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가는 곳마다 낯섦이 주는 기쁨은 의미 있는 인생을 즐기는 또 다른 묘미가 됐다. 미국 대중문화계 스타이자 코미디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조지 번스(George Burns)는 78세의 ‘선샤인 보이스(The sunshine boys)’에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10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삶은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고,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생각만큼 늙는다”고 했다. 100세 시대 은퇴 후 삶에서 여행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만드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떠나 자신만의 삶의 에세이를 쓸 수 있다. 끝으로 찬란한 고대 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를 마치며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박태수 수필가
발에 닿는 화이트샌즈비치의 촉감은 비단결처럼 보드랍다. 잔잔한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들어 발자국을 지운다. 포근한 카리브의 초저녁 바람은 볼을 간질이며 스친다. 비릿한 바다 내음은 어디 갔는지 카리브 향이 코끝을 적신다. 문득 어린아이처럼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싶은 동심의 세계에 빠진다. 초승달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에메랄드빛 바다에 비친 조각배는 파도에 갈 길을 잃고 일렁인다. 느릿느릿 해변을 걷다 보니 어느새 검붉은 저녁노을은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밤하늘엔 새털처럼 옅은 구름이 흐르고 수많은 별은 그물에 걸려 술래잡기하며 반짝인다. 고갱과 싸운 후 귀를 자르고 생레미 요양원에서 밤하늘의 무한함을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오르는 칸쿤의 아름다운 밤이다. 35일간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나를 잊고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중미 멕시코에서 찬란한 고대 문명과 삶을 둘러봤다. 인디오의 찬란한 토착 문명을 가진 멕시코는 에스파냐 식민 통치를 통해 서구 문명이 유입돼 혼합 문명이 형성됐다. 현재는 미국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도 미국과 유사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이면서도 배타적이다. 하지만 동양인에 대한 감정은 고대 조상이 동양인이라는 이유에서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여행 중 불편함은 없었다. 박태수 수필가
커피숍에서 4시간 동안 자료를 읽고 정리한 후 체크인 시간이 돼 호텔로 돌아간다. 칸쿤 호텔 지역은 온 천지가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과 스킨스쿠버 등 액티비티 투어 여행사, 쇼핑몰과 호텔뿐이다. 이따금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온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화 소리도 들린다. 길가에는 관광객을 태워 어디론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택시들이 아열대 야자수처럼 줄지어 서 있다. 호텔에 들어서자 로비 한쪽에서는 왁자지껄한 여행객의 목소리가 들리고 투숙객을 위한 음료수와 시원한 맥주, 신선한 해산물을 썰어 그 위에 레몬즙을 뿌린 세비체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조리 카트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로비가 다른 곳의 호텔과는 좀 이색적이다. 2층 방으로 들어서니 카리브해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지고 탁 트인 시야로 바다를 더 가깝게 느껴지며 에메랄드빛 물결은 온몸을 푸르게 물들일 듯 일렁인다. 해변 카페에서 귀에 익은 라쿠카라차가 흥겹게 흘러나와 멕시코에 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테라스에 앉아 아래층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한다. 리듬의 반복적인 추임새가 흥겨운 라쿠카라차는 1910년 멕시코 혁명 때 농민들 사이에서 즐겨 불렸던 4분의 3박자 민요다. 당시 처참했던 농민의 삶과 처지를 바퀴벌레에 비유한 이 노래는 원래 에스파냐의 민요 가락으로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무슬림을 몰아내던 ‘레콩키스타’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이 곡에는 멕시코 농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가사를 붙여 지역에 따라 여러 버전이 애창되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를 산책하며 칸쿤의 해질녘을 즐긴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낮과 다른 초저녁 풍경이 펼치고 찬란한 햇빛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수많은 색이 어울려 오묘한 저물녘 노을빛을 자아낸다. 산란하는 빛의 향연은 어떤 형용사로 표현하기 어렵고 그 빛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왜 칸쿤이 세계 최고의 해변과 석양의 명소인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박태수 수필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과나후아토 구도심에는 과나후아토 박물관과 콜로니얼 시대 건물을 개조해 설립한 민속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이 지역에서 발굴한 고대 유물뿐만 아니라 이곳 출신 화가 호세 차베스 모라도의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멕시코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벽화 그림의 선구자 오로스코와 함께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에스파냐문화와 메소아메리카 인디오문화가 조화를 이룬 도시 산 미겔 데 아옌데의 자갈길을 걷다 보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콜로니얼시대 상흔을 느낄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도심 중앙 대성당 옆에 있는 예쁜 안뜰 정원을 돌아보고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재능 있는 공예가와 장인의 크고 작은 공방의 창작품이 여행객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이 도시는 북미 은퇴자가 살기 좋아하는 도시이고 공원이나 레스토랑에서는 북미 은퇴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오악사카는 쿠바 여행길에 만난 독일 청년이 ‘멕시코에서 가장 멕시코다운 삶을 엿볼 수 있는 도시’라고 추천했다. 이곳에는 이곳 출신 화가 루피노 타마요 박물관이 있고 19세기 말 유럽 낭만주의 양식으로 지은 오악사카대학 중앙 건물과 현대미술관도 있다. 저물녘 어둠이 드리울 때 구도심 중앙 소칼로 광장에서는 찬란한 불빛 리듬을 타고 흐르는 황홀한 밤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오악사카는 사포텍 원주민 출신 최초의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의 고향이라 원주민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위상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명칭도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이고 여러 종류의 지폐에도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으며 광장이나 공원 등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박태수 수필가
멕시코의 찬란한 고대 문명과 문화유산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전국에 고대 유적이 남아 있어 고고학계에서는 메소아메리카 문명 대국이라 평가한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인류사박물관에서는 유럽인이 발을 들이기 이전 멕시코 고대 문명과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원주민 문화도 접할 수 있다. 특히 메소아메리카의 어머니 문명이라고 불리는 올메카인의 거두석과 아스테카 문명의 ‘태양의 돌’을 비롯한 다양한 고대 유물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멕시코시티에는 차풀테펙 성과 국립 예술의 전당이 있고 다양한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한 소우마야 미술관에서는 시기별로 다양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입구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을 만날 수 있고 6층에서는 로댕의 작품 외에도 유명 조각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한곳에서 드라마틱한 멕시코 문화와 예술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테킬라의 깊은 주향(酒香)을 맛볼 수 있는 본고장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대중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유랑 악사 마리아치의 전통음악과 차로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의 중심지다. 구도심을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예술 문화 공연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제2의 도시답게 경제적으로도 발전하는 경제 상황과 다양한 혼합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광산 도시 과나후아토 구시가지 중심에는 라파스 광장과 규모는 크지 않아도 깜찍하게 아름다운 우니온 정원이 있다. 저물녘 정원 앞에서는 화려한 중세 시대 복장 차림의 ‘카예호네아다’라 불리는 과나후아토 대학생 공연 그룹인 ‘에스투디안티나 과나후아토’와 함께 연인의 비극이 담긴 키스 골목 ‘카예혼 델 베소’를 걸으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과나후아토에서 산 미겔 데 아옌데로 가는 길목에는 멕시코 건국의 아버지이자 혁명가인 미겔 이달고 신부가 태어난 곳인 돌로레스 이달고시가 있다. 이곳에는 멕시코 혁명을 기념하는 이달고 박물관이 있다. 혁명의 발원지이자 그가 성직자로 봉직했던 아토토닐코 대성당은 현재 혁명의 성지이자 그가 가톨릭 성인품에 오르며 기독교 성지가 됐다. 오악사카 외곽 쿠일라판에는 에스파냐 정복 이전 고대 문명과 정복 초기 에스파냐와 도미니크 사상이 충돌한 흔적이 남아 있는 중세 수도원 산티아고 아포스톨과 16세기에 짓기 시작해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도미니크 수도원 문장이 새겨진 ‘지붕 없는 교회’가 있다. 시내 중심에는 16세기 초에 지은 오악사카 대성당이 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오악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토 도밍고 데 구스만 교회가 있다. 이 외에도 오악사카 시내에는 고독의 성모 대성당, 산 펠리페 네리 교회, 자비의 성모 교회가 있고, 지금은 고급 호텔로 변신했지만 옛 모습을 간직한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 건물이 있다. 오악사카에는 산토 도밍고 대성당과 예전 수도원을 리모델링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멕시코 고고학과 역사 유물을 소장·전시하며 다양한 학술 활동을 활발히 개최하는 주립 문화박물관이 있다. 이처럼 오악사카에서는 사포텍과 믹스텍 문명의 몬테 알반과 미틀라의 유물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콜로니얼 시대 초기 멕시코인의 신앙관과 예술 문화를 볼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는 멕시코 가톨릭의 중심인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고 구도심 곳곳에는 콜로니얼 시대 교회와 수도원이 있다. 멕시코시티 북쪽 테페익 언덕에는 중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과달루페 성지가 있다. 이곳은 1531년 아스텍 원주민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메시지를 전한 곳으로 멕시코인들에게는 가톨릭 신앙의 구심점이다. 과달라하라 구도심 아르마스 광장에는 대표적인 고건축물인 도리스 양식의 대성당이 있고 구도심 곳곳에는 엘 사그라이오 성당, 성 자포판 대성당, 성 이시드로 성당, 성 베드로 성당, 나자렛 예수 성당 등 오래된 중세 교회가 여럿 있다. 과달라하라대학 부근에는 고딕의 복고풍인 신고딕 양식의 성체성사 속죄교회가 있다. 2004년 세계 성체대회 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 교회를 찾았으며 성당 밖에는 교황 방문 기념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에스파냐풍 중세도시로 예찬하는 과나후아토 구도심에는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과나후아토 성모 대성당이 있고 이곳에는 7세기에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지방 장인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을 삼나무로 만든 1.15m 크기의 고대 성모 조각상이 있다. 과나후아토대학 옆에는 1765년 예수회가 지은 예수 성심 교회가 있고 돔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의 향연은 굴절과 투과로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분홍빛이 예쁜 산 미겔 데 아옌데에는 플라밍고처럼 우아하게 우뚝 솟은 첨탑을 가진 산 미겔 대천사 아르칸젤 교회가 있다. 거대한 조각품을 옮겨 놓은 듯 섬세함과 정교함의 극치를 이룬 교회는 에스파냐 세비야 대성당 중앙 제단의 플라테레스크 양식을 교회 첨탑과 중앙 파사드에 옮겨 놓았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답다. 구시가지 입구 라 팔마와 산 안토니오 교차로에는 동화 속 요정이 사는 마을의 교회처럼 외관 색상이 새하얀 성 안토니오 교회가 있다. 박태수 수필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멕시코는 마야, 아스텍, 톨텍 등 다양한 메소아메리카 고대 문명을 가진 나라이며 500여년간 에스파냐와 미국 등 유럽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서구 문명이 유입돼 혼합(mestizale)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 때문에 점차 미국화돼 가는 모습도 보이지만 멕시코 곳곳에는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어 여전히 아름답고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멕시코는 고대 문명과 선조가 남겨준 문화유산을 기억하며 꾸준히 이어가는 나라이다. 멕시코는 전역에 분포한 고대 피라미드, 다양한 석재 건물과 조각, 전통예술과 미술품 등을 많이 보유한 문명국가다. 그들의 수많은 고대 문화유산은 멕시코시티 국립박물관과 곳곳에 있는 지역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유적으로 멕시코시티 구시가지 중심이자 아스테카 시대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지에 있는 소칼로 광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광장 주변에는 마요르 신전과 아스테카 문명을 대표하는 ‘태양의 돌’ 등 고대 유적 터가 남아 있고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며 광장 주변에는 대통령궁과 연방대법원 등 주요 행정관청이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신들의 고향’이자 멕시코 최대 피라미드 단지인 아스테카의 테오티우아칸 유적이 멕시코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사라진 문명의 신비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사포텍과 믹스텍 문명의 몬테 알반과 미틀라 유적이 오악사카 부근에 있다. 유카탄반도에는 마야 문명의 최대 유적지인 ‘잊힌 신들의 도시’ 치첸이트사와 카리브해변의 툴룸 유적 등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멕시코를 중남미 지역 여러 나라 중에서 다양하면서도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진 ‘문명의 보고(寶庫)’라 칭송한다. 박태수 수필가
카페에서 옆자리 외국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들은 주한미군으로 복무할 때 우리나라 동두천에서 2년간 근무하며 한국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현금인출기 위치를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가려 하자 “당신 아내는 우리 부부가 잘 지켜줄 테니 걱정 말고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그가 알려준 대형 마트 2층 후미진 곳에는 10여대의 인출기가 있고 그중 한 대에 작은 씨티은행 마크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현금인출기의 통합 거래가 되지 않아 거래 은행 인출기에서만 현금 인출이 가능한 듯하다. 인출기 화면은 대도시와 달리 에스파냐어로 돼 있다. 호출 버튼을 눌러 직원에게 영어 화면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도움받아 한국 계좌에서 약간의 페소를 인출하고 카페로 돌아간다. 부부는 농담으로 “우리가 당신의 아내를 잘 지켜줬으니 여행을 즐기라”며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떠나면서 “칸쿤 같은 국제 휴양도시는 외국인이 즐기기에 불편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아직 외국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다. 우리도 관광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청해야 할 대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될 때까지 와이파이 사용이 자유로운 스타벅스에서 마야문명 자료를 정리하고 여행 떠날 때 준비해 온 자료를 읽으며 그동안 돌아본 여행지를 되새김해 정리한다. 박태수 수필가
구도심을 벗어나 쿠쿨칸 대로를 따라 칸쿤섬으로 가는 차창 밖 풍경은 환상을 넘어 경이롭다. 문득 오래전 아내와 함께 크로아티아 두브로니크에서 스플리트를 거쳐 슬로베니아 트리에스테로 갈 때 펼쳐진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변의 추억이 떠오른다. 눈앞에 펼쳐진 칸쿤의 해변 풍경은 카리브해를 포근히 감싸안은 듯 끝없이 새하얗다. 밀려드는 파도는 해변 앞 산호초 군락과 부딪쳐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카리브의 싱그러운 해변의 정취에 빠져든다. 눈에 비친 칸쿤의 첫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멕시코 땅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이 스쳐 간다. 칸쿤은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자 중남미 청춘들의 허니문 희망지로 늘 앞 순위에 오른다. 칸쿤 휴양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신혼 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칸쿤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천혜의 해변을 갖고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독성 강한 ‘꿈의 휴양지’다. 체크인 시간이 안 돼 호텔에 가방을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노트북만 가지고 칸쿤 호텔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여정 끝자락이라 휴양지에서 쓸 페소가 부족하나 거래 은행 인출기를 찾을 수 없다. 모닝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옆자리에 앉은 흑인 부부와 우연히 눈을 맞추자 그는 인사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왔냐며 대화를 나눈다. 박태수 수필가
퀘사디아는 인디오들이 좋아하는 옥수숫가루를 물에 소금을 섞어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라는 얇은 생지를 마치 우리네 김밥용 김처럼 사용한다. 조리 방법은 토르티야 위에 치즈를 깐 후 다진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아보카도를 포함해 다양한 채소와 새우 같은 해산물을 넣어 팬이나 그릴에서 치즈가 녹아 고르게 퍼지도록 조리한다. 퀘사디아는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녹은 치즈의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조화롭다. 그동안 멕시코 대표 음식인 퀘사디아, 타코, 세비체 등을 자주 접하다 보니 어느새 음식 맛이 뇌리에 저장된다. 에코 호텔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친환경 호텔로 마치 아열대 정글 속에 있는 듯 매우 아름답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데, 트립어드바이저에는 친환경 호텔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웨이트리스의 설명을 떠올리며 느릿느릿 퀘사디아의 맛과 향을 즐기며 식사를 마치고, 이 호텔의 자랑인 에코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칸쿤섬으로 타고 갈 택시를 기다린다. 3박4일 머물며 정이 든 호텔 매니저가 자기 아들이 한국인 사범에게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운다며 자랑한다. “왜 두 가지 무술을 배우게 하느냐”고 반문하자 태권도는 공격하는 무술이고, 합기도는 방어하는 무술이라며 자세히 설명한다. 박태수 수필가
멕시코 여정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한 달 동안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아스테카 시대 수도 테노치티틀란 유적과 근교에 있는 테오티우아칸 유적을 탐방했다. 제2의 도시이자 마리아치의 고향 과달라하라를 거쳐 멕시코 혁명의 중심지 돌로레스 이달고, 과나후아토와 산미겔 아옌데를 둘러봤다. 그리고 멕시코 속의 멕시코를 만날 수 있는 오악사카에서 사포텍과 믹스텍 문명의 몬테 알반 및 미틀라 유적을 찾아갔다. 칸쿤 구도심 종합버스터미널 부근 에코 호텔에 나흘 동안 머물며 마야 문명의 주요 유적인 툴룸과 치첸이트사를 둘러봤다. 멕시코 고대 문명 탐방 여행을 모두 마치고 ‘카리브의 욕망’이라고 불리는 휴양도시 칸쿤섬으로 이동한다. 크리스털 호텔에 머물며 여행 자료를 정리하고 덤으로 여행 중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하는 것이 마지막 여정이다. 유적지 탐방 여정을 모두 마쳐 모처럼 오랜만에 늦잠까지 자는 호사를 누린다. 한 달 동안 일정에 쫓겨 매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 여정의 연속이었으나 오늘은 조식 마지막 시간이 다 돼서야 레스토랑으로 내려간다. 웨이트리스는 먼저 알은체하며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한다. 오늘도 퀘사디아를 주문하겠느냐고 먼저 물어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엄지척하며 퀘사디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박태수 수필가
치첸이트사를 탐방하며 마야인의 석조 건축술이 상당히 뛰어났음을 느낀다. 그들은 수많은 도시에 유적을 남겼으며 벽과 계단들에 상형문자를 새기고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석조 건축물은 마야 사회에 전문화된 석공들이 있었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 구조나 정치 조직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치첸이트사에서 보듯이 마야의 건축 양식은 크게 피라미드 신전, 궁전, 공놀이 경기장, 석조 보도, 광장 등으로 구성됐다. 도시는 수로 시스템과 성벽도 있었다. 대다수의 건물 외관은 붉은색, 노란색, 자주색 등 밝은 색으로 칠했으며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물은 아름다운 조각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경우가 많다. 특히 공놀이 경기장은 마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고전기 이래 마야 도시에서 거의 대부분 발견되며 가장 오래된 것은 북부 유카탄반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선고전기인 기원전 1000년에 지어졌을 정도로 오랜 역사가 있어서인지 멕시코 축구 수준이 세계 최상위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박태수 수필가
세련된 마야 문명이 남긴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고대 도시 치첸이트사는 마야 도시 중 거대한 규모 때문에 후기 메소아메리카 문명사에서는 ‘잊힌 신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의 영광을 자랑했다. 전성기 당시 치첸이트사는 마야 문명권 전체 도시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했으며, 타지방과 교역도 대단히 활발했다. 치첸이트사에는 건축 시기를 달리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주변 다른 도시 국가들과 문화 교류 때문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치첸이트사와 관련해 이곳을 정복한 에스파냐 가톨릭교회 사제들은 마야에 관한 자세한 연구 기록을 남겼다. 다만 이들의 연구 목적은 원주민들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바탕으로 가톨릭을 포교하고, 에스파냐에 더 빠르게 융화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이후 유카탄반도와 중앙아메리카를 방문한 수많은 선교사와 식민지 관료들이 이어 나갔다. 1839년 미국 탐험가 존 로이드 스티븐스는 영국 탐험가이자 건축가인 프레드릭 캐서우드와 함께 몇몇 마야 유적을 방문했다. 그들이 삽화를 첨부해 출판한 여행 기록은 서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마야 문명을 재조명하는 결과를 낳았다. 19세기 이후에는 마야에 대한 집중적인 고찰이 이뤄져 고대 문명에 대한 획기적인 발견과 발굴이 넘쳤고, 마야 상형문자 해독의 첫발을 뗐다. 박태수 수필가
1900년대 초부터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여러 학자가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며, 수많은 도자기와 신상(神像), 그리고 제례 용품을 발굴했다. 특히 1959년 9월에 동굴을 막고 있던 임시 벽이 부서지면서 그 뒤에 있던 복잡한 동굴 구조가 발견됐고, 이곳에서도 석조 신상, 보석류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현재 발굴된 상태 그대로 복원해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한나절 아열대 햇살이 따가워 이곳저곳 다니며 나무 그늘이 있으면 쉬엄쉬엄 쉬면서 돌았다.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멕시코 사람들은 왜 이곳을 고대 마야 유적의 보고라고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치첸이트사 주변 밀림 지역에는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석조건축물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몇 년 전, 잉카문명을 둘러보러 쿠스코와 마추픽추에 갔을 때 뱀, 독수리, 재규어에 얽힌 고대 제국의 흔적을 봤는데, 이곳에서도 뱀에 얽힌 이야기와 독수리와 재규어가 새겨진 석상을 볼 줄 생각하지 못했다. 신전과 여러 석조 건축물에 어김없이 뱀 신을 추앙하는 석상이 있다. 메소아메리카 지역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 있고, 마야와 잉카 문명권이 서로 달라도 동물에게 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박태수 수필가
■ 라 이글레시아 이곳은 마야 유적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라 이글레시아’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치첸이트사를 다녀간 초기 탐험가들은 창문이 좁고 건물이 낮고 길쭉한 모습이 마치 수녀원을 연상시킨다 해서 ‘라스 몬자스’라는 별명도 붙였다. 또 그 옆에 있던 작은 건물에는 교회라는 의미의 ‘라 이글레시아’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실제로는 정부 청사이거나 사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추정한다. 이 유적은 후고전기 마야 문명 예술의 정수가 집약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건물 외관을 꾸미는 아름다운 스투코 장식이 잘 알려져 인기가 많다. 특히 라 이글레시아 상단에 붙어 있는 수많은 석회 마스크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 다른 유적들 마야 문명의 보고인 치첸이트사에는 이 외에도 마야어로 ‘신비로운 글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아캅 드집이 있다. 유적군 남쪽 올드 치첸 구역에는 수많은 석조 유적이 산재해 있어 지금도 고고학적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치첸이트사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4㎞가량 떨어진 거대한 자연 석회동굴인 발란칸체가 있다. 최소한 선(先)고전기 시대부터 마야인들이 이곳에 살았다고 추정한다. 고대 마야인은 이곳을 신이 거하는 곳으로 여겨 대단히 신성시했고 이곳에서 제물을 바치는 등 여러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박태수 수필가
■ 카사 콜로라다 ‘카사 콜로라다’는 치첸이트사 유적지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 중 하나로, 이름은 ‘붉은 집’이라는 뜻이다. 마야어로는 ‘작은 구멍들’이란 뜻의 ‘치찬콥’이라고 불렀다. 내부 방 중 하나는 복잡한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데,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역대 치첸이트사의 군주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다. 이 건물 한 귀퉁이에 869년의 기록이 적혀있는데, 이는 치첸이트사에서 발견된 연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카사 콜로라다 건물 자체는 굉장히 보존이 양호한 상태에 속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건물들은 무너져 돌무더기로 변해버렸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인근 유적은 ‘사슴의 제단’ 밖에 없다. ■ 엘 카라콜 천문대인 ‘엘 카라콜’은 높이가 22.5m로,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돔을 올린 중앙 탑의 원형 디자인과 나선형 계단을 보고 ‘달팽이’라는 뜻으로 ‘엘 카라콜’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마야인은 별을 보고 추수와 제례시기를 정했는데, 햇살의 각도가 출입문에 부딪혀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고 동지와 하지를 아는 식이다. 건물의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그릇 모양의 돌이 있는데, 돌 안에 물을 채워 수면에 비친 별을 관찰하여 달력을 정했다고 추정한다. 출입구 네 곳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나 있고, 상인방 문설주에는 비의 신 차아크 가면을 부조했다. 천문대 안에는 작은 창 몇 곳을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별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므로 천체 관측용 시설이라고 추측한다. 박태수 수필가
■ 오사리오 ‘오사리오’는 에스파냐어로 ‘묘지’라는 뜻이다. 오사리오는 신을 모시는 사원으로 규모는 엘 카스티요보다 훨씬 작다. 오사리오의 외관은 엘 카스티요와 마찬가지로 네 경사면에 모두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꼭대기엔 신전이 있었다. 다만 엘 카스티요와 달리 오사리오 꼭대기에서 지면 12m 아래 자연 동굴로 내려갈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 이 동굴을 탐사한 에드워드 톰슨은 동굴 내에서 많은 유골을 발견하고 이곳이 신관들을 위한 무덤일 것으로 생각해 오사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고고학계에서는 이곳이 무덤이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발견된 유골이 신관들의 것이라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아 미궁에 빠져 있다. ■ 츠톨록 신전 ‘츠톨록 신전’은 오사리오 건물군의 부속 건물로 오사리오 인근에 세워져 있던 작은 신전이다. 신전은 최근 고고학자들이 돌 파편을 주워 모아 복원했으며 치첸이트사에 있는 여러 세노테 중 하나를 굽어보는 위치에 세워졌다. ‘츠톨록’이라는 이름은 마야어로 이구아나를 뜻하는 단어 ‘츠톨록’에서 따왔다.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돌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야 신화 속에 나오는 여러 인물과 꽃, 새, 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박태수 수필가
■ 전사들의 신전 ‘전사들의 신전(Temple of the Warriors)’은 전사 부조가 새겨진 돌기둥에 둘러싸인 거대한 신전이다. 관람객은 위로 올라갈 수 없어 외관만 볼 수 있다. 상단에는 마야의 ‘비의 신’인 차아크가 누운 모습을 새긴 석상이 있는데 이 석상 위에 사람의 심장을 올려놓고 인신공희를 행했다. 누운 석상의 시선은 하지 때 일몰 지점을 향한다고 한다. 신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사각 기둥과 동쪽으로 이어진 엄청나게 많은 둥근 기둥에는 짚으로 만든 지붕을 덮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기둥만 남았다. 신전 입구 정사각형 기둥 60개에는 톨텍 복장을 한 전사 조각을 새겼는데 이 때문에 ‘전사들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워낙 앞에 기둥이 많아 ‘천 개의 기둥 신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 엘 메르카도 ‘엘 메르카도(El Mercado)’를 처음 발견한 탐험가는 기둥이 공터 주위를 쭉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시장의 가판대와 비슷하다고 여겨 시장이라는 뜻의 ‘엘 메르카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현재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일종의 예식을 치르는 제례 장소일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태수 수필가
■ 촘판틀리 ‘촘판틀리(Tzompantli)’는 ‘해골 제단’이라는 뜻이다. 치첸이트사가 당시 아스테카 제국의 테오티우아칸 문화권과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신에게 인신공희 제물로 바친 사람 머리뼈를 그대로 묘사해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베어낸 사람 머리를 막대기에 소시지 끼우듯이 끼워 줄줄이 세워 놓는 특이한 조형물을 촘판틀리라고 부르며 메소아메리카와 멕시코 지방에서 유행했다. 이 제단은 그 촘판틀리의 모습을 돌에 정교하게 새겨 놓은 모습이다. 그 잔혹성과 독특함 덕분에 치첸이트사의 명물이기도 하다. ■ 성스러운 우물 ‘성스러운 우물’로 마야 문명이 번성했던 유카탄반도는 전체가 거대한 석회암 평원으로 이뤄져 있다. 그 덕분에 석회암 침식 작용으로 군데군데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는데 이곳에 물이 고인 우물을 세노테라고 한다. 그중 치첸이트사에 있는 세노테는 지름 60m, 깊이 27m에 달하는 대형 세노테에 속한다. 야인은 이 세노테를 숭배해 제물을 이곳에 바쳤는데 발굴 과정에 호수 아래를 샅샅이 조사한 결과 수많은 옥, 보석, 도자기, 황금, 흑요석, 조개껍데기, 옷, 그리고 다수의 유골이 발견됐다. 인간을 이곳에 던져 넣어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는 증거다. 박태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