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학교폭력에 방관자 된 친구들

'가해·피해' 관점에서 '가해·피해·방관자' 관점으로"

“선생님께 알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걸 빌미로 나를 때릴까봐 알리지 못했어요.”

 

지난 1일 동급생 한 명이 교실에서 집단 폭행당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본 A군은 폭행 사실을 학교 측에 알리지 못했다.

 

보복 폭행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9일 오후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몰려다니는 무리들에게 ‘찍히면’ 그 때부터 집단 괴롭힘이 시작된다”며 “돈 상납도 또 다소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찍히기 싫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괴롭힘 당하고, 맞고 있는데도 반 친구 누구도 나서주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 같고, 말을 거는 것조차 껄끄러워 마치 내가 왕따가 된 기분이었어요.”

 

지난 3일 같은 반 여중생에게 5시간 동안 폭행을 당한 B양의 말이다. B양은 지난 1년여 동안 교실 등에서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는 없었다.

 

학생들이 주변 친구가 맞는 것을 모른체하는 방관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

 

친구가 눈 앞에서 집단 폭행을 당해도, 또 1년 동안 괴롭힘을 당해도 학생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자신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전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성환재 소장은 “폭력에 상시 노출된 아이들이 친구의 고통을 ‘그’만의 고통으로 치부하는데서 비롯된다”며 “이처럼 폭력에 둔감해지거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방관자 그룹에서 가해자 그룹으로 넘어가는 학생도 있다.

 

B양은 C양과 D양 등에게 폭력을 당했는데 이 가운데 C양은 당초 B양과 친한 친구였다.

 

B양은 “처음에는 D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던 C양이었지만 내가 도망치겠다고 했을 때 나를 잡은 건 다름 아닌 C양이었다”고 말했다.

 

방관자에서 가해자로 학생들이 빠르게 폭력에 물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 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자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을공동체 교육연구소 김수동 사무국장은 “학교 폭력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절대 근본 원인을 치유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다수 방관하는 아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학교 폭력이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방관자에 그치고 있는 아이들을 방어자로 참여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환재 소장 역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용인은 결국 가해.피해를 넘어 모든 아이들의 폭력성향을 키우는 꼴”이라며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는 물론 교육청과 학부모 모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민감한 반응이 아이들에게 폭력의 부당성을 몸으로 인식하게끔 할 뿐 아니라 재발 방지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며 “학교 이미지와 교사 평가 등 외부적인 환경에 따라 학교 폭력 문제를 처리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결국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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