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수돗물과 환갑잔치

필자가 어렸던 60년 대 초반에는 먹을 것이 귀했다.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엔 동네 어르신의 환갑잔치는 평소 맛보지 못했던 음식도 먹을 수 있어 명절 다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행사였다. 그러나 어느덧 필자가 오십 줄에 들어선 최근에는 환갑잔치는 커녕 칠순잔치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져 고령화 사회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60대가 더 이상 노인취급을 받기 부끄러울 정도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데에는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생활환경의 개선과 영양상태의 양호, 의료기술의 발달 때문이라고 연관짓기 쉽다. 그러나 미국공학원에서 발표한 ‘20세기 인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가장 위대한 기술업적 20선’에 전기, 자동차, 비행기에 이어 상수도를 4위로 선정하였으며,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서 ‘위생적인 상하수도의 공급은 1840년 이래로 가장 중요한 의학적 진보다’ 고 평가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00년 대 초 인간의 수명이 40대에서 최근 80대로 늘어난 데에는 “깨끗한 상하수도의 공급”이 웬만한 의료기술 이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살기 위해’ 수돗물을 마시려하지 않는다.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수돗물 직접 음용률이 50% 이상인데 반해 우리나라가 5% 미만에 그친 원인의 상당수는 뚜렷한 근거나 증거에 있다기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노후 수도관에 대한 불신과 수돗물 냄새를 꼽는다. 전국의 상수관로 가운데 20년 이상된 것은 약 30%로 추정되는데 녹슨 수도관은 주로 산화철로 수돗물 공급과정 상 이물질이 추가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산 속 흙을 통해 흐르는 물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또 수돗물 냄새의 원인인 염소는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한 물이라는 반증이다. K-water와 파주시는 수돗물 신뢰 회복을 위해 ‘스마트워터시티(SWC) 시범 사업’을 작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 아파트 저수조, 가정에 연결되는 배관, 실시간 수질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하천에서 취수한 물이 가정의 수도꼭지에 나오기까지의 전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직접음용률의 비율을 1%에서 작년 19%로, 올해 25%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나라의 먹는 샘물 및 정수기 등 물관련 시장의 규모는 2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편견을 조금만 덜어내면 월평균 2~3만원에 달하는 물값을 단돈 32원으로 해결할 방법이 바로 여기 있다. 거두절미하고 “수돗물을 마시자!” 최재웅 K-water 수도권지역본부장

[기고] 공약(空約)을 공약(公約)으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 전통의 환경 속에 충(忠)과 효(孝),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단지심(四端之心)-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 등의 단어에 익숙하였고, 어질고 착한 이를 본(本)으로 삼으며 이웃을 귀히 여기고 정(情)을 나누는 삶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존중의 전통적 가치관은 빛을 바래고 물질만능주의(Mammonism)에 휩쓸려 가치관의 혼돈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이러한 혼돈을 바로 잡고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이 사회의 지도자, 즉 정치인들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정치(政治)의 사전적 의미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면 말이다. 허나 삶에 찌들고 희망마저 잃어가는 국민들에게 분열과 대립, 갈등의 씨앗마저 뿌려서야 되겠는가 싶다. 무릇 무엇인가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근본부터 살펴보고 바로잡아야 한다. 십중팔구는 누구나가 당연시하는 그 무엇인가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제도권에 뛰어들면서 하게 되는 국민들과의 약속이 있다. 그것이 공약(公約)인데, 이 공약은 단순한 국민과의 약속이 아니라 출마하는 이유이자 목적이고 계약인 것이다. 덴마크 국회의사당을 가보면 승용차를 찾아보기 어렵고 자전거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나라 국회의원의 직업 또한 다양하다고 한다. 본인의 직업활동 등을 통하여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입법의 필요성에 의해 그것을 공약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임기를 마치면 본업으로 되돌아간다고들 한다. 이것이 정치에 임하는 본이자 공약의 실체일수도 있는데,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이 공약을 의례히 공약(空約)으로 이해하고 이를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현재 우리나라 선출직 정치인은 국회의원 300명을 포함하여 시·도지사, 시·군·구청장, 광역·기초 의원, 교육감, 교육위원 등 총 2,600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출마의 변을 통하여 각종 공약을 하게 된다. 개중(個中)에는 무책임하게 던진 공약으로 인해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되돌아가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선거때만 되면 정부는 정부대로 많은 국고를 투입하여 투표율을 높이고자 애를 쓰지만 투표율은 그리 나아지질 않는다. 국민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그 많은 출마자들을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된지 오래고 선거공보를 통하여 얻게 되는 정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 선택을 위한 잣대도 변변치 않고,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며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야도(野都) 인천이라 불리우고 인천의 표심(票心)이 전국선거의 바로미터라 회자되는 우리 인천의 투표율이 최하위권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모든 출마자의 공약 이행계획(履行計劃)과 이행결과(履行結果)를 선관위에 등록(登錄)하여 심사(審査)하고, 그 결과만을 공약으로 사용하게 하며, 이후 재출마시에도 이전의 공약이행결과와 당해 공약이행계획을 같이 공표(公表)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공약(公約) 자체가 투표의 잣대가 되고 희망의 싹이 되어 투표율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선거가 투표가 하나의 축제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안광호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총괄과 사무관

[변평섭 칼럼] 공무원의 나라 ‘세종시’

세종시의 한 중국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 부처의 6급 직원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같은 부서의 서기관 역시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6급 직원이 얼른 일어나 상급자인 서기관에 가서 인사를 했다. 자연히 부인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런데 두 가정의 중학생 아들이 모두 같은 반 친구여서 서로들 아는척을 했다. 두 가정은 각기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6급 직원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상급자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거기다 엄마까지…. 또 서기관의 아들은 그런 속에서 우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공무원이 대부분인 세종시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세종시가 마치 이런 복잡한 구조의 계급사회로 갈등을 빚는 것처럼 문제를 다루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말단 9급에서 장차관에 이르기까지 9개 부처 2만명 상당의 공무원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는 세종시에서는 의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 공직사회도 사무실 안과 밖의 자기 위치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제일 민감한 곳이 학교의 엄마들 모임인데 여기서도 ‘계장 사모님’, ‘과장 사모님’하는 식의 지위가 아니라 엄마의 동등한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문제는 이런 자리에서 삐딱한 사시(斜視)를 가진 사람들이 이야깃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령 앞에서 이야기한 중국 식당의 경우 상급자를 만났을 때, 그 가족에까지도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로 보지 않고 ‘계급사회’의 현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과장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개 아버지는 아부를 잘한다”고 퍼뜨리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병폐가 된다.마찬가지로 학교 엄마들 모임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과장 부인을 두고 학교에서까지 과장 행세를 한다고 힐란하면 정말 어떻게 되겠는가? 몇 년전 군부대가 밀집한 A지역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아빠의 계급과 관계된 것이었다. 학교 친구끼리도 ‘우리 아빠는 소령이야’하면 ‘우리 아빠는 중령인데….’하는 식의 말싸움이 자주 발생했고 그 가운데 하사관의 자녀들은 많은 열등감을 안아야 했다. 심지어 부인들까지도 계급대로 어울린다고 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도 이 군부대 밀집지역의 그와 같은 현상을 불식시키고 있고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추세다. 흔히 사회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갑질’의 악폐가 오히려 계급이 세분화되어 있는 공직사회에서는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물론 국가 사회에서 계급은 어느 조직이든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갈등도 있기 마련. 그래서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 또는 ‘흙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 하는 심장을 찌르는 ‘불공정’의 세태를 개탄하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동류의 계급사회-이를테면 세종시의 공무원 사회에서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것을 잘 조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같은 대한민국 땅이라 해도 서울 명동의 땅값, 제주도의 땅값, 그리고 세종시의 땅값이 그 역할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서로 인정하듯, 그 직급의 상하를 떠나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미래를 여는 역사의 門 해방 70년 京畿] 37. 통일조국 건설에 온 몸을 바친 시대의 예언자 몽양 여운형

태평양전쟁에 뛰어든 일제는 모든 힘을 전쟁에 쏟아 부었다. 식민지 조선은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였다.일제는 총탄을 만들기 위해 밥그릇과 숟가락까지 빼앗아갔다. 조선인들은 수백 년 동안 써 오던 성씨도 일본식으로 바꾸어야했다. 1940년 2월11일 ‘조선일보’는 “조선 민중의 열렬한 요망에 맞추어…”라며 조선인의 요구에 따라 창씨개명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도했다. 같은 해 6월7일자 ‘동아일보’도 “이 제도는 일반의 비상한 공명을 얻어 그 성적이 자못 양호하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일제의 비위를 열심히 맞추었으나 일제는 창씨개명 마감일인 그해 8월11일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켰다.1943년 8월1일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금일 감격의 징병제 실시-병역은 최고의 영예 순국일념, 군문으로 가자’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때부터 최남선, 이광수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조선인 명사들이 강연회와 언론 기고를 통해 출정을 독려하는 충성 경쟁을 벌였다.조선의 청년 20만여 명이 전장으로 끌려가 2만여 명이 전사했다. 1940년대의 조선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동토였다. ■ 해방을 준비하다전국발명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기중학생 손치웅은 1943년 영어공부를 위해 단파라디오를 만들어 방송을 듣다가 ‘미국의 소리’를 알게 됐다. 단파방송의 전황은 일제의 선전과 전혀 달랐다.손치웅은 이러한 사실을 친한 후배에게 전해주었는데 그가 몽양 여운형의 조카였다. 손치웅은 1944년 여름방학 때 양주 봉안마을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들은 단파방송의 내용을 몽양에게 전달했다. 이후 손치웅은 정기적으로 방송 내용을 몽양에게 전달했다. 1944년 8월 몽양은 조동호, 김진우, 현우현 등과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앞에 있던 삼광한의원에서 ‘조선건국동맹’을 창건했다. 1945년 평양공전에 진학한 손치웅은 독일이 항복했던 그해 5월 몽양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달려왔다. 머잖아 일제가 패망할 것을 확신한 몽양은 손치웅에게 매일 ‘미국의 소리’를 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손치웅은 학업을 중단하고 100여일 동안 방송을 듣고 여운형에게 알려주었다. 이러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몽양은 해방의 ‘그날’을 준비했다. ■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다8월15일 오전 몽양 여운형은 조선총독부 엔도 정무총감을 만나 일제의 항복 이후 문제에 대해 협상을 벌였다. 같은 날 여운형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추대됐다. 8월16일, 몽양은 휘문중학에서 해방의 기쁨에 겨운 청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조선민족 해방의 날은 왔습니다. …이 땅을 참으로 합리적인 이상적 낙원으로 건설하여야 합니다. 이때 개인의 영웅주의는 단연코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으로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아갑시다! 머지않아 연합군 군대가 입성하게 될 터이며, 그들이 들어오면 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를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합시다.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시할 것입니다.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민족의 힘을 바칩시다.”같은 날, 건준 부위원장 민세 안재홍이 방송연설을 통해 건준의 활동 목표가 건국준비에 있음을 밝혔다. 이어 좌우가 균형을 이루는 중앙조직을 결성했다. 8월31일까지 전국에 145개의 건준 지부가 건설됐다.■ 불운, 분열, 분단그런데 8월말부터 우익 세력이 하나 둘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다수가 된 좌익세력은 건준을 인민공화국으로 선포해 버렸다. 좌우세력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을 때 미소 양군이 남북에 진주했다. 해방이 한국인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것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련군은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인 8월9일에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압록강을 넘어 들어왔고 미군은 8월9일에 인천을 상륙하여 서울에 들어왔다. 3ㆍ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에 대한 몽양의 입장은 이랬다. “나는 연합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즉 만났으니 ‘하우 두 유 두’라고 인사할 것이고, 둘째 번에는 ‘탱큐’라고 사례의 뜻을 표해야 할 것이고, 셋째로는 ‘구드 바이’가 있을 뿐이다. 절대로 멀리서 온 연합군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또 잘 모르는 국내사정을 호소 의뢰해서도 안 된다. 외래세력 의뢰심은 우리의 결점의 하나였다. 사대주의와 배외사상은 절대로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남한의 모든 행정을 장악한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은 물론 중경의 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었던 미군정은 행정과 치안을 일제에 협력했던 매국세력들에게 맡겼다. 해방 후 숨죽이며 지내던 친일파들에게 살길이 열렸다. 미군정이 좌익을 배척하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재빨리 ‘반공’으로 무장했다. 국내 기반이 취약했던 명망가 이승만은 친일파들의 구세주였다. 테러를 당한 후 입원한 서울대병원에서 (1946.10)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소 외상들이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한 최고 5년의 신탁통치를 결정했다는 어두운 소식이 들려왔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있던 민중들이 이 조치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공산당도 처음에는 반탁에 참여했으나 돌연 찬탁으로 돌아섰다.좌우합작을 추진하던 몽양은 큰 난관에 부닥쳤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양국의 의견차이로 결렬됐다. 수십 개의 정당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시기에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날 민족을 팔아먹었던 친일파들은 미국과 이승만을 등에 업고 남조선만의 단독정부를 세워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려 서두르고 있었다. 몽양에게 맡겨진 시대적 임무는 이들의 계획과 음모와 모략을 부수고 완전한 자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몽양은 김규식과 함께 민족 분단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을 적극 추진했다. 몽양은 민중들에게 가장 신뢰를 받았던 지도자였다. ‘남조선 정세 보고서’라는 소련 군정문서 1946년 3월22일자에 “각지로 자신의 대표 20명을 파견해 실업자, 상인, 소자산가들과 면담을 실시하면서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 김두봉, 김일성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하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대다수는 여운형과 조만식을 지지했고 이승만과 김규식을 지지한 사람은 2명이었다”고 적혀있다.그러나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완전 바뀌게 됐다. 좌우 협력만이 민족분단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 몽양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파의 앞길은 험난했다. 몽양 여운형은 1947년 7월19일 백주대낮에 파출소 옆에서 극우 청년 한지근이 쏜 총탄에 숨졌다. 범인의 배후에는 대한민주청년동맹 김두한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사건의 담당 경찰이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이라는 사실이다. 이승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반민특위에 체포된 노덕술의 석방을 요구하고 경찰에 의한 반민특위의 습격과 해체를 묵인했다. 몽양 여운형이 바랐던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한 통일임시정부가 수립됐다면 이승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좌우와 남북의 아우르는 몽양의 존재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한민당과 이승만의 정치행로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그러나 정황 증거는 이처럼 충분하지만 암살의 배후를 규명할 또렷한 물증은 없다.■ 이 시대 젊은이가 배워야 할 몽양의 기상과 정신몽양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의 통일조국 건설의 꿈이 사라졌다. 대신 이념을 달리하는 남북 두 나라가 들어섰다. 그가 죽은 지 3년 만에 나라는 전쟁터로 변했다. 몽양이 우려했던 대로 전쟁 이후에는 남북 모두 영웅주의와 개인 우상화로 치달았다. 몽양 여운형은 박헌영, 김일성 같은 공산주의 좌파로부터 김구, 조만식 같은 민족주의 우파까지 아우르는 통 큰 정치인이었다. 남북과 좌우의 정치세력, 반탁운동과 삼상협정 지지 세력을 두루 묶을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적국의 한복판인 동경에서 일본의 정계와 군부의 핵심을 만나 독립을 역설했던 담대한 정치가였다. 소련의 레닌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중국의 손문, 모택동, 장개석과 친교를 맺었던 국제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몽양을 아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조국의 통일과 겨레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몽양 여운형의 당당한 기상과 열린 정신을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북부 외곽순환로 통행료 인하… 공들인 고양은 제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 통행료 인하’를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고양시가 통행료 인하가 현실화되더라도 혜택을 보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국토교통부가 진행 중인 관련 용역에 고양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고양IC와 통일로IC’ 통행료 인하는 제외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시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달 16일 ‘서울외곽 북부 민자구간 통행료 개선방안 연구용역’ 입찰공고 내고 통행료 인하 검토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시는 내년 6월 용역 결과가 제출되면 통행료 인하가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는 용역 과업지시서를 통해 서울고속도로 북부 민자사업 진단 및 평가, 국내외 민자사업 동향과 사례 분석, 사업재구조화, 남북부 동일요금 적용 등 통행료 문제해결 방안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가 과업지시서와 국토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한 결과, 용역의 세부 내용은 북부구간 본선IC(구리, 성남, 청계, 시흥, 김포, 양주, 불암산 등) 통행료 인하만이 대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럴 경우 고양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선IC인 고양IC(통행료 1천원)와 통일로IC(1천100원)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시는 내년도 예산안에 ‘외곽순환도로 등 추가 대응방안 수립’ 연구용역비 2천200만원을 편성, 시의회에 제출했다. 이 예산으로 고양과 통일로IC 통행료 인하를 위한 근거를 마련해 국토부 용역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인 것이다. 하지만 시의 이런 희망과는 달리 국토부가 본선IC 통행료만 인하하고 고양과 통일로IC 통행료는 그대로 두면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들은 북부구간 통행료가 인하되면 당연히 고양과 통일로IC도 인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용석 시의원은 “시민들은 통행료가 인하되면 고양과 통일로IC 통행료로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만약 고양과 통일로IC가 제외된다면 고양 시민들은 통행료 인하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국토부 용역이 큰 틀에서 본선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럴 경우에 대비해 지선인 고양과 통일로IC 통행료도 인하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마련하기 위해 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고양=유제원ㆍ김현수기자

파주 우수 中企, 중국시장 뚫었다

파주시는 중국의 우한과 청두에 관내 우수 중소기업을 파견해 총 425만달러의 수출상담 성과를 거뒀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중국 시장개척단 파견은 연내 발효예정인 한ㆍ중 FTA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이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시장에 파주시 중소기업의 수출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됐다. 시는 세계 최초로 가정용 두유, 두부제조기인 ‘소이러브’ 시리즈를 발명한 (주)로닉, 이마트·다이소 등 8개 대형할인마트에 홈데코레이션 시트를 공급하는 (주)매직픽스, 베트남 시장에 스피커와 음향기 개발과 기술을 제공하는 (주)에스앤에스전자, 식물성 천연원료를 이용한 의약품적 기능의 화장품을 개발하는 (주)더코스메디움의 4개 업체를 파견했다. 시는 “수출상담을 통해 47건 425만달러의 수출상담 실적을 올렸으며 이 중 35건, 245만달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수출로 이어질 것이 예상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시는 중국의 관계(꽌시)를 중시하는 상거래 특성에 맞춰 시장개척으로 발굴된 바이어와의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해 현지 코트라 무역관과 협조해 실질적인 수출로 이어지게 지원할 계획이다. 파주=김요섭기자

양주, 늘어나는 ‘소외계층’ 자립 돕는다

최근 주택임대료조차 못내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늘어나고 있어 이들에 대한 복지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양주시가 적극적인 자활사업으로 이를 개선하고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9일 시에 따르면 김포, 안성, 구리, 광명시 등과 B그룹에 속한 양주시는 경기도가 실시한 자활사업 종합평가에서 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B그룹에서 1위, 도내 전체 2위를 차지해 기관 표창과 함께 자활담당 공무원 표창을 받게 됐다. 시는 이번 평가에서 자활근로사업 참여 대상자 84명 중 14명이 수급자에서 벗어나 탈수급률 16.67%를 기록했고, 84명 중 15명이 취ㆍ창업에 성공해 17.86%의 취창업률을 기록했다.특히 희망키움통장Ⅱ에 가입한 수급자가 지난해 36명, 올해 97명 등 목표치 51명을 상회하는 133명이 가입, 166.27%를 기록하는 등 도내 지자체 중 3위를 차지해 이번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시는 그동안 자활사업 활성화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기금 10억여원을 조성했고 자활근로사업, 이동목욕, 이동빨래사업 등을 통해 근로능력이 있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근로 기회를 제공해 왔다.시는 수급자를 대상으로 양주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해 2개월간의 상담기간(게이트웨이)을 거쳐 공동사업단에 배치해 도시락 배달, 택배, 수공예, 이미용 등 6개 사업의 교육을 실시한 뒤 민간기업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기금 10억원 중 올해 자활기금으로 1억2천600만원을 편성하고 저소득층 3가구에 각 1천만원씩 3천만원을 지원했으며, 자활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적극적인 집행을 지난달 4일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양주=이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