벽의 초상화 한국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를 통하지 않고 천주교 관련 서적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유학자 출신의 평신도들이 교회를 설립한 오묘한 기원사를 가지고 있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놀랍게도 천주교 교리에서 유학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유학자들의 절실한 바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조선의 유학과 서양사상의 바탕인 기독교를 접목시킨 중심에 광암 이벽이 있다. 광암 이벽(李蘗, 1754~1785?)의 생애와 사상을 살피기 전에 먼저 한국에 천주교가 언제부터 소개되었는지 살펴보자. 임진왜란 때 왜군을 따라온 신부들을 통해 천주교가 전래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가 언급되었던 사실을 통해 16세기 초에는 조선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졌듯이 천주교가 조선에 뿌리를 내린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여기에는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학문이 영향을 끼쳤다. 성호는 천주실의와 판토하의 칠극(七克)에서 전통 유학과 천주교 교리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렇게 평가했다. “칠극은 우리 유교에서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는 이론[극기설]이다. …조리와 질서가 있고 비유가 절실하다. 간혹 우리 유교에서 계발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 예법을 회복하는 공부에 도움됨이 크다. 다만 천주나 귀신의 이론으로 뒤섞고 있으니 해괴하다. 만약 잡된 것을 제거하고 뛰어난 논설을 채택한다면 바로 유교의 유파일 따름이다.” 성호가 칠극을 유학을 보완하는 학문으로 인식했던 까닭이 있다. 천주교 개혁의 전위를 자처한 예수회는 동양의 중국을 선교지로 삼고 선교전략을 새롭게 수립했다. 유학이 깊게 뿌리 내린 동양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이다.마테오 리치는 천주교와 서양의 학문이 유교의 완성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를 ‘보유론(補儒論)’이라고 하는데, 유교는 원래 훌륭한 가르침이지만 송나라 때 불교의 영향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유교 본래의 면모를 회복하는 길은 천주교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의 일류 학자들과 협력하여 지리학과 천문학을 비롯한 서양문명을 소개하는 많은 서적을 펴냈다. 예수회가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자 보수적인 계파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예수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17세기 후반에 벌어진 전례 논쟁에서 결국 예수회는 패배했다. 제사를 미신으로 판단한 교황청의 결정은 1791년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진산사건’의 기원이다. 스승 성호의 서학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받은 녹암 권철신(權哲身, 1736~1801)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이 함께 서학 서적을 학문적 차원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양 과학기술에 관심을 더해가면서 서학에 관한 지식도 넓혀나갔다.천주교 교리를 이해하게 된 일부 학자들은 천주교 신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천주교 교리로 조명한 유교경전의 세계는 주자학으로 해석한 관념적 해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 유학의 끝에서 천주를 만나다 1779년 겨울, 이벽은 선배 권철신의 초대를 받고 앵자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호랑이의 습격에 대비해 창날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눈 쌓인 밤길을 걸었다. 광주와 여주 접경에 솟아 있는 앵자봉 북쪽에는 천진암, 남쪽에는 주어사(主魚寺)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둘째형 정약전의 묘지명에 이렇게 썼다. “형님은 …성호의 학문을 이어받아 주자학을 거쳐 공자학까지 거슬러 오르기 위하여 공손한 격식을 갖추며 강마하고 서로 어울려 덕에 나아가려고 글을 배웠다. 그리고 이미 폐백을 드리고 녹암(권철신)의 문하에 가르침을 청했다.녹암 선생은 스스로 규정을 만들어 주시어, 새벽에 일어나서는 차가운 샘물을 떠서 세수하고 양치질한 다음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외우게 하고, 해가 뜨면 ‘경재잠(敬齋箴)’을 외우게 하고, 정오가 되면 ‘사물잠(四勿箴)’을 외우게 하고, 해가 지면 ‘서명(西銘)’을 외우게 하였다. 엄숙하고 경건하여 그 규정을 어기지 아니했다.” 이처럼 주어사에서 열렸던 강학은 유교경전을 강의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뒤늦게 합류한 이벽은 강학이 끝나고 토론할 때면 천주교 교리와 서양의 문물을 토론의 주제로 끌어들였다. 권철신과 이벽이 주도하던 천진암 강학은 수년 동안 이어졌다.이 무렵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은 서울에서 남인계 젊은 유학자들의 중심이었다. 이승훈의 주도로 서교(西郊)에서 행한 향사례에 백여 명이나 모였으며, 소문을 듣고 뜻을 같이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이벽은 기하학을 비롯한 학문으로서의 서학(西學)에서 더 나아가 신앙으로서의 천주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벽은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서양서적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던 소현세자를 보좌했던 고조부 이경상이 귀국할 때 신부 아담 샬에게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이벽은 두 살 아래의 이승훈과 마음을 터놓고 지냈다. 1783년 겨울, 이벽은 벗 이승훈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선발된 부친을 따라 북경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이벽의 당부대로 이승훈은 북당(北堂)의 그라몽 신부에게 서양 과학서적을 구입하고 천주교 교리를 학습하여 이듬해 2월에 프란체스코파의 알렉산더 드 고베아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바오로란 세례명을 얻었다.천주교 서적과 기하원본과 같은 서학서적, 성물을 가지고 귀국한 이승훈은 이 물건들을 이벽에게 전달했다. 이벽은 외딴집을 세내어 이승훈에게서 받은 서적을 펴들고 교리 연구와 묵상에 몰두했다. 이 무렵 이벽을 만났던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갑진년(1784) 4월 보름날 맏형수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우리 형제와 이벽은 같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갔는데, 배 안에서 천지가 조화하는 시초나 육신과 정신이 죽고 사는 이치를 들으니, 황홀하고 놀라워 마치 은하수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주역 이벽 이벽은 1784년 음력 9월 수표교에 있던 자기 집에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복음 전파에 나섰다. 포교 대상은 정씨 형제처럼 친인척이거나 교우관계를 맺고 있던 선후배들이었다. 이벽이 한양에서 100여 리 떨어진 양근(양평)에 사는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를 입교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권철신의 아우 권일신은 동사강목을 지은 순암 안정복의 사위로 역시 학문적 명성이 높았다. 이해 겨울에는 정약전과 정약용, 권일신, 이존창, 홍락민, 역관 최창현, 김범우 등 여럿이 세례를 받았다. 명례방에 있던 역관 김범우의 집은 이때부터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 훗날 김범우의 집터에 명동성당이 건립되었다.1785년 봄, 이벽이 김범우의 집에서 신앙 모임을 갖던 중 도박을 단속하던 형조[秋曹]의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이른바 ‘을사추조적발사건’이다. 이벽을 비롯한 참여자 모두가 형조에 압송되었다.형조판서 김화진은 관련자들이 명문가 자제들인 것을 확인하고 모두 석방시키고 중인 신분의 통역관 김범우만 구속시켰다. 풀려난 권일신은 몇 사람을 이끌고 다시 형조를 찾아가 예수의 성상을 돌려달라고 호소하면서 이 사건은 주위에 알려지게 되었다. 성균관 태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사학을 배척하는 통문을 돌리며 여론을 일으켰다. 더욱 곤혹스러운 일은 집안에서 벌어졌다. 부형들이 엄하게 질책하며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승훈도 부친의 강력한 요구에 뜻을 굽혀 배교를 선언하고 천주교를 이단으로 배척하는 글과 시를 지어야 했다.부친의 엄한 질책과 간절한 설득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이벽도 부친이 대들보에 목을 매어 달고 자살을 시도하자 결국 신앙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동이 벌어지자 위험을 느낀 남인계에서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권일신의 장인 순암 안정복이 천학고와 천학문답을 지어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판정하고 사교의 신봉을 비난했다. 남인계도 서학에 대한 입장 차이로 안정복 중심의 한 공서파와 권철신을 중심의 친서파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벽의 말년은 베일에 싸여 있다.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지내다가 얼마 후 병들어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벽의 육신은 고향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잠들어 있다. 이벽을 비롯한 천주교 초기 신자들은 대부분 퇴계 이황의 학문적 전통을 따르던 남인들이다. 이들의 신앙이 유교적 전통 가운데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무인 이부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8척의 건장한 신체에 무예에 능했으며, 경서에 정통했던 그가 천주교의 성조(聖祖)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하늘의 섭리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주자학 이념에 갇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백성의 고통을 외면했던 당대 지식인들인 양반사대부들의 태만과 무능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