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보훈병원 설립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자체가 앞장서 보훈병원 유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자체 차원에서 보훈병원 유치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인천 보훈병원의 경우에도 추진부터 설립까지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인천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보훈병원이 설립됐을까.
지난 2005년 지역주민들과 지역의원 사이에서 인천과 경기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인천보훈병원을 조속히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사업 타당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게 됐고,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요구가 무산됐다.
본격적인 설립 논의는 지난 2012년 ‘인천보훈병원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지역 내 13개 보훈 단체장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보훈병원 유치를 요청했다. 이에 같은 해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기획재정부에 ‘인천보훈병원 설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정식 신청하는 등 본격적으로 인천보훈병원이 재조명되며 탄력을 받아 지난 2018년 설립됐다.
경기도에서도 보훈병원 유치를 위한 시도가 있긴 했다.
경기도내 보훈병원 유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난해 5월 경기도지사 후보의 보훈 공약에서 한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당시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경기도표 호국보훈’ 공약을 발표하면서 경기도 보훈병원 유치를 공약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 현재까지 경기도에서는 보훈병원을 유치하고자 하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보훈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현주 한국보훈학회 총무이사(중원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훈 의료서비스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한 ‘보은’이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의무”라며 “보훈병원은 보훈대상자들의 수요에 맞춰 진료과목이 맞춰져 있으며 의료비도 전액 지원이 되기 때문에, 위탁병원 등의 대책은 한계가 있다. 보훈병원 설립을 경제 효율성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제언 "보호대상자 최다... 경기도 보훈병원 절실"
“경기지역에는 가장 많은 보훈대상자가 있는 만큼 보훈병원 설립이 절실합니다.”
20년 넘게 보훈과 국가유공자 처우에 관해 연구해 온 김태열 한국보훈포럼 회장(영남이공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은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고령의 보훈대상자들이 보훈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있어 열악한 접근성과 경제적 부담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가 20만명에 육박하고, 전국 보훈대상자의 4분의 1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훈학적 관점에서도 지역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경기도에 국립보훈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들은 고령의 몸을 이끌고 서울에 있는 중앙보훈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대중교통으로 3~4시간 동안 가야 하는 처지”라며 “이들이 보훈병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은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가보훈부는 경기권 국립보훈병원을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중장기적 5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근거로 국회 정무위원회와 공동으로 국내 보훈 전문가를 패널로 초빙해 국회정책토론회 등을 거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훈병원 설립이 어려울 경우 대체제 역할을 하는 보훈위탁병원 개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용환 경기도보훈단체협의회장(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장)은 “보훈병원 유치가 어렵다면 보훈대상자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훈위탁병원의 수를 종합병원 만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의 경우 평균 연령이 90세 중반이고 월남전 참전유공자의 경우 70대를 훨씬 넘어 만성 퇴행성 질환 등 몸이 불편한 환자가 많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대다수”라며“다양한 진료과목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을 위탁병원으로 지정해야 이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의료지원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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