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왼씨름 VS 오른씨름 上

씨름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유네스코에 등재됐지만, 현대씨름이 왼씨름인지 오른씨름인지는 아직 논란이 많다. 왼손으로 다리 샅바를 잡기 때문에 왼씨름이란 주장이 있지만, 씨름협회조차 현대씨름이 왜 왼씨름인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또 씨름협회는 1987년에 현대씨름을 왼씨름에 근거 한 바른 씨름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근대자료나 씨름 원로의 구전에 의하면 현대씨름은 오른씨름일 가능성이 크다. 최초의 전국대회가 열렸던 1927년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는 지금과 반대로 왼 어깨를 맞대고 다리 샅바를 오른손으로 잡는 정규씨름이 정식경기였다. 이때 씨름은 왼씨름, 오른씨름, 통 씨름 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용어도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대회 참가비를 낸 200명의 선수 중 경기방법에 불만을 품은 150여 명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1929년 조선씨름협회는 정규씨름을 오른씨름이라 하고, 왼씨름은 오른 다리에 샅바를 매고 왼손으로 다리 샅바를 잡는 방식이라고 발표해버렸다. 그러면서 씨름은 지역마다 경기방식이 다르고 왼씨름과 오른씨름을 서로 혼용해서 부르기 때문에 선수들의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결국, 씨름대회는 왼씨름과 오른씨름으로 경기를 진행하다 1959년 6월 제1회 전국장사씨름대회부터 왼씨름으로 통일됐다. 이 때문에 대부분 씨름인은 현대씨름을 왼씨름으로 알고 있다. 씨름은 샅바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깨도 매우 중요하다. 샅바 싸움도 상대 선수보다 어깨를 더 낮춰잡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결국은 어깨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오른 어깨를 맞대고 경기를 하는데 왼씨름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사진으로 남아있는 1910년 이후의 씨름 자료를 보면 지금처럼 다리 샅바에 손목을 넣어 잡는 것이 아니고, 샅바 바깥쪽 부분을 손가락만으로 잡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리 샅바가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때 언론보도를 보면 왼씨름과 오른씨름의 명칭이 바뀌어야 했었다는 논리도 있고 현대씨름은 오른씨름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편에서 계속.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지지대] 확찐자

지난 3월 청주시청의 팀장급 공무원이 다른 부서 여직원의 겨드랑이 뒷부분을 볼펜으로 찌르며 확찐자가 여기 있네, 여기 있어라고 했다. 이 여성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확찐자라고 표현해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모욕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해당 발언의 모욕성을 인정했다. 청주지법 형사22부는 지난 11월12일 확찐자 발언을 한 팀장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확찐자라는 표현은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고,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데다 정신적 고통을 받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팀장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청주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견책 처분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집콕이 일상화됐다. 겨울 들어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져 바깥 활동은 더욱 줄었다. 집콕 생활을 하면서 활동량이 줄고, 배달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살이 확 찐 사람이 많다. 이런 이들을 확진자에 빗대 확찐자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가 탄생시킨 신조어이자 우스개 표현이지만 듣는 이들은 기분 좋을 리 없다. 지난 10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성인남녀 1천3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12.5%가 신종 코로나 이후 체중이 늘었다고 답했다. 여성(54.9%)이 남성(44.8%)보다 10.1%p 높았으나, 늘어난 몸무게 평균은 남성이 6.4kg으로 여성(4.5kg)보다 1.9kg 많았다. 직업별로는 중고생들이 56.7%로 제일 많았다. 늘어난 이유로는 고열량고지방 배달 음식 섭취량 증가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온라인 수업재택근무로 외부 활동량 감소, 운동시설 이용 자제로 인한 운동량 감소, 코로나 블루로 인한 군것질 증가 등의 이유도 컸다.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 자칫 방심하면 나도 확찐자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급성 허리디스크, 관절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내에서라도 적절한 운동을 하며 과식ㆍ폭식을 삼가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경기만평] 지지율 치료제로도...

[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40.파주 두루뫼박물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의미하듯 농업은 한국문화의 줄기이자 뿌리다.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농민들이 어울렸던 마을의 축제는 낭비와 미신으로 몰려 타파되었고 민속의 뿌리인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몰았다. 7천년의 농경문화가 근대화란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다. 세상은 풍요롭고 편리해졌으나 인간은 더욱 고립되고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오래된 미래가 숨어있다. 선조들이 사용하던 옛 물건에 생태적 지혜가 담겨있다. ■ 두루뫼를 향해 부르는 고향의 노래 유년의 추억이 담긴 고향의 풍경은 흑백 사진 속에나 남아 있을 뿐, 고향의 따스한 정서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파주시 법원읍 초리골에 자리 잡은 두루뫼박물관은 고향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1998년에 설립된 두루뫼박물관(관장 김애영)은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농촌의 아늑한 풍경과 아련한 추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박물관을 설립한 소설가 강위수(1941~ ) 선생의 고향은 파주 초리골에서 50여리 떨어진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동장리 주산동(周山洞)이다. 두루뫼라 불리던 그의 고향마을은 한국전쟁으로 비무장지대가 되어 지금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귀환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강위수 소설가가 도굴꾼 이야기를 쓰다가 토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영화촬영을 위해 농촌을 찾았다가 생활도구가 버려지고 집과 담장과 굴뚝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는 새참을 나르던 소쿠리, 벼이삭을 훑어내는 홀태, 떡에 예쁜 무늬를 새기는 떡살, 거름으로 쓸 똥오줌을 담는 장군 같은 민속품을 수집했다. 무너진 초가집에서 구해온 문짝까지 대책 없이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다 날랐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사소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편의 수집 동조하고 박물관을 세우고 관장까지 맡는다. 그렇게 모은 것이 6천점이나 되었다. 민속박물관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두루뫼라는 이름에 설립자의 고향 사랑이 묻어난다. 크고 작은 작은 독과 오지와 항아리가 옹기종기 앉아 있는 장독대는 박물관을 둘러싼 초지골 산자락과 잘 어울린다. ■ 1천5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공간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흔해서 역사유물로서의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민속생활용품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눈 밝은 부부 덕분에 살아남은 귀중한 유물들이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삼국시대의 도자기부터 타자기, 레코드판 같은 근현대 유물까지 1천500년의 세월을 아우르고 있는 상설전시실을 김애영 관장의 안내로 둘러본다. 박물관은 다섯 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제1전시실은 토기와 도자기이다. 박물관 설립으로 이끌었던 토기답게 온갖 종류의 토기와 도자기를 볼 수 있다. 백제, 신라, 가야의 회색토기를 비롯해 고려청자와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멋진 도자기를 살펴보며 질문을 던진다. 가장 좋아하는 유물이 어떤 것이에요?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 굴뚝이에요. 김 관장은 뚜껑이 씌워진 한길 남짓한 굴뚝을 가리키며 웃는다. 굴뚝도 흙을 구워 만들었으니 토기의 일종이고, 아궁이의 불이 잘 타들어가게 하고 구들을 골고루 덥혀준 연기를 빨아냈으니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똥오줌을 논밭으로 옮기는 용기로 사용했기에 똥장군으로도 불렸던 장군을 입구에 나란히 진열한 것도 진풍경이다. 70년대만 해도 시골집에 한두 개는 있었지만 지금은 구경하기 어려운 특별한 물건이다. 작은 것에는 물이나 술 따위를 넣으나 큰 것에는 오줌을 담아 지게로 운반했다. 나무장군은 오지장군처럼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어 공사장에서 물을 져 나르는 데에도 썼다. 수원화성을 쌓은 내력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장군 그림이 실려 있다. 실학자 유중림은 증보산림경제에 장군을 장분(長盆)으로 적었다. 열 개가 넘는 장군을 보면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노래한 시인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2전시실은 사방이 온통 탈이다. 꼭두각시놀이에 사용하는 꼭두각시, 박첨지, 홍동지 탈을 비롯해 전 세계의 탈이 노려보고 있다. 온갖 표정의 탈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오래 머물 수 없다. 안내하는 발길이 벌써 멀어진 탓이다. 뒤따라 도착한 제3전시실은 아기자기하다. 거울과 화장대 같은 규방용구, 저울과 됫박 같은 계량용구, 대패와 먹통 같은 목공용구, 가마니틀 같은 직조용구, 호롱과 등잔 같은 조명용구, 짚신을 비롯한 각종 신발 등의 의식주 관련 유물들이 전시관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짚신을 삼을 때 크기를 조절했던 신골은 정말 보기 드문 유물이다. 삼베를 짜던 베틀과 목화에서 무명실을 뽑던 물레도 여러 종류가 전시되어 있다. 제4전시실에는 설립자와 직접 관련된 1970년대 전후의 영화대본과 영사기가 전시되어 있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던 설립자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다. 한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공병호타자기도 있다. 안과의사 공병호 박사가 1949년에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한글을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세벌식 타자기다. LP판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자리에서 김 관장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LP판으로 지금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국문학을 전공한 김 관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25년 동안 이화음악사를 운영했던 음악애호가이며 개인전을 열 정도로 여행사진작가로도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스크림 장수가 들고 다니던 낡은 사각의 나무 상자에 담긴 사연도 재미있다. 흥미롭고 특별한 유물들을 자세히 살피려면 한나절로도 부족할 정도로 유물이 많다. 5전시실에서는 농기구와 축산용구들이다. 낫, 호미, 지게, 홀태 등 농사에 쓰였던 다양한 기구들로 채워진 공간에 들어서면 1970년대의 농촌으로 이끈다. 멍에를 멘 누렁소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서 있다. 박제된 소를 통유리 속에 전시하지 못해서 보존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다시 소를 박제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여야 할까. 비용문제로 귀중한 전시물이 부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 방앗간부터 대장간까지 박물관 야외도 전시실이다. 방앗간, 헛간, 대장간, 너와집, 상여집이 있다. 무려 일곱 개의 장독대가 있고, 솟대와 장승 옆에는 두레박 대신 지하수를 끌어올리던 펌프가 설치되어 있다. 민간신앙을 알려주는 너와집과 망자를 무덤으로 태우고 가던 상여를 보관한 상여집도 무척 인상적이다. 박물관 곳곳에서 한국의 민속과 전통문화의 모든 것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설립자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러나 전시 공간을 넓히면 더욱 빛날 유물들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보관시설이 낡아 어렵사리 수집한 귀중한 유물들이 손상되고 있다는 관계자의 말에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럼에도 두루뫼박물관이 그동안 걸어온 행적을 살펴보면 놀랍다. 국내 사립박물관 1세대로 출발한 두루뫼박물관은 경기도박물관협회 경기도박물관인상 대상(2013)은 물론 박물관인의 최고 명예인 한국박물관협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2014)과 문화체육부장관 표창(2018)까지 수상했다. 2014년에는 경기도박물관협회가 주관한 제10회 경기도박물관인상 큐레이터상을 수상할 정도로 기획력도 탄탄하다. 우리 곁에서 사라져간 타자기, 녹음기, 전축 같은 물건들을 전시한 안녕, 아날로그 시대여(2010)를 비롯해 글자가 적힌 책옷비석을 모은 글자들의 세상(2011), 담거나 나르는데 사용했던 용구들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담거나 나르거나(2013), 나무로 만든 각종 생활용품을 통해 나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기획한 나무는 우리에게(2014) 같은 흥미로운 기획전을 꾸준하게 열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2020년 특별기획전의 주제는 유물 속에 사는 동물이다. ■ 정부지자체, 사립박물관 지원 나서야 코로나19로 사립박물관의 시름이 더욱 깊다. 사재를 털어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교육하는 사립박물관은 국가나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를 가르치는 일을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립박물관 지원에 나서야할 때다. 두루뫼박물관은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고향으로 안내하는 완행열차 같은 곳이다. 설립자 강위수 선생이 병상에 계신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선생의 건강을 빌며 그가 평소 즐겨 부르셨다는 고향의 노래를 불러본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이재명 “지사직 내려놓고 대선 경선 참여하지 않을 것”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8일 지사직을 내려놓고 대선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지사는 이날 오후 경기도청에서 가진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혹시라도 경선에 참여하는 일이 있어도 도지사직을 사퇴할 일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저한테 주어진 기본적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내 사욕을 챙기는 것밖에 되지 않으므로 국민들께서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같이 설명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경제 파이를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 증세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지금처럼 약육강식, 승자독식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은 합의를 통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증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그 부담을 공평하게 할 경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라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길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하고, 그걸 설득하는 일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지사는 경제관료들을 향해 저성장이 오는 세상으로 변했는데 교과서에서 봤던 재정균형론, 수익만큼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국가부채 비율을 늘리고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자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며 고도성장기에 살아온 경제부처 간부급 관료들이 과거 생각에 고정돼 무식해서 그렇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서는 (2차와 3차 지원과 같은) 선별 지급으로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훼손돼 갈등과 분열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추가 지원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광희기자

하재봉 용인시자원봉사센터장 "맞춤형 봉사로 지역사회 사랑나눔 실천"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따뜻한 손길로 우리사회 곳곳에 온기가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26만명, 300여개의 용인 자원봉사자와 단체를 이끌고 있는 하재봉 용인시자원봉사센터장의 바람이다. 하 센터장의 봉사는 성장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하 센터장의 가족 중 한 명이 몸이 불편해 이를 도우면서 어릴 적부터 봉사의 의미를 깨우쳤다. 여기에 하 센터장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면서 한부모가정, 결손가정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자연스럽게 가족을 돕는 일부터 시작해 그 영역을 외부로 확장해왔다. 하 센터장도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 하 센터장은 자원봉사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자 함께 상생하는 원동력이 된다면서 자원봉사가 활발해질수록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과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것들이 모두 모여 행복한 사람과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냐면서 용인시자원봉사센터장으로서 자원봉사자와 단체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재봉 센터장은 새로운 자원봉사 활동의 패러다임도 추진하고 있다. 하 센터장과 시 자원봉사센터는 사회문제 해결형 자원봉사와 생활참여형 자원봉사를 지향하고 있다. 말그대로 사회문제 해결형 자원봉사는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봉사를 받는 대상자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생활참여형 자원봉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역사회에 따뜻함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하 센터장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춤형 자원봉사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준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사랑실천에 대해 감사하다. 용인시자원봉사센터도 봉사자 육성과 지원에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용인시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 활성화 프로그램 운영, 재능나눔 봉사단 운영 및 육성,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추진, 청소년 자원봉사 프로그램 운영 등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힘쓰고 있다. 용인=강한수ㆍ김승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