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가 2023년 새해를 맞아 경기도민이 함께 생각해야 할 사회적 이슈를 매월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이슈M’을 기획한다. 계묘년 첫 이슈는 대한민국은 물론 인류의 미래와 생존, 번영이 걸린 ‘저출생’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에 심각한 ‘저출생’ 현상이 이어지면서 인구절벽의 시대를 넘어 지역소멸 위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정부와 경기도는 각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인구정책 부서를 두고 정책을 마련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개선은커녕 저출생 현상만 더욱 도드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저출생 문제를 경기일보가 짚어보고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 진단한다. 편집자주 경기도 저출생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전방위적인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9일 도에 따르면 전국 출생아는 지난 2017년 35만7천771명에서 2021년 26만562명으로 무려 9만7천209명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도의 출생아 수 역시 9만4천88명에서 7만6천139명으로 줄었다. 출생아 수가 줄면서 도의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이 일생 동안 갖는 평균 자녀수) 역시 2017년 ‘1.07명(전국 1.05명)’에서 2021년 ‘0.85명(전국 0.81명)’으로 떨어지는 등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도는 ‘차별없는 출산과 건강한 양육 환경 조성’이란 큰 틀을 목표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 환경’을 넣어 저출생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최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신혼부부가 자녀를 출산하면 대출 원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해주는 내용의 저출생 대책을 언급한 것을 놓고, 대통령실이 ‘윤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도 역시 지난 2021년 ‘모든 세대가 행복한 경기도’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함께 일하고 돌보는 환경 조성 △모두의 역량이 발휘되는 사회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등의 추진 전략과 함께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 사업으로는 청년 기본소득(1천519억3천만원)과 산후조리비 지원(423억원) 등 개인을 대상으로 한 현금 지원 사업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69억700만원)과 경력단절여성 취업 지원(51억8천800만원) 등이다. 도는 지난해에도 청년 기본소득과 산후조리비 지원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역점 사업으로 내놨지만, 정작 실효성에는 의문이 뒤따른다. 이 같은 정책이 경제적으로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출산을 좌우할 정도의 도움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공개된 ‘2022 경기도 사회조사’를 살펴보면 도가 5년 이내 출산 계획이 있는 가구(전체 5.8%)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출산 원인에 대해 응답자들은 ‘자녀 양육의 부담’(29.5%)을 꼽았다. 이어 ‘일과 가족 양립 여건 및 환경 미흡’(20.9%), ‘주거비 부담’(17.8%) 등의 순으로 나타나면서 도가 강조한 현금 지원 정책과 차이를 보였다. 도 관계자는 “기존의 정책을 조정할지, 새로운 정책을 마련할지 다방면으로 분석한 후 저출생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내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소멸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획일화된 저출생 지원이 인구 불균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도내 소멸 위험 지역은 경제·사회적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단기성 현금 정책이 아닌, 전방위적 산업 특성을 고려한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9일 도와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도내 31개 시·군 중 인구 소멸 ‘위험’ 또는 ‘주의’ 지역은 23곳 이상이다. 지난해 2월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위험 지역인 가평·연천·양평군과 여주·포천시는 산업 기반이 열악한 동·북부지역에 분포돼 있다. 앞서 이들 지역은 ‘출산장려금 지급’ 등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펼쳐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책 효과는커녕 인구 소멸 위험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 0.41이던 가평군의 인구소멸위험지수는 2021년 0.30을 기록했다. 이는 각 지역의 경제·사회적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현금 살포형 저출생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도가 진행한 ‘2022 경기도 사회조사’ 역시 도내 산업 집중 도시가 인구 증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 만큼 저출생 정책에는 일자리 개선 등의 장기적·구조적 지역 발전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특히 경기일보가 도내 31개 시·군의 ‘2021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인구 소멸 위험이 가장 큰 가평군의 경우, 15개의 저출산·고령화 관련 사업 가운데 ‘여성의 경력 유지’ 및 ‘청년 인재 육성’과 같은 중·장기적 인구 정책은 단 1개의 사업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결혼 장려금, 임산부 산전 진찰 교통비 지원 등의 단기성 현금 정책 논의는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가평군은 가임기인 신혼부부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 경제적 인프라 개선을 통한 젊은층의 유입이 필요한데도 이러한 지역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채 획일화된 출산 장려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는 지난 2021년 1인당 출산율 0.78명으로 광역시도 중 14위를 기록하는 등 지난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가평군 관계자는 “경제적 인프라 부족으로 청년들이 유출되고 있어 출산 장려 정책 효과가 미미한 점을 인지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 맞는 저출생 극복 정책을 고민 중”이라며 “다만 젊은층의 유출을 막고 새로운 인구를 유입시킬 공공기관 이전, 첨단 산업단지 구축 등을 위해 정부와 도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인구 감소 해결 위해... 지역 특성에 맞춘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저출생 현상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기도내 지역별 특성에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은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도내 31개 시·군의 저출생 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기초지자체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특히 20대 청년 유입이 많은 지역의 경우 결혼과 출산을 지원하는 내용의 정책이, 신도시나 신혼부부가 많은 곳은 일과 가정 양립 지원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사회문화와 가치관에 따라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저출생 대응 정책도 제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통적인 법률혼 밖에서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선택하는 도민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히 출생률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소위 정상가족 밖에 있는 아이들이나 다문화가정의 경우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아이들이 많은 지자체의 경우 다양한 가족을 포괄할 수 있는 형태의 지원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생률 급감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꼽히는 가운데, 지자체가 이들을 위한 지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병호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자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지원하지만 실제 효과는 거의 없고 체감 만족도 역시 그리 높지 않다”며 “저출생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높여 지원 혜택을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다자녀 중심의 육아 정책을 자녀 한 명 이상으로 변경해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영·유아기 때의 단순한 단발성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이후까지로 지원 기간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의회에서도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적 지원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분 발언 등을 통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줄곧 강조한 바 있는 김근용 도의원(국민의힘·평택6)은 “결혼 의향을 높이기 위해선 주거 부담을 낮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도에 거주하는 신혼부부를 위해 장기간 저금리 대출을 해주고, 난임부부를 위해 횟수나 가격 등의 제한을 없애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