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일자리 안정화, 경기도서 첫발 뗄까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⑤]

장애인 일자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만이라도 울타리를 더 열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전국 최초로 경기도 내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늦어도 이달 말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해당 연구는 지자체 제도 개선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23일 경기도 내 장애인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는 지난 5월부터 ‘장애인식개선교육 개선방안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상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교육을 제공하는 강사를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전문적으로 키워내자는 취지다. 이 안에는 장애인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라는 직업군을 고품질로 확립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양성된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는 전국 약 5천명(올해 기준)으로 집계된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이 법제화(2016년)되기 이전 민간 장애인단체나 복지기관에서 민간 자격증으로 강사교육을 수료한 인원까지 추산하면 6천여명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공단에서 ‘강사’로 인정하진 않는다. 국내 규정상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가 장애인이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어서, 전체 강사 중 80%가량이 비장애인 강사로 구성돼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는 공공기관·기업·학교 입장에서도, 교육을 제공하는 장애인 관련 기관·단체 입장에서도 강사의 역량이나 질, 자격기준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불만이 오랜 시간 일어왔다. 법정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집합교육 또는 원격교육 등으로 이수는 하고 있지만 ‘대충 시간만 보내면 되는’ 수업처럼 여겨졌던 셈이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 만큼 장애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연구하는 측면으로 이번 과제를 시작했다. 연구 결과에 따라 향후 지자체 등과 제도적으로 논의할 부분이 있을지 고민해보겠다는 구상이다. 이 연구과제에는 ▲장애당사자 강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식개선교육의 외·내적 효과성 ▲장애인 강사에 대한 교육생의 인식 ▲현재 장애인식개선교육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만약 연구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추후 경기도형 장애인식개선교육 모델을 새로 시도할 길이 마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를 수행 중인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 연구에서 장애인식개선강사라는 영역이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적합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장애인식개선센터를 정식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해 장애인 강사가 한층 양성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이달 말까지 최종 결과를 낸 후 지자체 등과 장애인 일자리 확충을 위한 여러 방안 등을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최종보고서가 나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감문화, 지식, 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원책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8년 경기도 안에서는 ‘장애강사의 장애인식개선교육 효과성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당시 연구결과에는 장애강사의 긍정적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됐다며 적절한 교육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또 장애강사의 양적 확대와 역량 강화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이 연구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땅히 일 할 권리…장애인 일자리, 가까이 있어요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④]

구직 장애인들은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취업 장애인들마저 일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층 안정적으로 장애인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일터 내 격차 해소를 위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1. “저의 직업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발달장애인 김기태 씨(40)는 일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의 업무는 길거리에 나가 저상버스를 타고, 시장에서 장을 보는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른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다.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 일자리는 지난 2020년 서울시가 최초로 시도했고, 경기도는 이듬해(2021년)부터 도입했다. 경기도 내에서는 2021년 26명, 2022년 197명, 2023년 536명의 장애인이 채용됐으며 올해의 경우 7월 기준 671명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에 고용됐다. 해마다 증가 추세다. 김 씨는 “버스에서 종종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며 “처음에는 사람들이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두 번 세 번 마주치며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혜선 소담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장애인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은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그들 때문에 늦어지는 버스 출발에 짜증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익숙해질수록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도 익숙해질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2. “내가 장애인이니까 장애인에 대해 더 잘 설명하죠” 지난 2019년, 용인시 기흥구의 다올림장애인권교육센터는 경기도로부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기관으로 공식 지정됐다. 황성환 센터 대표와 10명의 소속 강사들은 매년 300번이 넘게 여러 기업을 다니며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한다. 이들 중 7명이 지체장애인, 그리고 센터와 교류하는 4명의 파트너 강사는 발달장애인이다. 황 대표는 “한 식당에 3년간 강의를 다녔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첫 해엔 식당 직원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해에 강의하러 갔을 때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더니 세 번째 해에는 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배려한 경사로가 식당에 설치돼 있었다”면서 “이 일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황 대표는 “인식개선강사를 장애인으로 채용할 경우,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강의를 하다보니 직장 내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3. 제빵, 네일아트…기업들도 장애인 표준작업장 확대 노력 기업 차원에서도 장애인 표준작업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더한다. 과거 장애인 고용률 1%대에 머물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희망별숲’을 개소하고 중증 발달장애인 62명을 고용해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만드는 제과 제품은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 임직원들에게 제공된다. 또 SK쉴더스는 지난해 민간기업 최초로 청각장애인 네일케어 서비스 '섬섬옥수' 사업에 참여해 장애인 인식개선 및 고용 확대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고용신뢰기업 관련 시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네이버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인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보는 이색적인 전시를 개최하며, 시각장애인을 전시 체험 방문자를 인도하는 큐레이터로 고용해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을 맞췄다. #4. 장애인이 장애 느끼지 못하게…일터 바꾸는 스웨덴 스웨덴은 유엔의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고용 과정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장애인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고용에 관해선 강력한 차별금지법이 시행 중이다. 지난 2008년 제정된 이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은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사회는 신체적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기업이 설계된 것 또한 차별이라고 보고, 기업들에게 장애인이 일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건물과 시설 등을 개·보수하게끔 했다. 그 결과 올해 스웨덴의 장애인고용률은 63%에 달한다. 이혜선 소담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앞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터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도 “장애인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됐을 때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 또한 취업을 포기하기보다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 "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6580354 장애인 고용의무 위반... 돈으로 때우는 기업들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②]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9580235 10명 중 9명 ‘구직 포기’…스스로 '일자리' 놓는 장애인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③]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001580264

10명 중 9명 ‘구직 포기’…스스로 '일자리' 놓는 장애인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③]

수많은 장애인이 일자리 시장에서 외면 당하면서 결국 10명 중 9명은 구직 의사마저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주 원인이 '체념' 때문이라 보고, 장애인 취업 상황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 및 인식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기 싫어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포기" 2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공단 고용개발원은 지난해 10월23일부터 12월24일까지 전국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1만1천명을 대상으로 장애인경제활동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올해 4월 발행한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보고서’에 담겼는데, 국내 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 중 일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한 인구는 전체의 10.1%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적·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장애인들을 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애매한 소득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배제될까봐', '계약직 등으로 일하다 재취업할 엄두가 안나서', '취업 기관·기업이 제한적이라 노력해도 무의미해서', '일자리를 구해도 정당한 임금이나 대우를 받지 못해서' 등이다. 한은란 소담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활동가는 “장애인 당사자조차 '장애인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도 거의 없을뿐더러 일을 하게 돼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등 고용과 근무 상황에서 반복되는 좌절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장애인은 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고 이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도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장애인이 일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기엔 그 기저에 '체념'과 같은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11개월마다 바뀌는 직업…장애인 고용불안정성 심각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구해도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느냐는 건 또다른 문제다.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더라도 대부분 짧은 계약직에 단순 노동직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상 현장에서 장애인 직원에게 주어지는 계약기간은 '11개월'이고, 장애유형별 적합한 직무가 아니라 그저 ‘장애인 일자리’로 무분별하게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혜선 소담장애인자립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국가와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조차 낮은 편이다 보니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며 “장애인이 매년 계약직을 전전해야 하는 이유는 장애 특성에 맞는 일자리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장애당사자 역시 "대학교를 졸업한 2021년부터 올해까지 직업을 4번이나 바꿨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1개월 일한 계약직 자리들이었다"며 "취업 자리는 적은데 하려는 장애인은 많다 보니 어떤 공고문에서는 '3년 이상 재계약은 안 된다'고 못 박기도 한다"고 전했다. ■ 장애인 업무능력 떨어진다는 편견 깨야 전문가들은 장애인 일자리 개선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사내복지 일환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고용하거나, 경로당에서 노인에게 무료 또는 저가로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만큼의 보수를 관(官)이 지급하는 대안 등이 제시될 수 있다. 국내 법정의무교육 중 하나인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장애인 강사에게 맡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울러 해외에서 장애인에게만 문을 열고 있는 여러 ‘유보직종’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경우 '자판기 운영'을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고, 영국도 ‘주차안내원 및 승강기안내원’을 장애인만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만 '안마'(시각장애인)', 스웨덴 '복권판매업'(시각장애인) 등도 마찬가지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의 업무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고용주의 인식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 출장이나 외근 등의 환경에서 장애인이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것조차 차별”이라며 “미국은 ‘장애인법’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미국 노동부가 만들어 놓은 직업 사전에 따르면 직무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업무가 아닌 것에서 장애가 영향을 끼치는 이유로 고용을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차별이라고 간주하는 사례도 있듯 우리나라도 법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세현 한신대 재활치료학과 교수 또한 “장애인 고용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원인은 국내 처벌이나 벌금 등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스웨덴, 미국 등은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을 명확히 세워놓고 이를 지키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한국 또한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도록 지금보다 강한 법제화를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관련기사 : "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6580354 장애인 고용의무 위반... 돈으로 때우는 기업들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②]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9580235

장애인 고용의무 위반... 돈으로 때우는 기업들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②]

장애인 고용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기업의 소극적 자세’와 ‘장애인 취업에 부적합한 현실 여건’ 등이 섞여있다. ■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 못 맞춘 기업 428개중 93개가 경기도에 30일 경기일보는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을 맞추지 못한 기업을 별도로 살펴봤다. 이번 분석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공개한 ‘장애인 의무고용률 1.55% 이하 달성 기관‧기업’의 명단을 토대로 했다. 이때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을 ‘3.1% 미만’이 아닌 ‘1.55% 이하’로 설정한 이유는 ‘장애인 채용에 극심하게 소홀한 기업’을 분석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3.1% 이하까지 폭을 확대할 경우 명단에 추가될 기관·기업 등은 더 늘어난다. 지난해 정부가 공개한 1.55% 이하 명단 안에 포함된 전국 기관 및 기업은 457개로 집계됐다. 이 중 민간기업이 428개(93.6%)다. 경기도에 한정하면, 민간기업 93곳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244곳)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단, 도내 공공기관 등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고 있어서 이 수치 안에서 제외됐다. 경기도는 3위인 부산(16곳)과 비교하면 5.8배, 전국 꼴찌인 전북(1곳)과 비교하면 93배에 달하는 기업이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 수도권에 기업이 많다는 특징도 있지만, 수치적으로 타 시·도에 비해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도내 기업도 건설업체 2곳, 제조업 1곳, 도매 및 소매업체 1곳 등 총 4곳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년 연속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기업이 전국 65곳으로 집계된 상황에서, 제조업 7곳·서비스업 3곳·건설업 1곳 등 총 11곳이 경기도에 있기도 했다. ■ 장애인 의무고용 가장 안 하는 ‘제조업’ 경기도에 가장 많이 포진한 산업체는 제조업체다. 전국 장애인 표준사업장 408곳 중 252곳(61.8%)이 제조업체일 만큼, 얼마든지 장애인을 고용할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경기도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1.55%도 안 되는 기업 10곳 중 6곳(62.37%)은 제조업체였다. 상시근로자 ‘1천명 이상’인 기업 중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12곳을 살펴보면 4곳(33%)이 제조업체였고, ‘500명 이상~1천명 미만’인 기업 중에서는 33곳 중 19곳(57.6%)이 제조업체였다. 이어 ‘300~499명’인 48곳에서도 35곳(72.91%)이 제조업체였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장애인 채용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 회사는 장애인 의무고용제 기준에 따르려면 30명 이상을 장애인으로 채워야 한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수의 장애인을 고용하기에는 적합한 직무도 없고, 또 휠체어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위해 회사 전반을 개·보수 해야 하는데 그런 비용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 지난해 지불한 장애인 고용부담금만 1천500억원 현행법상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은 대상 기업들은 기준에 미달한 만큼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을 경우, 고용하지 않은 장애인 수 한 명당 최대 206만740원까지 부담금을 내는 식이다. 이에 발 맞춰 정부는 장애인 취업 지원을 위한 지원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의무고용률을 초과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최대 9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최대 10억까지 지원하는 등 8가지 지원 제도를 펼치는 식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돈을 내더라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경기도만 봐도 기관‧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냈던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지난 한 해에만 1천564억5천500만원에 달했을 정도다. 장애인 고용 컨설턴트 관련 한 전문가는 “현장에서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며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주고 시설 비용을 정부에서 대준다고 해도 장애인 고용을 고려조차 안 하기 때문에 의무고용률도 대체적으로 낮은 것”이라고 전했다. 남세현 한신대 재활치료학과 교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일을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잘 깨지지 않고, 정부에서 장애인을 고용할 때 지원해주는 시설 보조금 등에도 기업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기업의 장애인 고용이 저조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26580354

"내가 장애인이라 안 되는 거였구나" [일터의 문턱, 장애를 넘어①]

차가운 일자리 시장에서 장애인은 유독 춥다.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회사에 벌금 형식의 부담금을 물리지만, 기업들은 돈을 내더라도 장애인 채용을 피한다. 단순히 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위해 취업을 돕자는 게 아니다. 이들을 사회로 이끌어 고립을 막자는 취지도 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내일의 나’를 위한 일자리 실태를 경기도에 맞춰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1. “죄송하지만 같이 일하긴 좀…” 이영만(48·수원시 권선구)은 오늘도 면접에서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시각장애와 더불어 선천적으로 단어나 문장 표현이 잘되지 않는 언어장애를 타고난 영만은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매번 불합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육원을 전전하던 영만은 원내 원장의 폭력에 질려 무작정 탈출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추위와 더위를 맨몸으로 버티던 어느 날 정체 모를 손에 이끌려 따라갔다. 도착지는 전남 한 섬의 양식장. 끊임 없이 김을 매도록 강요 받았지만 급여는 없었다. “계속 인신매매 당하며 안 해본 일이 없다”던 영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내가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평생 그의 능력과 재주는 취업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 학력 없는 장애인이라는 이유였다. #2. “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도와” 뇌병변장애인 황준하(27·안양시 동안구)는 어릴 때부터 장애인복지사가 꿈이었다. 자신이 장애인이었기에 다른 장애인을 돕고 싶어서다. 대학교에서 인간재활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기관에 처음 사회복지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자신이 복지기관 직원으로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그에게 ‘기존’ 비장애 복지사들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면서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돌보냐”는 질문을 빙자한 괄시가, 차가운 거절보다 아프게 꽂혔다. 준하는 그날 일을 회상하며 “모멸감이 들었다”고 했다. #3. “장애인을 뽑긴 하는데, 걸을 수는 있어야죠” 꽃 같은 스물셋, 지체장애가 발병한 박재숙(57·수원시 팔달구)은 현재까지 30여년간 천천히 근손실이 진행됐다. 그동안 자영업 생활을 지속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게 됐다. 자영업을 포기한 건 50대 초반. 장애인 구직 시장에 대해 전혀 몰라 막막했지만, 재숙은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도 분명 일할 곳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장애인 구인광고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그마저 이력서를 넣으면 모두 거절당했다. 재숙이 마지막으로 취업 지원을 했던 건 지난 2017년, 한 대학에서 장애인 일자리를 구할 때였다. 면접에 오라는 전화에 수동 휠체어를 밀고 장소로 찾아갔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찾는 사람은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사이에서도 차별 받는 기분이 들었다”던 재숙은 면접관들에게 “제가 일 할 수 있을까요?” 물었다. 돌아온 답은 결국 거절이었다. 정중한 말들 뒤로 ‘휠체어는 안 된다’는 진의가 담겨있었다. ■ 영만·준하·재숙은 왜 취업하지 못할까 장애인 고용지원금 혹은 장애인 고용부담금.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쓰며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고 있음에도 장애인 취업률이 진작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공공기관은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올해의 경우 장애인 의무고용률 기준은 공공기관 3.8%, 민간기업 3.1%로 정해졌다. 하지만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 기업 상당수가 이 고용률을 수십년째 맞추지 못한다. 최근 들어 공공기관은 그나마 가까스로 맞추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민간기업의 평균 장애인고용률은 2.99%에 그친다. 경기도에 한정해도 다를 바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현황만 봐도 전체 대상 기업 5곳 중 1곳이 경기도 기업(21.7%)이었다. ■ 전국 장애인 22% ‘경기도민’…道 장애인 고용률은 6위 26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기도 내에는 58만6천421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전국 장애인의 22% 비중으로 최다치다. 이 중 생산가능연령(15~64세)으로 볼 수 있는 ‘만 15세 이상 인구’가 56만7천여명이다. 이들의 취업률은 37%(20만9천832명)로, 전국 평균(34.21%)보단 소폭 높았다. 하지만 17개 시·도로 나눠보면 ▲충남(44.4%) ▲울산(44.2%) ▲강원(43.9%) ▲광주(40.9%) ▲전남(38.8%) 다음에 머물렀다. 전국에서 장애인구는 가장 많은데 취업률은 6위 수준이었다는 의미다. 기업을 중심으로 봐도, 경기도 내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34.9%)은 비장애인 고용률(64.7%)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의무제도가 도입된 지 30년 이상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며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고용부담금 납부에 대한 부담이 적어,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장애인을 위한 직무가 없다’, ‘산재가 우려된다’ 등을 이야기하면서 ‘벌금을 내더라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보이는데, 이는 법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그만한 대가를 치렀으니 괜찮다’는 매우 위험한 사고”라면서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건 장애인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이러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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