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교통·편의시설... 살기 불편해서 떠나요 [무너진 1기 신도시 中]

#1.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박준희씨(49·가명·여)는 내년 중으로 군포시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10년 전 아이를 키우기 좋다고 판단해 산본으로 이사했지만 아이가 클수록 걱정도 함께 자라나고 있어서다. 산본은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고 조용한 편이라 어린아이를 키우기엔 적당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중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 다른 지역과 교육 격차를 느끼기 시작했고 아이 친구들의 부모들도 교육 문제로 하나둘씩 산본을 떠났다. 박씨 역시 고등학교 진학과 학원 등 교육 문제를 고민하다 서둘러 이사 계획을 세운 상황이다.  #2. 고향이 부천 중동인 유세진씨(29·가명)는 1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다. 직장과 가까운 것도 있지만 부천에 오랜 기간 살면서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과 인천 등으로 나가는 수많은 차량 탓에 밤낮 없이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했으며 편의시설 역시 바로 옆인 서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유씨는 “중동이 노후화된 것은 물론이고 각종 편의시설 공간이 없어 그동안 불편함을 감수하고 서울로 원정을 떠나던 일이 잦았다”며 “앞으로 결혼과 노후 등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고려했을 때 부천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군포시 산본·성남시 분당·안양시 평촌·부천시 중동·고양시 일산 등 경기도내 1기 신도시가 인구 유출로 흔들리고 있다. 열악한 인프라, 고질적인 교통 문제, 부족한 교육 시설 등으로 1기 신도시를 등지고 떠나는 시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르면 수년 안에 ‘슬럼화 현상’이 생길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이상 사람들은 단순히 ‘배드타운’ 역할만 하는 도시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 다양한, 거주할 만한 매력 지녀야 사람들이 머물게 되는 것”이라며 “인구 유출 상황이 지속되면 도시 활력이 저하돼 슬럼화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구체화된 인프라 구축과 인구 유입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등 시설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꿈의 신도시’ 옛말… 인구 유출·고령화 가속도 [무너진 1기 신도시 中]

‘꿈의 신도시’라 불리며 경기도민의 생활 터전이 돼 온 1기 신도시에서 인구유출 및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기반시설 노후화가 각종 사고의 온상으로 떠오르면서 슬럼화 현상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9일 경기도와 각 시·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에선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1기 신도시 일대에 살고 있는 153만1천349명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2만5천606명으로, 고령화율은 14.7%다. 이는 2022년 같은기간 고령화율(13.6%)과 비교하면 0.8%, 2021년(12.8%)과 비교하면 1.1%까지 노년층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노년층의 비중 증가와 함께 1기 신도시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인구 감소 현상도 두드러졌다. 중동 신도시의 경우 2021년 5월 17만1천871명에 달했던 인구가 현재는 16만8천814명으로 줄었다. 산본 신도시 역시 같은 기간 17만9천500명이었던 인구가 최근 들어 17만2천178명으로 1만명 가까이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은 1기 신도시 전반에 걸친 극심한 노후화 진행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당장 3년 뒤면 순차적으로 들어섰던 1기 신도시의 주택 28만1천가구가 30년 이상된 노후주택이 된다. 게다가 각종 시설들 역시 오래 전 조성해뒀던 터라 이미 노후화한지 오래다. 여기에 최근에는 다른 시설들에 비해 뒤늦게 설치한 편에 속하는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등에서까지 역주행 사고가 나는 등 참사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특히 지자체는 이들 시설에 대해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하고 있는데, ‘이상이 없다’는 점검 결과에도 참사는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처럼 고령화 및 인구 유출 현상이 지속될 경우 삶의 질이 저하되고 쇠퇴하는 등 도시 슬럼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결국 도시 전체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를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청사진 등을 통해 슬럼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기 신도시는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노후화 됐으며 주민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시대 상황을 고려한 도시 계획 지표를 점검하고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족 기능을 갖춰야 한다. 인프라와 안전성 구축은 물론 내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 및 고용 등 신도시만의 특성을 살려 타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용 마약 사용 매년 ‘쑥쑥’... 수거·폐기사업 실적은 ‘뚝뚝’

의료용 마약류 사용량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 중인 ‘가정 내 의료용 마약류 수거·폐기 사업’에 참여하는 약국 10곳 중 6곳 이상이 수거 실적이 ‘0건’으로 집계되는 등 저조한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29일 식약처의 ‘2022년 가정 내 의료용 마약류 수거·폐기 사업 결과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했던 도내 99곳의 약국 중 64곳의 수거 실적이 0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식약처는 가정에서 복용하고 남은 의료용 마약류가 불법 오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정 내 수거·폐기 사업을 지난해 7월부터 시행했다. 경기지역 99곳 약국이 해당 사업에 참여했다.  사업 결과.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모두 9천24개, 555kg의 가정 내 의료용 마약류를 수거·폐기됐다. 주로 사용기한이 지난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등이다.  하지만 해당 수치는 사업 참여 약국 99곳 중 35곳의 수거·폐기량에 불과하다. 나머지 64곳은 사업 기간 수거 실적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마약류 수거·폐기 사업에 대한 국민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식약처가 지난해 11월 사업에 참여한 99곳의 약국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 결과, 약사의 71.8%가 마약류 반납을 위해 약국을 방문하는 월평균 인원이 0.5명 이하라고 답했다. 월평균 인원이 가장 많았던 경우도 2명을 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약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약국 관계자는 “약국을 혼자 바쁘게 운영하다보니, 수거한 마약류 품목을 시스템에 입력하지 못해 실적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한 달에 10만원 정도 받았던 참여 수당에 비해 수거된 의료용 마약류를 소각하고, 반납 사유 등을 입력하는 일련의 과정이 오래 걸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를 약국에서 수거·폐기한다는 사실을 알릴 구체적인 홍보방안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근 경기도마약퇴치운동본부장은 “가정 내에 방치된 마약류가 재사용되거나 오남용될 때 2차 피해가 우려될 수 있어, 사업에 대한 다각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며 “의료용 마약류 수거 사업에 참여하는 약국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등 사업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5월부터 부천 시내 100곳의 약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마약류 수거·폐기 사업은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며 “향후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때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수당 등을)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만평] 쌩~

[사설] ‘미문화원 점거’ 주동자의 괴담 지적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1985년의 일이다. 38년도 넘어가는 과거의 일이다. 학생운동사의 족적이 세월보다 크다. 서울 복판의 미국문화원을 통째로 점령했다. 주한 미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광주 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 문화원 외벽에 그들의 요구를 내걸었다. 학생 운동을 세계적 이슈로 확산시켰다. 농성을 72시간 만에 풀었다. 스스로 연행됐다. 주동자 20명이 다 실형을 살았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과 강대국 미국을 동시에 타격했다. 일찍이 없었던 정권 투쟁이었다. 윤성민 당시 국방부 장관이 ‘광주 사태 전모’를 발표했다. 국방위 답변 형식이었다. 그나마 첫 언급이었다. 워커 주한 미국 대사도 입장을 냈다. ‘광주 사태는 한국 내의 문제로 미국이 책임질 것이 없다.’ 역시 첫 입장이었다. 정부의 학생 운동 대처는 강경으로 돌변했다. ‘경찰력 투입 자제’ 기조를 버렸다. 대대적 검거 작전에 나섰다. 그 사건의 주동자 중 하나가 함운경씨다. 사건 당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다. 국민의힘이 그를 초청했다. 강연의 방향성은 예상됐었다. 그런데 발언과 정도가 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공격을 ‘반일감정 자극’이라고 단정했다. 한미일 삼각 안보 체계를 흔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의 죽창가도 다시 말했다. ‘쟤가 미쳤나’ 생각했다고 했다. 보수 진영에서 더없는 소재로 받았다. 반미까지 외쳤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달라진 견해다. 보수 진영에 큰 보탬일 것이다. 당황스러움은 야권 몫이다. 그렇다고 변절로 뭉개기도 어렵다. 시대 속 사건의 비중이 워낙 컸다. 현재 제도권 내 어떤 의원보다 가열찬 투쟁의 역사다. 결국 함운경 활용법은 하나다. 진영을 떠나 한 사람의 견해로 받으면 될 듯하다. 그가 나머지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 그 사람들’의 길은 모두 다르다. 그중 이치선 변호사도 있다.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원 출신이다. 경기지역의 관심이 그래서 많았다.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학생이었다. 그 후 소련 붕괴와 함께 그의 길도 달라졌다. 노동자 변론과 환경 운동에 투신했다. 지금은 녹색당 정책위원장이다. 당연히 함씨의 이번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론에 기초한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할 것이다. 시간만큼 다양해진 미문화원 점거 농성자들의 현실이다. 다름을 존중하며 가는 그들이다. 86 투사 함운경의 후쿠시마 괴담 비난이 소환한 잊혀졌던 역사 한 페이지다.

[사설] 고엽제 50년간 고통, 정부 민간피해자 지원 적극 나서야

‘고엽제 피해는 국가 범죄이자 국가 폭력이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방치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28일 파주 통일촌 주민대피소에서 열린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핵심 요지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박정 국회의원과 파주시가 공동 주최하고, 경기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했다. 이 자리엔 파주와 철원의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가 참석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후유증인지도 모르고 수십년간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온 이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해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은 ‘식물통제계획’이라는 작전을 세워 1967년 시범 살포를 시작으로 1968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엽제 원액 315드럼 분량을 철책선 전방 100m와 전술도로 주변 30m 주변에 집중 살포했다. DMZ 일대 파주 대성동마을과 철원의 마을 주민들은 고엽제의 실체도 모르고 마구 뿌려댔고, 이후 원인 모를 갖가지 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정부는 고엽제 피해보상 범위를 군인과 군무원으로만 한정, 민간인은 제외했다.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뿌려놓고 무책임하게 전수조사 한 번 안 했다. 경기일보가 대성동마을 주민의 고엽제 피해 실태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파주시가 여기에 응답했다. 전국 최초로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지난 6월 지자체 최초로 ‘파주시 고엽제후유증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만들어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해도 시행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해 주민들의 나이와 질환을 감안할 때 지원 근거가 시급하다고 판단해 조례를 서두른 것이다. 고엽제전우회 파주시지회도 파주시 정책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에 박정 의원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 고엽제 피해 민간인 지원의 밑바탕을 마련했다. 경기일보와 파주시, 박정 의원이 민간인 고엽제 피해에 대한 실상을 밝히고, 피해지원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제 정부가 적극 나설 차례다. 고엽제 대량 살포 시기에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 거주했거나 거주 중인 민간인들의 고엽제 피해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 국가보훈부와 정부가 고엽제 살포와 피해사실을 인정하고 1993년 지원을 위한 관련법을 제정했다. 지원 대상자에서 민간인 피해자를 제외시키고 방치한 것은 도저히 이해와 납득이 어려운 처사다. 정부는 고령의 피해자를 감안해 한시라도 빨리 피해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