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막바지인 1953년, 대구광역시에 전국 최초의 중앙보훈병원(현 서울 중앙보훈병원)이 문을 열었다. 군인·경찰 출신의 국가유공자들과 그 가족의 진료 및 재활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보훈 수요가 점차 증가하면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인천 등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보훈병원이 순차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전국에서 보훈대상자가 가장 많은 경기지역에는 보훈병원이 없다. 이 때문에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들은 수십년째 보훈 병원이 있는 지역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달 국가보훈처가 ‘부’로 승격되면서, 보다 강화된 권한과 기능을 활용해 경기지역에도 보훈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일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경기지역 국가유공자들이 처한 의료서비스의 실태를 살펴보고, 14년의 노력 끝에 보훈병원을 유치한 인천의 사례를 통해 경기지역 보훈병원의 설립 필요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원 대상이면 뭐합니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데…” 12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기도지부 5층에서 만난 김선도씨(가명·79)가 주머니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메모장을 꺼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12년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는 9시간 동안 응급 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 55년 전 참전했던 월남전에서 다이옥신계 제초제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였다. 김씨는 보훈 대상자로 지정돼 의료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는 보훈병원이 없다. 의료지원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보훈병원이 있는 서울로 원정치료를 떠나야 하지만 예약 대기만 3개월. 김씨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하루가 급한데, 병원조차 갈 수 없다. 의료지원 혜택이 있으나 마나다”라고 털어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또다른 월남전 참전용사 고영돈씨(72)는 자신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두 다리를 잃은 고씨는 수십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포천에 살고 있는 그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보훈병원까지 왕복하는 시간만 5시간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포천에는 보훈위탁병원 두 곳이 있지만, 그가 진료를 볼 수 있는 보장구센터와 재활의학과는 없다. 고씨는 “점점 나이도 들고 힘도 없어지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읊조렸다. 경기도내 보훈병원의 부재로 경기지역 국가유공자들이 의료지원 혜택에서 외면받고 있다. 경기지역에는 가장 많은 보훈대상자가 있는 만큼 어느 지역보다도 보훈병원 설립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날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경기지역의 보훈대상자 수는 올해 4월 기준 19만4천98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18만8천593명, 2019년 19만191명, 2020년 19만2천93명, 2021년 19만4천361명, 지난해 19만4천433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전국 보훈대상자 83만3천468명 중 23%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기지역에 보훈병원 설립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국가보훈부는 아직까지 경기지역에 보훈병원을 설립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신규 보훈병원 건립은 보훈대상자 증감 추이와 재정부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며 “준보훈병원을 지정해 운영하는 등 대안을 구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회일반
한수진 기자
2023-06-1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