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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고 있지만… ‘법’ 안에 없는 내 가족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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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고 있지만… ‘법’ 안에 없는 내 가족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배우자·직계혈족’만 가족 인정돼... 수년 동거에도 끊임없이 관계 추궁
가족형태 다양화 불구 ‘법 제자리’... 시대변화 따라, 개념 확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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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서 5년째 친구와 살고 있는 박지윤씨(25)는 최근 몸이 아파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지만,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한참을 방치돼 있어야 했다. 직장 때문에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박씨에겐 동거인 친구가 새로운 가족이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연락을 받고 직장에서 달려온 친구는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병원 측은 ‘가족이 아니면 안 된다’, ‘부모님이나 남편이어야 한다’며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1시간 거리에 사는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친척이 도착해 가족 임을 확인 시킨 뒤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몸은 아픈데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며 “함께 사는 친구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걸 보고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인천 부평구에서 수년간 여자친구와 동거 중인 이기범씨(41)는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스스로 사회 속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평가 받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혼인신고라는 절차만 거치지 않았을 뿐 여느 가족과 다름 없이 함께 살고 있지만, 부부 또는 가족이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단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결혼하지 않은 2명이 공동명의로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하니 취득세를 훨씬 많이 내야 한다고 했다”며 “이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게 하려는 속셈인지 몰라도, 수년간 같이 산 가족인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돈을 더 내야 한다니 황당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1인 가구부터 동거 가구 등 가족의 형태도 급변하고 있지만, 관련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은 각종 사회적 제도에서도 배제되고 있어 사회 흐름을 반영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경기도 등에 따르면 국내법상 가족의 범위는 법 제정 이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혈족’만을 가족으로 규정한다. ‘혼인’과 ‘출산’을 기반으로 한 가족만이 가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수십년을 이어온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의 개념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며 평생을 의지하는가 하면 종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련 법에 규정한 가족만을 기준으로 각종 사회보장 지원 및 제도를 운영할 경우 이들은 모두 대상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의 가족 범위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사회보장 제도에서 만큼은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가족이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역시 현행 제도가 급변하는 가족 유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다만 도 관계자는 “상위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가족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도에서는 1인가구, 동거인 가족 등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필요한 것들을 반영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서비스를 구축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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