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다문화가정 자녀, ‘후천적 장애’ 위험 노출

또래보다 ‘언어 발달’ 늦어도 문화차이 치부 치료시기 놓쳐

#1. “애 안아주면 버릇 나빠져!”

22살에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 A씨는 ‘양육’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결혼 생활을 시작한 탓에 갓 태어난 아이가 울고 보채도 배가 고픈 것인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모른 채 방치하기 일쑤였다.

A씨의 양육 매뉴얼은 오롯이 시어머니에게서 나왔다. 평소 시어머니는 “베트남은 교육 수준이 낮아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없다”며 우리나라 양육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훈계했다. 그렇게 배운 양육법은 ‘아이를 안아주지 말라는 것’. A씨는 시어머니의 말에 따라 가급적 아이를 품에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 A씨의 자녀는 세 살이 될 무렵 중증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자녀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껴 장애인 복지관에 신고했고, 진단 결과 발달장애 1급에 해당하는 수준의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정됐다.

당시 A씨의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감각통합치료만 제때 받았어도 후천적 장애를 얻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버릇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아이를 안아주지 않으면서 아이의 시각ㆍ청각ㆍ촉각 등 기초적인 감각 기능이 발달하지 못했고, 피부 접촉이나 움직임, 빛, 소리 등을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져 장애를 갖게 된 셈이다.

#2. “일 방해할까 봐 방에 홀로 뒀는데…”

중국에서 나고 자란 B씨는 20대 초반 결혼이주여성이 되면서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안산에 터를 잡았다. 신혼생활 도중 낳은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닐 무렵, 본국에 남은 가족은 B씨에게 “먹고살 게 없으니 한국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의 월급을 떼 용돈을 보내기엔 B씨의 3인 가족도 책임지기 벅찬 상황이었다. B씨는 맞벌이를 고민했지만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자니 아이가 너무 어린 게 마음에 걸렸다. 낯선 땅에서 그녀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고, 서툰 한국 문화를 감당할 자신 또한 없었다.

결국 B씨는 차선책으로 재택 부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마저 순탄하진 못했다. 집에서 작은 부품들을 다루고 있으면 아들이 다가와 만지고 삼키려 들었다. B씨는 일이 방해받지 않도록 아이를 방에 가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엄마와 아들이 분리된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아들 역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올해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B씨의 아들은 당시의 기억으로 여전히 타인과의 애착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분리불안 장애 판정을 받았다.

경기지역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사회와 가정의 홀대 속에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위험에 노출됐다.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늦어도, 이상 행동을 보여도 단순히 한국과 외국의 문화 차이로만 여겨져 조기 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은 확대되고 있지만 대부분 결혼이주여성의 초기 정착에만 중점을 두고 있을 뿐, 자녀 보육 문제는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산시장애인복지관 최은옥 아동발달지원 팀장은 “부모나 선생님 등 보호자들이 아이의 건강 상태를 보면 장애 치료를 위한 특수 교육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데, 다문화가정은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상당수가 문화 차이로 치부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인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를 선천적으로 타고났건 후천적으로 얻었건 보호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애 정도가 심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사회적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준ㆍ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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