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단상] 미래 첨단기술 산업지 ‘용현산단’

의정부시 용현산업단지가 미래형 첨단 산업단지로의 재탄생을 준비하며 새로운 도약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128개 기업, 2천여명이 근무 중인 용현산단은 2000년 조성된 이래 섬유, 조립금속, 기계장비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해 지역 산업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조성된 지 20여년이 지나며 시설이 낡고 근로자를 위한 정주 여건이 미흡한 데다 문화재 보호 규제로 건축·개발이 제한되면서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이러한 한계를 기회로 삼아 의정부시는 용현산단을 ‘청년과 신산업이 모이는 활력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구조고도화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그 중심에는 첨단 산업 유치와 근로자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두 가지 큰 축이 자리 잡고 있다. 의정부시는 2023년 1월 용현산단 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유치 협약으로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데이터센터는 정보기술(IT) 산업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로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첨단 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의정부는 스마트 산업도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될 것이다. 또 지난해 기준 4조4천억원의 투자 규모를 가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북부지역본부가 용현산단 내에 입주하면서 경기 북부 13개 시·군의 주거복지 사업과 개발사업의 중심지가 됐다. 이는 의정부시가 경기 북부 행정·산업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용현산단 고도화 과정에서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문화재보호구역에 따른 건축 규제였다. 산단 면적의 약 84%가 정문부 장군 묘 보호 구역에 포함돼 있어 건축 행위에 제약이 많았다. 이에 의정부시는 경기도 문화재 보호 조례 개정을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7월 조례 개정에 성공하면서 건축 규제 없이 개발 가능한 면적이 기존 16%에서 약 40%로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건축 허가 절차가 간소화되고 사업 기간이 단축되면서 첨단 산업 유치와 기업의 새로운 투자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시는 이 기회를 활용해 지식산업, 정보통신산업, 바이오산업 등 첨단 업종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청년 인재들이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산학협력 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용현산단은 산업단지의 혁신을 넘어 젊은 인재가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의정부시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재직자 우선 주차제 도입, 근로자 통근버스 운영,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교체, 힐링 산책로 및 쉼터 조성, 정기 버스킹 공연 등을 추진했다. 이로써 근로자들은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여가와 문화 생활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됐다. 복합문화센터 건립도 준비 중이다. 이 공간은 근로자들에게는 휴식처, 지역주민들에게는 소통과 여가의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용현산단 고도화 사업의 핵심은 기업 유치를 통해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특히 청년 창업 지원과 첨단 산업 유치를 통해 신산업 중심의 일자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안정적인 고용 기회를 확대할 계획이다. 의정부시는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기업 유치라는 원칙 아래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앞으로도 기업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의정부를 경기 북부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

[생각하며 읽는 동시] 마음의 양분

세찬 비바람에도 쑥 햇님의 사랑을 받아 쑥 자고 일어났더니 또 쑤욱-쑥 매일매일 다르단 말이지 넌 바로 너 말이야 이 동시를 읽다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아침마다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 벽에다 표시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옆집 수동이도, 태식이도, 영자도 그랬다. 우린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키재기판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시인도 어릴 적에 그랬나 보다. 하루라도 빨리빨리 자라고 싶어 ‘쑥’이란 어휘를 사용했다. 매일 조금씩 자라고 싶은 게 아니라 단숨에 쑥쑥 자라고 싶었나 보다. ‘세찬/비바람에도/쑥//햇님의/사랑을 받아/쑥’. 그리고 또 있다. 시인은 여기서 키만 노래한 게 아니다. 아이의 마음도 함께 노래했다. 쑥쑥 자라는 만큼 마음도 튼튼해져야지 다짐한 것이다. 내 어릴 적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은 키도 크고 체격도 당당하다. 좋은 환경에서 영양가 있는 음식 먹고 자유롭게 자라는 덕분이다. 그러다 보니 서양의 청소년들과 비교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국제경기에서도 당당한 체격을 보여주는 우리의 청소년들이다. 기왕 자라는 김에 튼튼한 체력만큼 꿋꿋한 의지와 인내심까지 지니기를 바라고 싶다. 시인은 몇 해 전, 동시집 ‘아기별 탄생’을 일본어판으로 내 왕인 박사를 흠모하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광복 비춘 민족의 등불‘홍익인간’을 소환하다 [경기도박물관 특별전시]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이 올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독립의 토대를 구축한 역사 인물 중심의 3부작 특별전을 선보인다. 경기도박물관은 ‘합(合)’을 모토로 독립 완성과 통일 성취의 미래를 역사에서 찾는 특별전 ‘광복80-합合’을 연중 개최한다. 세계사 속의 20세기 한국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에 이어 1910년 한일 강제병합,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945년 광복, 1950년 6·25전쟁, 남북 분단 등을 거쳤다. 특별전 3부작은 이 같은 주요 역사적 사건을 조명하며 역사 속 중심인물을 김가진, 여운형, 오세창으로 선정해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다음 달 11일부터 6월29일까지 선보이는 제1부 ‘김가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는 대한제국의 대신이자 강제병합 후 상하이 임시정부에 망명해 독립전쟁에 투신한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의 정치와 예술 일체의 삶을 다룬다. 전시는 인물 김가진을 △개화선각자 △대한제국 대신 △정예일치 △임정국로(臨政國老)로 나눠 입체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이후 7월17일부터 10월26일까지는 제2부 ‘여운형, 남북통일의 길’을 선보인다. 몽양(夢陽) 여운형(1886~1947)은 계몽운동가, 임시정부 외무차장을 지내고 중국국민당에서 반제국주의 운동, 광복 이후 좌우합작을 통한 남북통일을 주도하다 암살됐다. 경기도박물관은 여운형의 선지적인 융화주의 정치철학 등을 정치, 언론, 체육, 문화를 키워드로 조명한다. 11월27일부터 내년 3월8일까지는 제3부 ‘오세창, 문화보국’이 관객들을 만난다. 3·1운동의 민족대표인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의 문화독립운동을 △서화사연구 △서화감식비평 △서예전각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여기에는 ‘근묵’, ‘근역인수’,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서화징’ 유물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이와 함께 오세창과 동시대에 활동한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내일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특별전은 광복 80주년의 메시지를 우리시대 사회의 해결 과제인 ‘합(合)’으로 제시한다. 특히 김가진, 여운형, 오세창의 철학을 풀어내 오늘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경기도박물관 관계자는 “김가진, 여운형, 오세창 등 세 사람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에는 ‘홍익인간’이 있다”며 “이번 특별전 3부작은 망국시대 민족의 등불이었던 ‘홍익인간’을 오늘날 다시 소환해낸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미국산 원목 수입 중단, 해충 발견"…치열해지는 관세전쟁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10+10% 관세 인상'에 맞춰 오는 10일부터 미국산 일부 농축산물에 대해 10∼1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한 미국산 원목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며 수입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4일 오후 공고를 통해 미국산 닭고기·밀·옥수수·면화(총 29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15% 인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수수·대두·돼지고기·쇠고기·수산물·과일·채소·유제품(총 711개 품목)에 대한 관세는 10% 높인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오는 10일부터 적용된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역시 이날 "수입된 미국 대두 가운데 맥각과 종자코팅제 대두가 검출됐다"며 "중국 소비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수입 식량 안전 확보를 위해 공고 발표일부터 (미국) CHS사와 루이드레퓌스컴퍼니, EGT 등 3개 기업의 대두 대(對)중국 수출 자격을 정지한다"고 전했다. 이어 별도 공고를 통해 "미국산 원목에서 나무좀과 하늘소 등 검역성 삼림 해충이 발견됐다"며 미국산 원목 수입을 중단했다. 여기에 중국 상무부는 티콤·S3에어로디펜스·텍스트오어 등 미국 방산업체 10곳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중국과의 수출입, 중국에 대한 신규 투자 등을 금지 조치했다.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다른 속셈이 있어 고집스레 관세 전쟁, 무역 전쟁, 혹은 무슨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중국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괴롭힘의 태도를 거두고 조속히 대화와 협력의 올바른 궤도로 돌아오기를 권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신문협회 "뉴스 저작권 보호위해 AI기본법·저작권법 개정해야"

한국신문협회(회장 임채청)는 지난 2월 28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과 △‘저작권법’ 개정 의견을 국회와 정부 등에 각각 제출하고, 뉴스 저작권 침해 방지 관련 조항을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제정된 ‘AI 기본법’은 정부가 AI 산업의 △지원 근거와 기준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AI 산업의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신속하게 입법을 완료하는 과정에서, AI 학습 데이터 기록 보관 및 공개 등의 규정은 빠져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신문협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제출한 ‘AI기본법’ 개정 의견서에서 “제31조(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의무)에 인공지능 개발·활용에 사용된 학습데이터 공개의무 조항을 추가하고, 공개방법 및 공개항목은 시행령에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신문협회는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에는 다양한 창작물과 지식이 포함돼 있다”며 “△저작권 보호 △인공지능 기술의 투명성·신뢰성 확보 △국제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학습 데이터 공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협회는 뉴스를 별도의 저작권대상으로 규정하도록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제출했다. 신문협회에 따르면, 현행 저작권법 제4조1항(저작물의 예시)은 소설·시·논문·각본·음악·연극·무용·회화·서예·조각·건축 설계도·사진·지도 등을 저작물로 예시하고 있지만, 언론의 뉴스기사는 특별한 언급 없이 ‘그 밖의 어문저작물’에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신문협회는 “기자의 사상이나 감정 등 창작적 표현이 담긴 뉴스 기사는 독립적인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법 제4조 저작물의 예시에 ‘뉴스’를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제7조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에 규정된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신문협회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보도 기사라도 소재의 선택과 배열, 구체적인 용어 선택, 어투, 문장 표현 등에 창작성이 있거나 작성자의 평가, 비판 등이 반영돼 있는 경우에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들어 이 같이 밝혔다. 신문협회는 특히 “저작권법 제7조1~4호는 국가, 법원, 지자체 등이 작성한 공공기록물인 반면, 제5호는 사기업인 언론사의 지적 재산권”이라며 “법 기술적 측면이나 1~4호와의 형평성 및 성격에도 맞지 않으므로 해당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의견서에서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뉴스 저작권 침해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지만, 현행 저작권법은 뉴스 저작물의 보호 및 공정한 이용에 관한 규정이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AI·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논리에 맞는 새로운 뉴스 저작권 보호 법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자춘추] 지방정부, 민생경제 희망 씨앗 뿌려야

지난 3일 충격적인 통계자료가 발표됐다. 민생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작년 소매판매액지수가 21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특히 3년 연속으로 지수가 감소한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이다. 내수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서민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자의 폐업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후 실업급여를 받은 자영업자 수는 지난 4년보다 2.3배나 늘어나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경기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자영업자의 1년 생존율이 83%에 달했으나 2024년에는 76.8%로 크게 떨어졌다. 올해 1월에만 도내 자영업자 수는 7천명이나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불법 계엄이 식어가는 경제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영국의 캐피털이코노믹스는 계엄의 영향으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로 끌어내렸다. 계엄의 여파로 중앙정부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사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방정부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경기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사업인 ‘통큰 세일’의 예산을 지난해 40억원에서 올해 100억원으로 증액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통큰 세일의 효과는 숫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사업 대상 재래시장의 매출액이 27.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이 설 명절을 앞두고 방문한 재래시장에서도 상인들은 통큰 세일에 대한 호평을 이어갔고 사업 확대 요청도 빗발쳤다. “계엄의 여파로 민생과 경제가 참담한 수준이지만 지방정부와 시민이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덕분에 혼돈의 시대에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이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우수 민생정책을 지방에서부터 확산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KDLC)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결의한 내용이다. 전대미문의 재앙인 코로나 사태 당시 지방정부는 ‘드라이빙 스루 검사소’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K-방역을 이끌었다. 중앙집권적 권력의 폐해로 발생한 계엄 사태 속에서 지방정부가 민생경제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말글 풍경] 외래어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下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주의(原音主義)를 뼈대로 한다. 한자(漢字)를 공유하는 대표적인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곧 중국어·일본어 표기를 글로벌 언어 체계와 함께 다룬 것. 동양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한국어의 문자 및 음운체계에 예외적 허용을 거절했다. 물론 한중일은 역사·정치·문화가 다른 여느 나라에 비해 유사하고 밀접하다. 그러나 모름지기 어문규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 간결성·체계성·통일성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1988년 개정된 이래 현재까지 시행 중인 외래어 표기법(문교부 고시 제85-11호)은 오롯하다. 일부 기관·단체명·상호 등의 표기가 생경하고 조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문규범 자체를 함부로 손대는 건 근시안적이다. 중국·일본 인명·지명의 한국음화(韓國音化)는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중국어를 잣대로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난삽한 한자의 범람 문제다. 우선 인명. 중국인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발음하려면 그 한자를 독음(讀音)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한자 읽기는 여전히 큰 부담이다. 모택동(毛澤東)·등소평(鄧小平)·주은래(周恩來)의 친연성에 함몰돼 요즘 화제인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의 주역 량원펑과 뤄푸리를 양문봉(梁文鋒), 나복리(羅福莉)로 해야 할까. 중국 인명에 등장하는 한자는 그 범위와 종류가 상상 이상이다. 난삽한 한자들이 우리 눈을 어지럽힐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중국 인명을 소리 나는 대로 중국음에 따라 적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명의 경우도 광둥성의 광저우(廣州)를 ‘광주’라 표기하면 경기도 광주(廣州)의 정체성은 난감해진다. 후난성(湖南省)·허난성(河南省)도 호남성·하남성이 돼 그 유사성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이 땅의 수많은 주(州)·산(山)·천(川)으로 끝나는 지명은 뜻 모를 열패감에 사로잡힐 개연성이 농후하다. 둘째, 글로벌화에 어긋난다. 동양권의 인연을 볼모로 세계화를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다. 세계인이 시진핑·라이칭더(대만 총통)라고 하는데 우리만 습근평(習近平)·뇌청덕(賴清德)을 고집할 것인가. 중국 인명·지명의 한국음화는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결과다. 한자를 따로 익혀 그들의 이름과 땅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끝나나. 그것이 통용되는 글로벌 표준, 곧 이들의 본이름을 따로 기억해야 하는 큰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참고로 중국 인명은 신해혁명(1911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한국음, 이후 인물은 중국음으로 하는 양해 규정을 뒀다. ‘공자·맹자’를 ‘쿵쯔·멍쯔’로 하기엔 뜨악하지 않은가 말이다. 신해혁명이 기준점인 이유는 봉건 왕조의 몰락, 중화민국의 탄생을 역사 변환의 큰 물줄기로 본 것. 손문(孫文)이 아닌 ‘쑨원’, 원세개(袁世凱)가 아니라 ‘위안스카이’인 이유다. 지명은, 모호하긴 하지만 아주 익숙한 지명일 때 중국음을 인정한다. 북경·상해·대만·대북 등이다. 셋째, 일본어와의 형평성 문제다. 한자를 공유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차별하는 것은 우습다. 현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석파무(石破茂)라고 하면 생경하다. 촌상춘수(村上春樹)는 누구인가. 유명인이지만 이제 이 사람을 이런 식의 한국음으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 한국음을 발화(發話)했다고 해서 자주성이 고양되는 게 아니다.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을 무심히 독음하는 게 우리 외래어 표기에 걸맞다. 이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 ‘촌상춘수’라 하지 않고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豊臣秀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의 유혹은 그래서 무효(無效)하다. 지명의 한국음 표기 주장은 더 옹색하다. 찰황(札幌)·충승(沖繩)·횡빈(橫濱)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가. 삿포로·오키나와·요코하마면 충분할 터. 우리는 일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 인명과 지명을 우리 표기대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지명은 역시 예외를 둔다. 동경·대마도·북해도 등이 속한다. 외래어를 둘러싼 여러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개선의 여지도 있으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무엇이 시대정신에 걸맞고 미래지향적인가에 대한 숙고와 통찰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삼일문 앞에서

내 안의 울타리가 케테 콜비츠의 목탄처럼 어둡다. 새해 들어 벌써 두 달을 낭비한 채 삼월을 맞는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예의가 아닌 듯하다. 봄은 왔건만 마음은 아직 얼음장 밑 물소리 같다. 궂은비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동주 형의 거룩한 시를 가슴에 내었다. 그를 옥사시킨 일본이 8개월 동안 다녔던 릿쿄대에 기념비를 세우더니 편입한 도시샤대에선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사람은 가도 영혼은 부활해 그와 그의 시를 가슴으로 영접한 것이다. 탑골공원 삼일문 앞으로 갔다. 풍물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만세삼창과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무엇보다 서예 퍼포먼스에 광화문 미술행동이 그림을 입히는데 대장께서 내게 붓을 내밀어 당황했으나 나는 이 땅에 새봄이 오기를 비는 의미를 담아 꽃으로 여백을 채웠다. 장순행님의 즉흥 창작무 ‘조선의 소녀 몸짓으로 피어오르다’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이 시대의 봄에 유관순 누나의 꿈이 분분히 재림하는 환영을 본다. 미움은 오물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더럽히는 부메랑이 된다. 요즘의 분위기가 염려스럽다. 편을 갈라 상대편을 욕하는 미움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분열뿐인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자신을 인정받게 되는 게 아닐까. 우리의 적은 너와 내가 아니다. 더 큰 세계관으로 튼튼히 뭉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