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소년이 대한민국을 이끌 차기 지도자 후보로 우뚝 서게 됐다.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끝에 재선 시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도지사 위치에 올랐다. 각종 의혹으로 법정에 선 끝에 사법적 족쇄를 끊고, 유력 대선주자로 입지를 넓히게 됐다.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이야기다.
■ 흙수저 소년공…공정세상을 꿈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을 흙수저 출신 정치인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년시절 온몸으로 겪은 가난의 굴레를 공정세상을 꿈꾸는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1963년 경북 안동 산골 마을에서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그 시절 늘 배가 고팠기에 봄이면 참꽃, 찔레를 초여름에는 여물지 않은 신 개복숭아를 삶아 먹으며 지냈다.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지사는 1976년 2월 청량리행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성남 상대원동으로 상경한다.
한 달 4만원짜리 셋방살이 시절. 소년 이재명은 중학교 입학 대신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혹독한 소년공 시절 산업재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공장 동력 벨트에 손가락이 휘감겨 손가락에 고무 조각이 박히는 산재를 입은 이 지사는 얼마 뒤 프레스기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 번째 사고로 평생 굽은 팔로 살아야 하는 장애를 안게 된다. 산재사고, 중노동, 구타가 반복되던 악몽 같은 시절, ‘관리자가 되면 더는 매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한 그는 1년3개월 만에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공장일과 공부를 독하게 병행한 끝에 학력고사에서 전국 3천등 안에 드는 고득점을 따냈다. 서울대 입학도 가능한 성적이었지만 전액 장학금에 매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제안한 중앙대 법학과로 진학한다.
■ 노무현과의 만남…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
“나도 저분처럼 인권변호사가 되리라.”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 지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난다. 당시 부산에서 꽤 이름난 인권변호사가 특별 강사로 초청돼 자신의 생생한 체험담을 젊은 후배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노무현이었다. 열정과 진심이 묻어나는 강연을 들은 이 지사의 가슴은 뜨겁게 용솟음쳤다. 사법연수원 상위권 성적으로 판검사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는 인권변호사였다. 성남에서 변호사 개업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을 하며 주로 노동과 인권 변론을 맡은 이 지사는 1995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백궁ㆍ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치며 차츰 명성을 높였다.
2004년 성남시에 있던 종합병원 2곳이 동시에 폐업해 의료공백이 생겨났다. 이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명의 뜻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는데, 당시 한나라당 다수였던 성남시의회가 부결하면서 크게 좌절했다. 서럽게 울던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
■ 시민이 행복한 성남…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시민 여러분입니다. 서로의 어깨를 보듬고 웃으며 나아갑시다.” 2010년 51.2%의 득표율로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이재명 지사의 정치 여정이 본격화된다. 먼저 6천500억원의 성남시 부채 해결을 위해 그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당장 갚아야 할 지자체 빚을 일시 유예해 연차적으로 결제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어 노인독감 예방접종 등 위탁사업을 직영으로 바꾸고 보도블록 재사용, 도로포장 등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나갔다.
2014년 55.1%의 득표율로 재임에 성공한 그는 ‘청년배당ㆍ산후조리ㆍ무상교복’으로 대표되는 3대 무상복지를 실현하는 등 살림, 소통, 복지 분야에서 고른 성과를 창출, 중앙정치를 뒤흔드는 지방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대한민국의 비전을 밝히다
2017년 대선 출마 이후 전국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진 이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56.4%를 득표하며 제35대 경기도지사로 취임한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공정함이 살아 숨 쉬는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그는 ‘공정ㆍ평화ㆍ복지’라는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도민에게 ‘새로운 경기’를 제시했다. 이 지사는 2019년 공정국을 신설해 2년간 가맹ㆍ대리점 불공정거래 개선과 체납자에 대한 끈질긴 추적으로 숨은 세원을 발굴했고, 도특사경을 강화해 불법사금융 등 생활 속 범죄를 척결했다.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 기본소득 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코로나19 파고로 서민과 자영업자의 고통이 가중되자 이 지사는 전 도민 대상으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원)을 전격 지급한다.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와 연동한 ‘이재명표 기본소득’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또 세계적인 석학 제레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역시 이재명표 기본소득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위기의 순간들… 사법 족쇄에서 벗어나다
이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불거진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비롯한 각종 고발 사건으로 재직 중에 수사-기소-무죄-유죄라는 롤러코스터 역정 끝에 기사회생했다. 두 차례에 걸친 당내 선거에서는 경쟁한 친문진영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또한 ‘혜경궁 김씨’ 의혹, ‘형수 욕설 파일’ 공개, ‘여배우 스캔들’ 의혹 등 상대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가 극심했다.
이 지사는 2018년 6ㆍ13 지방선거 당시 불거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지난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후보자 TV토론회에서 상대 후보가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제기하고, 같은 해 6월 바른미래당이 ‘친형 강제 입원’, ‘배우 김부선 스캔들’ 등으로 이재명 지사를 고발했다. 이후 ‘조폭연루설’과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등의 의혹 관련 고발이 이어졌다. 결국 같은 해 11월 경찰은 이재명 6가지 의혹 중 3건 기소 의견(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3건 불기소 의견(여배우 스캔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으로 검찰 송치, 이 지사가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했다. 검찰은 친형 강제입원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친형 강제입원·검사 사칭·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4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2019년 1월부터 공판이 시작돼 4월 검찰은 결심 공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징역 1년6월·공직선거법 위반 3개 혐의에 벌금 600만원 구형했다. 하지만 5월 법원이 4개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9월 법원은 친형 강제입원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유죄를 판단, 벌금 300만원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검찰과 이 지사의 쌍방 상고로 대법원이 법리 검토한 후 지난해 7월 당선무효형 원심 파기, 같은 해 10월 파기환송심 무죄 선고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 여권 내 대선주자 우뚝 서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16년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구속’ 같은 거침없는 돌직구로 주가를 올리면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특히 이 지사는 SNS를 통해 직접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여의도 정치인들을 제치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본격 대선주자로서 자신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경선과 본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16년 만의 진보진영 경기도지사가 되는 역사를 썼다.
특히 이 지사는 코로나19 위기 속 지지도가 급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이 지사는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며 강경 대응하는가 하면, 도내 계곡 곳곳에 들어차 있던 불법 시설물들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저돌적인 행정가의 면모도 보였다.
지난해 1~2월 3%에 머물던 이 지사의 대선주자 선호도(한국갤럽)는 지난해 8월 조사에서 19%를 기록, 17%를 기록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앞서 이 전 대표가 7개월 연속 20%대 중반으로 선호도 선두를 지켰으나, 이 지사가 급상승하면서 역전이 이뤄졌다.
이후 이 지사는 여권 내 ‘1강’을 유지하더니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에도 오르는 등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 이재명의 사람들
이재명 지사의 경선 캠프는 ‘열린캠프’로 이름붙였다. 개방적, 포용적,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플랫폼 캠프다. 총괄은 조정식 의원이 맡고, 비서실장으로는 박원순계로 분류됐던 박홍근 의원, 상황실장은 재선 김영진 의원이 나선다. 이재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은 무보직으로 돕는다. 이밖에 ▲비서실 부실장 천준호ㆍ정진상 ▲수행실장 김남국 ▲수석대변인 박찬대, 대변인 박성준ㆍ홍정민 의원으로 정해졌다. ▲정책 윤후덕 ▲전략 민형배 ▲홍보 박상혁 ▲미디어·방송 정필모 ▲국민소통 윤영덕·유정주·차승재 ▲여성 문정복 ▲청년 전용기 ▲장애인 최혜영 ▲노동 이수진 ▲민생 이동주 ▲자치분권 이해식 ▲조직 김윤덕 ▲직능 안민석ㆍ김병욱 의원 등이 부문별 담당으로 포진했다.
또한 이학영 등 현역 의원은 17개 시ㆍ도 조직과 직능별 선거대책본부를 담당한다.
이밖에 정책 파트는 그동안 이 지사의 정책 밑그림을 그려온 이한주 경기연구원장도 참여할 전망이며, 최근 포럼 등을 통해 합류한 호남(김윤덕, 이원택, 서삼석, 주철현), 인천(정일영), 대전(황운하) 지역 의원들도 캠프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라인’으로는 이 지사의 복심으로 꼽히는 김남준 언론비서관, 정진상 정책실장, 김지호 비서관 등이 최근 경기도에 사의를 표명했고 곧 사표가 수리될 예정이다.
최현호ㆍ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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