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받아 재이용 생활화
수자원 보호… 물꼬 튼다
새로운 수자원 확보 및 수해 피해 예방을 위해 ‘물 재이용’에 나선 일본이 관련 산업의 선구자로 발돋움한 것은 일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지역 내에서 오래 거주하며 지리적 특성 탓에 과거부터 반복됐던 여러 물 관련 피해 사례를 알고 있는 주민이 중심이 돼 물 재이용 산업을 적극 홍보ㆍ권장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지역 내로 공급되는 물의 시작점인 ‘수원(水原)’을 찾아 보호하고, 지하수 고갈 및 수자원 낭비 등을 막기 위한 시민 중심의 지역 공동체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사회 속에서 중수도와 빗물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줄이고, 물 재이용 참여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일본 시민들의 활동을 알아본다.
■ ‘물 재이용’, 일상 속 생활화 필요
일본 도쿄 스미다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빗물시민의회(雨水市民の会)’는 지난 1989년부터 30년간 스미다구와 인접 지역 곳곳을 누비며 물 재이용 관련 시설의 설치를 독려하고 있다. 빗물시민의회가 특히 지역 주민들에게 설치를 권장하고 있는 물 재이용 시설은 바로 ‘천수존(天水尊)’이라는 명칭을 가진 빗물받이용 물탱크다. 천수존은 ‘존경하는 하늘의 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는 곧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빗물시민의회는 부족한 수자원을 확보하고 스미다구의 고질적인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같은 빗물받이용 물탱크 설치 확대를 지속해서 홍보ㆍ권장했다. 이 같은 빗물시민의회의 주장에 스미다구가 호응을 하면서 빗물이용시설 관련 조례를 제정,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는 개인주택 등에 천수존 설치 시 용량에 따라 최대 100만 엔(약 1천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시민 중심의 물 재이용 참여 여론 확산이 조례 제정이라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빗물시민의회는 마을 곳곳에 천수존이 설치됨에 따라 물 재이용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미다구의 일반 주택가에는 수백 개의 천수존이 설치돼 비상 시 소방 용수로 사용하거나, 빗물받이용 물탱크에 호스를 연결해 담벼락과 화분 등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에 자동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한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사하라 시게모토 빗물시민의회 부이사장(69)은 “어릴 때부터 스미다구에서 생활했는데 과거의 스미다구는 공장이 굉장히 많은 공업지대였던 탓에 식수 오염이 잦아 물 부족 문제를 겪었다”며 “또 좌우로 큰 강이 흐르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강우량이 많으면 반드시 홍수가 발생했다.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댐 역할을 하는 빗물이용시설을 마을 곳곳에 설치하면, 물 부족 및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적극 활동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카하시 마사코 빗물시민의회 사무국장(65)은 “빗물시민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스미다구의 협업을 통해 관내 일반 가정집 등에 빗물을 받아 활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다수 마련, 지역 내 홍수 및 물 부족 현상 등의 문제 발생을 크게 약화시켰다”며 “이같이 시민의 중심이 돼 물 재이용에 대해 홍보하고 관련 인프라가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물을 효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해 예방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빗물시민의회는 지역 내 기업ㆍ학회 등과 연계해 빗물 수질 실태조사 등을 진행, 빗물이용시설의 보급을 증가하고자 연구에 나서고 있다.
■ 지방자치단체 지원받아 시민이 직접 ‘수자원 보호’ 나선다…무사시노시 ‘물의 학교’
일본 도쿄의 무사시노시(むさしのし)에는 14만1천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무사시노시의 수자원은 대부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어 지하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약 14만 명의 시민이 물 부족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에 무사시노시는 빗물 또는 하수 등이 지하로 침투되지 않고 외부로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물 재이용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사시노시는 하수도과의 주관 아래 물 재이용이 필요한 이유와 수자원이 어떻게 순환돼 시민들에게 공급되는지 등을 교육하는 ‘물의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질적인 물 재이용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물 재이용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을 줄이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물의 학교 프로그램은 지난해까지 총 161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들 수료생은 물의 학교를 통해 물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급되는지, 하수 처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의 내용이 담긴 수자원 관련 교육을 이수한다. 이처럼 물 관련 교육을 받은 수료생들은 무사시노시와 함께 물 재이용 방법, 수원(水原) 보호 방안, 물 절약 사례 등을 연구하는 시민참여위원으로 활동한다. 또 일반 시민 대상 강좌 및 신문 등 언론매체에 물 관련 원고 집필 등에도 참여한다.
물의 학교 프로그램은 무사시노시와 지역 주민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으로 우수한 성과를 도출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제8회 일본 국토교통대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물 재이용 관련 인식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무사시노시는 향후 수자원뿐 아니라 대기, 토양 등 전반적인 환경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할 계획이다.
무사시노시 관계자는 “무사시노시는 지하수 이용 비중이 높은 도시인 만큼 수자원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빗물이나 중수도를 활용해 물 재이용에 나서면 타 지역으로 유실될 수자원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물 재이용 인프라 확대에 앞서 지역의 주민들이 수자원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물 재이용의 당위성을 이해하도록 하고자 물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을 이수한 주민들은 무사시노시와 함께 물 관련 우수 사례 등을 탐방하는 작업에 나서고, 다음 학교가 문을 열면 교육생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는다”며 “향후 수자원뿐 아니라 종합적인 환경 문제에 대한 주민 관심도를 높이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태병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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