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 제물포·영종·검단구 신청사 건립 예산 ‘錢錢긍긍’

인천시의 2군·9구 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제물포·영종·검단구의 신청사를 건립하기 위한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 9일 시와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시는 오는 2026년 7월부터 동구와 중구를 제물포구로 합치고, 서구에서 검단구, 중구에서 영종구를 떼내는 2군·9구의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준비를 하고 있다. 시는 이를 위해 ‘구 설치준비단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해 개편에 따라 이뤄질 생활사회간접자본(SOC)의 현황과 민간단체, 행정정보시스템, 지방공기업 등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시는 영종구 신청사는 영종하늘도시 운남동의 공공청사용지에, 검단구 신청사는 당하동과 마전동 인근의 공공청사용지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는 제물포구 신청사의 경우 동인천역 인근 공공청사부지의 활용을 구상하고 있다. 시는 신청사 건립에 앞서 단기적으로는 영종구와 검단구의 임시 청사를 운영할 예정이다. 영종구는 현재 중구 2청사와 함께 민간건물 임차와 가설건축물 등 다양한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검단구 역시 서구 검단출장소를 거점으로 둔 뒤 민간건물 임차와 가설건축물 사용 등을 고민하고 있다. 제물포구의 경우 중구와 동구의 청사를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이들 신청사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토지 가격은 물론이고 건설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정부와 인천시의 예산투입이 시급하다. 신성영 인천시의원(국민의힘·중구2)은 “행정체제 개편으로 3개의 구가 한꺼번에 개편이 이뤄지면서 곳곳에 청사를 지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신청사 건립은 매우 중요한 현안인 만큼, 당장 신청사 건립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부지 매입 비용에 건설 비용을 합치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시와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성원가 이하로 토지를 매입하도록 하고, 신청사 건립에 시비와 국비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청사의 유지 및 건립 등에 대한 예산은 자치 사무로 분류, 기초지자체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별교부세 등을 통해 지원 받을 수 있다. 지방교부세법 제9조에 따르면 보통교부세 산정방법으로 받을 수 없는 지역현안 재정수요가 있을 때에는 특별교부세를 신청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청사 건립은 기본적으로 각 구가 책임져야 해 예산 부담이 클 것”이라며 “우선 시에서 나서서 정부 등에 필요한 예산을 제출하고, 특별교부세로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썼다고 ‘인사발령’…공기업 ‘인사상 불이익’ 논란

한국관광공사 산하 공기업에서 육아휴직을 한 남성 직원이 복귀 후 회사로부터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해당 공기업은 지난 2013년 업계 최초로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 인증기업’에 선정됐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곳으로, 현재도 가족친화기관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남성 직원 A씨는 지난 2007년 한국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입사한 후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 15년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지점에서 카지노 내 부정행위 감시 부서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2022년 10월 육아휴직에 들어간 뒤 지난해 10월 복직했다. 이후 그는 맞벌이를 하면서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해야 했기 때문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 주당 24시간의 근무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GKL 측은 A씨를 다른 지역 지점의 카지노 딜러로 전보명령을 내렸다. A씨는 “어린 자녀 3명을 돌보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까지 신청했는데, 사전에 협의도 없이 근무 지점이 바뀌면서 출퇴근 시간만 1시간 반이 늘어난 셈”이라며 “15년 동안 카지노 딜러의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업무를 해왔는데, 갑자기 카지노 딜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들을 감시하며 규정을 지켜달라고 하던 사람을 누가 좋게 보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가 ‘부당하다’며 회사에 이의를 제기하자, GKL 측은 원래 근무하던 지점의 카지노 딜러로 재차 전보명령을 내렸다. 결국 그는 지난 1월 회사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고용노동부는 관련 조사를 거쳐 지난 4월 GKL 측이 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처우를 했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GKL 측은 ‘원직에 복직 시키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고용노동부에 재심을 신청한 상황이다. A씨는 “2015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나처럼 전보를 받은 직원이 없다”며 “고용노동부에서 부당전보로 인정받았는데도 또다시 변호사를 4명이나 써서 재심으로 끌고 가려는 회사를 상대로 싸우려니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GKL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성남 34만원” 대한민국 이미지 ‘먹칠’ [현장, 그곳&]

“불법 콜밴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까 걱정입니다.” 지난 8일 오후 11시30분께 인천 중구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1층 입국장 D출구. 입국한 중국인 남녀에게 회색 자켓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이 다가서며 작은 목소리로 “택시?”라고 물으며 호객을 한다. 이 남성은 신분증을 보여주며 “택시 라이센스”라고 안심시키기도 한다. 그는 1층 다소 외진 곳에 주차한 검정색 그랜져 차량 트렁크에 중국인 관광객의 짐을 싣고 떠난다. 이 차량은 콜밴 영업을 할 수 없는 ‘허’자의 흰색 번호판이다. 앞서 이날 오후 5시께 T1 E출구 앞에서도 마찬가지.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외국인 여성 등에게 접근해 호객을 한 뒤, 함께 지하1층 주차장으로 가 흰색 번호판의 카니발 렌트 차량에 손님과 짐을 싣고 주차장을 벗어난다. 인천공항의 한 단속요원은 “이 같은 흰색 번호판 차량으로 이뤄지는 택시 영업은 불법이다”며 “호객과, 바가지 요금, 불친절 등은 물론 사고가 나도 해결이 어려워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서 불법 콜밴 영업이 성행하고 있다. 9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불법 콜밴 기사들은 인천공항 T1을 중심으로 약 70~80명이 오전과 오후 조로 나눠 조직적으로 영업을 벌이고 있다. 현행 화물자동차 운송사업법은 화물운송 종사자격증을 보유해야 콜밴 영업이 가능하다. 영업용 차량 번호판은 노란색이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공항시설법에서는 상품 및 서비스 구매를 강요하거나 영업을 목적으로 손님을 부르는 이른바 ‘호객’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항공사와 인천공항운영서비스㈜는 2명 1개 조로 24시간 불법 호객 단속을 벌여 해마다 600여건을 적발하고 있지만, 불법 콜밴 영업을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공권력이 없어 적발해도 제지 및 퇴거 조치에 그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운영서비스 관계자는 “단속요원들이 민간인 신분이다보니 ‘그만하세요’, ‘나가주세요’ 밖에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불법 콜밴 영업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요금과 불친절로 이어지고 있다. 한 단속요원은 “최근 한 외국인이 인천공항에서 경기도 성남까지 택시요금으로 34만원을 냈다는 민원을 접수했는데, 이는 강원도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비싼 바가지 요금”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종 콜밴 기사가 불친절하고 난폭운전을 한다는 민원도 들어오는데, 불법이라 확인하고 조치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데도 정작 경찰은 손을 놓고 있다. 인천공항경찰단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획수사팀이 있어 단속을 했지만, 지금은 자체 인력밖에 없어 단속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인천공항, 인천 중구청과 함께 합동단속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만평] 혹시나~ 했는데...

[사설] ‘3호선 연장’으로 희망 고문했나

‘서울지하철 3호선 연장·경기 남부 광역 철도’의 밑그림이 알려졌다. 수원·용인·화성·성남시가 공동으로 수행한 용역의 결과다. 지난해 7월 4개 시가 공동 발주한 것으로 새 노선안을 도출했다. 용역에서 제시된 노선은 2개다. 3호선 수서역에서 판교, 수지, 광교, 봉담을 잇는 것이 1안이다. 2·9호선 종합운동장역에서 시작해 수서역을 거쳐 같은 노선을 지나는 것이 2안이다. 4개 시가 협의를 통해 1개 노선을 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결정한 노선을 4개 시가 경기도에 전달하기로 했다. 신규 철도망 건설 사업 신청은 시•군이 경기도에 신청하고, 경기도가 취합해 국토부에 신청하는 방식이다. 4개 시•군은 이와 별도로 광역철도 사업에 반영해 달라는 공동건의문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내년 7월께 확정 발표된다. 국토부가 이달까지 광역철도 노선 신청을 받는다. 다음 달에는 지자체 건의 사업 설명회가 예정됐다. 새로운 철도망 계획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결론은 따로 있다. ‘3호선 연장’의 꿈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제시된 2개 안 모두 ‘연장’이 아니라 ‘연계’다. 승객이 하차해 서울지하철로 갈아 타야 한다. 당초 ‘3호선 연장의 꿈’은 이런 번거로움이 아니었다. 열차 종류도 다르다. 서울지하철은 10량 규모의 중전철인 데 반해 새 노선은 5량 미만의 전철(MRT)이다. 당초 ‘3호선 연장의 꿈’에는 이런 지역 차별도 없었다. ‘3호선 연장’이 경기 남부권에 등장한 건 2020년 즈음이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서 개발 구상이 시작이었다. 성남•용인•수원시가 움직였다. 용인시는 추진팀까지 가동했다. 진척은 없었다. 거대한 차량기지를 마련할 수 없었다. 21대 총선에서는 해당 지역 공통 공약으로 채택됐다. 이재명 지사와 해당 시장들이 협약까지 했다. 역시 결실은 없었다. 이후 차량기지 상부를 복합 개발하는 이른바 오세훈 구상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2022년 지방선거에 또다시 나타났다. 화성시까지 ‘부지 내놓을 듯’ 가세했다. 경기도지사와 4개 시장이 협약을 했다. 그 협약의 결론이 이번에 나왔다. ‘3호선 연장 불가’다. 2022년 공무원은 ‘가능성 없다’고 했다. 용인시가 했던 용역에서 사업성 없다고 나왔다. 서울시가 차량기지를 존치한다고 발표했다. 4개 시 합동 용역이 또 사업성이 없다고 나왔다. 뭐가 더 남아 있는가. 더 고문해도 좋을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인가. 새로운 노선 설명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필요한 설명이 있다. 본래 의미의 3호선 연장은 없어진 것인가. 다음에는 공약하지 않을 것인가. 이 답변부터 듣고 다음 주장을 펴겠다.

[사설] 평택항 세관 경비 허술, 밀수 창구로 악용돼선 안 된다

평택항에서 검거된 수억원대 밀수 용의자가 세관의 조사 과정에서 도주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밀수품 등을 검문하는 세관 감시초소가 너무 허술하다는 비판과 함께,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3일 면세품 등을 밀수하던 50대 남성이 평택직할세관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달아났다. 이 남성은 평택과 중국 웨이하이 노선을 운항하는 중국 A선사의 선박 내 면세점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매점업주였다. 그는 매점 판매용 담배 등을 선박에서 사용하는 물품 운반차량에 싣고 나오는 수법으로 밀수를 하다 세관에 검거됐다. 사건 당일 남성은 한국산 담배 2천여 보루와 시계, 모자 등 위조 명품, 주류 등 2억원 상당의 밀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매점업주는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에 면세점 물품 보관창고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조사를 받던 중 창고에 다른 밀수품도 있다며 세관 직원을 창고로 유인한 뒤 직원이 물품을 확인하는 사이 도주했다. 그런데 평택직할세관은 2주가 지나도록 도주 사실을 수사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때문에 은폐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매점업주가 밀수품을 반출해 왔는데도 세관 감시초소가 제대로 밀수 차량을 검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매점업주는 세관 감시초소의 면세점 판매물품 관리 허점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감시초소가 임의로 선정한 일부 제품만 검사하는 점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관세법에 따르면 세관은 선박 내 판매품을 비롯한 선박용품에 대해 전산 또는 수작업으로 검사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 실제 평택직할세관은 밀수 용의자가 신고한 선박 내 판매품 중 전산상에서 임의로 선정한 일부 박스만 확인했다. 여기에 선사가 선박 내 매점을 외주용역으로 관리하며 매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게 이번 범행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평택직할세관은 앞으로 선박용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매번 모든 선박 내 판매품을 열어 검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임의 선정 기준을 높여 검사 대상을 늘리는 등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밀수품 등을 검문하는 감시초소가 무방비로 뚫려 그동안 밀수창구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려를 불식시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평택항을 통한 교역이 증가하면서 밀수 사범 등도 늘고 있는 만큼 보안 강화도 시급하다. 평택직할세관을 ‘본부세관’으로 승격시킬 필요가 있다. 평택세관은 현재 중국발 직구 폭증 탓에 임계점을 넘었고, 검사 1건에 5초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무량 폭증과 심각한 인력부족으로 불법물품의 차단 기능이 한계에 달해 있다. 직할세관을 본부세관으로 승격시켜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김남희의 길 위에서] 샤토라코스트에서 만난 진정한 예술

4월 말, 남프랑스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는 한결 같았지만 가는 비가 자주 흩뿌렸다. 와이너리 샤토라코스트로 향한 그날도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북쪽으로 16㎞ 떨어진 샤토라코스트는 로제 와인이 주력인 와이너리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건 와인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다. 2001년 엑상프로방스를 즐겨 찾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 재벌 패디 매컬린이 1682년 세워진 오래된 와이너리를 사들였다. 와인만큼이나 예술을 사랑한다는 그는 60만평에 이르는 포도밭과 숲 곳곳에 조각작품을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했다. 20년이 흐른 후 이곳은 이우환, 알렉산더 칼더, 숀 스컬리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45점에 이르는 조각작품과 프랭크 게리의 음악당, 안도 다다오의 아트센터와 채플, 장 누벨의 와인 저장고, 오스카 니마이어의 갤러리 등이 들어선 거대한 미술관이 됐다. 한마디로 현대미술과 건축, 와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 된 셈이다. 나도 ‘건축과 예술의 길’을 걷기 위해 찾아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워킹투어를 신청해 가이드와 함께 예술작품을 둘러보고 와인 시음을 하는 걸로 나들이 계획을 짰다. 프로방스 대부분의 마을처럼 이곳 역시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힘들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의 높고 긴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교적 성소로 인도하는 듯한 계단을 올라가니 리셉션과 이어진 식당이었다. 잘 구워진 도미 요리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가이드 투어를 시작했다. 브라질, 영국, 스페인 등에서 모인 10여명이 가이드를 따라 두 시간의 산책에 나섰다. 러시아 출신의 젊은 가이드는 제일 먼저 인공 연못 위의 거미,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안도 다다오의 게이트 옆에는 데미안 허스트의 브론즈로 만든 거대한 인체 상반신 조각이 서 있었다. 마침 이곳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특별전이 열리는 중이었다. 너른 포도밭 위에 놓인 우아한 곡선의 돌다리조차 래리 뉴펠드의 작품이었다. 일생을 통해 유지해야 하는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라질 조각가 통가의 작품은 자석 위에 관람객들이 올려놓고 간 동전으로 새로운 작품이 돼 가고 있었다.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 다다른 곳은 붉은색과 흰색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파빌리온.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것 같은 이곳은 리처드 로저스(‘더현대 서울’을 설계한 건축가)의 작품이다. 파빌리온 안에서는 살아 있는 나비의 날개를 사용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도쿄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구마 겐고의 조각, 안도 다다오의 예배당 등을 거쳐 다다른 곳은 브라질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102세에 설계한 갤러리. 부드럽게 펼쳐진 지붕의 곡선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렸다. 이 공간의 주인공도 데미안 허스트였다. 생존 작가 중 이 사람만큼 악평과 호평을 동시에 받는 이가 또 있을까. 그는 ‘난파선에서 나온 믿을 수 없는 보물들’이라는 소설까지 썼는데 침몰한 선박 안에서 발굴된 일관성 없는 유물에 관한 이야기다. 그 소설에 기반한 조각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그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기발하고 엉뚱해 흥미로웠다. 가이드와 함께한 두 시간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투어가 끝난 후 혼자 포도밭 주변을 돌아다니며 투어에서 생략한 조각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와인숍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로제 와인 한 병을 사들고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오려니 우버가 한 대도 없었다. 이럴 때는 리셉션에 가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면 되지만 나는 운에 맡기고 약간의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와이너리 안쪽에서 작은 차가 나오기에 손을 들어 세웠다. 아뿔싸, 운전사도 젊은 남성인데 옆자리에도 젊은 남성. 보통 이런 차는 타지 않는데 운전석에 앉은 친구의 인상이 좋은 데다 와이너리에서 나왔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샤토라코스트에 딸린 호텔의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로 이름은 모아타미. 베르베르어로 ‘주체적 인간’이라는 뜻이란다. 모로코의 사막 마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님과 스페인으로 이주했고 프랑스로 일하러 온지는 4년째.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20분 동안 나는 그의 시간당 임금, 월수입, 월세, 장래 희망까지 다 알아버렸다. “샤토는 시간당 11유로(1만6천원)를 줘서 임금이 후해요. 게다가 팁도 받을 수 있고. 근데 대중교통이 없어 너무 힘들죠. 처음 여기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하루 70유로를 벌어 택시비로 40유로를 썼어요. 그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인생에는 그런 시기도 있는 거니까요. 넘어지면 일어나는 법을 배우게 되잖아요. 처음엔 부엌에서 일했는데 좀 힘들고 지루했어요. 지금은 홀에서 서빙을 하게 돼 너무 즐거워요. 온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어 좋거든요. 나는 스페인어, 아랍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를 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돈을 벌고 싶어 스페인보다 임금이 높은 프랑스로 왔어요. 근데 이렇게 사는 삶이 재미있어 다음에는 영어도 배울겸 영어권 나라에 가서 일해볼 생각이에요. 다른 세상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스물한 살의 청년은 삶을 향한 열정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엑상프로방스에 들어섰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덕분에 즐겁고 안전하게 잘 왔어요.” “아니, 이게 뭐라고요. 도울 수 있을 때는 당연히 도와야죠.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도울 거고, 세상은 그렇게 좋아지는 거 아닌가요? 내 전화번호 적어 놓을래요? 여기 머무는 동안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무슨 일이든 연락해요.”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왓츠앱에 저장하고 차에서 내렸다. 샤토라코스트를 만든 패디 매컬린은 자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곳의 진짜 예술가는 포도 재배자입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나는 그 말을 살짝 바꾸고 싶었다. “이곳의 진짜 예술가는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샤토라코스트는 모아타미가 없었다 해도 아름다웠겠지만 그의 다정함으로 인해 한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공간으로 남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작품을 빚는 예술가다. 모아타미는 내게 인생이라는 작품을 빚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줬다.

[천자춘추] “경기도박물관이 어디 있어요”

경기도박물관의 지난해 관람객은 11만9천923명이다. 경기도 인구 1천400여만명의 1%도 안 된다. 서울 인구 1천여만명까지 포함한 수도권 인구로 보면 그 비중은 0.5%정도다. “경기도박물관장입니다”라고 필자를 소개하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십중팔구 “거기가 어디냐”는 질문이 제일 먼저 돌아오는 것이 이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지방자치의 꽃인 문화자치와는 정반대의 행보이고 사회복지의 완성인 문화복지와도 거리가 멀다. 이 지점에서는 사실상 경기 문화가 죽었다고도 할 수 있다. 관객의 성격을 따져봐도 하루 300여명 중 학생단체가 대부분이고 청장년이나 노년층 중심의 일반관객은 드물다. 평생학교나 놀이터로서, 문화복지로 인구절벽과 초고령사회 문제는 물론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달리는 자살률을 급감시켜야 할 최후의 보루로서 박물관의 존재이유가 무색하다. 통계수치로만 보면 경기도민은 경기도박물관의 혜택을 안 받기도 하고, 또 못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1인당 국민소득 3만5천달러의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우리나라다. 문제는 선진국이 돈만으로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문화와 양 날개로 날 때만이 가능하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도립박물관을 보유한, 그것도 유일하게 국립박물관이 없는 경기도로서 1% 아래의 관객수치는 어떤 이유로도 납득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보란듯이 관객이 400만명을 넘어섬으로써 세계 6대 박물관에 등극했다. 경기도박물관은 어느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일차적으로 스스로 대변혁을 감행해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개관 30년을 앞두고 당도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계시대 관객의 입장에서 유물의 성격을 재설정하는 길밖에 없다. 일면적이어서 ‘지루한’ 기존 유물의 진열 방식과 관점에서 탈피해 영상만이 아니라 실물X영상으로, 그것도 시공을 초월해 다면적인 유물 본래의 모습을 생생활활한 생명체로 다시 발명해내는 길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유물과 하나 돼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놀게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 유물이 지금 나이고, 나의 미래임을 자각하고, 나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탈바꿈하는 자리가 경기도박물관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태초에 돌은 돌이었고, 사람은 사람이었지만 인간이 돌을 깨면서 문명은 시작됐다. ‘한탄강주먹돌도끼’가 바로 그 증거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AI’는 ‘한탄강주먹돌도끼’의 아들의 아들이다. 여기서는 서로가 바로 직통하면서 구석기인이나 기계시대 사람이 인지적으로 다르지 않음까지도 확인한다. 박물관 유물이 그냥 죽은 고물이 아니고 우리의 오늘과 생생하게 호흡하면서 내일까지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탄강주먹돌도끼’와 이우환의 돌과 철의 ‘관계항’을 한자리에 놓으면 돌들이 만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미래 언어가 발명된다. 요컨대 현재가 역사를 무한 반복으로 되새김질하는 것 자체가 미래인 것이다. 미래는 따로 없다. 그래서 경기도박물관이 박물관을 다시 정의한다. 기계시대 인간이 유물에게 생명의 길을 묻는 자리로.

[데스크 칼럼] 물가 인상에 인상을 쓰다

마땅한 찬거리가 없을 때 맛있는 조미김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웬만한 집 팬트리(pantry·부엌에 인접해 식기나 식료품을 보관하는 방)에 쟁여둔 김 봉지 하나 없으면 한국 사람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김을 ‘국민 반찬’이라고 칭하고 사랑한다. 그랬던 김마저 우리를 배신했다. 이유야 어떠하든 인상(引上)된 물가로 우리들의 얼굴에 인상(人相)을 쓰게 했기 때문이다. 김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이 이달 들어 일제히 올랐다. 국내 대표 김 전문업체인 광천김과 대천김, 성경식품이 주요 제품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을 10∼30% 인상했다. 이들 업체는 앞서 지난달 초부터 슈퍼마켓 등 일부 유통채널에서 가격을 10∼20% 올린 데 이어 5월 들어서는 마트 판매 가격까지 인상한 것. 이들도 나름대로 항변한다. 업체들은 올해 김 원초(김 가공 전 원재료) 가격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올라 원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등 기념일이 몰려 있는 5월. ‘가정의 달’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잔인한 달’이 돼 가고 있다. 치솟은 물가에 필부필녀(匹夫匹婦)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안 오른 것이 없다. 집밥을 해먹든 외식을 하든 지갑을 열기가 두렵다. 통계청의 자료를 들여다보자.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 올라 4월 전체 소비자물가 평균 증가율인 2.9%를 웃돌았다. 품목별로 보면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꼽히는 떡볶이 가격이 5.9% 올라 상승 폭이 가장 높았다. 비빔밥·김밥(5.3%)과 햄버거(5.0%), 도시락(4.7%), 칼국수(4.2%), 냉면(4.2%) 등도 올랐다. 39개 외식 품목 중 지난해보다 물가가 내린 품목은 없었다. 물가 상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결정된 건강보험 의료수가 인상분이 올해 반영되면서 병원비, 약값도 줄줄이 상승세다. 특히 소화제, 감기약 등 일부 상비약의 물가 상승 폭은 전체 소비자물가의 2∼4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 한방·치과진료비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치과진료비는 1분기 3.2% 올라 2009년 3분기(3.4%) 이후 증가 폭이 가장 컸다. 한방진료비도 3.6% 올랐다. 2012년 4분기(3.7%) 이후 11년여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약값의 본인부담액도 수가 인상 폭만큼 오르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소화제는 올해 1분기 11.4%, 감기약은 7.1% 올랐다. 정말이지 팔짝 뛸 일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각종 특검도 중요하지만 서민 물가 태스크포스(TF)를 먼저 꾸리는 것이 여야와 정부의 도리가 아닌가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