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 길을 묻다] 백영숙 前 인민군 대좌

“탈북민 정착교육은 통일 첫걸음… 예술 공유하며 인식 개선”

▲ 북한 전문예술인으로 구성된 ‘임진강 예술단’의 백영숙 대표가 “북한이탈주민 중 한사람으로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분위기 속에 평화통일이 꼭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며 “우리 예술단도 남북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제역활을 하겠다”고 심경을 밝히고 있다. 김시범기자
▲ 북한 전문예술인으로 구성된 ‘임진강 예술단’의 백영숙 대표가 “북한이탈주민 중 한사람으로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분위기 속에 평화통일이 꼭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며 “우리 예술단도 남북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제역활을 하겠다”고 심경을 밝히고 있다. 김시범기자
오랜 분단과 대립으로 긴장감에 둘러싸여 있던 한반도가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를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6월12일에는 북미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전 세계에는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향한 희망의 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남북이 갈라진 지 70여 년이 넘은 만큼 서로가 서로를 오롯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경기도가 지정한 전문예술단체 ‘임진강예술단’의 백영숙 대표(54)도 지난 2009년 북한을 떠나 한국에 막 정착할 무렵 ‘문화 차이’로 인해 많은 고충을 겪었다.

북한에서 인민군 대좌(우리나라 육군 대령에 대응)로 살던 백 대표는 ‘당’에 모든 걸 다 바치며 유복한 생활을 하다가, 남한에 와선 파주에 자리잡고 종이공장에 일했다. ‘북한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웠다’던 백 대표였지만 한국에서의 자립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문득 고향땅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질 때면 ‘내가 통일에 기여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둘 백 대표와 뜻이 통한 파주 지역 내 탈북민들은 2013년 임진강예술단을 꾸리게 됐고, 이들은 지금 ‘통일’을 바라보며 그 누구보다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전국 축제·복지시설 돌며 “북한 문화예술 알려요”

지난 2013년 문화예술단체 ‘임진강예술단’을 설립해 현재 20명의 단원을 두고 있는 백 대표는 “북한에서 아코디언 연주가, 가수, 무용가 등 전문 예술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각자 한국에 탈북해와 파주에서 모여 만든 게 우리 임진강예술단”이라며 “한민족, 한겨레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철조망을 가운데 두고 총을 쥔 채 적으로 지낸 시절이 길다. 이 사이를 풀 수 있는 게 ‘문화 예술 교류’라고 생각해 임진강예술단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첫 마디를 뗐다.

 

전국 방방곡곡 지역 축제나 복지 시설 등을 순회하며 북한 전통 예술 공연을 펼치는 예술단에 대해 백 대표는 “통일의 문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하고자 다채로운 북한 전통 예술 공연을 선보이며 북한에 대해 알려나가는 중”이라며 “단원들 역시 한국 문화 예술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국 가요나 방송댄스를 북한 전통 예술에 접목, 새로운 문화 예술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자유로운 한국, 가족이 남은 북한… 통일은 시대적 과제

백 대표는 북한에서 인민국 간부로 지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탈하게’ 자라다가 지난 2009년 돌연 함경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닿게 됐다. 그는 북한 내 획일적인 무대 의상, 표현의 자유가 없는 군중 무용 등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1998년 이후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서면서 인민들이 하루아침에 ‘굶어 죽는’ 일이 여럿 발생하자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백 대표는 “한국에 온 초창기만 해도 적응이 어려워 시련을 많이 겪었지만, 이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간다는 게 얼마나 좋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고 표현했다.

또 백 대표는 “한국에선 허름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도 관객들이 질타하지 않고, 흥겨워진 분위기가 좋아 예술인들이 무대에서 돌발 행동을 해도 제재를 안한다”며 “북한에선 모두가 똑같이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어야만 하고 돌발 행동은 상상조차 못 한다. 그게 남북 문화의 차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단원들은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삶을 살아오며 양측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의 생생한 경험을 살린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남북이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해 임진강예술단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화두는 ‘통일’이었다.

백 대표는 “이탈주민이 10명이면 그 10명의 탈북 사정이 모두 다르다. 식량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목숨 부지를 위해 내려오는 사람이 있고, 3대 세습 체제 아래에서 고위직에 머물렀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접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오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우리 모두가 똑같이 어렵고 어지러운 북한 생활을 해왔지만, 어쨌든 그래도 ‘가족이 있는 고향’이라는 인식들을 갖고 있는 편이다. 내 가족이 그 땅(북한)에 머무는데 따로 갈라져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통일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 통일, 희망적이지만 인식 개선하며 신중히 바라봐야

올해 남북정상회담ㆍ북미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선 통일을 향한 훈풍이 분다고 보는 가운데 백 대표는 조금 더 신중한 시선을 보내자는 입장이다.

 

백 대표는 “여느 대한민국 국민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 평양에서도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한다. 반면 평양과 거리가 먼 지방에서는 ‘통일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더라”라며 “나도 정상회담을 보며 가슴이 울컥했고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차원에서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안이나 기본 방침을 내놓지는 못한 만큼 신중한 태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분단 70여 년 간 얼마나 많은 대통령이 평화를 논하고 남북교류를 논했나. 그럼에도 통일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르는 현실적 어려움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올해도 마냥 들뜬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보다는 남북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 그 안에서 문화 예술로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남북 통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필요한 것은 ‘남북민의 인식 개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백 대표는 “북한에서는 지금도 ‘남조선엔 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곱고 고운 비단천과 흰 쌀밥을 보내줘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을 할 것이다. 만일 통일이 성사되더라도 남북민 사이의 이러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통일이 되면 북한 먹여 살리느라 나라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의 자원을 이용해 한반도 발전을 함께 모색한다면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강성대국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백 대표는 “언젠가 남북 통일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그때야말로 우리 예술단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산가족 한 세대라도 더 살아있을 때 이념 격차 줄이자

아울러 백 대표는 통일시대에 대비한 정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산가족이 한 세대라도 더 살아있을 때 미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백 대표는 “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오면 하나원에서 3개월의 교육을 받는데 그 교육 내용이 더 실용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털어놨다. 일례로는 은행에서 기계를 작동하는 법이나 휴대폰을 구매하는 과정, 인감증명서가 쓰이는 곳, 세금을 내는 방법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현 교육 과정에서는 이들에 대한 내용이 없어 한국에 정착 후 적응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이유다.

 

그는 “북한 공무원의 월급이 1만 5천 원이라 가정하면 1㎏의 쌀을 사는 데만 5천 원이 든다. 한 달 급여가 쌀 3㎏에 떨어지는 셈”이라며 “그런 삶을 살아온 북한 사람들에게 한국 돈 1만 원을 쥐여주면 그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 한다. 단순히 남과 북의 체제가 다른 데 대한 이론적 설명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한국 현실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고 풀어 말했다.

 

또 그는 “우리는 자유를 찾아 북한에서부터 목숨 걸고 떠나온 사람들”이라며 “자유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갑갑한 교육만 해선 지루함만 느끼니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정부 교육 역시 변해야 한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이산가족이 한 세대라도 더 살아있을 때 미리 통일에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남북 이념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이때 저희 예술단도 힘을 보탰으면 한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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