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우면서도 애틋한… 어머니, 그 그리움의 거리
오리(五里)
- 우 대 식
좁다란 오솔길이 있고,
한 오리만 더 가면 술누룩 박꽃처럼 피던
향(香)이 박힌 성황당나무 등걸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오리,
봄이 거기 서 있을 것이다
오리만 가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하나 있고 햇살에 겨운 종다리도
두메 위에 앉았고
오리만 가면
오리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노스탤지어라는 단어는 요하네스 호퍼(Johannes Hofer)라는 오스트리아 의사가 스위스 출신 용병들이 앓던 특이한 병을 정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스위스 용병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어린애처럼 울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기르던 개의 이름을 부르며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기도 하는 등의 여러 이상증세들을 보였다고 한다.
호퍼는 그들의 증세를 지칭하기 위해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와 귀환을 뜻하는 ‘알고스’(algos)를 합해서 노스탤지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노스탤지어라는 단어에 이렇게 무거운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몸’과 내가 태어난 ‘장소’가 하나로 결합된 곳이 고향이다. 그러하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머니의 몸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소환하려는 애틋하고 내밀한 감정의 사연이라 할 수 있다.
우대식 시인의 <오리(五里)>는 어머니에 대한 간곡한 그리움을 ‘오리’라는 시어의 반복을 통해 점층화하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까지 애틋하게 만든다. 화자는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과정을 ‘오리’라는 단위로 분절하면서 각각의 지점에 그리움의 이정표를 세운다. ‘복사꽃’이 필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면 ‘술누룩 박꽃’의 ‘향’이 서린 ‘성황당나무’가 나오고, 다시 그곳을 지나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나오는 일련의 과정은 ‘어머니’에게로 귀환하는 그리움의 뒤늦은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하여, ‘복사꽃’과 ‘박꽃’과 ‘찔레꽃’의 향기를 통해 어머니를 기억하는 ‘오리’의 시간들은 다사로우면서 슬프게 다가온다.
우대식 시인에게 ‘오리’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그리움의 거리일 것이다. 그래서 “오리만 더 가면/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는 화자의 염원이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오리’만 더 가면 과연 우리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리움은 연기(延期)됨으로써 완성되는 미묘함의 정서다. 우대식 시인의 <오리(五里)>는 무한히 연기되는 그리움의 미묘한 세계를 ‘오리’라는 시어의 반복을 통해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에 인상적이다.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는 영원히 연기되는 그리움이자 귀환과 고통의 노스탤지어일 것이다.
글_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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