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막는다… 자체 대응 나선 지자체 [뉴스초점]

성남시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고, 용인특례시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배회하는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반복되자 경기도와 일선 시·군이 자체 대응에 속속 나서고 있다. 주요 밀집 지역 치안 강화, 정신질환자 관리 등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시민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인데, 도 역시 광역 차원의 예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는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묻지마 범죄 피해자 지원 강화 방안과 도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히 도는 서현역 사건 피의자가 정신질환 치료를 중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지른 점에 착안해 정신질환자 모니터링 강화 등 대책을 수립, 조만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김동연 지사가 지난 6일 SNS를 통해 “(서현역 흉기 난동) 유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 조치, 적극 대응과 피해자 지원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후속조치다. 현재 도는 묻지마 범죄 피해자, 목격자에 대한 공무원 1대 1 매칭 방침을 세웠으며, 서현역 사건 피해자를 지원 중이다. 이와 함께 도 일선 시·군에서도 각각 치안 강화와 피해 예방을 위한 사전 조치 강화에 나섰다. 서현역 흉기 난동을 겪은 성남시는 주요 역사, 광장, 판매시설 등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경찰의 감시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순찰 활동에 지역 자율방범대, 해병대전우회 등을 적극 연계하고 도시정보센터 CCTV를 24시간 경찰에 실시간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 피해자와 목격자 등 피해자들이 겪을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달까지 비상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시 관계자는 “지역 보건소, 경찰과 연계해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 치료,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시도 지역 자율방범대와 경찰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도시정보센터 CCTV 실시간 공유를 진행 중이다. 수원특례시도 CCTV 실시간 모니터링과 경찰 신고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용인특례시는 감시 체계 강화에 더해 본청 및 구청 공무원으로 구성된 지원반을 편성, 인구밀집 지역인 에버랜드와 경전철 역사 등 4곳에 대한 경찰 순찰 활동 지원에 나섰다. 파주시는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해 흉기 소지자를 감사하는 등의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인구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소외되거나 은둔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보건소를 통해 이들을 적극 발굴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 예방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자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한정적인 상태”라며 “도 차원에서 가용한 피해자 지원, 재발 방지 대책을 적극, 신속하게 마련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고양특례시 청사이전 관련 경기도 감사 불복…재심의 신청

고양특례시 청사 이전을 놓고 시와 시의회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경기일보 7일자 5면) 시가 경기도 감사 결과에 대해 재심의 신청서를 발송하는 등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신청서를 8일 발송해 아직 접수 여부가 확인되진 않았다”며 “규정상 도는 60일 이내 재심의 결과를 시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재심의 신청으로 경기도가 시청사 이전 타당성조사 용역 예산의 확보 및 집행이 법 위반이라며 시정 조치와 관련 공무원 3명에 대한 훈계처분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시는 경기도가 용역비 예산 집행을 감사한 건 명백한 감사 대상의 확장이며, 경기도와 여러 지자체가 타당성조사 용역비를 사무관리비로 지출한 전례가 있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반면 시의회는 시가 경기도 감사 결과를 받아 들이지 않고 시청사 이전 타당성조사 용역수수료를 예비비로 집행키로 한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다음 달 열릴 임시회에서 용역수수료의 추경예산 편성을 논의할 수 있는데도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김영식 의장은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의회 권한 침해로 규정하고 시 감사관에 감사를 요청하기로 지난 4일 결정한 바 있다. 시의회는 또한 지난 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6시간 가까운 마라톤 회의에도 뚜렷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박현우 의원(고양다)은 경기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공익감사 청구 등 여러 방안이 나왔지만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며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으로 대응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의회 민주당 원내대표인 최규진 의원(고양마)은 “시의원들이 한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긴급 의총을 가진 것”이라며 “시 집행부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게 야당의 입장이지만 여야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고양시 감사관은 시의 도감사 재심의 청구와 시의회의 의회 권한 침해 감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경기만평] 입만 아프다...

[사설] 내년 총선 ‘현역 뽑지 않겠다’ 40% 이상, 엄중한 경고다

경기·인천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내년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을 뽑지 않겠다고 했다. 경기일보가 창간 35주년을 맞아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일하지 않는 국회,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원에 대해 불만이 쌓인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도민은 18세 이상 1천21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43.7%가 22대 총선에 현 지역구 의원이 재출마할 경우 ‘지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지지할 것’이라는 답변은 34.7%,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 20.1%, ‘잘 모르겠다’ 1.4%로 부동층이 21.5%를 차지했다.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도내 5개 권역에서 모두 40%를 넘었다. 이 중 경원권(동두천·양주·연천·의정부·포천)이 47.1%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의권(고양·김포·파주) 45.8%, 서부권(광명·부천·시흥·안산·오산·평택·화성) 44.9%, 동부권(가평·광주·구리·남양주·양평·여주·이천·하남) 44.5%, 경부권(과천·군포·성남·수원·안성·안양·용인·의왕) 40.7%로 집계됐다. 인천시민은 801명 조사에서 46.9%가 현역 지역구 의원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역별로는 중·동·미추홀구가 52.9%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연수·남동구 49.4%, 부평·계양·서구 43.2%, 강화·옹진군 37.1% 순으로 현역을 뽑지 않겠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 여론은 낙제점이다. 일하지 않고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가득하다. 이는 정치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회가 입법 생산성을 높이겠다며 2021년부터 ‘일하는 국회법’을 시행했지만 무용지물이다. 일하는 국회법에 따르면 전체 17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14개 상임위 소속 25개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매달 3회 이상 법안심사소위를 열어야 하는데 이를 지킨 곳은 한 곳도 없다. 법률소비자연맹이 21대 국회의 최근 3년간(2020년 5월30일~2023년 5월29일) 국회의원 입법 실태를 전수조사해 지난달 발표했다. 조사 기간에 25개 법안심사소위 회의는 총 612회 열렸다. 법안소위당 월평균 0.68회 개최된 꼴이다. 이들의 법안 심사 시간은 법안 1개당 평균 5분여에 불과했다. 상임위 전체회의의 경우 448개 법안을 57분 만에 처리한 적도 있다.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졸속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애초에 구속력이 없는 법을 만들어 놓은 것도 문제지만, 무용지물로 만든 책임도 크다. 법적 구속력을 명시해 실효성을 높이든가, 지키지 않을 거면 폐지하는 게 낫다. 여야 의원들은 “현역 국회의원을 뽑지 않겠다”는 국민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사설] 인천 은둔외톨이 3만... 침묵의 그늘 너머 손 내밀어야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일본이 먼저 겪었다. 틀어박히다는 의미의 히키코모리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부터 나타났다. 버블경제가 꺼지던 1990년대에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어느 사이 우리도 쉬쉬 할 수만 없을 정도로 이 문제가 커져 있다고 한다. 추계에 불과하지만 인천에서도 2만~3만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특히 청년층의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더 걱정이다. 우리 이웃의 일부가 꼭꼭 숨은 채 병든 잎처럼 시들어가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내년부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 3월 제정한 ‘인천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에 따른 사업이다. 조사를 토대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사업을 맡은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은 2만7천~3만6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했다. 인천 인구의 1% 정도다. 이웃 100명 중 1명은 은둔형 외톨이인 셈이다. 이 중 19~39세의 청년은 8천여명으로 나온다. 지난 3년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사태를 더 키운 것으로도 보인다. 경기일보가 만나 본 한 은둔 청년의 사연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식물인간으로 투병해 온 아버지의 죽음 이후부터다. 공황장애를 겪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10년이 넘도록 숨어지낸 그에게는 청춘의 기억이 백지 상태다. 마음을 닫고 지낸 세월은 자격지심이 되고 더욱 사회와 단절하게 만든다. “30살 되던 해,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고도 했다. 운둔과 고립의 위험천만한 결말을 암시한다. 이미 서울시와 광주시 등은 은둔·고립 청년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시의 실태조사 결과 청년층 은둔형 외톨이만 12만9천명이었다. 전체 서울 청년의 0.98%다. 서울시는 심리상담과 정신건강 프로그램 등을 시작했다. 재사회화를 위한 공동생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들을 방치하면 죽음과 더 숨는 것 2가지만 남는다고 한다. 관련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을 ‘관계 복지’라 부른다. 먹고사는 것을 지원하는 고전적 복지 이상의 지원이다. 은둔·고립의 청년은 ‘백수’와도 구별된다. 에너지가 전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 재사회화를 위해서는 그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과 ‘시간’이 중요하다고 한다. 되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이를 통해 은둔형 외톨이들 사이의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와 달라는 목소리도 낼 수 없는 그들이다. 그 침묵의 그늘 너머로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이다. 99마리 양 못지않게 중요한 길 잃은 양이어서다.

[변평섭 칼럼] 왜에 잡혀간 도공들, 왜 귀국 포기했을까?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가 돼 끌려간 사람이 적게는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 상당으로 보고 있다. 이 중에는 조선 양반이나 군인, 승려도 있었지만 도자기를 굽는 도공(陶工)이나 활자를 만드는 기술자, 염색 물감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많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군대를 이끌고 참전한 다이묘라고 하는 번주(蕃主), 즉 영주들은 도공들이나 기술자들을 무조건 끌고 갔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조선에 친교를 여러 번 청했는데 우리는 우리 왕릉을 도굴한 도굴꾼을 압송해 올 것과 우리 사신이 가서 잡혀간 조선 포로들을 전원 송환하는 조건으로 수교를 허락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조선통신사’인데 처음에는 ‘통신사’라 하지 않고 ‘회답과 쇄환사’란 이름으로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쇄환(刷還)’이란 뜻 자체가 빗자루로 쓸어오듯 우리 조선인 포로들을 모두 데려오겠다는 것으로 나라의 굳은 의지로 표현했던 것. 그러나 막상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3천명 정도에 그쳤다. 특히 기술자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 땅에 안착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조선에서는 기술자가 하층 천민 대접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도공에 대한 대우는 극진해 ‘사무라이’급 예우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도자기의 신문명을 일본에 심었고, 나아가 일본 도자기의 유럽 시장 진출로 일본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 충남 공주 출신의 이삼평은 ‘신(神)’으로까지 모셔진 신사(神社)가 있을 정도고 심수관, 박평의의 후손들 역시 ‘사쓰마도기’라고 하는 일본 도자기의 새 장르를 개척한 공로로 크게 존경받고 있다. 일본 역사에 대단한 공헌을 한 것이다. 박평의의 후손 중에는 도공의 길을 거부하고 관계로 진출해 2차 대전 시 외무대신(외무부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한국명 박무덕)도 있다. 그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복역 중 사망했다. 이렇게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전혀 다른 일본에서 아무리 조국이라고 하지만 천민 대접을 받는 조선에 돌아가고 싶었겠는가? 그들이 조국에서는 왜 창조적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 일본에서는 가능했을까? 성리학이 통치 이념이 된 조선왕조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철저한 위계질서로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고 결국 조선의 패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기술 전쟁’의 시대다. 특히 반도체, 수소에너지,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첨단 기술이 국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느냐가 그 핵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내년까지 이들 3대 기술 인력 1만3천명을 양성할 계획이며, 대전시, 대구시 역시 별도의 반도체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비상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을 자랑하는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와 지난 7월27일 반도체 인력양성 프로그램 약정서를 체결하는 등 외국대학에까지 손을 내밀어 기술 인력 경쟁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우리 반도체 기술과 자동차 기술을 빼내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는 365일 밤낮 없이 기술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반도체, 수소에너지,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핵심 기술 인력은 물론 모든 기술인력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기술자들을 천민 취급했던 조선왕조의 어리석은 발자취를 되밟지 않기 위해 기술 인력에 대한 의식 전환과 처우 개선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함께하는 인천] 경제 논리에 짓눌린 문화

3일간 15만명 넘게 찾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의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한여름의 최강 불볕더위보다 더 강력한 열기를 뿜어냈다. 눈길 끄는 축제가 빈약한 인천에서 전국적으로 명함을 내놓을 만한 문화행사로 자리 잡고 있어 다행스럽다. 충남 보령 머드축제, 경남 진주 유등축제, 전남 함평 나비축제, 강원 강릉단오제와 비견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백제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입출항했던 국내 최초의 무역항 ‘능허대’가 있는 연수구의 자랑거리가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연수구의 최근 문화 풍토를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연수문화예술회관’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가 하면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국고 지원을 이끌어낸 연수구 기초거점 ‘꿈꾸는 예술터’의 국비 20억원을 반납해 버렸다. 문화도시로 지정받기 위해 여러 예술가, 시민들의 참여로 기획·추진한 다양한 문화예술사업들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문화도시 예비사업 추진을 위해 2년간 혈세 20억원가량 쏟아부은 만큼 최소한의 결실이라도 거둬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또 연수문화재단 대표가 임기 절반만 채운 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표를 낸 데 이어 재단 직원들의 이직이 줄을 잇고 있어 가관이다. 문화예술진흥과 시민문화증진에 진력해야 할 문화재단이 한순간에 방향타를 잃어버렸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전국에서 파행을 겪는 기초문화재단이 꽤 생겨났는데, 이 중 연수구의 정도는 심각 수준이라는 평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새로운 지역 수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시민 요구에 맞춰 준비됐던 사업들이 무시되고 문화재단 운영도 파행을 겪기 일쑤”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몇 재단 활동의 면면을 비교해봤다. 연수문화재단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은 올해 1~8월 사이 총 15건에 불과했다. 문화정책포럼과 송도해변축제 개최, 꿈의 댄스팀 모집 등 월 2, 3건으로 빈약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춘천문화재단은 8월에만 예술교육, 전시, 공연 등 50여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밀양, 완주문화재단에도 부러운 프로그램이 수두룩했다. 인구 4만~5만명의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지역 특색을 살리려는 참신한 문화프로그램이 많다. 2014년 지방선거 직후 인천아트플랫폼이 어렵사리 확보한 백령도 평화미술프로젝트의 국고 지원금 10억원을 반납해 원성을 산 바 있다. 연수구가 문화예술교육의 촉매제 역할을 할 꿈꾸는 예술터를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지속가능하고 장기적 관점이 아닌 대중적 기호나 경제적 타당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문화 행정을 펼치는 한심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삶과 종교] 성경에도 가짜 뉴스는 있었다

오늘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급속도로 퍼지며 이를 통해 조작된 거짓 정보, 일명 가짜 뉴스를 유포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과거 광우병 논란, 악성 루머, 허위 사실 유포 등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개인의 명예 훼손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많은 언론사와 정보기관에는 뉴스 검증을 위한 팩트체크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쓰나미와 같은 정보 홍수 시대에 정보를 찾는 능력보다 정보의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성경의 첫 이야기인 창세기에서는 첫 번째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 ‘교활한 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창세 2,17)고 하셨다. 그런데 뱀은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여자 하와를 혼란스럽게 한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 1)라며 ‘하나의’ 나무가 아닌 ‘어떤’ 나무라고 살며시 그 말씀을 왜곡한다. 하와는 뱀의 말을 정정한다.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창세 3, 2) 뱀은 포기하지 않고 여자를 안심시키는 거짓말을 한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창세 3, 4)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 5) 마침내 여자는 뱀의 매혹적인 꾐에 넘어가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한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창세 3, 6) 여자는 결국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이로써 하느님과 이웃, 사회와 피조물을 거스르는 수많은 형태의 악행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역사가 시작된다. 이러한 성경 이야기는 해롭지 않은 허위 정보는 없고, 오히려 거짓에 대한 신뢰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진리의 왜곡은 아무리 경미해 보일지라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그 옛날에 기록된 성경에서도 경고한다. 하물며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이런 가짜 뉴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고 때 등장한 노래 가사를 기억할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바로 끊임없이 빛과 참, 그리고 진실을 찾는 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거짓 바이러스에 대한 근본적인 해독제는 진리로써 정화되는 것”이라 표현한다. 진리는 사물을 판단해 참이나 거짓을 규명하는 것, 숨겨진 것에 빛을 비추는 것뿐만 아니라 진실로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리 속에 거짓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책임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책임감 있는 우리, 언론 매체, 그리고 정부가 됐으면 한다.

[천자춘추] 가성비 높은 사랑

뙤약볕 아래 파도의 몸짓이 힘겨워 보인다. 넓은 길 중앙리와 구북리 마을이 텅 비어 있다. 턱까지 차오른 더위를 피해 주민들이 집 안에 숨은 모양이다. 나이 먹은 나무들도 숨을 헐떡이며 쩔쩔맨다. 소록도의 8월이 몹시 뜨겁다. 107년 만고풍상의 흔적들이 모퉁이마다 서려 있다. 1916년 5월17일 조선총독부가 이곳을 ‘갱생원’ 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에 있는 한센인들을 밀어 넣으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명분은 치료와 전염을 막는 것이지만 무작정 그들을 섬에 가둬 반인권적인 학대와 노역을 일삼았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서러움에 혹독한 시련까지, 한센인들에게는 삶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이 고난의 시간은 8·15광복, 6·25전쟁, 산업화가 이어지는 동안 멈추지 않았다. 아픔과 눈물의 여정이었다. 맺힌 한이 애틋한 바람이 돼 스친다. 소록도에는 길이 참 많다. 해변에도, 동네 사이에도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뉘어 있다. 함께 어우러진 나무와 바위들이 격조 높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 모두가 일제강점기에 한센인들의 불편한 손과 발에 의해 갈고 닦아졌다. 채찍 맞고 험한 소리 들어가며 고통을 섞어 조성했기에 가슴에 절절함이 더하다. 그럼에도 이 섬에서는 원망이나 분노의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슬픈 기색도 없다. 평화로움과 너그러움이 푸른 숲 가득하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환하다. 버림받았음에도, 마음 아파 엉엉 울었어도 한센인들은 노여워하지 않고 슬픔을 참으며 견뎌 왔다. 성내거나 무례히 행치 않았다. 영혼에 사랑을 듬뿍 담아 자신들을 외면한 가족들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잠잠히 기도했다. 품을 넓혀 병든 이들과 낙심한 사람들을 보듬었다. 도시에서 보는 분노의 폭발과 격한 다툼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 용서가 배합된 고급스러운 소록도 사랑이었기에 칙칙한 원망을 충분히 이겨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조급하고 냉정해 사랑에 서툰 우리들이 마음 열어 한 수 배워야 할 명품 중의 명품이라 여겨진다. 가성비 높은 그 사랑을 말이다.

[지지대] 보이스카우트

감색 제복에 노란 손수건을 목에 두른 보이스카우트는 유년 시절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보이스카우트는 소위 ‘조금 산다는 집’ 아이들이 가입할 수 있었다. 가입 회비도 있고 단복비와 기본 야영 장비를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살 어린 동생이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했을 때 너무나 부러워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동생이 ‘뒤뜰 야영’에서 단복을 입고 캠프파이어를 즐기는 장면을 먼 발치에서 쳐다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보이스카우트는 1907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1922년 중앙고보와 배재학교 학생 8명으로 창설한 조선소년군과 정성채가 발족한 조선소년척후대가 전신이다. 세계사무소는 국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4년마다 세계잼버리대회, 2년마다 세계회의를 개최한다. 우리나라는 1991년 8월에 131개국 2만5천여명이 참가한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를 강원 고성군 신평벌에서 개최했다. 3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한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태풍을 피해 지난 8일 새만금을 떠나 경기도와 인천 등 전국으로 흩어졌다. 폭염과 태풍으로 인해 잼버리대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를 찾은 스카우트 대원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경기대와 명지대 등 도내 곳곳에 흩어진 스카우트 대원들은 폭염 속에서도 나름대로 잼버리를 즐기고 있었다. 대원들은 세계 청소년들과 서로의 문화를 교류한다는 큰 기대를 안고 한국을 찾았을 것이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한심한 정치권의 ‘네 탓 공방’으로 일그러지지 않아야 한다. 도내 지자체들은 대한민국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온정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