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공백에 고통 커진 희귀질환자,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의료 파업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희귀·중증환자들이다. 이들은 전공의 비중이 큰 상급종합병원에서 정기 진료·처방을 받거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공백이 4개월여 되면서 희귀·중증환자들의 고통이 배가되고 있다.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음으로 내몰리는 건 아닌가 불안과 우울까지 극심해졌다. 의·정 갈등 장기화가 대학병원 등에서만 처방 가능한 특정 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겐 훨씬 위협적이다. 수술을 받지 못해 애태우는 환자도 많다. 정부가 전공의가 대거 빠져나간 대학병원 등을 중증·응급 진료 중심으로 비상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희귀·중증질환자에겐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고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중증질환연합회에선 “환자를 의·정 갈등의 도구로 쓰는 것을 멈추고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은 고통의 긴 터널에서 신음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그 가족들은 일상이 망가져 버렸다고 한다. 경기일보가 의료 공백 속 사선으로 내몰린 희귀질환자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희귀질환자의 76%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데 전공의가 없어 수술과 치료 지연에 고통이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동네 병의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이들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국내 희귀질환은 지난해 기준 1천248개다. 특발성 폐섬유증이 가장 많고 이어 비가역적 확장성 심근병증, 전신홍반루푸스, 크론병, 모야모야병 등의 순이다. 희귀질환자는 총 70만명으로 추정된다. 매년 5만여명이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2021년 희귀질환 발생자는 5만5천874명이다. 이 중 유병인구가 200명 이하거나 질병 분류코드가 없는 극희귀질환자는 1천820명, 기타 염색체 이상 질환자는 87명으로 밝혀졌다. 유병인구 200명 넘는 희귀질환자는 4만3천79명이다. 경기도가 1만1천377명(26%)으로 가장 많다. 인천은 2천446명(5%)다. 희귀질환은 발병 원인이 명확치 않아 치료가 쉽지 않고 장기간 지속 관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한 설문조사 결과, 희귀·난치성질환자 10명 중 8명은 근본 치료제가 없다고 했다. 치료제가 있어도 처방받아 복용하거나 투약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0%에 달했다. 절반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꼽았다. 투병 전보다 생활형편이 낮아졌다는 비율이 65%였다. 희귀질환자들은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더 이상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된다. 위급상황 시 신속 대응체계 구축은 물론 세심한 지원체계가 절실하다.

[사설] K-컬처밸리 해제, ‘경기도-CJ’ 송사로 번지나

경기도가 K-컬처밸리 사업 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했다. 사업자인 CJ라이브시티의 무리한 요구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김현곤 경제부지사는 “CJ라이브시티가 사업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지체상금 감면을 요구했고 무리한 요구로 인해 합의가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지체상금 감면 요구가 해제 결정에 이른 결정적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CJ 측에 지체상금을 감면해주면 경기도의 특혜나 배임 소지가 있다는 것이 경기도 입장이다. K-컬처밸리는 고양시 장항동 일대에 추진되는 문화 인프라 조성 사업이다. 고양시는 물론 경기 북부에서 예가 없는 대형 사업이다. 축구장 46개 크기인 30만2천200㎡에, 사업비만 1조8천억원이다. 2015년 정부가 발표했고, 이듬해 경기도가 CJ라이브시티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샀다. 2018년 이후 사업 승인, ‘경기도-고양-CJ라이브시티’ 간 3자 협약 등이 이뤄졌다. 최종 완공시기는 2024년 6월30일로 정해졌다. 이후 CJ그룹의 내부 자금 경색 사태가 있었고,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도 있었다. 지난해 4월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협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때 CJ 측이 완공 시기를 늦춰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한 지체상금 감면도 함께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도가 ‘같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CJ 측은 ‘지체 책임’을 전혀 다르게 본다. 공개적인 사업 지연의 요소는 두 가지였다. K-컬처밸리에 필요한 전력 신청과 일산 한류천 정비다. 전력 문제는 경기 남부 반도체 클러스터와 겹쳤다. 반도체 전력이 패스트트랙으로 우선되면서 K-컬처밸리는 순위에서 밀렸다. 악취를 유발하는 한류천 정화 사업도 경기도, 고양시의 이견이 있었다. 두 문제 모두 사업자 의지와 다소 거리가 있는 외부 요인이라는 것이 CJ 측의 설명이다. 지체상금 감면을 요구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진행된 공정은 17%다. 협약 해제 때 업체 측 피해가 크다. CJ 측에서 이미 법리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지루한 소송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고양시민 등 경기 북부 주민들의 사업 재개 요구도 경기도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공사 중단 중이던 4월에도 킨텍스한류월드공동주택연합회 등의 정상화 요구가 있었다. 경기도가 대안이라고 발표한 ‘공영개발’도 주민 반발을 누그러뜨릴 정도의 구체안은 아니다.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가 소송을 하면 그 피해는 ‘공정 17%의 땅’을 보고 있어야 할 고양시민이다.

[사설] 지하차도 차단시설, 특정 업체 독식에 설치율도 낮다

지난해 7월 24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이런 대형 참사를 겪고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하천 범람 및 지하공간 침수 대비 태세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하차도 1천86곳 중 182곳이 침수 우려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159곳의 지하차도가 침수 위험에 따른 진입통제 기준이 없었고, 132곳은 침수 피해 시 차량 진입 차단시설이 없었다. 터널 내부(163곳) 및 진출입로(157곳)에 피난 및 대피 시설도 마련되지 않았다. 지하차도 안전대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경기도의 지하차도 차단 시설과 시스템 등에도 문제가 많다. 지하차도 차단설비는 호우 때 지하차도에 폐쇄회로(CC)TV, 전광판, 수위계 등을 설치해 수위가 일정 수준(1차 7㎝, 2차 15㎝)에 도달하면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차단막이 내려오면서 차량 진입을 막는 장치다. 경기도와 각 시·군은 올해 112개의 차단설비를 계획하고 있다. 장마 전까지 설치 완료된 곳은 40개에 불과하다. 도내 지하차도 10곳 중 6~7곳은 집중호우로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도 진입을 막을 장치가 없어 침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차단설비 설치율이 35% 정도에 그친 것은 한 업체가 일감을 독식하고 있어서다. 도와 지자체는 조달청에 등록된 한 우수조달물품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 업체에 계약이 몰리면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이 업체가 조달청의 ‘터널진입차단설비’ 카테고리에 단일 업체로 등록돼 있어 담당 공무원들이 ‘편의’를 이유로 여기와 수의계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특정 업체의 독식에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달청에 등록된 우수업체와의 계약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곳에 맡겨 설비공사가 늦어지면 다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데도 계약하기 편하다며 이 업체와 계약했다. 112개 지하차도 차단설비 중 90%가 넘는다. 도 관계자는 “조달청 등록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독점처럼 보이는데 한 업체를 의도적으로 몰아준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업체 대표가 우수조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인맥과 지위를 이용한건 아닌지 의혹이 일고 있다. 도내에 지하차도 차단설비 공사를 할 수 있는 업체는 여러 군데다. 의혹을 해소하고 신속한 사업 진행을 위해서라도 특정 업체 독식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도와 지자체는 지하차도 차단시설 설치 후 작동 여부만 점검할 게 아니라 구조물 규격 등도 제대로 살펴야 한다. 재질 부적합, 불량 등이 도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사설] 8곳 조사했는데 8곳에서 발암물질 나왔다

경기일보가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에 대한 유해물질 조사를 했다. 언론사가 직접 관련 조사를 벌인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학교 운동장, 트랙 등의 유해물질 공포가 크다. 공신력 확보를 위해 도의회 대표자가 함께했고, 도교육청도 지원했다. 검사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맡았다. 조사 대상은 도내 4개 초등학교와 4개 유치원의 놀이터다. 결과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조사 대상 모두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국가표준기술원이 정하는 탄성포장재 인증 기준이 있다.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 총량 ‘㎏당 10㎎ 이하’다. 초등학교 4곳에서 평균 25㎎가량이 검출됐다. 양주시 A초등학교의 놀이터에서는 상층부에서 23.1㎎, 하층부에서 28.5㎎이 검출됐다. 평택시 B초등학교에서도 상층부 12㎎, 하층부에서 15.2㎎이 검출됐다. 하남시 C초교, 의정부시 D초교에서도 비슷한 양의 PAHs가 검출됐다. 유치원 4곳의 결과도 다르지 않다. 이번 시험에서 검사한 PAHs 18종 가운데 가장 많이 검출된 것은 플루오란텐과 피렌이다. 플루오란텐은 석탄 연소나 도로 교통, 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화수소다. 간 손상과 유전자 독성 등 문제를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피렌은 호흡기 질환과 간 손상의 위험이 있다. 일부 유치원에서는 중국산 제품에서 검출돼 학부모들의 공분을 샀던 프탈레이트가 발견됐다. 성조숙증이나 자폐를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상당한 충격이다. 검출된 발암·유해물질의 비중은 다르다. 허용 또는 기준치를 크게 상회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채취된 바닥재의 상층부와 하층부 사이에도 검출량의 차이는 있다. 심각한 발암물질이 있는가 하면 유해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물질도 있다. 기존에 알려졌던 상황도 있고 새롭게 드러난 상황도 있다. 이 모든 차이를 무시하고 극단의 공포로 몰아가면 안 될 것이다. 우리도 불특정 다중에 과도한 공포 유발은 경계한다. 다만 시급히 해야 할 제언이 있다. 전수조사다. 경기도의회 안광률 교육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도 말했다. “전수조사를 거쳐 개선 공사 등 근본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번 조사가 남긴 최우선 과제는 전수조사의 필요성이다. 4개 초등학교와 4개 유치원을 조사했는데 모두 검출됐다. 이쯤 되면 모든 놀이터가 같은 사정일 것으로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이제 경기일보 조사가 아닌 관계 당국이 나서는 조사가 필요해졌다.

[사설] 하이트진로, 가짜 생맥주 사태에 진짜 책임 없나

하이트진로가 판매하는 ‘필라이트 후레쉬 생(生)’이 논란이다. 이 제품은 소비자 인식이나 규정상 맥주가 아니다. 국내 시판되는 맥주는 맥아 함량이 70%를 넘는다. 주세법에 의하더라도 맥주는 맥아 함량이 10% 이상이어야 한다. ‘필라이트’는 맥아 함량이 10% 미만인 발포주다. 맥주도 아니고 생맥주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일부 주점·식당에서 ‘생맥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있다. 명백한 소비자 우롱이다. 생맥주 값을 받았다면 불법이다. 본보 취재진이 판매 현장을 도내 전역에서 취재했다. 지난 27일 오후 수원특례시 영통구 영통동 한 주점. ‘필라이트 후레쉬 생(生) 20L’를 생맥주처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생맥주 500㏄ 3천500원’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각 테이블 메뉴판에도 ‘필라이트 생맥주’라고 적혀 있다. 앞선 21일 남양주시 호평동의 한 주점에서도 같은 상황을 확인했다. ‘필라이트 살얼음 생맥주’로 소개하며 ‘필라이트 생 500㏄’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필라이트 후레쉬 생(生)’의 생맥주 둔갑 논란은 이미 있었다. ‘속았다’거나 ‘속을 뻔했다’는 소비자 불만이 최근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제조사인 하이트진로 측은 “‘필라이트 생’으로만 표기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고 공식 해명했다. “메뉴판이나 판매가는 업소에서 결정한다”며 책임 없음도 주장했다. 하지만 시중의 ‘생맥주 사칭’은 계속 발견된다. 소비자들의 불만과 분노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생맥주 둔갑’의 1차 행위자는 판매하는 주점·음식점이다. 면책(免責)을 주장하는 하이트진로 측의 해명이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이번 논란의 원천적 요인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모든 혼란은 모호한 제품 자체에서 출발하고 있다. 앞선 ‘필라이트’ 상품에 명확한 분류는 없었다. 지금도 유통매장에서는 맥주와 뒤섞여 있다. 사실 그때부터 많은 소비자들은 ‘가성비 좋은 맥주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이 왜곡을 회사만 모르고 있었나. ‘필라이트 후레쉬 생(生) 20L’이라는 제품명은 더욱 노골적이다. ‘생(生)’이나 ‘20L’는 생맥주를 연상시킨다. 제품명에서부터 이미 혼란이 시작됐고, 그 모호함을 시중 판매자들이 악용한 것이다. 아닌가.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조언을 참고해 볼 만하다. “법을 판정할 때 오인 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만큼 오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이 해석은 ‘필라이트 후레쉬 생(生) 20L’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모호함의 상술인가. ‘우리는 생맥주라고 꼭 짚어 쓰지 않았다’거나 ‘브랜딩 스티커를 시중에 배포했다’는 해명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소비자의 불만은 계속 나오고 있다.

[사설] 22대 국회의 품격 있는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22대 국회가 지난 금요일 상임위원장을 선출함으로써 일단 원 구성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절대 과반수 의석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정폭주를 막겠다며 7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보이콧하다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22대 국회가 원 구성을 끝내고 이번 주 2일부터 4일까지 대정부 질문을 하고 공식적인 개원식은 5일 개최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22대 국회는 민생 문제를 비롯해 산적한 국정 현안을 의회 차원에서 해결할 막중한 책무가 있으며, 이것이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다. 그러나 지난 1개월 동안 여야 정당이 보여준 22대 국회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회 관행을 무시하고 주요 상임위원장을 독차지 하는가 하면 이에 반발한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회 자체를 보이콧해 지난 1개월 허송세월했다. 지난 21대 국회가 정상화하는 데 무려 47일 걸린 것과 비교하면 28일 만에 원 구성을 끝냈다는 차원에서 22대 국회가 자랑할 수 있을까. 최근 여야 정당이 22대 국회 임기 개시 후 보여준 의정활동을 보면 과연 우리나라 국회가 전 세계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이상의 조건을 갖춘 국가로서 미국 등 8개국밖에 없는 ‘30¯50클럽’의 일원이고 세계 경제순위 10위에 걸맞은 위상을 가진 선진국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난 5월30일 임기 시작 이후 22대 국회는 여야 정당이 계속해서 원 구성을 둘러싸고 싸움만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지난 5월30일 ‘채상병특검법’과 ‘한동훈특검법’을 각각 1호 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특검법 외에 ‘민주유공자예우법’ 등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모두 재발의할 방침이다. 이에 국정에 막중한 책임을 진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력하게 반발만 했다. 강력한 야당에 대해 특별한 대안 제시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야당이 제시한 원 구성에 합의했으니, 그동안 여당의 책무를 방기한 것은 아닌지. 또 지난달 21일 열린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된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의 발언 내용이나 행태를 보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참으로 입에 담기 민망한 발언을 하는 등 이런 장면을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보면 그들은 과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볼까 참으로 부끄럽다. 22대 국회는 선진국에 걸맞은 의정활동을 하기를 촉구한다.

[사설] 시흥~수원 고속화도로, 군포는 땅만 주고 이용 못한다

군포시민의 요구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시흥~수원 고속화도로’ 노선 관련이다. 시흥 금이동 도리분기점에서 의왕 고천동 왕곡나들목을 잇는다. 총 길이 15.2㎞의 왕복 4차로로 건설된다. 이 중에 군포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5.4㎞다. 수리산도립공원, 납덕천골, 당동2지구 등을 지난다. 이 구간에서 군포 내 다른 도로와 연결되는 지점은 없다, 군포를 지나지만 군포를 경유하지 않는 사실상의 ‘깜깜이 봉인열차’ 노선이다. 이를 억울해하는 것이다. 하은호 시장은 “계획대로라면 2027년 착공 후 5년간 공사가 이뤄지고, 이 기간 터널 및 교량 공사에 의한 소음과 분진 등을 견뎌야 하며, 고속도로가 개통되더라도 군포시민의 직접 이용은 어렵고 타 지역 교통 편의를 위해 군포시민은 고통만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포지역 시민단체의 항의도 계속되고 있다. 군포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수리산도립공원 관통 문제와 군포 연결 부재를 이유로 공사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하 시장의 주장, 시민단체의 요구가 다 맞다. 시흥과 수원 고속화도로는 특정 지역만을 위한 전용 도로가 아니다. 이어지는 구간에 고른 교통 편의가 분배돼야 한다. 공사의 설계를 보면 군포 구간 5.4㎞의 90% 이상이 대심도 지하터널, 교량 시설물로 통과한다. 다른 도로와 연결될 나들목이나 지상 연계 계획이 없다. 바로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군포시가 입장을 밝힌 건 이미 2020년 11월이다. 경기도에 ‘수용 불가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무시당했다. 이번 사업은 민간투자방식이다. 금호건설 등이 참여한다. 이들이 군포시민의 희망을 외면했다. 지난해 9월 당초 노선을 기준으로 KDI 민간투자사업 적격성 조사를 통과했다. 지난 4월에는 역시 같은 내용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 평가 준비서를 제출했다. 경기도의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함께 민간투자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3자 공고, 실시협약 체결 및 실시 계획 승인 절차 등을 거쳐 2027년 착공할 수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경제성이 없어 군포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대심도 지하터널 등에서 지상으로 연결하려면 예산 부담이 크다. 단조로운 노선을 선호하는 민간업체 입장은 당연하다. 긍정적 답변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이를 관철시킬 희망은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의 심의와 평가란 게 결국 이런 논의를 해 가는 절차 아닌가. 100년을 가야 할 도로 사업이다. 군포시민에게 ‘100년짜리 봉인열차’를 안기는 셈이다. 안 될 일이다.

[사설] 대체 매립지 3차 공모 무산, 몇 차까지 가려는 건가

수도권 대체 매립지의 3차 공모가 무산됐다. 지난 3월부터 이달 25일까지 진행된 3차 공모에 단 한 곳의 지방자치단체도 신청하지 않았다. 쓰레기는 차오르는데 대체 매립지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쓰레기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공모는 인천시, 경기도, 서울시·환경부가 참여한 ‘4자 협의체’가 처음으로 함께 진행했다. 2차 공모 때보다 500억원 증가한 3천억원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최소 부지면적 기준도 기존 130만㎡에서 90만㎡로 줄였다. 지난 4월 설명회에 41개 시·군·구가 참석해 기대를 모았으나 실제 공모에는 아무도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 ‘매립지는 혐오시설’이란 인식에 매립지 확보가 어렵다. 4자 협의체는 공모 조건 완화 뒤 4차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다. 앞선 공모 때와 달리 지자체들이 후보지 주변 주민 동의(50% 이상)를 얻지 않고 응모할 수 있게 조건을 바꾸고, 부지면적 기준을 더 줄이고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는 1992년 인천 서구에 조성, 30년 넘게 수도권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인천의 수도권매립지는 1·2매립장이 가득 차 2016년 문을 닫을 예정이었지만 대체지를 찾지 못해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3-1 매립장을 사용하기로 했다. 2018년 103만㎡의 매립장을 추가 조성한 것인데 여기도 60%가 찬 상태다. 이곳으로 매일 4천900t의 쓰레기가 반입된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체 매립지가 바로 결정 돼도 가동까지 8~10년은 걸려 대체지 선정을 서둘러야 한다. 인천, 경기, 서울과 환경부의 고민이 깊다. 2014년 4자 협의체를 구성해 대안을 찾고 있지만 1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다급한 곳은 매립지가 있는 인천이다. 인천 서구는 인구 60만명의 도시가 됐다. 지금도 주민 민원이 많아 매립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 서구의 민주당 김교흥(서구갑)·이용우(서구을)·모경종 국회의원(서구병)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립지 확보 실패 원인으로 대통령과 환경부가 뒷짐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총리실 산하 대체 매립지 확보를 위한 전담기구의 진척이 전혀 없다”며 “윤 대통령은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환경부는 발 벗고 뛰라”고 요구했다.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버리는 쓰레기 문제를 지자체에만 맡겨 둬선 안 된다.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 나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특별지원금을 좀 더 높여 다시 공모한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공모만 할 것인가.

[사설] 외국인 노동자 대형 참사, 더 이상 되풀이 안 된다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화재로 숨진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 일용직 근로자다. 사망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다. 위험한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 아리셀 공장에서 벌어진 참사는 배터리 기술은 선진국이지만 안전은 후진국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열악한 작업공간에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주노동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국에서 일하다 죽는 게 전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의 안전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전국이주인권단체는 성명을 내고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는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됐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없었다”며 화재 참사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안전대책을 촉구했다.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외신도 한국의 외국인 노동력 의존 심화 현상 등을 조명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공장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저임금 일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화성과 같은 공업도시의 소규모 회사들과 농촌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돌아가기 불가능할 정도다’,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률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의 지적이 틀리지 않는다. 낯 뜨겁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활동인구 부족으로 갈수록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과 영세 업체에 종사하고 있다. 당연히 수반돼야 할 안전관리는 소홀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위험한 장소·시설·물질에 대한 경고와 비상시 대처를 위한 지시·안내 등을 나타낸 ‘안전보건표지’를 해당 외국인 근로자의 모국어로 작성해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각국 언어로 된 안전표지를 제대로 부착하는 일은 드물다. 안전보건 교육을 받지만 형식적이거나 언어적 걸림돌로 내용을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내국인 산업재해 사망자는 크게 줄어든 반면 외국인 사망자는 늘고 있다. 외국인 산재 발생률이 내국인보다 4배가량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조치는 상당히 미흡하다. 필요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를 공급받는 데만 급급했지 내국인 못지않은 안전과 노동 인권 보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안전에 대한 체계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들의 모국어로 산업별 안전지침을 마련하는 등 맞춤형 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전담 안전보건 교육 전문가로 양성할 필요도 있다.

[사설] ‘금속화재’ 위험 큰 리튬전지, 안전관리 너무 허술하다

24일 화성의 배터리 생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리튬전지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튬전지는 휴대전화, 노트북PC부터 전기차, 군용 장비까지 광범위하게 일상처럼 사용되는 배터리여서 이번 화재의 충격이 더 크다. 아리셀 공장은 리튬 배터리인 ‘일차전지’를 제조하는 곳이다. 일차전지는 충전 없이 한번 사용 후 방전되면 폐기한다. 리튬은 불에 넣거나 고의로 분해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때문에 유해화학물질이 아닌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돼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이 없다. 고체 리튬은 순 산소와 결합해도 상온에서 발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튬은 반응성이 큰 금속이어서 매우 높은 온도에 노출되거나 수증기와 접촉하면 폭발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이번 아리셀 공장 화재도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폭발이 잇따라 공장 안의 근로자들이 대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공장에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천여개가 보관돼 있었다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리튬전지는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태생적으로 화재·폭발에 취약한 편이다. 소방당국은 ‘금속 화재’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리튬과 같은 알칼리 금속 등 가연성 금속이 원인인 ‘금속 화재’는 백색 섬광이 발생하는 게 특징으로, 진압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1천도 이상의 고온을 보여 매우 위험하다. 물로 진화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화재 진압이 어렵다. 물과 반응하면 염화수소, 이산화황 같은 독성 물질이 발생하고 고온에선 염소까지 만들어 위험이 더 커진다. 현재 환경부의 ‘화학사고 위기대응 매뉴얼’ 등은 유해화학물질이 대기나 수계로 유출돼 인명·환경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튬을 비롯한 일반화학물질 관련 사고는 소방당국을 중심으로 대응이 이뤄진다. 일차전지는 이차전지(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화재나 독성물질 등 위험성이 작다고 여겨 별도의 안전기준이 없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차전지는 화재 가능성에 관심이 많고 보호장치도 적용되지만, 일차전지는 안전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사실상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리튬 배터리 활용이 많아지는 만큼 리튬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위험 물질인 리튬전지를 다루는 데 안전기준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리튬의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작업장의 안전관리 규정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배터리 생산업체의 총체적 안전점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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