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힘으로 바꾸는 마을... 희망 꽃 피운다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주민이 이용할 편의 시설이 부족하고 방치된 공원이 즐비했던 안산시 상록구 일동. 주민들은 행정이 나서지 않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2005년 ‘울타리 너머’라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동네 특성상 초등생 자녀의 돌봄도 주요 문제로 떠오르자 이들은 직접 방과 후 교실을 만들고 안전한 통학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공원에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자 마을은 새 옷을 입은 듯 밝아졌다. 주민 김영은씨는 “뜨내기 주민이 많았는데 공동 돌봄과 천연화장품 만들기 등 활동을 이어가면서 동네에 정착하는 주민이 많아졌다”며 “정원을 만들어 마을 외관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의 힘으로 마을을 바꾼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 청천동·산곡동의 ‘뫼골마을공동체’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마을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길러오고 있다. 1998년 IMF경제위기로 마을이 피폐해지자 마을 청년들이 경로잔치, 바자회 등을 열면서 마을 복원을 위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밑반찬 만들기’, ‘홀몸노인 돌봄 사업’, ‘어르신 한글교실’ 등의 활동을 이어가다 사회적기업 법인을 만들어 2013년부터 ‘뫼골문화회관’을 직접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마을의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풀어낸다. 회관 1층엔 저렴한 가격, 편안한 소통공간을 내세운 카페를 운영해 1년에 3만5천여명의 이용자를 모아 지역의 명물로도 자리매김했다. 지역과 마을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생기를 불어넣는 ‘마을공동체’가 지역사회 소멸을 막을 대안이 될지 주목된다. 마을공동체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민이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안을 제시해 마을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난해 경기도 마을공동체는 663개로, 사업을 시작한 지난 2015년(205개)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마을공동체 사업에 관한 주민 제안 역시 지난 2015년 178건에서 지난해 611건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인천시의 마을공동체 사업도 최근 5년간 326곳이 증가했다. 마을공동체는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등으로 생긴 환경파괴, 사회 양극화, 주민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마을 주민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정책의 규모도 커졌다. 이호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외래교수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양극화와 단절, 고립이 만연한 시대에 지역의 특성을 살린 마을공동체는 상호 호혜적인 관계망을 구축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 위해… ‘자생력’ 필수 마을공동체가 도시 재생의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공동체의 지속 운영 등 사후관리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지자체별 시행하는 보조사업의 특성 상 단기 사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마을공동체 주민들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모델을 만드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에서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은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와 각 시·군의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하고 있는 ‘마을종합 지원 사업’은 3년 단위의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동일한 마을공동체가 다시 지원할 수 없다. 인천의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도 대부분 1년 단위로 단체를 모집한다. 마을만들기 유형에 따라 2~3년 단위의 추가적인 사업을 받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단기 사업에 그친다. 이에 단기성 사업이 끝난 뒤엔 주민들이 자체 비용을 투입해 마을공동체와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데, 비용 투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사업에 따른 인프라가 방치되는 등 문제가 불거진다. 지자체의 예산까지 감소하고 있어 마을공동체의 활성화, 지속성은 더욱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경기도 마을공동체 사업비는 총 289억1천만원으로 지난해(302억5천만원) 대비 4.4% 줄었다.  특히 마을공동체가 각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보니, 지방보조금법상 인건비 지급 등을 규정할 수 없어 공동체를 꾸준히 이끌어 갈 활동가를 배치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회비를 걷거나 펀딩을 통해 사업비가 없어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경비를 확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에서 10년 넘게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힘써온 박미정 마을활동가는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경우 일정 기간 이상의 지원이 안 되다 보니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허탈감,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며 “마을별로 호흡에 맞는 지원 사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각 마을공동체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업 형태와 예산 규모를 지자체에 역으로 제안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공유 공간 등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도내에서 39곳의 공유공간이 있으나, 도내 13개 지자체에 몰려 있고 연천군, 포천시, 동두천시 등 18곳엔 1곳도 없는 상황이다.  인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시가 지난 2015~2023년까지 지원한 마을공동체는 약 700여곳에 이르지만, 현재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공동체 수는 350곳으로 절반 뿐이다. 나머지 350여곳은 행정의 지원 없이 자생해야 하는 꼴이다. 인천 부평구의 이충현 ㈔우리동네희망마을 대표는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단기적인 사업으로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하현상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순하고 일방적인 형태로 강의 및 교육이 반복되면 주민들이 이 사업이 왜 좋은지, 왜 이 사업이 우리 동네와 어울리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형식적인 참여만 이뤄진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자원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특히 동일한 사업을 매년 반복적으로 지원하진 않더라도 지원의 폭을 점차적으로 줄여가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쿠션 역할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상위법이 없어 예산과 인력 지원에 어려움이 크다”며 “마을공동체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보조사업을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현재 중앙 컨트롤타워가 없어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지자체별 조례에만 의지해 예산을 짜는 등 각 시·군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는 실정인데, 보다 효율적인 지원책을 찾기 위해 내년도 중간지원조직 운영 방안 등에 대한 개선책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인천 노후 신도시 난개발 우려… 생활권별 맞춤 계획 필요”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인천의 20년이 지난 ‘노후 신도시’인 연수·계산·구월지구의 리모델링 및 재건축 등의 개발이 가시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안팎에서는 난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생활권별 종합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2일 국토교통부와 인천시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재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지자체 및 국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주요내용 보고’를 통해 단기간 공급을 집중한 1기 신도시와 노후 계획도시에 대한 정비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들 도시가 자족성이 부족하고, 주차난과 배관 부식, 층간소음, 기반시설 노후화에 따라 주민들의 정주여건이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천에는 연수·계산·구월지구가 ‘노후계획도시’로 지정 받을 가능성이 크다. 노후계획도시는 택지조성사업이 끝난 뒤 20년 이상 지난 면적 100만㎡(30만평) 이상의 택지 지구다. 이들은 특별법에 따라 용적률 및 안전진단 면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노후 신도시’ 일대에서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비롯한 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 안팎에서는 대규모 택지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리모델링 및 재건축이 이뤄지면서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수지구의 면적은 613만5천676㎡(185만9천295평)으로 인천에서 최대 규모인데다 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보다 크다. 연수지구의 현재 평균 용적률은 150% 안팎인 탓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최대 300%까지의 용적률을 높이면 종전 14만2천명의 인구에서 24만명으로 배 가까이 급증한다. 이로 인해 1인 당 공원 및 녹지 면적은 종전 4.8㎡에서 2.8㎡로 절반 가량 줄어드는 등 ‘인구 과밀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계양구 계산지구와 미추홀구 관교동 인근의 구월지구 역시 상황은 같다. 이들 대부분 공원 및 녹지의 비율이 10% 안팎이다. 이 밖에도 시는 특별법과 연계, 준공 후 15년이 지난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도 본격화 할 방침이다. 시는 최근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하고 리모델링 사업 참여를 위한 구상에 나섰다. 이는 종전 용적률에 40%를 추가로 늘릴 수 있고, 가구 수의 15% 내로 새로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민혁기 인천연구원 도시공간연구부 연구위원은 “지금 상태로 리모델링 및 재건축을 하면 기반시설 대비 인구가 많아져 난개발이 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별로 필요한 공급과 수요를 예측하는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며 “공원 등 녹지 공간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구단위계획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 지역 특성에 맞는 ‘생활권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에 대응하기 위한 용역을 추진할 것”이라며 “법 제정 이후 곧바로 관련 종합계획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인천 원도심 재개발·재건축 ‘희망고문’… 2곳 중 1곳 ‘미착공’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인천지역 곳곳에서 20년 이상 지난 ‘노후 신도시’의 리모델링·재건축 등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원도심 곳곳에서 추진 중인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은 부동산 경기 악화 등으로 제자리 걸음이다. 22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에서 이뤄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총 96곳이다. 그러나 이들 중 42곳(43.5%)은 안정적인 사업 추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착공’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 지정 이후의 ‘시행 단계’와 ‘이주 및 보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지구지정 이후 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 이주 및 보상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극심하기 때문에 착공 단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부동산 및 건설 경기 악화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추진이 더디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악화와 건축비 상승으로 사업성이 낮아지고 원주민들의 분담금이 오르면 사업 시행 단계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앞서 2019~2021년은 부동산 및 건설 경기가 좋아서 재개발 및 재건축으로 답보 상태인 몇 곳이 궤도에 오르는 등 추진이 빨랐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 다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인천의 재개발 및 재건축 속도는 다시 느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주민 간 갈등과 주거 환경 악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중구 경동·율목구역은 지난 2009년 정비구역 지정을 받고도, 사업시행 인가 단계만 14년째 절차를 밟고 있다. 이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개발 추진의 필요성에 대한 이견과 함께 주거 환경 개선도 뒤로만 밀리고 있다. 여기에 시가 최근 사업성이 낮은 저층주거지를 중심으로 공공 재개발 형태인 사전검토 재개발사업까지 추진하면서 자칫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난립 우려도 나온다. 이들은 시로부터 정비계획 용역비를 받지만, 다른 도시정비사업과 같이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 단계에서 늦어지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앞서 시는 지난 6월 중구 도원구역을 비롯해 동구 화수아파트구역, 미추홀구 주안남초1구역·도화역남측구역, 남동구 구월349구역·만수2구역 등을 대상지에 포함했다. 또 부평구 동암중서측구역과 계양구 계산역남측구역·효성구역, 서구 석남5구역 등도 대상지다. 시는 접수를 받은 재개발 후보지 45곳 중 10곳을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난립과 지연이 주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나서서 재개발 사업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기반 시설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원도심의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이 정체하는 이유는 주택가격이 낮고, 기반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재개발이 표류하면 주민 갈등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사업성을 높여 재개발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지자체 재정으로 도로와 공원과 같은 다양한 기반 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갈등 속앓이…정비 하세월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경기도내 중동신도시 등 1기 신도시를 포함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재개발·리모델링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민 갈등 등으로 속앓이를 하는 등 정비가 하세월이다.  20일 부천·안양·군포·성남·고양시 등에 따르면 이들 1기 신도시는 지난 1992년 입주가 완료된 뒤 30년이 지나 노후화되면서 재개발·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지만 갈등과 분쟁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부천이 대표적으로 중동신도시 인근인 송내 1-1구역 등 9곳에선 재개발사업, 상동 한아름 현대아파트에선 리모델링 등이 추진 중인 가운데 상동 한아름 현대아파트는 지난해 12월 리모델링 주택조합 설립인가를 받고 올해 3월 안전진단을 신청해 7월 안전진단 용역에 착수하고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비 문제와 조합원 간 갈등, 시공사 선정 문제 등으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안양 평촌신도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의견이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으로 나뉘어 진통을 겪고 있다.  이곳에선 그동안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추진됐다. 실제 단지 54곳 중 26곳이 리모델링, 16곳에선 재건축을 계획하고 있고 다른 단지에선 두 사업을 두고 고민 중이다.  이처럼 리모델링 수요가 높았던 이유는 평촌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이 204%로 일산신도시(169%)와 분당신도시(184%) 등에 비해 높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리모델링과 재건축 등으로 주민들 간 입장이 갈리기 시작했다.  성남 분당신도시에선 정자동 한솔마을 5·6단지, 야탑동 매화마을 1·2단지 등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일부 단지에서 의견차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군포는 산본신도시를 중심으로 일부 단지에서 재건축이 추진 중이지만 용적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용적률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4단지 한라1차아파트의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노후계획도시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과 상관없이 현행법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겠다며 지난해 5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고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고양 일산신도시도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으로 나눠 진행될 예정으로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을 반영해 지구단위계획을 정비할 방침이다. 내년까지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완성할 계획인 가운데 추가 분담금 문제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공사 선정까지 완료한 문촌16단지와 강선14단지 등지에선 재건축으로의 선회와 리모델링 계속 추진 사이에서 주민들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산신도시 백송마을5단지 박임규 동대표회장은 “재건축이든 리모델링든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며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주문했다. 일산동구 반석공인중개사 김영세 대표는 “예비안전진단 면제와 용적률 상향 등 지난 2월 정부의 노후계획도시특별법 발표 후 단지들이 연합해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속 빈집들 흉물로 방치… 슬럼화 부채질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경기도내 1기 신도시들이 노후화되면서 리모델링이나 재개발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부 지역의 경우 개발이 늦어지면서 슬럼화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표적인 곳이 부천 소사3구역이다. 이 구역은 지난 2022년 10월부터 이주가 시작돼 7월 기준 92% 이주를 완료했으며 내년 상반기 착공할 예정이지만, 철거 전 약 1년여 동안 빈 주택으로 방치되면서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 이 구역은 대부분 빈집으로 대문에는 ‘출입금지·철거 대상 건물’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어 진입을 막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또한 구역 입구마다 안전담장을 치고 출입을 막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담장이 없어 대낮은 물론 야간에도 출입이 자유로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일반적으로 1기 신도시와 인근 지역 등에 대한 재개발사업이 추진위 구성부터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길게는 20여년 정도 소요돼 이처럼 슬럼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사3구역 인근 주민 김모씨(56)는 “재개발사업이 장기화면서 빈집들이 늘고 있는데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어 재개발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천시 관계자는 “철거 전까지 빈집 관리 및 우범지대 전락을 막기 위해 조합과 경찰 등 여러모로 안전을 위한 대책을 세우려고 한다”며 “조합에 미리 구역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안전담장 설치 등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양특례시 청사가 위치한 원당 구도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은 1기 신도시인 일산과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운데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이 지연되면서 지만 1978년 들어선 시청사와 함께 인근에 들어선 상가건물들이 낡고 도로와 인도는 좁은 데다 일부 주택들은 비어 있는 채 방치되는 등 슬럼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정비 방향에 주민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 법체계로 1기 신도시 등 노후 계획도시를 정비하면 재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도시 전체가 슬럼화되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재정비가 이뤄져 주변에 충격을 줄 수가 있다. 그래서 계획적이고 조화롭게 도시 재정비를 추진하자는 게 노후계획도시재정비특별법 취지”라고 조언했다. 이범현 성결대 도시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도 “그동안 정비사업의 기간이 길어져 일부 구역이 슬럼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기본적으로 도시정비 방향에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담겨야 한다”며 “정비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비만 오면 ‘물난리’…경제성장 이끌던 노후산단, 빛 바랜 영광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경기·인천지역 도시가 낡아가고 있다. 1970년부터 지어진 반지하 주택은 침수 피해의 우려를 한 몸에 받는 곳이며 노후한 산업단지는 급격한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곳곳 정비사업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 데다 도시재생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노후 도시를 위협하는 장마철인 7월을 맞아 ‘이슈M’을 통해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단지에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이곳 뿐입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노후한 시설을 손 볼 길 없어 걱정입니다.” 안성시 미양면에 위치한 미양농공단지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72)는 며칠 전 내린 빗물이 남은 수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폭이 채 1m도 안 되는 이 수로는 산단 내 공장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곳이지만, 1987년 착공 당시 통로를 작게 만든 탓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실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산단이 경사진 형태로 들어서 있어, 장마 때는 입구 쪽으로 물이 흘러와 곤혹이라고 했다. 그는 “노후화 시설을 개선해 달라고 안성시 등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관련 부서들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만 했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경제를 이끌며 산업시대 태동과 부흥의 견인 역할을 해온 ‘산업단지’가 노후화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일반산업단지‧ 도시첨단산업단지‧농공단지 4개로 나뉘며 현행법(노후거점산단법) 상 20년 이상이 경과한 산단은 ‘노후산단’으로 분류된다. 현재 국내에는 470여개의 노후산단이 존재하며 경기도에는 총 192개의 산단 중 48개가 ‘태어난 지 20년’이 넘었다.  농촌지역에 소득 증대를 위한 산업을 유치‧육성하기 위해 1987년 착공된 안성의 미양농공단지도 그 중 하나다. 이곳의 노후화된 시설은 비단 폭이 좁은 수로 만이 아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보도블럭은 대부분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입주 기업들의 공장 외벽은 칠이 벗겨진 상태였다. 외벽 창틀에는 녹이 가득했다. 1990~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과자를 만드는 중견 식품제조업체와 발효식품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활기를 띠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업들은 더 세련된 ‘보금자리’를 찾아 하나 둘 떠났고, 단지 입구에 있던 표지판에는 매각과 인수를 반복하며 변화한 기업들의 이름만 덧대어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남아있는 기업들은 시설의 노후화, 그로 인한 인력난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15년 단지 내 공장의 시설을 인수하며 이곳에 들어온 제조업체 B사는 노후화 탓에 인수한 시설의 3분의 1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투자하려 해도 기존 시설 노후화와 규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B사 대표는 “오래된 시설을 바꾸려면 모두 갈아 엎어야 하는데, 노후 산단들은 시설 투자에 대한 혜택이 부족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B사 인근에 위치한 냉면·떡볶이 제조업체 C사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내국인을 뽑고 싶지만 산단의 인프라가 오래된 데다 시내와 떨어져 있어, 내국인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C사 대표는 “한 사람이 귀한 입장에서 내국인 채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노후 산단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년 전만 해도 퇴근 때만 되면 차가 새까맣게 줄지어 나왔는데 이제는 기업이 자꾸 빠져나가기만 하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 청년들 떠나… 인력난 악순환 반복 경제 성장을 이끌던 경인지역 산업단지가 시설 노후화와 인력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가 노후 산단 지원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산업단지공단 등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 소재한 산업단지 192곳 중 착공 후 20년이 지난 ‘노후산업단지’는 총 48곳으로 집계됐다. 착공 후 20년이 넘은 산단은 노후 산단으로 여겨지는데, 시·군별로 보면 노후 산단은 안성시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평택(8곳), 파주(7곳), 화성(4곳), 김포·양주(3곳) 등 순이었다. 또 인천에는 총 16곳의 산단이 운영 중이며, 이 중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부평‧주안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는 착공 후 20년이 넘은 대표적 노후 산단이다. 이들 노후 산단의 문제점은 ▲인프라 부족 및 노후화 ▲청년층 기피 ▲생산성·효율성 둔화 등으로 압축된다.  사실, 이 같은 노후 산단의 문제들은 얽히고설켜 있다. 인프라와 시설의 노후화는 청년층의 기피 현상으로 인력난을 유발하고, 오래된 시설 탓에 생산성과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식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경기도의 대표적인 노후 산단인 반월시화산업단지에선 전체 근로자 중 청년층 근로자(15~34세) 비중은 단 12.6%에 그쳤다. 젊은 근로자들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후 산단은 중장년층과 외국인 인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또 인천의 남동국가산단과 부평·주안한국수출산단도 근로자들의 주차 공간 부족은 물론 문화·편의시설도 적어 청년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남동국가산단의 하루 불법주차 대수는 1만여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산단이 오래됨에 따라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의 ‘경기도산업단지 생산성 및 효율성 분석’에 따르면 노후 산단의 열악한 근무환경이나 낮은 기술 수준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는데, 2014~2017년 도내 산업단업단지 생산량 증감률은 평균 3.4%였지만 4년이 지난 2018~2021년에는 1.6%로 감소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후 산단은 청년들이 오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후속 인력이 갈수록 사라짐에 따라 쇠락 문제는 더욱 점층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산업단지는 공장이 모여있어 밀도가 높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광활한 부지에 땅을 매입해 공장만 짓던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청년층을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노후 산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경기도에선 반월시화 국가산단과 성남의 일반산단에서 인프라 개선을 위한 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산단 기업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대개조 사업도 실시되고 있다. 인천시 역시 지난 2019년부터 남동국가산단의 재생사업을, 올해부터는 부평·주안국가산단도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 산업입지과 관계자는 “경기도의 노후 산단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현재 중앙 정부의 공모사업에 적극 참여해 국비를 확보해, 산단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후산단 재생 해외 성공사례 ① 英 트래포드파크 ② 日 오타구 산단 주거·관광·상업·서비스… 다양성 공존 해외에선 어떻게 노후 산단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산단으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노후 산단 재생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영국 맨체스터의 트래포드 파크(Trafford Park)다. 트래포드 산업단지는 19세기 말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로 개발,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제조업을 기반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탈 산업화’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전통적 의미의 제조업이 몰락하기 시작했고, 트래포드 산단도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영국 정부가 선택한 방식을 기존 산단을 갈아 엎는 ‘전면 개발’이 아닌 ‘재생형’ 방식이었다. 트래포드 파크는 ▲현대적 공업지역 ▲주거 및 지원시설 개발지역 ▲상업 업무의 혼합공간 ▲중소기업 위주의 공업지역 등 4개 지역을 선정해 차별적인 기능을 부여했다.  생태공원 등을 조성해 환경 기반시설을 재정비했고, 입주기업들의 정착과 성장을 위해 산업 간 연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센터 등을 마련했다. 또 도시 외곽의 폐허 부지에는 유럽 최대의 쇼핑·레저 단지인 ‘트래포드 센터’ 등을 조성,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상업·관광이 공존하는 산업 구조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 도쿄의 오타구 산단 역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표적 산업단지 중 하나였지만, 공업지역 쇠퇴에 따른 여러 도시 문제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타구 지역 쇠퇴를 막기 위해 선택된 방식은 주거·업무·서비스가 공존하는 복합 용도의 개발이었다. 이를 위해 아파트형 공장이 건설됐고, 서비스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정책이 펼쳐졌다. 특히, 사람에게 친화적이고 주변 환경과 마을과 공존하는 비전을 통해 새로운 산단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구형 클러스터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일본 특유의 협력 문화를 바탕으로 독특한 산업단지를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도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전문가 제언 “인프라 확보·민간 투자 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노후 산단이 되살아나기 위해선 ▲인프라 확보 ▲산업 재구조화 ▲적극적인 투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청년층을 사로잡기 위한 인프라 확충을 강조했다. 마 교수는 “산업단지가 쇠퇴하는 이유는 해당 산업의 약화와 맞물려 있고, 도심에서 떨어져 마치 회색빛 ‘깍두기’처럼 공장만 밀집해 있는 형태로 이루던 경제발전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며 “제조업이라 하더라도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상업시설, 교통접근성을 갖춰 청년들을 끌어들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후 산단 재생을 위해 규제 완화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원빈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분적으로 빈 공장 등을 새로운 복합형 산업시설로 탈바꿈시키는 점진적인 ‘점개발’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를 위해선 지원시설, 편의시설 등이 입주하는 절차에 대한 규제 해소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자금만으로는 구조 고도화 등의 리모델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진입 요건 완화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흐름에 발 맞춰 노후 산단을 개편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성택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 산단은 현재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이 강조되는 흐름과 달리 오염집약산업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며 “경기도에서 이러한 노후 산단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 모범지구로 육성한다면 선도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낡은 인천 산업단지... 청년은 없고, 외국인근로자만 남았다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인천 산업단지가 늙어가고 있다. 1970년부터 지어진 인천지역 산업단지는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후 산업단지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경제계에서는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등을 담은 종합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이슈M>을 통해 노후 산업단지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낡고 위험한 산업단지 공장에서 누가 일하고 싶겠어요” 12일 오전 10시께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인근의 한 금속 부품 제조업체.  이 업체 대표 A씨(41)는 비 오는 날이면 더 바쁘다. A씨는 “40년이 넘은 공장을 인수 받아서 운영을 하다 보니 손 봐야 할 곳이 많다”며 “비 오는 날마다 작업장 위에서 물이 새 기계 침수 걱정이 크다”고 했다. 특히 남동산단 입구 4거리는 장마철만 오면 도로 곳곳이 빗물에 잠겨 애를 먹는다. A씨는 “최근 비가 많이 오면서 걱정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또 남동산단의 고질적 문제 중 1개인 ‘주차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곳곳에 이미 불법주차한 차량 사이로 2중 주차로 빼곡하다. 공장의 부족한 주차 공간으로 인해 도로로 밀려나온 탓이다.  이날 낮 12시께 인천 서구 가좌동 인근 부평‧주안 한국 수출단지의 주안 5~6단지. 이곳 일대에는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나 식당을 찾기 어렵다. 단지 안 공원 곳곳은 이미 녹이 슨 벤치와 보도블럭 사이로 나온 잡초가 차지하고 있어 산책조차 어렵다. 공원 인근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에서 일하는 B씨(40)는 “곳곳에 쉴 만한 공간도 없는 노후 산업단지에서 일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 뿐”이라고 했다. 이어 “산단 안의 공장 건물 대부분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큰 불이라도 날까 무섭다”며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 국가산업단지의 노후화가 심화하면서 청년 근로자 유입 등을 통한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인천지역의 산업단지는 총 16곳이고, 면적은 2천191만9천여㎡(662만9천590평)에 이른다. 입주 업체는 총 1만3천956곳으로, 고용 인원은 15만2천26명이다. 이 중 인천의 1970~80년대 지역경제를 이끈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부평‧주안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는 대표적인 노후산업단지이다. 노후산단는 착공한 뒤 20년 이상이 경과한 산업단지를 뜻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 도로와 공원 기반시설이 낡은 탓에 청년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여기에 낡은 공장시설과 부족한 주차 공간은 고질적인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안팎에서는 이들 산업단지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도록 범 정부 차원의 노후산단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노후 산업단지는 곳곳에 지식산업센터만 만든다고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전반적인 관점에서 정부와 지자체,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어 “공원과 도로, 근로자 편의시설 등부터 차근히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노후 산업단지 개선이 굵직한 국비 공모사업으로 추진하다 보니 전반적인 마스터플랜을 잡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동국가산단과 부평·주안산단 등은 재생사업 지정으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는 격”며 “노후 산단 재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침수 공포에 잠긴 반지하... ‘권한 한계’ 부딪힌 경기도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경기·인천지역 도시가 늙어 가고 있다. 1970년부터 지어진 반지하 주택은 침수 피해의 우려를 한 몸에 받는 곳이며 노후한 산업단지는 급격한 시대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곳곳 정비사업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 데다 도시재생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노후 도시를 위협하는 장마철인 7월을 맞아 ‘이슈M’을 통해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도와 인천시가 지난해 8월 침수 피해를 계기로 반지하 주택 해소 등 대책을 마련했으나 관계 법령 개정과 같이 지방자치단체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일 경기도와 인천시에 따르면 도내 반지하 주택은 8만7천914가구로 이 중에서도 침수 우려가 있는 해당 주택은 8천861가구(재난지원금·풍수해보험금 수령 기준)다. 인천의 경우 반지하 주택 2만4천207가구 중 3천917가구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해 8월 집중 호우로 경기도에선 반지하 주택 3천872가구, 인천시에선 406가구가 물에 잠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도는 지난 2020년 도·시군경기도건축사회와의 협약을 통해 반지하 주택 신축을 억제하고 있으며 인천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지하주택 건축허가를 제한했다. 문제는 이미 지어진 반지하 주택이다. 개인의 사유 재산인 만큼 도는 용적률 상향 등으로 사업성을 높여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추진에 따라 해당 주택을 철거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정책은 △지하층 소멸에 따른 용적률 상향 △정비사업 추진 시 반지하에 대한 노후주택 기준 완화(준공 후 20년→10년) △정비계획 입안 내용 변경 등이다. 그러나 도의 이러한 정책들은 건축법 시행령에 특례를 추가하거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도의 자체 행정력으론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민간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현행 건축법이 개정되지 않은 이상 지하층 면적이 새 건축물의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아 사업성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반지하 주택 신축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건축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국회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됐으나 현재는 국회 소관위원회 심사에 머물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고지대와 경사지 반지하 주택은 침수 우려가 적고 주거 환경이 비교적 양호한 건축물의 주거 사용이 금지될 경우 과도한 규제로 여겨질 수 있다’는 식의 검토보고서를 냈다. 이와 관련, 도 관계자는 “정비사업 자체가 오래 걸리는 데다 제약도 있지만 반지하 주택을 해소하긴 해야 한다”며 “정부를 향한 건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는 이와 관련해 이주 지원 및 매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공공임대주택 늘려... 재해 취약계층 거주지 마련해야” [낡아버린 도시, 생명을 디자인하라]

반지하 주택 해소 계획을 세운 경기도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재해 취약지역 주민들에 대한 거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반지하 주택이 단기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만큼 빈집 활용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 국토연구원이 지난 2021년 4월 발표한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와 인천시 등 수도권지역 지하층(반지하 포함) 거주자의 월 평균 소득액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구 351만원보다 169만원 적다. 더욱이 지하 임차가구의 74.7%는 저소득층으로 조사된 만큼 주거비용이 저렴한 반지하에 형편이 어려운 시민들이 주로 사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도의 정책이 가시화돼 반지하 주택을 철거하기 위한 정비사업이 추진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거주 공간에 사는 임차인들은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는 등 기존 거주지역을 떠나는 구조다. 주거비용이 민간임대보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그러나 도내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9.8%의 수준(약 521만7천가구 중 51만5천여가구), 인천은 8.5% 수준(약 115만4천가구 중 9만8천677가구)으로 유럽 등 선진국의 비율 20~30%보다 낮은 수치다. 백인길 대진대 스마트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여름만 되면 반지하 주택을 해소해야 한다는 반짝 여론이 나오는 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임대주택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비사업의 경우 인센티브 확충 등을 통해 사업자가 공공에 기여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재건축·재개발의 경우 정비구역 지정부터 완공까지 통상적으로 10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마저 주민들의 이견이 최소화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금리 등 부동산 경기에 좌우되기에 추진 기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반지하 주택 해소는 단기간으로 이뤄질 수 없는 만큼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남지현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축주 입장에선 반지하를 활용해서라도 임대 수익료를 얻고 싶어한다”며 “따라서 정부나 지자체가 건축주의 반지하 임대를 포기하게끔 하는 대신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빈집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빈집들을 리모델링하고 반지하 주민들을 이곳에 거주하게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며 “이외에도 침수 피해 지역을 면밀하게 분석해 차수막을 설치하는 등 집중호우 예방을 위한 선제적인 행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6·25 격전지 포천 ‘온몸으로 방어’…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상흔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포천은 6·25전쟁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다.  창수면과 영중면, 일동면 등지는 북한군 탱크와 전차 등의 포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곳으로 여전히 그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다. 포천시 43번 국도변 신북면 기지리로 향하다 만난 특이한 구조물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전차와 탱크를 앞세워 내려오자 국군이 열악한 군사장비와 온몸으로 적을 방어했던 ‘포천방어벙커’(경기도 근대문화유산 등재)다. 여러 발의 포탄 자국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녹슬고 파괴된 콘크리트 철근에 누군가 태극기와 조화를 걸어 놨다. ■ 필사의 지연작전 격전지, 신북면 기지리 포천방어벙커 6·25전쟁 발발 전 포천 북쪽 영평천 넘어 당시 북한 쪽에 살고 있던 임석환씨(90)는 당시의 실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매년 이맘때 38선 인근을 찾아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데 포천방어벙커에서 발길을 멈추고 거수경례를 한다.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북한군은 1950년 6월25일 전차와 장갑차 등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43번 국도를 따라 남하했다. 첫 공격 대상이 된 포천은 국군 제7사단이 38선 경계근무를 맡고 있었고 정면에는 제9연대가 배치돼 있었다. 북한군 병력은 제105전차여단의 지원을 받는 2개의 정예 사단이었고 그중 제3사단이 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결국 1950년 6월25일 오전 포천은 점령되고 시내까지 북한군이 진입한다. 북한군 제3사단은 이날 새벽 38선을 돌파, 10㎞ 남쪽 만세교까지 돌입했다. 하지만 국군도 치열하게 방어 전투에 임했고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다.  포천시 신북면 43번 국도변 대전차 벙커인 포천방어벙커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포탄 자국이 선명한 채 전쟁유산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북한군 전차와 탱크, 로켓포 등으로 응수한 만세교 치열한 격전지 국군은 빠르게 남하하는 북한군을 맞아 치열하게 싸웠다. 대표적 격전지가 포천 만세교 부근이다. 아군은 이곳에서 2.36인치 로켓포로 응수해 만세교를 사수하려고 애썼다.  1950년 6월25일 오전 8시를 전후해 북한군이 43번 도로를 따라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을 때 만세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아군 포는 적 전차에 간혹 타격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전력의 열세를 감지한 국군의 대전차포 병사들은 조준경만 빼 들고 신평리 쪽으로 급히 철수했다. 북한군은 결국 저지선을 돌파해 진격했고 이때가 오전 9시40분께였다. 결국 만세교 부근 지연전은 2시간을 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 6·25전쟁 첫 전초전 촉발지 창수면 추동리, 제9연대 방어전투 전쟁 발발 전 포천 창수면은 국군과 북한군이 대치하던 곳이다. 개전 첫날 포천 북방 38선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9연대 제2대대는 창수면 추동리와 일동면 사직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공격을 받는다. 북한군은 6월25일 오전 3시40분을 전후해 공격준비 사격을 아군에게 가했다. 결국 아군 기관총 진지를 제외하고 모든 교통호가 파괴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당시 북한군 제3사단은 공격준비 사격을 계속하며 전방 2개 중대의 방어 전면으로 전차를 앞세워 공격했다. 적 전차 3대가 양문교 부근까지 진출하면서 아군의 방어 진지를 유린했고 아군 제7중대는 국도 43호선을 적에게 넘겨주고 823고지 서쪽 능선으로 후퇴했다. 추동리(창수면)와 사직리(일동면)에서도 한 차례 교전했지만 북한군은 아군 방어진지 후방의 5㎞까지 포격을 집중하며 공격했다. 국군 제9연대는 북한군 제3사단을 맞아 방어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병력을 잃은 채 후퇴했다. ■ 의정부를 사수하라! 송우리 방어전투 북한군은 의정부로 돌진하기 위해 현재의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당도했다. 당시 수도경비사 예하 제3연대 연대장을 맡고 있던 이상근 중령은 급하게 편성된 혼성 부대를 이끌고 포천 송우리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전개했다.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를 지켜내기로 하고 송우교를 중심으로 좌우 측에 각각 2개 중대 병력을 배치하고 진지 작업을 벌였다. 제1대 대장 임백진 소령은 동쪽 2개 중대, 제3대 대장 김봉상 소령은 제11중대를 포함한 서쪽 3개 중대를 각각 지휘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당시 전차 7, 8대를 앞세운 북한군 기계화 부대가 연대 방어 정면으로 다가오자 아군의 57㎜ 대전차포 3문과 2.36인치 로켓 포반이 공격을 개시해 적 전차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워낙 막강한 북한군의 전차와 기계화 부대의 화력이었기에 아군 방어벽은 무력화되고 말았다. 포천은 6·25전쟁을 겪으며 몇 차례 주인이 뒤바뀌는 상황이 전개됐다. 다음 해(1951년 3월) 포천은 아군의 재반격으로 되찾았다. ■ 군인보다 더 강한 군번 없는 영웅, 포천 독수리유격대원들 독수리유격대는 남들은 피란가는데 적의 소굴이 된 포천으로 뛰어들었다. 서울 수복 직후 1950년 11월 포천 일동에서 활약한 이들은 자생 민간인유격대로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비롯한 63명이 결성했다. 장총과 M1 소총 등으로 무장했고 포천이 수복되자 독수리유격대는 이동면 등 도평리 백운동 일대와 약사골 등에서 공산군 패잔병들을 소탕했다. 포천군 신읍리(현 포천시 신읍동)에서 조직해 육군 제2사단 17연대·32연대에 합류해 경북 의성·청송·안동·예천·풍기, 충북 제천과 단양 등지에서 싸웠고 북한군 제10사단과 공비들을 토벌했다.  16명이 전사했지만 정식 군인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다 이후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6·25전쟁 당시 3대 민간저항부대로 인정됐다. 독수리유격대장 최종성과 작전관 최종철의 유해를 모신 포천시 이동면 관음산 기슭에 독수리유격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인터뷰 임석환 6·25참전유공자회 포천시지회 지회장 "15세에 참전… 사선 넘나든 고행길" 임석환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포천시지회장(90)은 6·25전쟁 발발 전 38선 이북 지역에 살며 전쟁 준비 상황을 직접 목격했고 피란길에 오른 후 국군으로 전쟁에 직접 참전해 싸웠다.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임 지회장의 나이는 15세였다. 그가 6·25전쟁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50년 12월 두 살 많은 친형과 함께 서울에 와 정처 없이 떠돌다 국군에 자원 입대하면서부터다. 입대 후 부산으로 이동해 한 초등학교에서 잠시 머물다 제주도에서 8일간의 짧은 군사훈련을 받고 본격적인 전투에 투입된다. 이후 강원도 인제 35연대에서 M1 소총을 비롯해 수류탄, 박격포 등을 나르며 전쟁이 무엇인지 감지하게 됐다. 당시 중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 드물었기에 그는 중졸자로 대대장 전령병이 됐다. 지도를 볼 줄 안다고 말하자 연락병으로 결정돼 복무하며 물자를 보급하는 노무자들과도 잘 지냈다. 치열했던 강원 철원 백마고지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또다시 병원으로 후송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953년 휴전이 될 때 까지 수도기계화보병사단 기갑연대에 배속돼 근무하다 1958년 7월 상사 계급으로 8년간의 사선을 넘나드는 인고의 고행길인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인터뷰 사선을 넘고 살아 돌아온 노병 김응태옹 "참혹했던 전쟁터… 살기 위해 싸워" 포천지역 6·25참전 유공자로 지난 1968년부터 영북면 운천 전통시장에서 지물포를 운영하고 있는 김응태옹(92)은 여러 곳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52년 전쟁통에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한 그는 태어난 춘천에서 포항을 거쳐 제주도에서 96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강원도 속초 신설 부대로 배치돼 전투를 치렀다 “김화지구전투, 백마고지전투 등에 참전했는데 1952년 12월 최전방은 무척이나 추웠고, 다음 해 2월 어느 날에는 추위 속 비까지 내렸는데 근무자들이 방공호에서 근무 중 졸다가 적군의 포탄에 모두 전사했어요. 전우들의 시신을 끄집어낼 때 정말 비참했습니다” 전쟁터 환경은 언제나 그렇듯 참혹하지만 김옹이 겪은 전쟁의 참화는 실제 사선을 넘나들며 겪어본 사람만이 느끼는 특별함이 존재한다. 그는 전장에서 목격한 묘한 장면도 기억해낸다.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사이 고지전에 투입됐던 살기 위해 싸웠고, 심지어 적군의 시신을 뒤져 음식물을 먹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잠시 포천 일동면 지역의 9사단 30연대에 근무하기도 했고 당시 열악한 여건으로 야전삽을 이용해 나무와 풀 등 자연 재료만으로 군 막사를 지은 기억이 생생하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세 살 위 친형의 사진과 자신의 빛바랜 전쟁 중 병영생활 사진을 수첩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김옹은 사병으로 입대해 하사로 전역했다. 사선을 넘은 노병은 이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영북면 한 전통시장의 터줏대감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라 위한 희생 똑같은데… 지자체 ‘보훈 차별’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경기·인천지역에 사는 6·25전쟁 전몰군경 유족은 전쟁 이후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정전 협정 70년이 지난 지금, 이들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체계는 제각각이다. 이에 경기일보는 6·25 전몰군경 유족들 이야기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도가 다른 광역단체와는 달리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군경 가족들에게 보훈명예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지방자치단체 지원 체계가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경기도와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도내 6·25전쟁 전몰군경 유족은 5천711명(국가유공자 유가족 등록 기준)이다. 이는 남편, 아버지가 6·25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 확인되면 배우자가 1순위, 자녀가 2순위 등의 순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자녀는 형제 중 합의에 따른 1명만이 대상이다. 현재 6·25전쟁과 관련한 경기도의 주요 수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6·25전쟁을 비롯해 월남전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한 연 40만원의 참전명예수당(5만2천336명, 총 209억원), 전상군경 등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중 차상위계층(중위소득 50% 이하)이 대상인 생활조정수당 월 10만원(6천771명, 총 81억2천500만원) 등이다. 이외에도 경기지역 4개 보훈시설에 연 500만원을 지급하는 보훈대상위문 사업도 있다. 그러나 이 사업들은 생존한 참전용사나 차상위계층이라는 한정적인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6·25전쟁 전몰군경 유족들에 대한 별도의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강원도는 전몰군경 유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강화를 위해 지난해(월 3만원)부터 이들(4천200명)을 대상으로 월 6만원의 보훈명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인천시 역시 지난 2019년 월 7만원(1천428명 대상)의 유가족 수당을 신설했다. 이런 가운데 기초단체 차원의 수당도 차이를 보여 상대적 박탈감이 우려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31개 시·군에서 지급하는 6·25전쟁 전몰군경 유족들에 대한 보훈수당은 5만~20만원이다. 인천시의 군·구는 5만~10만원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도내 전몰군경 유족들은 타 지자체보다 많은 등 예산 문제가 있을 뿐더러 고령의 참전유공자들이 많아 이들에 대한 예우에 초점을 맞췄다”면서도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전몰군경 유족에 대한 지원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국가보훈부와는 별개인 지자체 수당은 지원 대상, 재정 여건 등이 다르기에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전쟁 휩쓸고 남겨진 사람들… 생존과의 더 큰 전쟁 치러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아버지 유골함이 왔는데 어머니가 어디다 묻어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 충북 증평경찰서 고(故) 우인성 경위는 1950년 여름 트럭에 올라타며 아내와 아들에게 손 인사를 했다. 아들 우승원씨(77·하남 거주)가 5세 때 유일하게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어진 기억은 ‘경찰 가족이면 다 죽는다’는 소문과 함께 급히 짐을 챙기는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 지나가는 미군 트럭을 얻어 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부산에선 단 한 명의 형제인 남동생이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 6월 아버지가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제 우씨와 그의 어머니만 남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생존이라는 전쟁을 치렀다. 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막노동을 하던 어머니가 드럼통에 채워진 물에 발을 씻으려다가 빠져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의 비명을 듣고 병실 밖에서 불안에 떨던 초등학생 때의 기억은 팔순을 바라보는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다. 우씨는 “센 화력의 북한군에 진입의 엄두도 못냈던 팔공산전투에서 아버지가 앞장섰으나 결국 돌아가시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며 “아버지가 안 계신 와중에 우리 어머니가 말도 못하게 고생했다”며 울먹였다. 경남 출신인 김덕순씨(여·72·하남 거주)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없다. 1952년 5월 강원도의 한 전투에서 아버지(고 김정영 육군 하사)가 가슴에 파편을 맞아 세상을 떠났다. 딸의 나이가 1세가 안 됐던 시기였다. 딸 하나에 남편이 없는 김씨의 어머니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등 자녀에게 젖을 물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성인이 훌쩍 지나고 결혼도 해 아이를 뒀던 1989년, 김씨는 국방부에 민원을 넣어 아버지가 묻힌 곳인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묘비 앞에서 그는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그간 서러움에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천 서구에 사는 김낙훈씨(72)도 전몰군경 유가족이다. 아버지(고 김찬호씨)가 백마고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후 김씨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그는 “우리의 생활은 6·25전쟁 순간에 멈춰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전몰군경 유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꼭 수당이 아니더라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예우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19일 국가보훈부가 지난 2021년 발간한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유족이 인지한 예우 지원은 ‘모름’이 67.3%로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등 8종의 다른 대상자 중 가장 낮게 조사됐다. 김태열 한국보훈포럼학회장(영남이공대 교수)은 “초·중·고 교육과정 보훈교육을 통해 전몰군경 유족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증대시키는 등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지자체가 공식 행사 시 전몰군경 유족의 초청과 이들 중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근로 취업 알선, 쓰레기 봉투 지원 등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훈병원 없는 경기도… 아픈 몸 이끌고 ‘원정치료’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한국 전쟁 막바지인 1953년, 대구광역시에 전국 최초의 중앙보훈병원(현 서울 중앙보훈병원)이 문을 열었다. 군인·경찰 출신의 국가유공자들과 그 가족의 진료 및 재활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보훈 수요가 점차 증가하면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인천 등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보훈병원이 순차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전국에서 보훈대상자가 가장 많은 경기지역에는 보훈병원이 없다. 이 때문에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들은 수십년째 보훈 병원이 있는 지역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국가보훈처가 ‘부’로 승격되면서, 보다 강화된 권한과 기능을 활용해 경기지역에도 보훈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일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경기지역 국가유공자들이 처한 의료서비스의 실태를 살펴보고, 14년의 노력 끝에 보훈병원을 유치한 인천의 사례를 통해 경기지역 보훈병원의 설립 필요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원 대상이면 뭐합니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데…” 12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5층에서 만난 김선도씨(가명·79)가 주머니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메모장을 꺼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12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는 9시간 동안 응급 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 55년 전 참전했던 월남전에서 다이옥신계 제초제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였다. 김씨는 보훈 대상자로 지정돼 의료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는 보훈병원이 없다. 의료지원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보훈병원이 있는 서울로 원정치료를 떠나야 하지만 예약 대기만 3개월. 김씨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하루가 급한데, 병원조차 갈 수 없다. 의료지원 혜택이 있으나 마나다”라고 털어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또다른 월남전 참전용사 고영돈씨(72)는 자신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두 다리를 잃은 고씨는 수십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포천에 살고 있는 그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보훈병원까지 왕복하는 시간만 5시간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포천에는 보훈위탁병원 두 곳이 있지만, 그가 진료를 볼 수 있는 보장구센터와 재활의학과는 없다. 고씨는 “점점 나이도 들고 힘도 없어지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읊조렸다. 경기도내 보훈병원의 부재로 경기지역 국가유공자들이 의료지원 혜택에서 외면받고 있다. 경기지역에는 가장 많은 보훈대상자가 있는 만큼 어느 지역보다도 보훈병원 설립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날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 수는 올해 4월 기준 19만4천98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18만8천593명, 2019년 19만191명, 2020년 19만2천93명, 2021년 19만4천361명, 지난해 19만4천433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 보훈대상자 83만3천468명 중 23%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기지역에 보훈병원 설립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국가보훈부는 아직까지 경기지역에 보훈병원을 설립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신규 보훈병원 건립은 보훈대상자 증감 추이와 재정부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며 “준보훈병원을 지정해 운영하는 등 대안을 구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기지역 보훈병원 절실... 인천, 설립까지 14년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경기지역 보훈병원 설립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자체가 앞장서 보훈병원 유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자체 차원에서 보훈병원 유치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인천 보훈병원의 경우에도 추진부터 설립까지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인천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보훈병원이 설립됐을까. 지난 2005년 지역주민들과 지역의원 사이에서 인천과 경기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인천보훈병원을 조속히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사업 타당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게 됐고,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요구가 무산됐다. 본격적인 설립 논의는 지난 2012년 ‘인천보훈병원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지역 내 13개 보훈 단체장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보훈병원 유치를 요청했다. 이에 같은 해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기획재정부에 ‘인천보훈병원 설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정식 신청하는 등 본격적으로 인천보훈병원이 재조명되며 탄력을 받아 지난 2018년 설립됐다. 경기도에서도 보훈병원 유치를 위한 시도가 있긴 했다. 경기도내 보훈병원 유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난해 5월 경기도지사 후보의 보훈 공약에서 한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당시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경기도표 호국보훈’ 공약을 발표하면서 경기도 보훈병원 유치를 공약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 현재까지 경기도에서는 보훈병원을 유치하고자 하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보훈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현주 한국보훈학회 총무이사(중원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훈 의료서비스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한 ‘보은’이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의무”라며 “보훈병원은 보훈대상자들의 수요에 맞춰 진료과목이 맞춰져 있으며 의료비도 전액 지원이 되기 때문에, 위탁병원 등의 대책은 한계가 있다. 보훈병원 설립을 경제 효율성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제언 "보호대상자 최다... 경기도 보훈병원 절실" “경기지역에는 가장 많은 보훈대상자가 있는 만큼 보훈병원 설립이 절실합니다.” 20년 넘게 보훈과 국가유공자 처우에 관해 연구해 온 김태열 한국보훈포럼 회장(영남이공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은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고령의 보훈대상자들이 보훈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있어 열악한 접근성과 경제적 부담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가 20만명에 육박하고, 전국 보훈대상자의 4분의 1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훈학적 관점에서도 지역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경기도에 국립보훈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들은 고령의 몸을 이끌고 서울에 있는 중앙보훈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대중교통으로 3~4시간 동안 가야 하는 처지”라며 “이들이 보훈병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은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가보훈부는 경기권 국립보훈병원을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중장기적 5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근거로 국회 정무위원회와 공동으로 국내 보훈 전문가를 패널로 초빙해 국회정책토론회 등을 거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훈병원 설립이 어려울 경우 대체제 역할을 하는 보훈위탁병원 개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용환 경기도보훈단체협의회장(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장)은 “보훈병원 유치가 어렵다면 보훈대상자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훈위탁병원의 수를 종합병원 만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의 경우 평균 연령이 90세 중반이고 월남전 참전유공자의 경우 70대를 훨씬 넘어 만성 퇴행성 질환 등 몸이 불편한 환자가 많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대다수”라며“다양한 진료과목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을 위탁병원으로 지정해야 이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의료지원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보훈위탁병원 대부분 의원급… 진료과목·접근성 태부족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보훈대상자의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보훈병원의 대체 역할을 하고 있는 보훈위탁병원마저 진료 과목 부족과 낮은 의료접근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에는 617곳의 보훈위탁병원이 있다. 위탁병원은 보훈처장이 국가유공자 등의 진료를 위탁한 의료기관으로 올해 기준 경기지역에는 92곳의 병·의원 및 종합병원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병원이 의원급에 해당하는 병원이어서 진료과목이 한정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과천시의 경우 의원급 병원인 내과와 이비인후과 등 2곳만 보훈 위탁병원으로 지정돼 있어 이외 과목의 진료를 받기 위해선 반드시 다른 지역의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연천군의 경우도 보건의료원 한 곳과 비뇨기과 의원 한 곳 등 2개 병원이 전부이며, 의왕시에는 진료과목이 6개인 병원과 2개인 병원 등 두 곳뿐이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보훈병원에선 28개가량의 진료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보훈위탁병원의 경우 고령환자에게 필수적인 호흡기·내분비 내과 등의 전문의가 없는 의원급 병원이 많아 의료지원의 공백은 메워지지 않고 있다. 보훈위탁병원의 개수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것으로 확인됐다. 31개 시·군 중 21개 지역에는 보훈위탁병원이 3곳 이상 지정돼 있으나, 과천·구리·김포·부천·연천·의왕·포천 등 7개 시군은 보훈위탁병원이 2곳에 불과했다. 특히 부천(9천794명)의 경우 보훈대상자 수가 1만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훈위탁병원은 2곳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천(2천688명)·여주(2천224명)·오산(2천334명) 등 3개 시·군에는 보훈위탁병원이 단 한곳뿐이었다. 이곳 지역들 모두 5년 전에 비해 유공자 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보훈위탁병원의 포화현상도 심화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보훈대상자의 연령대마저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더 절실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보훈대상자 중 70세 이상 고령 인구가 56만5천640명으로 전체(83만3천468명)의 67%를 차지한다. 보훈대상자 이창수씨(가명·80)는 “집 근처에는 치료받기 위한 진료과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보훈병원을 다녀오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린다”며 “종합병원을 위탁병원으로 지정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나라를 위해 젊은 날 희생했던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목숨 바쳐 나라 지켰지만... 돌아온 건 ‘평생 고통’뿐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순국선열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 어김 없이 찾아왔다. 목숨 바쳐 나라에 헌신한 이들을 오래 기억하자는 시기지만, 의도가 무색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고 있는 ‘독거 국가유공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종 지원 제도나 혜택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눈을 감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사회적 관심마저 저조한 상황이다. 이에 경기일보는 국가유공자 지원을 위한 실효 높은 대책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먹는 약이 늘어간다고 푸념하며 혼자 살던 형님이 어느 날 보니 없어. 당장이라도 나라가 당신을 찾으면 목숨 바치겠다던 노인네가 그렇게 외롭게 간 거지.” 현충일을 앞둔 지난 5일 경기일보와 만난 ‘월남전 참전용사’ 조광현씨(76)는 전우(戰友) ‘박씨 형님’을 회상했다. 이들은 20대 초반 해병대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조씨는 “숱한 생사의 고비를 이겨내고 귀국했는데 뒤늦게 들은 박씨 형님의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고 입을 뗐다. 박씨는 전쟁 여파로 각종 질병과 질환을 얻은 데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취업도, 결혼도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부모마저 어린 나이에 여의었던 만큼, ‘형님’은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15년 전 쓸쓸히 홀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이런 게 남 일만은 아니다”라고 응어리를 풀어내던 조씨는 “내 삶도 같다”고 말했다. 그 역시 고엽제 후유증과 각종 후천적 장애 등으로 고단한 삶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정작 힘든 건 신체적 아픔이 아닌 사회적 무관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거 유공자를 돕기 위한 지원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른 채 혼자 초라한 마지막을 맞는 이들이 지금도 주변에 많다”며 “평생 남은 건 집 현관문에 ‘국가유공자’라는 명패와 훈장뿐”이라고 읊조렸다. 조씨와 같은 ‘독거 국가유공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각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의료 서비스와 같은 현실적인 지원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박씨 형님’처럼 국가유공자였지만 숨진 후 ‘무연고자’로 처리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전국에서 숨진 국가유공자 중 49명이 무연고자로 처리돼 지방자치단체 창고나 서고 등에 유해가 보관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바 있다. 7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독거 국가유공자는 총 11만688명으로, 경기지역에선 2만2천282명(20.13%)으로 집계됐다. 인천에도 4천792명(4.32%)이 살고 있지만 일반적 통계만 파악되는 수준이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보행차 등 생활지원용품 지급 △보훈회관 등 여가활동 지원 △보훈 공무원 파견 및 민원 접수 지원 등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지방자치단체 간 정보 공유도 아직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다. 따라서 혼자 남은 국가유공자가 쓸쓸히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용환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는 “나이가 들고 혼자 사는 독거 국가유공자는 사회의 무관심에 놓여 있다.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마당에 ‘의지’만 가지면 실태파악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지자체가 독거 국가유공자를 위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는 세심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외되는 무연고 국가유공자들... 책임 떠넘기기만 [잊지 않겠습니다 ‘호국영웅’]

보호자 및 거주지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못한 채 떠도는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와 지자체가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해서다.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의 ‘나 홀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 현황조차 파악 안되는 무연고 국가유공자 7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국가유공자는 총 56만5천822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35만8천628명(63.3%)이 ‘70세 이상’인 고령자다. 이러한 국가유공자 5명 중 1명은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독거 유공자(11만688명·19.5%)이기도 하다. 경기도민이 2만2천382명(20.13%)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다. 그런데 이 모든 통계 안에 구체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가족이나 주소·직업 등 신원이 불명확한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현황이다. 말 그대로 연고지도, 보호자도 없는 유공자들이기 때문에 전국에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처럼 ‘셀 수 없는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이 홀로 외지에서 사망했을 경우 벌어진다. 통상적으로 국가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범죄 경력 등 부적격 조건이 없다면 국립묘지에 이장되지만, ‘무연고 사망자’로만 처리된다면 국립묘지에 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원특례시에 주민등록을 해둔 고령의 유공자 A씨가 대구광역시로 이사한 후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A씨는 서류상 ‘수원에 거주하는 고령 유공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가 대구에서 사망할 경우 대구시는 A씨를 국가유공자로 분류하지 못한 채 ‘무연고 사망자’로 남길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A씨는 국립묘지에 안치되기 위한 심사 대상에 끼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일러스트 유동수 화백 ■ ‘떠밀기 식 행정’ 속 소외되는 국가 유공자들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보훈기관과 지자체의 소극적인 업무 행태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 장사업무안내 매뉴얼’을 보면,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를 발견할 경우 지방보훈(지)청에 확인해 사망자의 국가유공자 해당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일보 취재 결과, 일선 지자체는 “보훈기관의 고유 업무”라며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경기도 등 지자체 관계자들은 “무연고자가 발생했을 경우 대상자가 국가유공자인지는 시〈2022〉군 또는 보훈(지)청에 확인해봐야 한다”며 “지자체가 별도 관리하는 게 아닌 보훈기관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국가보훈부 역시 무연고로 ‘사망’한 국가유공자의 처리가 “지자체의 고유 업무”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도내 한 지방보훈지청 관계자는 “지방보훈지청에선 국가유공자 등록 및 지원 업무만 하고 있을 뿐 대상자의 가족 관계 등을 분류해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 독거 유공자 중 무연고 여부를 따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자체와 보훈기관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지자체는 현재 사망한 무연고자에 대한 정보 열람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보훈명예수당 명단 등을 확인할 때, 국가유공자 여부를 일일이 수기로 파악하는 바람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타 지역 국가유공자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명단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누락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권익위는 과거 49명의 무연고 국가유공자가 발생하자, 상황 재발을 막고자 지자체 행정 업무 포털시스템을 개선해 지자체 장사 업무 담당자가 국가유공자 여부를 간단히 조회할 수 있게 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에도 아직까지 국가보훈부는 지난 2월 전국 각 시·군에 관련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이 전부다. ■ “실태 파악 및 관리 체계 강화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실태 파악 등 현 관리 체계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열 영남이공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는 “현재 지방보훈(지)청과 일부 지자체간 정보 공유 부재로 타 지역에 주소를 둔 국가유공자 등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지방보훈(지)청과 지자체 간 긴밀한 업무 협업 강화로 관련 업무를 위한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보훈병원 의료진을 이용한 순회진료 건강 검진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자체도 돌봄 서비스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독거 국가유공자의 고독사 방지를 위해 지방보훈(지)청과 지자체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더해진다. 김현제 대한민국상이군경회평택시지회장·평택시보훈협의회장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독사 방지에 필요한 예산과 제도 등을 확대·마련하고, 독거 국가유공자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관리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행복이 기업 비전... 일·가정 양립 ‘多양한 지원’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일·가정 양립 문화로 인해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해서 애사심이 생긴다면 결국 회사 입장에서도 도움되는 게 아닐까요.” 용인특례시 기흥구에 위치한 시스템반도체 전문 업체 위더맥스㈜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이곳에 다니는 모든 직원에겐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총 근무 시간만 맞추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워킹맘들은 어린이집에서 일찍 하원하는 아이들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 가족 행사가 있으면 먼저 퇴근해도 된다. 위더맥스㈜가 ‘전 직원 100% 자율 출퇴근제’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유영두 대표는 “결국 기업엔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과 최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와 애사심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직원 자율 출퇴근제뿐만 아니라 직원들은 난임수술 비용, 배우자 건강검진, 자녀 의료비 등도 지원 받을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선물을 보내는 특별한 이벤트 문화도 마련돼 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 받은 위더맥스는 지난해 경기도로부터 ‘가족친화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인천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난임수술 비용 지원, 유연근무제 등 사내 복지를 적극 확대하며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시흥의 ㈜해천케미칼 역시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중소기업이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복지제도만큼은 대기업 못지않다. 전 직원 건강검진 지원이나 워킹맘들을 위한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사내복지제도는 직원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복지제도 때문일까. 해천케미칼은 직원 수가 20명 수준에 그치지만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에 달할 정도로 높다. 인천에서도 이러한 가족 친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의 오일레스 베어링 전문 제조기업인 ㈜에스지오는 지난 2020년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았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시차 출퇴근제와 유연근무제 등을 적극 운영 중이며, 협력업체와 함께 ‘근로복지기금’도 마련해 학자금 대출 및 생활비 지원 등도 실시하고 있다. 손종훈 에스지오 팀장(41)은 “가족친화기업 인증이 궁극적으로 회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제조업의 우수 인력을 유입할 수 있을 뿐더러 대기업 및 공공기관의 조달청 납품에도 가산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정부·지자체, 대체인력 활용... 가족친화 기업 확산해야”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정부와 지자체가 가족친화인증제도 등을 통해 기업의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여전히 이를 시도할 여력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 모니터링 및 과제’ 보고서(2022년 12월)에 따르면 출산전후휴가제도의 활용 가능 여부를 사업체 규모별로 살펴보면 5~9인 사업체의 ‘필요한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는 응답이 절반 수준(47.6%)인 반면,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는 응답이 90.5%에 달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근로자들이 일·가정양립지원제도를 더 수월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고용노동부가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통해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신 및 출산지원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39.3%)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고 이어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26.4%) △추가 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23.3%) 등이 꼽혔다. 지자체들이 일·가정 양립 문화를 확산하고자 ‘가족친화 일하기 좋은 기업’ 인증사업 등을 추진 중이지만 여기에서도 중소기업의 참여는 저조하다. 경기도는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 조성 등을 위해 지난 2010년부터 ‘가족친화 일하기 좋은 기업’ 인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증을 받은 도내 중소·중견기업은 329곳에 그쳤다. 한 해 평균으로 따져 보면 25곳 남짓의 도내 중소기업만이 가족친화 인증을 받은 셈이다. 인천에서도 ‘가족친화인증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일·가정 양립 성적표는 상이하다. 인천의 가족친화 인증기업 중 중소기업은 148곳, 공공기관은 50곳, 대기업은 18곳이지만 인천의 대부분 업체가 중소기업인 것을 감안하면 현저히 적은 수의 중소기업만이 가족친화 인증을 받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대체 인력풀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포함해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가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대체인력 풀을 보유하면서 관리와 증원을 통해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의 대체인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일·가정 양립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살고 있지만… ‘법’ 안에 없는 내 가족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성남에서 5년째 친구와 살고 있는 박지윤씨(25)는 최근 몸이 아파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지만,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한참을 방치돼 있어야 했다. 직장 때문에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박씨에겐 동거인 친구가 새로운 가족이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연락을 받고 직장에서 달려온 친구는 보호자를 자처했지만, 병원 측은 ‘가족이 아니면 안 된다’, ‘부모님이나 남편이어야 한다’며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1시간 거리에 사는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친척이 도착해 가족 임을 확인 시킨 뒤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몸은 아픈데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며 “함께 사는 친구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걸 보고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인천 부평구에서 수년간 여자친구와 동거 중인 이기범씨(41)는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스스로 사회 속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평가 받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혼인신고라는 절차만 거치지 않았을 뿐 여느 가족과 다름 없이 함께 살고 있지만, 부부 또는 가족이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단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결혼하지 않은 2명이 공동명의로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하니 취득세를 훨씬 많이 내야 한다고 했다”며 “이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게 하려는 속셈인지 몰라도, 수년간 같이 산 가족인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돈을 더 내야 한다니 황당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1인 가구부터 동거 가구 등 가족의 형태도 급변하고 있지만, 관련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은 각종 사회적 제도에서도 배제되고 있어 사회 흐름을 반영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경기도 등에 따르면 국내법상 가족의 범위는 법 제정 이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혈족’만을 가족으로 규정한다. ‘혼인’과 ‘출산’을 기반으로 한 가족만이 가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수십년을 이어온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의 개념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며 평생을 의지하는가 하면 종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련 법에 규정한 가족만을 기준으로 각종 사회보장 지원 및 제도를 운영할 경우 이들은 모두 대상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의 가족 범위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사회보장 제도에서 만큼은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가족이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역시 현행 제도가 급변하는 가족 유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다만 도 관계자는 “상위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가족 범위를 넓히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도에서는 1인가구, 동거인 가족 등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필요한 것들을 반영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서비스를 구축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