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가 걷던 길
고요한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내 자신과 대화
용인시 5개 코스 조성 ‘사색·힐링로드’ 청사진
수원교구 적극 협력… 천주교 역사 발굴 맞손
용인 은이성지 순례길은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곳으로 유명하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 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험한 고개 셋이 있는데 이 고개들을 한국인 첫 번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가 넘나들며 미사를 거행하소 성사를 집행했다. 이 길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 후에 이민식 빈첸시오에 의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이 옮겨진 경로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같은 종교 신자들은 이 세 고개를 신덕고개(은이 고개), 망덕 고개(해실이 고개), 애덕고개(오두재 고개)라 부르며 순교 신앙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에 본보는 앞으로 용인시에 조성될 명품 순례길 중 일부를 미리 걸어보고 그 순간을 전달하고자 한다.
■ 고독감에서 오는 성찰의 길
지난 6일 용인시에서 추진하는 ‘명품 순례길’에 직접 찾았다. 전날 내린 눈으로 순례길 걷기에 걱정이 앞섰지만 대부분 정비가 완료돼 있어 쉽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이날 걷기로 목표한 곳은 ‘신덕고개’. 은이성지로부터 약 1.9㎞ 떨어져있으며 도보로는 대략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은이성지부터 순례길 초입부까지는 약 700m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쉽게 걸어올라 갈 수 있다. 순례길 초입부의 길은 흔히 말하는 도로였다. 일반 주택부터 회사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길로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길을 따라 올라 갈수록 집과 회사는 사라졌고 나무와 숲, 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은이성지에서부터 약 15분간 걸었을까, 순례길 안내표지판을 만나 본격적인 순례길에 들어섰다.
특별한 것을 기대했지만 특별함은 없었다. 여느 등산길처럼 좌우로는 나무가 울창하게 펼쳐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스스로 밟고 있는 눈소리만 들렸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고독함이 밀려왔다. 아무도 없는 이 길에서 홀로 걷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치열하게 살아오던 사회와 격리되면서 찾아온 선한 고독감이었다. 관계가 단절되며 온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상념에 빠졌다. 아마 이 길을 따라 걸었던 사람들은 김대건 신부 순교의 길과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끊임 없이 하지 않았을까.
순례길 초입부에 돌입한 지 30여 분이 지나자 완만했던 경사가 조금씩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경사가 급한 곳에는 안전을 위한 펜스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급한 경사를 오르기를 또 30분. 결국 신덕고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신덕고개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신덕고개비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는 미리내성지, 학일체험마을 갈래길이 나오며 원하는 곳을 선택해 순례길을 가면 된다.
■ 5개 코스 순례길 등 계획
시는 은이성지~미리내성지 일대에 2.0㎞부터 12.5㎞에 이르기까지 5개 코스의 순례길을 조성해 시민들이 사색하며 힐링할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은이성지~신덕고개~곱든고개~문수봉~애덕고개~미리내성지(은이성지길 A코스 : 9.8㎞) ▲은이성지~신덕고개~와우정사~망덕고개~애덕고개~고초골 피정의집(은이성지길 B코스 : 12.5㎞) ▲애덕고개~문수산터널 관리소~고초골 피정의집(피정의길 A코스 : 3.6㎞) ▲망덕고개~애덕고개~성모영보수녀원 피정의집(피정의길 B코스 : 10.2㎞) ▲골배마실 성지~칠봉산(골매마실길 : 2.0㎞) 등이다.
이 가운데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은이성지길 A코스는 지난해 정비가 완료됐다. 또 묵리~학일리 간 임도의 일부 구간으로 석포숲공원을 끼고 있는 피정의길 B코스는 이미 걷기 편한 길로 조성된 상태다.
시는 올해 4억원의 예산으로 은이성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실시설계를 마치고, 신덕고개와 망덕고개, 애덕고개에 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관련이 있는 옛길인 B코스는 현재 구간 일부에서 포천~세종 간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진행돼 이용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이에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끝난 뒤 B코스를 정비할 계획이다.
시는 이와는 별도로 순례길 전 구간이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이 될 수 있도록 묵리~학일리 간 임도를 중심으로 나무를 심고 숲 가꾸기를 하는 등 명품 숲으로 조성해나갈 방침이다.
■ 용인시-천주교 수원교구청 손 맞잡아
용인시(시장 백군기)는 지난달 30일 천주교 수원교구청 대강당에서 천주교 수원교구(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명품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 기관이 협력해 천주교 관련 역사적 명소인 은이성지와 손골·한덕골 성지, 고초골 공소, 이윤일 요한 묘역 일대에 조성하는 명품 순례길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고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협약에 따라 용인시는 순례길 조성과 유지관리, 성지순례 활성화를 위한 행정적 지원을 하게 된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순례길 조성에 적극 협조하고, 용인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추가로 발굴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양 기관은 또 명품 순례길의 홍보와 운영을 상호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순례길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유기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시는 특히 명품 순례길을 석포숲공원이나 용인중앙시장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스탬프투어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내·외 천주교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방문을 유도할 계획이다.
백군기 용인시장은 “은이성지~미리내성지 순례길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용인시의 큰 유산이자 자산이다”라며 “종교를 넘어서 모든 시민이 사색하며 쉴 수 있는 명소가 되도록 명품 순례길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훈 수원교구장은 “우리나라 최초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깃든 이곳에 명품 순례길을 조성하게 돼 너무나 뜻깊고 기쁘며 용인시의 협조에 감사한다”며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운데 이 일대에 조성되는 천혜의 휴식공간이 치유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강한수ㆍ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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