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산천어축제 일등공신'… 마법의 산천어 정체는

겨울철만 되면 강원도 최전방 초미니 도시 '화천'은 이색 기록을 세운다. 거리마다, 말 그대로 사람들로 붐벼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산골이 된다. 화천산천어축제로 생기는 현상이다. 축제가 열리는 매년 초 인구 2만7천 명에 불과한 산골 도시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방문 인파가 몰리고 있다. 평소 인구의 50배가 넘는 방문객을 불러모으는 산천어축제의 마력은 무엇일까. 화천 주민들이 '해리포터'라면, 산천어는 '마법사의 돌'이다. 산천어의 생태적 정의는, 물이 맑고 연중 20도를 넘지 않는 1급수 맑은 계곡에 사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다. 좀 더 들어가면 연어과 민물 어류로 송어와 유사하다. 유선형의 우아한 몸매에다 특유의 무늬인 파마므(parrmark)로 치장해 자태도 이채롭다. 자태가 아름다운 탓에 '계곡의 여왕'이라고도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컷이 많다. 애초 바다와 민물을 왕래하는 종인데, 일부 개체가 민물에 적응해 일생을 살아가는 어류로 분류된다. 많은 수의 암컷이 바다로 갔다가 산란기가 되면 올라오는데 일부 수컷은 그대로 강에서 생활하는 방식에 적응한 것이다. 송어가 바다로 안 내려가고 산골짜기 등에 남아있으면 산천어가 되는 셈이다. 매년 겨울철이면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시골 하천 화천천에 산천어가 들어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를 빠지게 하는 '매직 쇼'를 벌인다. 꽁꽁 얼어붙은 2km 얼음벌판(폭 90∼125m) 밑으로 축제 기간 약 150t에 달하는 산천어가 방류된다. 1kg이 약 3마리 추산할 때 대략 70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향은 다양하다. 화천을 비롯해 양양군, 춘천시, 강릉시, 영월군, 경북 봉화, 울진 등 양식업체 16곳에서 온 것들이다. 화천천 얼음벌판은 낚싯대를 넣는 구멍으로 거대한 벌집 형세가 된다. 20cm는 족히 넘는 산천어를 낚아채 얼음벌판에 펄떡이는 짜릿한 손맛을 맛보기 위해서다. 산천어는 많게는 60cm까지 자라는 송어와 달리 몸길이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크기는 대략 20∼30㎝로 10월을 전후해 자갈이 깔린 곳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제장에 들어오는 산천어는 양식을 통해 공수되고 있다. 화천군은 축제를 앞두고 매년 최대규모의 산천어 수송작전을 펼친다. 예민하기로 소문난 산천어를 화천천 수온에 적응시키는 것은 오랜 노하우가 필요하다. 양식장의 평소 수온이 약 11도이지만 축제장 수온은 0도에 불과해 낮은 수온에 적응시키는 비법은 축제의 성공 요인이다. 산천어 맛도 송어와 유사하다. 송어와 마찬가지로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등이 풍부하다. 지난 2007년 강원대 연구팀은 산천어에 모두 16종의 아미노산이 함유된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산천어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고유의 식감과 맛을 느끼는 회가 제격이다. 산천어는 민물고기지만 냄새가 거의 없어 고급 바닷고기 못지않은 맛도 자랑한다. 축제장에서 직접 잡은 산천어는 낚시터 옆 구이통에서 뜨거운 장작불의 열기로 단시간에 구워진다. 15분 정도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한 산천어구이를 맛볼 수 있다. 또 산천어에 빵가루를 입혀 바삭하게 튀겨 낸 생선가스나 함박스테이크는 물론 비빔밥, 회덮밥도 축제장 식당에서 즐길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집에 가져가서 산천어찜과 산천어 간장 조림도 가능하다. 축제를 앞두고 화천군이 산천어의 말라카이트, 멜라민, 기생충 검사 등 안전성 조사를 전문 기관에 의뢰한 결과 검사 전 항목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화천의 겨울은 마법사의 손에 있던 돌이 화려한 색의 장미로, 공작새로 변신하는 시기다. 연합뉴스

[길따라 멋따라] 지리산 노고단 지붕 밑 설경 장관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일부) 지리산 노고단(해발 1천507m)은 마치 산이 섬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멋진 운해를 선사하는 곳이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지리 10경으로 꼽히는 노고단의 운해와 겨울 설경을 마주하기 위해 귀가 새빨개지는 추위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는 고행을 마다치 않는다. 지리산의 서쪽 끝인 노고단을 가기 위해서는 보통 자동차로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한다. 도보로 2시간이나 걸리고 해발 1천m가 넘는 구간이지만 차량을 이용해 가뿐하게 도착할 수 있다. 다만 겨울철에는 눈길 위험 때문에 승용차 운행이 어렵고 성삼재 휴게소까지 버스 운행도 중단되므로 RV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른 들판과 섬진강 줄기가 어우러진 흐르는 구례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성삼재 휴게소 전망대를 떠나 설레는 마음을 안고 노고단을 향한다. 노고단 정상 전에 해발 1천440m 높이의 노고단고개가 나타난다. 고개까지 오르는 계단 길도 있지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화엄사 계곡으로 물을 넘기는 고개라는 뜻의 무넹기(해발 1천277m) 전망대에서 섬진강과 구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한 시간쯤 걸으면 노고단 대피소가 나타난다. 거기서 다시 계단을 올라 불과 몇백m 떨어진 노고단 정상을 향하다 보면 '구름도 쉬어 간다'는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례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노고단의 모습을 구례의 땅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로 구례군 문척면 오산(鰲山)에 있는 사성암(四聖庵)이다. 자동차로 곧장 사성암 주차장까지 가는 방법도 있지만 죽연마을 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로 표시를 따라 한 시간가량 등산해도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은 죽연마을에서 내려 20분 간격(성수기 기준)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10여 분간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사성암이 나타난다. 절벽 중턱에 위태로이 선 사성암의 모습은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보니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눈 덮인 지리산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의 모습까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오산은 최고 높이가 530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바위가 많아 소금강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구례 지역 읍지에는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다"고 기록돼 있다. 오산 정상부에 지은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 연기 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2014년 국가지정문화재(명승)로 지정됐다. 원래 명칭은 '오산암'이었으며 이의상, 원효, 도선, 진각 등 명망 있는 승려 4명이 이곳에서 수행해 '사성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벼랑 끝에 우뚝 선 사성암의 모습 때문일까. 작은 암자인 사성암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참선을 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암자와 더불어 암벽에 음각된 고려 시대 불상인 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0호)도 유명하다. 높이 3.9m의 이 불상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구례는 예로부터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삼대삼미'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삼대는 지리산과 섬진강, 들판을 가리키고 삼미는 수려한 경관과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자연에서 나온 먹거리까지 맛본 후에야 '삼대삼미'를 오롯이 즐겼다고 할 수 있겠다. 성삼재 휴게소 인근이나 구례 읍내, 사성암이 있는 문척면 바로 옆마을인 토지면사무소 주변에서도 지리산자락에서 캔 나물이 가득 담긴 산채비빔밥과 촌닭 백숙, 섬진강에서 채취한 다슬기 수제비 등을 맛볼 수 있다. 연합뉴스

'과징금 내고 말지' 인천 밤샘 불법주차 3년 새 3배↑

인천지역에 대형차량의 밤샘 불법주차가 기승을 부려 지방자치단체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21일 인천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관내에서 상습적으로 밤샘(오전 0∼4시) 불법주차를 하는 대형차량이 3배가량 증가했다. 이런 불법주차는 2014년 861건, 2015년 1천392건에서 2016년 1∼11월에는 2천435건으로 폭발적 수준이다. 부과된 과징금도 2014년 1억2천75만2천원, 2015년 1억8천304만원, 2016년 2억9천4천83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불법주차 차량은 운송 수요가 많은 인천공항과 인천항 인근 도로변, 시내 주거지역 등 곳곳에서 쉽사리 눈에 띈다. 주로 타 시·도에 차고지를 둔 1.5t 이상 화물차량이나 전세버스가 대부분이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이들 차량은 운송사업자의 차고지나 공영차고지 등 지정된 곳에서만 밤샘 주차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정 차고지까지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왕복 2∼3시간)과 비용(차고지 이용료 월 4∼5만원+연료비 등)을 고려하면 과징금(20만원)을 내는 게 더 낫다며 불법 밤샘주차를 주저하지 않는다. 경기도에 차고지를 둔 운전기사 A(44) 씨는 "대형차량 운전자들은 일반적으로 원활한 운송을 위해 낮에 화물을 싣고 차량을 인근 지역에 주차했다가 다음 날 새벽 시간에 이동한다"며 "차고지까지 가려면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데 차라리 과징금을 내는 게 더 이득"이라고 했다. B(51) 씨도 "일부 운전기사들은 주거지 인근 도로변을 자신의 승용차로 점령했다가 밤에 화물차를 끌고 와 주차하기도 한다"며 "운이 나쁘면 한 달에 1∼2번 적발되는데 과징금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불법 밤샘주차는 인천 신항 전면 개방과 인천국제공항 제2 터미널 완공 등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속 주체인 각 군·구는 인력 부족 탓만 하며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중구 관계자는 "불법주차한 대형차량을 단속해달라는 민원은 늘 끊이지 않는다"며 "단속 인원이 총 2명이다. 1주에 1번 2인 1조로 지역을 나눠 단속에 나서고 있다.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천시도 불법주차를 과징금만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별다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천을 오가는 대형차량의 정확한 현황과 운송 물동량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탓이다. 시 관계자는 "인천을 오가는 대형차량의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야 필요한 차고지 규모를 가늠하고 설치를 논의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현황 파악이 어렵다"고 했다. 공영차고지는 인천국제공항이나 인천항 인근 지역에 마련해야 실효성이 있지만, 부지확보는 쉽지 않다. 지난해 기준 인천에 등록된 1.5t 이상 대형차량은 모두 3만2천여 대다. 인천지역 화물운송업계는 타 지역 화물차까지 포함하면 하루 최대 6만5천여 대가 인천을 오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혼탁한 세상 속 '참나'를 찾는 여정…사찰·수도원으로 떠나볼까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은 허탈함과 상실감을 호소하고 있다. 최대 명절인 설을 앞뒀지만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하기만 하다. 뒤숭숭한 시절, 번잡한 도시를 떠나 고즈넉한 숲 속 사찰과 수도원에 머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수행의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해남 미황사에서는 다음 달 18∼25일 '참사람의 향기'라는 타이틀로 수행형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참사랑의 향기'는 참선집중수행 프로그램으로 참선과 법문, 다도, 묵언과 수행 문답으로 구성됐다. 금강 스님의 지도로 매일 6시간씩 참선 수행을 하며, 수행 문답 외에는 대화가 허용되지 않는다. 평창 월정사는 오는 27∼30일 3박 4일 일정으로 '오롯이 바라보기'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첫날 사찰예절을 익히고 참선 수행을 기본으로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포행(布行·걷기 명상) 등이 실시된다. 일반인을 위한 '무문관'(無門關)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비영리 사단법인 행복공장은 다음 달 11∼17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서 일반인을 위한 '무문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무문관이란 출가자가 절방에 홀로 들어가 길게는 수년간 나오지 않고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수행을 뜻한다. 이번 무문관 프로그램은 재가자를 위해 고안된 단기 프로그램이다. 설 연휴를 맞아 휴식형 템플스테이도 마련됐다. 동해 삼화사에서는 오는 27∼30일 '자연 속에 나를 쉬다'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촛대바위 일출을 바라보며 소원 풍등을 띄우고, 무릉계곡 두타산을 걸으며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불가에 템플스테이가 있다면 천주교에는 피정(避靜)이 있다. 피정은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가톨릭 신자들이 영성 생활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묵상과 성찰 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을 뜻한다. 파주 천주교 민족화해센터 대강당에서는 다음 달 13∼17일 '평화의 삶과 효소 절식' 4박 5일 피정을 실시한다. 평화로운 삶과 비움을 주제로 한 강의와 기도, 운동 등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피정 기간 주어진 효소만을 섭취하며 생태적 가치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돕는다. 성 베네딕도회 화순 수도원에서는 오는 27일부터 7박 8일 일정으로 '성경 통독 단식 피정'이 열린다. 참가자들은 하루 8시간가량 신약 성경을 통독하고 토론하며 이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첫날 미음이 제공되며 이후 기간은 물만을 섭취하며 몸과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보낸다. 또 제주 성이시돌 자연 피정, 제주 면형의 집 피정에서는 올레길 트레킹과 평화 순례 등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조윤선, 朴정부 실세 장관에서 영어의 몸으로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 장관으로 불리던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구속됐다. 두 차례 장관과 정무수석을 지내며 승승장구하던 여성정치인인 조 장관은 박영수 특검팀에 구속된 첫 현직장관이 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운명을 맛보고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인 조 장관은 사법고시 합격 후 대형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미국 연방항소법원 근무를 거쳐 국내 외국계 은행 부행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인연이 닿아 정계에 입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새누리당에서 665일간 대변인을 맡아 당내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 비대위원장일 때부터 당선인 시절까지 대변인을 맡아 '신(新)친박'으로 불렸다. 2013년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됐고, 2014년 6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정무수석으로 발탁돼 청와대의 여성 '유리 천장'을 깼다. 논리적이면서도 차분한 태도와 친화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들었고, 정무수석 당시엔 국빈 방한 등의 행사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역할을 하는 등 박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 했다. 작년 4월 20대 총선 때 서울 서초갑에 출마했으나 이혜훈 후보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가 조 장관을 용산 등 다른 지역구에 전략 공천하려 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조 장관은 불과 몇 달 뒤인 8월 문체부 장관으로 발탁돼 화려하게 복귀했다. 9월 5일 장관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조 장관은 오페라, 미술, 패션 등 문화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체부 장관 하마평에 오른 바 있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 최대 수혜자이자 실세로 불리던 조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다.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완강히 부인해온 그는 이제 장관직을 유지한 채 법적 다툼을 이어갈지 거취를 결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연합뉴스

특검, 朴대통령 겨냥 '전열 정비'…외나무 대결 임박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박근혜 대통령의 '외나무다리' 대결이 임박했다. 특검이 21일 새벽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몸톰'으로 지목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모두 구속함에 따라 박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충격을 딛고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특검은 ▲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사익 추구 ▲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 ▲ 블랙리스트 ▲ 청와대 비선진료 등 4개의 연결고리로 박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특검은 최근 "수사 일정상 늦어도 2월 초까지는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공개 선언한 상태다.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이달 말쯤엔 네 갈래 수사를 대략 마무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검은 작년 12월 21일 현판식을 하고 본격적인 수사 체제에 돌입한 이래 박 대통령 비위 규명에 매달렸다. 핵심 혐의는 뇌물수수다. 특검이 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씨 측에 거액을 퍼준 삼성을 첫 수사 타깃으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33억원대 뇌물공여와 97억원대 횡령, 위증 등 혐의로 청구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해 동력이 다소 떨어진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뇌물죄 규명은 지속하겠다는 게 특검의 입장이다. 최씨를 박 대통령과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이날 피의자로 소환 통보한 강수를 둔 것도 특검의 의지를 짐작게 한다. 특검은 삼성 외에도 최씨 측에 뇌물로 의심되는 수상한 금전 지원을 한 기업으로 지목된 SK·롯데·CJ 등 주요 대기업 수사를 이어가며 뇌물죄 법리를 촘촘하게 구성할 방침이다.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을 끝으로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돼 박 대통령 조사만 남았다. 두 사람은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지만, 특검은 이미 박 대통령이 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정황을 상당수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대면조사 질의서에 담길 질문도 대략 윤곽이 잡혔다는 뜻이다. 이밖에 청와대 비선진료 의혹 수사도 핵심 인물인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과 이병석 전 대통령 주치의(현 세브란스병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하는 등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 부분도 박 대통령이 진상을 말해야 할 대목이다. 특검 관계자는 "박 대통령 수사는 약간의 오차만 있을 뿐 계획했던 일정과 방향대로 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문체부, 전·현직 장관 잇단 구속에 침통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주 김종덕 전 장관이 구속된 데 이어 조윤선 장관마저 21일 구속되자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물러난 정관주 전 제1차관도 두 전·현직 장관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문체부의 한 간부는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니 당혹스럽다"며 "문체부의 현직 장관이 구속된 상황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 정책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전직 장관에 이어 현직 장관까지 구속돼 문체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질책이 클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른 간부는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에 힘을 결집해야 하는 상황인데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다른 현안들에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외에 강화되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압박, 송인서적 부도로 인한 출판계 위기 등 당장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상태다. 또다른 문체부 간부는 "악재가 겹쳐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신뢰를 잃은 문화예술계와 문체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일도 미룰 수 없는 숙제"라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 공무원 노조는 지난 20일 오후 성명을 내고 조 장관은 구속·불구속을 떠나 자격상실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문체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정권 비선실세와 주요 위정자들에 의해 스스럼없이 자행됐다"며 "여러 증거와 정황으로 볼 때 그 핵심에 조 장관이 자리하고 있어 허탈감과 함께 자괴감마저 밀려든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블랙리스트' 김기춘·조윤선 동시구속…朴대통령 '정조준'(종합)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의혹의 정점에 선 인물이자 '총설계자'로 알려진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실행자'인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동시에 구속됐다. 박근혜 정부가 정권에 밉보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하는 반헌법적인 정책을 은밀히 추진했다는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다. 특검팀의 관련 의혹 수사 대상자는 박 대통령 하나만을 남겨두게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1일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각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위증(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3시44분께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성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이 의혹으로 구속된 전·현직 고위 공직자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5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조 장관은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특검에 구속된 경우이고, 민주당 등 야당은 구속 이전 부터 해임건의안 제출을 공언하며 사퇴를 압박하고 나선바 있어 금명간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2015년 2월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 등 주요 선거 때 야당 후보를 지지했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이라고 판단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로 만든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조 장관 역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2014년 6월∼2015년 5월 명단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는다. 조 장관은 작년 9월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명단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 부실 대응으로 각계 각층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명단을 만들어 문체부에 내려보내 집행하도록 했다고 본다. 초기 명단 인물은 수십∼수백명이었지만 이후 무분별하게 규모가 커져 대상자가 1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은 시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영화배우 송강호·김혜수·하지원, 영화감독 박찬욱·김지운 등 저명한 문화예술인들이 무더기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특검팀은 청와대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며 문화·예술 분야에 개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좌파 성향'을 이유로 한류 산업을 선도하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지시한 행위 등에 비춰 김 전 실장이 박 대통령과 긴밀한 교감 속에서 블랙리스트 운영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특검팀은 '늦어도 2월 초'로 예정한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때 핵심 혐의인 뇌물수수 의혹 조사와 별도로 블랙리스트 운영을 지시한 적이 있는지도 강도 높게 추궁할 계획이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블랙리스트 운영에 관여했느냐는 위원들의 추궁에 '관여 사실이 없다, 모른다'는 취지로 거듭 부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