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다큐] 전통시장 속 빛나는 여성 상인들, ‘장다르크’에게 바칩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인 전통시장. 그 속에서 빛나는 여성 상인들. 세상의 모든 ‘장다르크’ 들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경기일보 기획취재반은 지난 두 달간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인 전통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상인을 재조명하기 위해 ‘場(장)다르크 이야기’를 연속 보도했다. ● 관련기사 : 빛바랜 시장 속 빛나는 가게… 장볼때 ‘女기어때!’ [장다르크 이야기①] https://kyeonggi.com/article/20240819580250 대를 이어 시장을 지킨다… 장사 열정 ‘모전여전’ [장다르크 이야기②] https://kyeonggi.com/article/20240826580338 시장, 내가 지킨다…전통시장을 지키는 여성 상인 [장다르크 이야기③]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02580199 여기에도 시장이…미군부대·DMZ 시장 여성상인들 [장다르크 이야기④]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09580248 시장은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인걸요…전통시장의 새 바람 MZ 사장 [장다르크 이야기⑤]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11580275 시장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역…전통시장을 꾸려가는 사람들 [장다르크 이야기⑥]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19580303 전통시장 변해야 산다… ‘혁신의 칼’ 빼든 여전사들 [장다르크 이야기完]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25580252 또한 전통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장다르크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고충과 일상 속에서 품어온 희망을 생생하게 그려내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場(장)다르크’를 제작했다. 영화는 ‘장다르크’들의 목소리를 통해 빠르게 변화화는 유통 시장 속에서 이들이 맞닥뜨린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며 전통시장을 지켜온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다큐영화 ‘場(장)다르크’의 러닝타임은 25분52초로, 경기일보 공식 유튜브(https://www.youtube.com/@kyeonggiilbo)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전통시장 변해야 산다… ‘혁신의 칼’ 빼든 여전사들 [장다르크 이야기完]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경기지역 전통시장. 그 안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후회 없는 나날을 보내는 수많은 철의 여인, 장(場)다르크들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경기도 전통시장 여성 상인들. 이들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상인회장 중에는 섬세함과 세심함을 강점으로 하는 ‘여성’이 있다. 상인회장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견디고, 변화를 끌어내는 경기도 전통시장의 여성 상인회장을 수원에서 만나봤다. 경기도 31개 시군에는 ‘전통시장’으로 구분되는 280개의 상점가가 있다. 그중에서 군포 역전시장과 남양주 덕소상점가, 여주 터미널상점가는 여성 상인회장이 상인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군포 역전시장을 이끄는 정성순 군포 역전시장상인회장(75), 2019년부터 상인회장을 맡아 시장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김태은 남양주 덕소상점가상인회장(51)과 방미정 여주 터미널상점가상인회장(51). 이들은 자신이 몸담은 전통시장에서 ‘상인회’를 만든 여전사다. 정성순 군표 역전시장상인회장은 “변해야겠다,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시장에 애정이 있는 사람만 가능한 것 같다. 그저 평범한 하루이기보단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고민하다 보면 여러 방법이 떠오르게 되고, 전통시장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상인회 조성이었다”고 말했다. 정성순 회장의 말에 방미정 여주 터미널상점가상인회장과 김태은 남양주 덕소상점가상인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방미정 회장은 “저도 비슷한 이유로 상인회를 꾸리고자 했는데, 당시 40대에 여자였던 제가 상인회를 조성하겠다고 하자 ‘여자가 뭘 하냐, 젊은 게 뭘 아냐’는 식의 반대가 있기도 했다”면서 “아주 힘들었던 시기지만 시장의 발전만을 생각하고 상인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더니 시간이 흘러 그 노력을 알아주는 분들이 많아졌고 지금은 상인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장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은 남양주 덕소상점가상인회장 역시 “처음엔 주변 상인분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됐다. 이분들이 장사에선 신(神)의 경지에 오르신 분들이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선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소방과 같은 기본적인 교육부터 함께 하고자 하면서 상인회의 필요성을 느껴 오랜 노력 끝에 상인회를 결속하게 됐다”고 했다. 세 장(場)다르크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상인회는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정성순 회장이 이끄는 군포 역전시장은 ‘고객선’을 만들어 고객과 상인 모두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장을 볼 수 있게 됐으며, 방미정 회장은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당시 경영 악화에 몸살을 앓던 상인들을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뛴 결과 지원금을 유치해 상인들이 조금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왔다. 김태은 회장도 여러 행사를 기획, 시행하며 남양주 덕소상점가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도록 했다. 방미정 여주 터미널상점가상인회장은 “상인분들은 각자 운영하는 점포의 대표다. 그 대표들을 대표하는 상인회장은 이름만으로도 무거운 직책이다. 그래도 그 무게를 이겨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나 혼자 말했을 때 바뀌지 않는 걸 도와주는 게 조직의 힘이더라”고 웃어 보였다. 김태은 남양주 덕소상점가회장은 “맞다. 혼자 수백번 가서 의견을 내는 것보다 여러 상인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인회의 이름으로 의견을 전달했을 때, 그 힘은 차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값진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미의 정성순 회장, 수줍지만 그 안에 강단이 숨어있는 방미정 회장, 힘 있고 당찬 모습의 김태은 회장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시장을 대표하고 있다. 동시에 전통시장에 발을 들인 여성 상인들에게 이들은 힘이 돼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성순 회장은 “시장 점포 중에는 대게 여성 상인이 주도적으로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우리 시장은 여자들이 소도 잡겠다’는 말도 있겠느냐”면서 “장사를 하면서 느낄 고충이나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공감 능력이 타고난 우리다. 이들을 공감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함이 우리 여성회장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은 치열한 유통 전쟁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시장의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방미정 회장은 “이런 강점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항상 전통시장의 밝은 미래를 꿈꾼다. 작은 변화부터 이끌어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시대 흐름을 적극 반영하는 상인회가 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태은 회장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에선 ‘세대의 이음’이 일어나고 있다. 상인들의 자제분들이 가업을 잇고자 전통시장에 들어오고 있으니, 운영을 위해 필요한 정보 등을 빠짐없이 제공하면서 이분들이 시장에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회장은 “경기가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찬란한 햇빛이 드는 날이 올 것”이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우리 철의 여인 장다르크들이 힘을 내시길 바란다”고 맺었다. 기획취재반

시장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역…전통시장을 꾸려가는 사람들 [장다르크 이야기⑥]

아침 이슬과 함께 문을 열고, 저녁노을이 질 무렵 하루를 정리하는 경기도내 전통시장 상인들. 이들 뒤에는 든든한 또 다른 여성이 있다. 고단한 아침 피로를 날려줄 맛 좋은 커피를 들고 뛰는 ‘커피 이모님’부터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 얼굴만 봐도 반가운 ‘60년 단골’까지. 전통시장을 지키는 여성 상인들과 하루를 함께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열한 번째 場다르크. 의정부의 ‘에너지’ 이영순 대표(69) 이야기 ‘따르릉’…이른 아침 의정부제일시장에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에 이끌려 도착한 ‘지영커피’. 이영순 지영커피 대표(69)는 그 어느 시장 상인보다 분주한 아침을 보낸다. 하나둘 문을 여는 가게 사이로 물 맺힌 보냉가방을 들고 뛰어다니는 이영순 대표는 내년이면 칠십을 바라보는 지긋한 여성 상인이다. 이른 아침 분주히 장사를 위해 문을 열고 있는 상인들 손에는 상상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냉커피가 한 잔씩 들려있다. 대형 프렌차이즈 로고가 없는 이 물 맺힌 종이컵은 의정부제일시장 ‘지영커피’의 상징이다. 바쁜 아침을 보내고 한숨 돌리던 이 대표를 만나러 들어간 조그마한 가게.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한 이 대표는 “우리 가게가 의정부제일시장에서는 커피숍이지. 너무 덥고 추우면 들러서 커피 한잔에 더위도 식히고 몸도 녹이고. 잠깐 수다 떨면서 시간도 보내고 그래”라고 답하며 바삐 커피를 준비했다. 1996년부터 커피 이모님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 대표는 시장에서 보낸 28년의 세월이 순식간이라고 한다. 그는 “1996년에 시작했어. 올해가 2024년이니까 벌써 28년, 곧 30년을 바라보네. 처음엔 이런 가게는 어림도 없었지. 백화점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팔던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 가게를 내. 그래도 ‘내 일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용기 내 시장에 나왔어. 처음엔 시장 구석에 있는 계단에서 커피를 만들어 배달하다가 지금은 작지만, 아늑한 이 가게를 얻어서 장사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쉴 틈 없이 울리는 전화에 아침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다는 이 대표는 “바빠서 전화를 놓치는 일도 있지. 그래도 참 이곳 시장 상인들한테 고마워. 시장 앞 큰길 하나만 건너면 큰 커피가게가 수두룩한데, 그래도 같은 시장 상인이라고 우리 가게를 이용해 주잖아”라며 “내가 이분들 아침잠을 깰 수 있게 하고, 점심 식곤증을 물리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라는 자부심도 있지”라면서 웃어 보였다. 서글서글한 성격, 호탕한 목소리와 웃음을 지닌 이 대표는 ‘긍정 에너지’로 가득했다. 그는 “지금은 손님도, 상인도 많이 줄었어. 와 보면 알겠지만 나이 든 사람이 많아. 그래도 나처럼 몇십 년 동안 한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신 분들이야. 다들 자부심도 있으시고. 그런 분들이 함께 힘 모아 꾸려가는 전통시장에 젊은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라면서 “커피 이모도 있으니까, 데이트 코스로 와주면 달달한 커피 맛있게 타 줄게요”라고 전했다. ■ 열두 번째 場다르크. 파주의 ‘역사책’ 최조순 여사(87) 이야기 “여기를 잡아서 이렇게 까면 쉽지!” 파주문산자유시장을 거닐다 정겨운 웃음소리가 퍼지는 평상 앞에서 취재진은 걸음을 멈췄다. 고구마 순 껍질을 쉽게 벗기는 방법에 관해 각자의 노하우를 내며 연신 웃음꽃을 피워내던 상인들. 그 속에서 시장의 홍보대사를 자처한 최조순 여사(87)는 한 바구니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고구마 순을 다듬으며 실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는 “우리 시장은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 역사를 책으로만 배운 젊은이들, 아이들 교육하려고 내려오는 부모들, 관광하는 외국인들까지 좋아하는 곳이야”라며 시장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로 여든일곱이 된 최 여사는 6·25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다. 최 여사는 “열세 살에 인민군 따라 잠깐 넘어왔는데 지금까지 살 줄은 몰랐지. 원래 우리 집이 38선 20리에 있는데 난 바라보기만 해. 날 밝으면 옷 걸쳐 입고 시장에 가는 게 하루의 전부야”라 활짝 웃었다. 최 여사는 구매할 물건이 없어도 매일 시장을 찾는다. 저녁 반찬이 될 고기와 나물을 사고, 시장 상인들의 안부를 묻다 반찬가게와 정육점 사이 조그만 평상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은 최 여사와 상인들의 수십년 된 학교이자 놀이터다. 최 여사는 “이 장터에 단골이 된 지 60년이야. 내가 열세 살에 여길 와서 여든일곱까지 나이를 먹는 동안 이 시장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겠어. 지금 앉아 있는 이 평상도 처음엔 없었다고. 하나둘 가게가 늘더니 시장이라는 구색을 갖췄지”라면서 “정육점 갓난쟁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는 모습까지 다 지켜봤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지. 지금은 여기 사장님들이랑 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중이야”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쉽게 꺼내지 못하는 속사정을 최 여사와 나누며 물건 대신 마음을 판다. 서로의 눈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다는 그는 “나도 고민이 있으면 시장 여사장 동생들한테 마음 터놓고 얘기하기도 하고, 상인분들도 나를 편하게 대해주니 얼마나 좋아”라며 “여기만 앉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난다”고 말했다. 간밤의 안부를 묻고 물건 정리를 도우며 상인과 함께하는 최 여사. 그는 손님이 아닌 주인의 마음으로 오늘도 시장을 지키고 있다. 전통시장의 매력과 장점을 끝없이 전하던 그는 “내 고향 같은 시장이 잘 되기만 하면 바랄 것도 없지. 이웃 간 정을 느낄 수 있는 시장이 있어 고맙다”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획취재반

시장은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인걸요…전통시장의 새 바람 MZ 사장 [장다르크 이야기⑤]

1960년대와 1970년대 베이비붐 세대 이후 태어나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달군 이들은 X세대, 1980년부터 2000년대에 태어나 현재 20대와 30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MZ세대(밀레니얼세대(M세대)+Z세대)로 불린다. 이런 당대를 이끄는 ‘세대교체’의 바람이 전통시장에도 일고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전통시장을 지켜온 여성 상인의 뒤를 이어갈 준비가 한창인 MZ 여성 상인을 만나러 기획취재팀은 용인과 의정부로 향했다. ■ 아홉 번째 場다르크. 용인의 ‘젊은 피’ 한윤정 대표(29) 이야기 ‘용인중앙시장’을 알리는 조형물 넘어 새하얗고 깔끔한 네일샵 ‘꼬미고’에서 만난 한윤정 꼬미고 대표(29). 앳된 얼굴의 29살 꼬마 사장 한 대표는 “안녕하세요. 전통시장에서 네일샵을 운영하고 있는 20대 MZ 사장 한윤정입니다”라며 간단하게 자기를 소개했다. 한 대표는 “지난해 8월 이곳 용인중앙시장 초입에 네일샵을 오픈했어요. 워낙 어렸을 적부터 근처에 살아서 그런지 시장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없었죠. 네일샵 자체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이미지여서 그런지 초반에 손님 유치가 좀 어려울 거 같았는데, 주변 상인분들이 오시기도 하고 50대부터 60대 손님도 많아요. 아, 80대 고령 손님도 계십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상호도 원래는 스페인어로 ‘나와 함께’를 뜻하는 ‘꼰미고’로 지었다가 어르신들이 발음하기 어려우실 거 같아서 꼬미고로 바꿨는데, 입에 착 붙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은 거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직원으로는 오랜 시간 일했지만, 대표는 처음 맡게 됐다는 한 대표는 “태어나 처음으로 벽지부터 바닥재, 인테리어 전부 제 손으로 하게 된 가게라 애정을 많이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대표가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아요”라며 “제가 시장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다 보니까 상인분들이나 나이가 지긋하신 고객분들이 오시면 장사하는 팁, 가게를 운영하는 비결 같은 것도 많이 알려주시기도 하고, 저를 딸처럼 여겨주시는 부분이 전통시장 MZ의 장점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 “용인중앙시장이 큰 시장이라서 출퇴근길에 들려 간단히 장도 볼 수 있고, 생각보다 장점이 많답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한 대표는 MZ다운 트렌디한 감각으로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가게를 열고 나서 오신 많은 분들이 시장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네일샵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죠”라고 말했다. 끝으로 한 대표는 “시장에는 저 말고도 청년 상인분들이 운영하시는 카페, 디저트 가게, 소품 가게 같은 곳도 많아요. 전통시장에 젊은 사장들이 유입되면서 2030분들도 많이 찾아주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이끌어가는 전통시장의 색다른 모습도 앞으로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 열 번째 場다르크. 의정부의 ‘딸내미’ 차지호 모꼬지 대표(31) 이야기 의정부제일시장 가동 색색의 옷을 지나 도착한 ‘모꼬지’. 이곳은 1994년생 차지호 대표의 취향을 한껏 담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했다. 털이 복슬복슬해 손이 절로 가는 열쇠고리부터 예쁜 머리핀, 일상복에도 잘 어울리는 머플러와 비녀까지. 여심을 자극하는 귀여운 소품에 둘러싸인 차지호 대표는 취재진을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차 대표는 “지난해 8월부터 1년1개월째 귀여운 소품샵을 운영하고 있어요”라며 개점 준비로 바쁜 모습이었다. 의정부 토박이인 차 대표는 사실 엄청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의정부를 떠난 적이 없어요. 치위생사를 전공하면서도 의정부에 계속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치위생사가 성향이랑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 길로 미용을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 남편이 하는 바버샵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미용사가 아닌 소품샵 사장님이 된 데는 아이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차 대표는 “아이들이 워낙 어렸고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들만 집에 놔둘 수 없는 노릇이었죠.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예약을 취소하고 병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손님들한테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 자유로울 것 같은 자영업을 택하게 됐죠”라면서도 “근데 자영업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문을 닫는 일이 일쑤여서 개업 초반엔 적자일 때도 있었죠”라고 덧붙였다. 차 대표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된 건 주변 상인들의 도움이 컸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야 하는 날이 있을 때 손님이 오시면 앞 가게 옷집 사장님, 옆 가게 한복집 사장님들이 아이를 봐주셨어요. 제가 손님 한 분이라도 더 응대할 수 있도록 애 써주셨죠”라며 “남편이 가까이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급하게 등을 갈거나 물건을 고쳐야 할 때도 항상 제일 먼저 와주시는 상인분들이 계셔서 제가 1년 넘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전통시장 내에서 귀여운 소품샵을 운영하는 차 대표는 그만의 비결도 생겼다. 차 대표는 “여자라면 0살부터 100살까지 귀여운 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꼭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물건뿐 아니라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좋아할 상품도 많이 가져다 두고 있어요. 어느 80대 손님은 ‘귀여운 열쇠고리가 유행’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서 곰돌이 열쇠고리도 구매하셨어요”라고 했다. 차 대표는 시장에 애착이 깊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오가며 들렀던 시장에서 어느덧 제가 사장이 돼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는 게 때론 믿기지 않을 때도 있어요. 시장에 참 좋은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오래도록 일할 수 있게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엔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이곳, 전통시장에 스며드는 것처럼요”라며 웃음 지었다. 기획취재반

여기에도 시장이…미군부대·DMZ 시장 여성상인들 [장다르크 이야기④]

독특한 위치와 환경 속에서 전통을 이어온 이색적인 시장은 단순한 장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이곳에서 시장만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빛내고 있는 여성 상인들이 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시장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획취재반은 평택과 파주로 향했다. ■ 일곱 번째 場(장)다르크. 평택의 ‘우즈벡 전통빵 장인’ 구르보노바 딜바르 대표(45) 이야기 평택국제중앙시장 입구에는 ‘어서오세요’ 대신 영어로 적힌 ‘HELLO’라는 인사가 기획취재반을 맞이했다. 시장 내 건물 벽에는 락카로 그린 벽화가 가득해 외국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난 2005년 문을 연 평택국제중앙시장은 오산 미군부대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점포들이 총 183곳 입점해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할로윈’ 축제도 열리며,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교류의 장소로, 활기가 넘치는 전통시장이다. 이곳에서 만난 구르보노바 딜바르씨(45)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가게인 ‘딜바르빵’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대한민국 전통시장에서 우즈벡 전통 빵을 드셔보세요”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딜바르씨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은 마치 영화와도 같다. 8년 전 이곳 시장에서 여동생이 운영하던 우즈벡 음식점을 대신 맡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때만 해도 세 아이를 데리고 낯선 땅에 오며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특히 음식점이 한국의 전통시장 안에 있어 언어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컸다. 그러나 평택국제중앙시장에 발을 딛자, 모든 걱정은 사라졌다. 가게의 간판은 대부분 영어로 돼 있어 언어 장벽도 쉽게 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군부대 근처라 그런지 다양한 외국 음식점과 전통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타투샵, 바버샵 등 가게들이 많아요. 손님들도 대부분 외국인이라 한국 같지 않더라고요”라며 “이곳은 한국이지만, 다국적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곳 전통시장이란 사랑과 인연을 맺어준 소중한 장소다. 여동생 가게를 방문한 한국인 손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이 싹텄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당신의 자식이 내 자식”이라고 말해준 이 남성과 함께 그는 한국의 전통시장에서 어릴 적 잊고 있던 꿈을 다시 펼쳐보기로 했다. 딜바르씨는 “어릴 적 우즈벡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간직했던 요리의 꿈을 다시 펼치게 됐어요. 우즈벡 사람들이 바쁠 때 먹는 전통빵을 바쁜 한국인들에게도 팔아보자는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됐어요”라며 “첫째 딸은 지금 24살인데 여기 전통시장에서 미군과 결혼했어요. 저에겐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라면서 밝게 웃었다. 시장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며, 딜바르씨는 이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딜바르씨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시장 안에 있는 우즈벡 전통 빵집에서 한국어로 소통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게 참 신기해요”라고 끝을 맺었다. 한국이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딜바르씨는 자신의 꿈을 이뤄 가고 있다. ■ 여덟 번째 場(장)다르크. 파주의 ‘터줏대감’ 김공자 대표(76) 이야기 대형버스와 군용차량들이 오가고 있는 도로를 건너 들어선 파주 문산자유시장. 입구에서부터 일반 전통시장에선 볼 수 없는 단어들과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바로 가게 곳곳마다 붙어 있는‘DMZ(비무장 지대)땅굴관광’ 포스터다. 문산자유시장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전통시장, DMZ와 가장 가까운 전통시장으로 불린다. 현재 116곳의 점포가 들어서 있으며, 오랜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64년 자연스럽게 가건물로 시장이 형성돼 운영됐다가 2017년 문산자유시장으로 탈바꿈됐다. 최전방 군사분계지역과 근접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 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통일촌을 경유해 관광하는 ‘DMZ 지역연계 관광’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도 하나도 안 무서워. 여기 상인들은 모두 강해.” 이곳에서 만난 김공자 풍년상회 대표(76)가 서글서글한 얼굴로 뱉은 첫 마디였다. 시장 주변이 허허벌판인 밭일 때부터 40년 넘게 장사를 한 김 대표는 문산자유시장의 살아있는 역사다. 장사를 함께 시작한 청과와 수산 가게는 “무섭다”며 모두 시장을 떠날 때도 김 대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장사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여기서 조금만 가면 북한이야. 북한이 미사일 쏜다고 했을 때 다들 무서워서 도망갔어”라며 “근데 여기서 오랫동안 장사하다 보니까 이제는 북한 소식은 옆집 소식과 마찬가지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람 사는 곳이 모두 그렇듯 다른 시장과 다를 건 없지만 생산품 품질 하나는 다르다는 김 대표. 그가 판매하는 쌀과 잡곡은 모두 북한 인근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는 “개풍구역(개성의 한 구역)과 인접한 민통선 이북 마을, 장단면에서 나는 장단콩이 우리의 자랑이야. 장단면은 예전에 북한이었어”라며 “토지도 좋고 물도 맑은 남북한 접경지역에서 나온 콩은 우리 시장의 정체성이야”라고 표현했다. 과거 전쟁으로 인해 이곳에는 실향민들이 고향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처음 보는 손님이면 DMZ 땅굴 관광을 소개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나랑 친한 언니는 어릴 때 인민군을 따라 잠깐 넘어와서 80년 넘게 고향에 못 돌아가고 있어. 전망대에서 자신이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이 보인다고 하더라고”라며 “시장에 올 때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제는 오다가다 만나는 이북 사람이 정겹다는 그는 “발전이 느리고 구색도 안 갖춰진 시장이지만 이 안에서 만큼은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 것 같아. 서로 다독이고 함께 살아갈 힘을 줘”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이곳 상인들에게 통일은 염원이다. 통일이 되면 유동 인구가 늘어 상권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슴 한편에 품고 살고 있다. 특별한 사정을 품은 문산자유시장에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사람들. 고향이 어디든 서로를 의지하며 오늘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획취재반

시장, 내가 지킨다…전통시장을 지키는 여성 상인 [장다르크 이야기③]

전통시장의 역사는 ‘영웅’이라 불릴 숱한 여성 상인의 열정으로 이뤄졌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전통시장을 빛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헌신하는 여성 상인들. 기획취재반은 전통시장을 지키며 동시에 시장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천과 군포의 영웅을 만나봤다. ■ 다섯 번째 場(장)다르크. 이천의 ‘도자기 여제’ 김화순 현대공예사 대표(65) 이야기 고요한 자연 속 은은한 흙 내음이 풍기는 곳. 각양각색의 도자기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국내 유일의 도자 전통시장 사기막골도예촌에서 만난 김화순 현대공예사 대표(65)는 직접 빚은 컵에 따뜻한 차를 담아내며 인사를 건넸다. 김화순 대표는 유명 도예가였던 매제의 영향을 받아 1988년 사기막골도예촌에 공예사를 열었다. 그는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청자에 푹 빠지다 보니 수백개의 도자기에 둘러싸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라며 청색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던 기억을 되내였다. 반듯한 공예사를 꾸리기까지 김 대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 갓난쟁이 아기를 데리고 돌아다닌 날들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도자기에 대한 꿈 하나로 힘을 냈죠”라면서도 “시간이 흘러보니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 있더라고요. 미안하면서도 잘 자라줘 고마운 마음도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첫 목표는 작품으로만 여겨지던 도자기를 일상에서 쓰임새 있게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었다고 한다. 밥그릇과 같이 일상적인 그릇으로 탄생하기까지 김 대표는 본인의 감각에 고객의 목소리를 더했다. 김 대표는 “청자 그릇을 판매하며 주부들의 필요를 반영하니 고급 식당들의 문의도 늘었습니다.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들에게 배우는 게 중요했죠”라며 찻잔을 어루만졌다. 김 대표의 노력으로 도자기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더하며 인기를 끌었고, 도자기 시장을 찾는 젊은이도 늘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시장이 조성됐을 때는 나이 든 상인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젊은 상인들이 유입되면서 시장이 활기를 얻었죠”라며 “이러한 변화들은 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이 도예 시장에서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신 분들이 일궈낸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30여년 전 고단했던 날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김 대표의 바람은 고객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도예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내국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국인 분들이 많이 찾아주고, 단골도 생길 만큼 도자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죠. 이런 흐름이 결국 이 도예 시장을 살리는 것 같아요”라면서 “30여년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도자기에 대한 애정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만큼, 항상 고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 시장을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라며 끝을 맺었다. ■ 여섯 번째 場(장)다르크 군포의 ‘여성 리더’ 정성순 고려인삼 대표(75) 이야기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들어선 군포역전시장 아케이드. 시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강단 있는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향했다. 그곳엔 군포역전시장의 상인회장 정성순 고려인삼 대표(75)가 “물 뿌리는 게 효과가 꽤 괜찮은 거 같아요.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수 있겠네”라며 바닥에 시원한 물을 뿌려 시장 온도를 낮추고 있던 한 상인을 독려하고 있었다. 150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깔끔한 외관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곳, 군포역전시장은 정성순 고려인삼 대표 겸 상인회장의 땀이 곳곳에 녹아있다. 1984년 충남 논산에서 경기 군포로 올라온 정성순 회장은 인삼 사업을 시작하며 인생의 새 장을 열었다. 그는 “당시에는 수도권이지만 개발이 덜 돼 시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가장 시장다운 시장이어서인지 서신, 반월 등 다양한 곳에서 손님들이 몰렸고 항상 손님으로 북적였죠”라고 말했다. 이렇듯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군포역전시장도 사회 흐름에는 맥을 추리지 못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시장과 연결된 군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장을 봤지만, 군포역 인근에 또 다른 역들이 들어서면서 사람이 분산됐고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시장에 터를 잡고 사는 우리 상인들은 허탈해할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죠”라며 당시를 그렸다. 시장 상인들이 생계를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자, ‘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정성순 회장은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상인회’ 결속에 나섰다. 정 회장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전 다닌 직장에서 회계 업무를 했기 때문에 총무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상인회 총무 역할을 맡기로 하고 상인회 조성을 위해 군포시장 상인분들을 다 만나가면서 동의를 구했죠”라면서도 “그때는 ‘여자가 뭘 하냐, 커피나 타라’는 시대였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러 방문한 상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밀치기도 해서 다친 적도 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시장 부흥을 위한 상인회 조성을 멈추지 않았고, 노력 끝에 2005년 상인회를 결성했다. 이후 정 회장은 총무를 거쳐 2015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그는 “초기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상인들과 협력해 상인회를 만들었고, 시장 환경 개선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어요. 우선 깔끔하고 깨끗해야 시장에 많은 손님이 올 거라는 생각에 고객들이 안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고객선을 만들고 밝은 등을 설치하는 일도 착착 수행했습니다”라며 상인회에 대한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9년간 정성순 회장 손을 거쳐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군포역전시장을 거닐던 정 회장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시장, 상인들이 일하기 편한 시장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매일 달고 살아요. ‘시장을 사랑하자’는 자세로 시장의 미래를 위해 항상 앞장서고 있습니다.”라면서 웃음 지었다. 기획취재반

대를 이어 시장을 지킨다… 장사 열정 ‘모전여전’ [장다르크 이야기②]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나섰던 시장에서 어엿한 ‘사장’이 된 전통시장의 여성 상인들. 이들의 뒤에는 항상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해주는 ‘선배 상인’이자 가족이 있다.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전통시장에서 일을 하고 전통시장의 미래를 밝히는, 대를 잇는 시장 사랑을 보여주는 여성 상인을 만나기 위해 기획취재반은 성남과 수원으로 향했다. ■ 세 번째 場(장)다르크. 성남의 '미식가' 배화자 대표(61) 이야기 성남 중앙공설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참기름 향, 매콤한 고춧가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여러 가게를 지나 도착한 곳은 3대가 운영하는 강원반찬.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 가게 안쪽 주방에서 얘기를 나누던 배화자 강원반찬 대표(61)와 딸 황연주씨(30)가 취재진을 환하게 반겼다. 강원반찬의 1대 사장이었던 권영삼씨(88)가 일궈낸 강원반찬. 이곳에선 권씨 집안 3대가 함께하고 있다. 요리에 열을 올리던 배 대표는 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반갑습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강원반찬을 운영하는 대표 배화자입니다”라며 짧지만, 강렬한 자기소개를 했다. 배화자 대표는 “고향이 강원도였던 어머니가 30대 후반부터 시작한 가게라서, 성남에 있지만 이름은 강원반찬이예요. 학교 다니면서 한두 번씩 돕던 가게였는데 지금은 제가 대표로 잘 끌어 나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배 대표는 장사가 싫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장사, 가난이 너무 싫었어요.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시집을 갔고 가정주부로 지냈는데, 맞벌이해야 할 상황이 됐고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도와 시장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라고 30년 전의 기억을 풀어냈다. 그는 “처음엔 좌충우돌, 딱 그 말이 맞았어요. 장사는커녕 손님을 대할 줄도 몰랐으니. 그러다 상인 교육도 받고 어머니한테 장사 팁도 들으면서, 그렇게 하루 이틀 보내던 게 벌써 30년이 지났네요”라고 했다. 배 대표의 딸인 연주씨가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큰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던 배 대표를 대신해 반찬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고, 가게에 뜻이 없었던 연주씨가 아픈 배씨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함께하게 됐다. 현재 연주씨는 배 대표에게 강원반찬만의 특급 레시피를 배우면서 대를 이을 준비 중이다. 어머니의 단골이 배씨의 단골이 되고, 또 배씨의 단골이 딸 연주씨의 단골이 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배 대표는 부담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배 대표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곳이라 엄마의 손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참 많은데, 가끔은 ‘내가 우리 엄마의 손맛을 따라 하지 못해 손님이 만족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부담이 있었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항상 옆에서 더 많은 걸 알려주시고 더 맛있는 음식을 위해 절 도와주셔서. 지금은 엄마가 일궈놓은 이 가게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죠. 얼마나 많이 고생하셨겠어요. 그런 엄마를 롤모델로 삼고 일을 했고, 지금은 우리 딸의 롤모델이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러려나”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가게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는 “강원반찬이 45년 됐어요. 하루 3만원도 못 팔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가족들이 다 뛰어들어서 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겠어요. 내가 힘들 땐 내 옆에 있는 우리 엄마, 우리 딸을 보면서 지내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딸도 똑같지 않을까”라며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아서 가족이랑 함께하는 순간이 적지만, 우린 직장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보는걸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네 번째 場(장)다르크. 수원의 '고기왕' 한아름 대표(32) 이야기 무더운 날씨. 시장을 찾는 사람을 위해 시원한 물안개가 퍼지고 있던 수원 화서시장. 이곳에선 만난 한아름 한대감 대표(32)는 이제 막 시장에 발을 들인 ‘병아리’ 사장이다. 지금은 집게를 들고 손님들에게 맛있는 소고기를 제공하고 있는 한아름 대표는 원래 음악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한 대표는 “대학 전공은 물론이고 그 전부터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평생 음악만 알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제가 지금은 소고기 부위를 공부하고, 더 맛있게 굽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음악과 소고기. 32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과 함께 한 그가 요식업에 들어서게 된 건 20년 넘게 화서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한 대표는 “시장은 원래도 익숙했어요. 엄마가 시장에서 정육점을 오래 하시다 보니 명절 같은 대목에는 일손을 도우러 자주 오기도 했고. 그땐 제가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라며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서른이면 도전해 봐도, 무너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사장 2년 차인 한 대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 가게를 연 지 햇수로 2년밖에 안 돼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실수도 잦아요. 그럴 때마다 같은 화서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엄마한테 물어보면, 업계가 다른데도 엄마는 척척 해결해 주시니까. 엄마한테 의지를 참 많이 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전통시장 여성 상인으로 겪은 많은 고충 속에서, 생각이 많아진 적도 있다고 한다. 한아름 대표는 “어린, 여성 상인이면 아무래도 손님들이 행동을 거침없이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런 일이 있으면 저는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한데, 엄마는 그런 손님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면서 저를 많이 다독여 주시죠. 그러다 어느 날엔 ‘아, 엄마도 내 나이쯤 장사를 시작했으니 이런 일을 다 겪었겠구나. 그때 엄마는 속으로 삭히면서 지내셨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은 엄마랑 많이 얘기도 나누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돼 주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또 그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는 ‘무너져도 난 젊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가벼웠던 것 같아요. 한 달, 반년, 1년 계속 장사를 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그때 저 자신에게 호되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아름아, 장사는 만만한 게 아니야’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한 대표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지금의 가게를 운영할 마음이라고 한다. 그는 “2년 동안 배운 것들, 제 마음가짐 등을 다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꼭 장사를 시작할 거예요. 시행착오도 많고 허둥지둥 준비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많은데, 그때도 제 인생 선배이자, 이 화서시장의 선배이자, 여성 상인 선배인 엄마가 함께 해주실 테니까요”라고 했다. 기획취재반

빛바랜 시장 속 빛나는 가게… 장볼때 ‘女기어때!’ [장다르크 이야기①]

여성의 경제활동은 최근 10년간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증가하고 있다. 2013년 2천157만6천명이였던 여성 근로자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전체 근로자(4천540만7천명)의 절반이 넘는 2천304만5천명을 기록했다. 이렇듯 우리나라 노동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근로자들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하루를 살아간다. 생때같은 아이를 두고 나오는 속상함, 아이들이 커갈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굳세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 준다는 우리 ‘엄마’들. 나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일생을 살아온 이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어느새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으로써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 유통의 근간이 돼 주고 있는 전통시장. 그 속에서 빛나는 여성 상인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전통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전통시장 수는 1천388개로, 경기, 인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 383개(27.6%)가 자리했다. 이 기간 전국 전통시장 종사자는 31만6천315명으로 조사됐다. 2019년 전체 시장상인 중 63.4%, 약 20만명에 이른 전통시장 여성 점주는 2020년에도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처럼 유통산업의 뿌리 역할을 하는 전통시장. 그 속에서 새벽 이슬이 마르기도 전에 문을 열고, 늦은 밤 고생한 서로를 토닥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장의 엄마’들. 이들의 삶이 녹아 있는 전통시장을 찾아 여성 상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 첫 번째 場다르크. 양평의 ‘이불박사’ 홍성옥 대표(69) 이야기 전통시장을 지켜온 여성 상인을 만나기 위해 기획취재반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양평 물맑은시장.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홍성옥 자미온 대표(69)는 가게 문 밖까지 나와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홍성옥 대표는 켜켜이 쌓여있던 이불 더미를 재빨리 밀며 자리를 권했고, 어깨에 떨어진 빗물을 털어내기도 전부터 홍 대표의 수다가 시작됐다. 양평 물맑은시장에서 37년째 이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불 박사’ 홍성옥 대표는 용도별, 계절별 이불 추천은 물론 얼굴만 보면 취향도 알아차리는 명실상부 이불 전문가다. 이런 홍 대표는 사실 이불 박사이기 전 한 평생을 양평 물맑은시장에서 살아온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홍성옥 대표는 “내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내가 이 시장이랑 역사를 같이 했다고 봐도 되지. 나야 뭐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까. 1956년에 양평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아버지가 이 시장에서 쌀가게를 하셨어. 그래서 걸음마 떼고 나서는 아버지 보러 시장도 자주 오고. 그땐 내가 시장에 뜨면 그렇게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무 귀여워해 주고 그랬지”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홍 대표는 “내가 어렸을 때야 시장이 최고였으니까. 물건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이 물밀듯이 많았지. 오죽하면 점포가 없어서 가판을 두고 장사하는 분들도 있었고 서로 부딪히고 밀리면서도 장을 봤으니까. 명절이라도 되면, 말도 못 하게 사람이 많았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할 정도였다니까.” 그가 어렸을 적 양평 물맑은시장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큰 소리로 손님을 끌어모으던 상인들과 그 사이에서 유심히 물건을 고르는 손님, 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던 배달 오토바이까지 어우러져 때론 위험하기도 했지만 매일이 장날인 것처럼 북적이는 그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결혼 후 이불 가게를 개업했을 무렵 전통시장에는 ‘여성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또래 여성 점주가 운영하는 가게가 늘기 시작했고, 그때 홍 대표에게는 언제, 어떻게 친해진 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자매 같은 존재들이 생겨났다. 홍 대표는 “피를 나눈 자매는 아니지만, 함께 구슬땀을 나눈 사람들이 생겼고 힘들 때 곁에 있어 주고, 기쁠 때 손뼉 쳐 줄 수 있는 언니 동생이 수십명”이라며 호탕한 웃음을 뱉었다.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에 시장 상인은 물론 손님과도 끈끈한 관계가 됐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인근에 크고 작은 할인점들이 들어설 무렵 찾는 이가 줄긴 했지만, 홍 대표와 시간과 추억을 나눈 단골들은 여전히 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고 한다. 20년, 30년 시장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에게 고마운 마음이 큰 홍 대표는 평생을 함께한 물맑은시장이기에 ‘손님을 끌어모아 시장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쉬는 날도 줄여가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홍 대표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양평 물맑은시장을 떠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시장은 나한테 또 하나의 집 같은 곳이야. 어쩌면 시장에서 보낸 시간이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고. 지금이야 시장을 대신할 수 있는 곳이 많다지만, 그래도 시장은 다른 곳들이랑은 다르게 ‘사람 냄새’가 나잖아. 정겹고 편안하고.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전통시장이 오래도록 살아남아서 다음, 그다음 세대랑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맺었다. ■ 두 번째 場다르크. 안성의 ‘패션왕’ 최인영 대표(67) 이야기 다음 여성 상인으로는 안성에 위치한 안성맞춤시장에서 10년째 옷 가게를 운영하는 최인영 패션왕 대표를 만나봤다. 최인영 대표는 올해로 67세, 여성 상인 중 나이로는 선임이지만, 옷 가게 패션왕을 운영한 지는 아직 10년밖에 안 된 ‘맏내’(막내 같은 맏이를 일컫는 신조어)다. 시장에서 가게를 연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10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한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지만, 아직 사업경력으로는 시장에서 오래됐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업력 선배들이 많다”면서 “1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코로나19 같은 온갖 일을 겪었어도 시장 선배들에게 배울 것도 많다”고 한다. 10년 전 적지 않은 나이에 그가 시장에 들어선 건 ‘꿈’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원래는 직장인이었어. 그냥 일반 회사.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이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았는데, 아이 낳기 전에는 부업도 하고 했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내 일을 하지 않아 그런지 무능력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지. 그런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우울해지니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엄마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내 일을 해서 보탬이 돼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라고 말했다. 꿈 하나로 뛰어든 옷 장사였기에 시작이 쉽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고생하는 주변 여성 상인들과 단골들을 보면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았고, 최 대표에게 안성맞춤시장은 단순히 일터가 아닌 여러 의미를 지닌 공간이 됐다고. 최 대표는 “일만 하려고 출근하면 못 버텨.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간단한 요깃거리도 챙기고, 오늘은 반찬가게 사장님네 들려야지, 내일은 신발가게 사장님네 들러야지 이런 소풍 가는 마음으로 다니니까 벌써 가게를 연 지 10년이나 흘렀지”라고 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던 그는 “글쎄. 가게 문을 열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만 해도 참 여자에 대한 인식이 고리타분했지. 여자는 배움이 짧다. 어디 여자가 감히. 뭐 이런 말들 있잖아. 그런 말이 이상하지 않을 때였으니까. 근데 10년밖에 안 지났는데 요즘 그런 말 하면 못 쓰는 세상이 됐잖아”라며 웃음 지었다. 개인 사업을 하는 남편이 종종 거들 때도 있지만, 남편이 바쁠 때면 시장 사람 간 도움을 품앗이하면서 더욱 끈끈해지기도 한다. 그는 “남편이 사업하면서 바쁘니까 갑자기 옷이 배달오고 그러면 주변 상인들이랑 영차영차 하면서 옮기고 그러지. 시장 사람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해. 여자들이라 다들 처음에는 눈치 보면서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서로에게, 이 시장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으니. 내가 어렸을 적엔 여자가 일을 한다는 게 어려웠잖아. 애도 키워야 했고. 그런데 지금은 여자들이 가진 재주를 원 없이 부릴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말했다. 장사를 하면서 쏜살같이 지나간 10년 동안 최 대표는 크게 느낀 점이 있다고. 최인영 대표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여자는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던 거 같아. 그렇게 세상 안에서 온실 속 화초 취급을 받던 여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니 세상을 오히려 더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는 강해. 물론 나도 강한 여자고”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기획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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