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전송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왕오천축국전의 ‘다시 한 달을 가면’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구도자 혜초의 한 달은 멀고 느렸겠지만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장마의 급류처럼 겨를 없이 휩쓸려 간다. 설 지나 입춘이 왔건만 마음의 봄은 도달하지 않고 감동 없는 시간은 황소의 하품처럼 목적 없이 흐른다. 2월은 돌개바람 쓸고 가는 고향 집 마당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 같다. 삭풍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마른 잎을 돌돌 말아 오르거나 양철지붕을 두드리기도 했다. 마당은 삶을 담는 서정과 서사의 자취 같다. 문틈으로 장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던 저녁나절, 마당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발소리는 아직 환청처럼 남아 있다. 미학에 비장미(悲壯美)가 있다. 슬픔도 승화된 아름다움이라는 것. 애틋한 어머니의 희생적 삶을 2월에 더욱 느낀다. 맹물같이 흐르는 시간에 누룽지 숭늉처럼 따뜻하고 구수한 고향은 스침만으로 그립다. 지동교 건너기 전 옛 가구거리 길로 접어들면 국밥집 삼춘옥이 머물러 있다. 늑대집과 마산아구탕이 있는 이 골목은 서린 추억의 뒤란 같다. FM 라디오에서 고향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수원시립합창단의 노래여서 제맛이다. 마지막 소절은 먼 고향의 향수를 눈송이처럼 포근히 안겨준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고향 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처음 그대를 만날 때처럼 설렘 속에 건너온 한 해가 고삐를 풀고 달린다. 일월도 벌써 어둡다. 설을 앞둔지라 부모님의 부재에 더욱 공허하다. 한 해의 전시 계획과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한 행간을 헤집는다. 나의 어반스케치 교실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분주히 신작로를 달린다. 출발선은 같지만 관심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빨리 혹은 천천히 적응하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잘하려는 의지가 엄숙하다. 나도 그렇다. 삶은 견뎌내는 것. 미켈란젤로의 등쌀이 버거웠던 다빈치의 고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한 부분이었다. 나의 교실에 젊은 중국 여성 한 분이 들어왔다. 한국인 남편을 둔 이린님이다. 한국말과 문화를 잘 터득했다. 그와 중국말로 소통하는 남자 한 분이 있다. 현역 시절 삼성의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했다는 김동석님이다. 처음 교실에 왔을 땐 처녀 넓적다리 본 부처님 제자처럼 과묵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사라지고 이웃과 도무지 교섭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한 분기를 넘겼다. 그런데 이 수줍던(?) 경상도 남자의 태도가 일시에 바뀌었다.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가끔 술 한잔도 응전한다. 사회생활의 결격사항이 전혀 없는 게 이상하다. 불문율의 세월은 인간이 제도권에서 이탈하는 걸 무시로 방관하고 있다. 그림까지 잘 그리니 말이다. 나혜석 생가터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깃든 행궁동 골목길을 그가 은근히 담아냈다.
무인도처럼 고적하고 싸늘한 작업실은 냉혹한 자극이다. 웅크린 채 생각에 잠기다가 먹잇감 본 사마귀처럼 화폭에 덤벼든다. 무모함은 겸손한 추억으로 치환해야지. 문만 열면 허전한 도시가 등을 보이지만 건물 꼭대기 나의 작업실은 파피용(스티브 매퀸)의 독방 같다. 한때 세계를 구름에 달 가듯 드나들며 여행이 인생의 주제였던 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중단된 나의 여행은 교통사고 환자의 후유증처럼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부터 나는 매년 두 달 세계의 오지를 여행해 왔다. 나이 들어도 갈 수 있을 문명 세계는 남겨뒀는데 요즘 욕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행의 의미와 인생관이 바뀌어 가는 이유일까. 내 삶의 여백이 점점 협소해져 천국 여행이 더 가까이 오지나 않을지, 돌아올 수 없는 영원의 행장이 아직 꿈이기를 바란다. 동유럽의 고풍스러운 주황색 건물 사이 거리를 걷고 싶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멋진 풍경을 오늘은 수강생 최승은님이 그렸다. 늘 진지한 태도로 경칩의 개구리처럼 도약하는 그의 그림은 나에게도 즐거운 희망이 된다. 캠퍼스 커플이라는 동갑내기 남편과 특별한 아드님 이창호군에게도 올해의 여행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는 게 마음 여행 같다. 이런 시가 내게로 왔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정호승 ‘여행’)
새해 벽두 서설이 내린다. 한 해가 순백의 도화지 위에 놓였다. 안녕히 살아야지. 나의 작품계에도 희소식이 있길 웅크린 벽 너머 순국선열에게 묵념한다. 구차하지만 애송 시 한 편(전동균·주먹 눈)도 덧붙인다. ‘그래도 첫 마음은 잊지 말자고/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퍼붓는 주먹 눈, 눈발 속에/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불쑥, 언 손을 내민다/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 줘, 그게 시야.’ 개뿔, 그림이 무슨 밥 먹여 주냐며 취화선의 장승업이 나타나 노숙자의 언 손이나 잡아주라는 식이다. 정초부터 아내에게 호출받고 탁자 앞에 앉았다. 요즘 행태에 심한 훈계를 받았다. 할 말은 많지만 훈시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내렸다. 변명하며 대들 용기가 없다. 앞을 내다보고 주의하며 살아야지. 틈 없는 아내의 논리에 반성뿐이다. 호르몬이 변환되는 아내의 생물학적 과도기를 존중하며 가냘픈 마음을 달랜다. 아내가 내린 별다른 지시가 있다. 하루 5분 성경 통독이다.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창세기 22장도 읽었다.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등장하는 서양 미술사의 한 장면이다. 다시, 암울한 시대의 나그네는 삼포 가는 길처럼 흐릿한 눈보라길 걸어 세류3동 재개발구역을 지난다.
새해를 맞는 화두를 넣은 컵 드로잉을 함께했다. 저마다의 멋진 소망이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 산루리 어반스케치팀도 다양한 스케치와 전시로 진지하게 바빴다. 인생을 어떻게 건너와서 멋진 감사장도 받았다. 비상한 시국에 미안하지만 느낌이 있다. 비록 내 이름이 한 자도 없는 감사장을 받아야 옳은지 어색했지만 아카데미상의 봉준호 감독처럼 기꺼이 즐겁다. 수강생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시민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 등의 이유가 명시된 내용은 참으로 거룩하다. 더욱 정진해야 할 불가피한 힘이 생겼으니 새해엔 또 다른 희망을 간직하자. 45명의 수강생들과 어반스케치 강좌에 감사장을 주신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임화선 관장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쪽이 소슬하다. 크리스마스카드 그리기를 수강생과 함께했다. 카드엔 필수 항목을 넣었다. To와 From, 그리고 한 해 동안 고마웠던 분 또는 가장 미안했던 분을 상기하는 멘트를 넣는 것이다. 처음엔 남편과 아내에게 쓰는 것을 쑥스러워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족임을 인식했다. ‘핑크공주 울 딸! 너의 찬란한 젊은 시절을 응원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라고 쓴 분, ‘남편! 지금처럼 잘 싸우고 잘 화해하며 건강하게 여생을 함께 보내자. 친애하는 나의 배우자님께 아내 지숙’, ‘내 인생의 반짝이는 구슬 같은 그대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승은’, ‘나의 인생 여행 동반자 항상 옆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내 인생 여행 친구, 잘한다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주고 챙겨주는 당신 늘 감사합니다. 연화’, ‘그때나 지금이나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웃음을 주는 그대를 사랑해요. 향숙’ 등 가족이 대부분이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새해엔 사랑을 많이 주겠습니다, 건강하고 행운이 있기를, 지난 시간 감사했어요’라고 쓴 희영님의 글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비상한 시국에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군 생활 잘하고 만나자’라고 군대 간 아들에게 쓴 금선님의 글도 뭉클하다. 학창 시절 이후 처음 그려본 크리스마스카드라며 모두가 들떴다. 쿠오바디스! 모두가 엄중한 시기를 잘 헤쳐 나가길.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도 한 해 동안 행복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위태롭게 걸렸다. 마지막은 못다 한 아쉬움에 대한 낙차 큰 상실감을 준다. ‘벌써’라는 시간적 상실감과 결국이라는 수용의 의미가 포함된다. 마지막 잎새, 마지막 수업. 마지막 여행 등 마지막은 저마다 아픈 결말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세류동 어린이집을 지날 때 쇼윈도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비록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행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한 해를 축복하는 거룩한 의식적 욕망이 있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고마운 분을 떠올리고 한 해 동안 쌓인 죄와 슬픔과 아쉬움을 위한 성찰의 시간일 수도 있다. 며칠 전 11월에 폭설이 내렸다. 창밖의 눈 소리에 수강생들은 들떠 있었다. 당장 카페로 가서 수업하기를 바랐다. 눈은 빨간 단풍나무 가지에 수북이 쌓였다. 11월의 첫눈은 참으로 뜻밖이다. 그 대신 영화 러브스토리의 ‘Snow Frolic’을 켜 놓고 옛 생각을 돌려봤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장면, 그녀의 백혈병에 눈물을 흘렸던 추억이 지금은 신파극 같지만 내가 순수한 10대였다는 사실이 그리웠다. 마음 메마른 지금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처럼 허탈할 뿐이다. 문득 이런 시가 떠 오른다. ‘저 파란 하늘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언저리에/무언가 소중한 물건을/나는 잊어버리고 온 것 같다. 투명한 과거의 정거장에서/유실물계 앞에 섰더니/나는 도리어 슬퍼지고 말았다.’ -다니카와 슌타로 ‘슬픔’
계절은 헤어지는 연인처럼 쌓인 정을 뿌리치고 간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는 님의 침묵처럼 말이다. 차마라는 단어는 고결하다. 슬픔을 삭이는 절제의 미학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노란 은행잎 쌓인 가로수 길을 걷는다. 새소리가 요란하다. 말 없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만 새의 언어는 소리로 통한다. 사람의 언어도 자연을 담은 의성어에서 비롯됐고 자연을 본뜬 상형문자가 되기도 했다. 자연은 소리와 표정과 질감이 있다. 고색동 청춘 보리밥집에서 수제비를 먹는다. 배고프던 시절 주식처럼 먹던 것들이 이젠 절대 미감을 살려준다. 여럿이라 더욱 맛있다. 부근의 한옥 카페에서 그윽한 만추의 커피에 물들 때 가을 철새처럼 공허함이 밀려온다. 수인선 모뉴먼트를 찾아 봤으나 철길은 다 걷어 냈고 남아 있는 건 표지석뿐. 옛 협궤열차의 온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코스모스 핀 철로 위를 외발을 교차하며 걷던 추억, 철로 위에 귀를 대고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던 시절, 열차 안에서 보는 세상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부근 마을을 산책하다가 한 통나무집을 봤다. 아름다운 카페와 ‘나그네 길’이라는 간판도 낯선 변두리 마을의 서정이다. 10여년쯤 친구와 왔던 수인선 닭발집 원탁 앞에 앉았다. 소주 한 잔 부어 놓고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가 간다. 그의 목소리가 궁금하다.
며칠째 따뜻하더니 계절이 본색을 드러낸다. 추위는 툰드라의 늑대처럼 거칠게 닥쳐올 것이다. 작업실 뒷문은 내년 봄이 올 때까지 밀폐되리라. 벚꽃이 필 즈음 뒷문을 열면 비로소 봄빛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우내 난로가 피어 있고 작업도 움츠릴 수밖에 없다. 전시도 뜸하고 외부와의 소통도 겨울잠을 잘 것이다. 수강생들과 식사 후 커피 한잔할 요량으로 전망 좋은 산자락 골목길을 오른다. 그런데 뜻밖의 청초한 길이 빛과 그림자 사이로 열렸다. 아스팔트 위의 꽃 같은 골목길은 오르는 정감이 있다. 지나간 청춘은 늘 앞만 보이는 오르막이었지만 이젠 오르막도 내리막같이 좌우가 보인다. 급하게 시간을 굴려 갈 이유가 없다. 오늘 새벽 집을 나올 때 한 미화원이 보도 위의 낙엽을 도로 위로 쓸어내는 걸 봤다. 어떨 땐 모터가 달린 청소기로 마구 쓸어내고 있었다. 소음이 극심했다. 차들이 달리자 낙엽들은 바스러져 심한 먼지를 일으켰다. 무엇이고 한꺼번에 치우려는 관행은 시민의 정서적 여유를 박탈하고 있다. 가로수의 낙엽이 벤치에도 보도에도 시처럼 내려 포근한데 겨울로 이동할 때까지라도 그냥 두면 딱딱한 보도블록보다 낫지 않을까. 짧은 시집 같은 가을을 지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낭만 가득한 길은 도시의 때를 벗을 수 있는 순수한 탄력을 길을 수 있다. 언덕 위의 카페에서 커피 향이 핀다. 그곳에서 저무는 가을에 잠시 머물러 보자.
완벽한 것보다 틈이 있고 새것보다 발효된 멋이 있어야 걸터앉기 좋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전시회가 많다. 몇 군데 단체전에 참여하게 됐다. 인사동은 항상 막걸리 같고 파전 같아 좋다. 보기만 해도 반가운 친구처럼. 너무 아름다운 양귀비꽃은 표독하고 그저 아름다울 뿐이지만, 그래서 마음 열기 어렵지만. 수수한 들국화같이 정감 있는 꽃은 자연스럽고 친근하고 여백이 있어 좋다. 인사동이 그렇다. 그곳에 가면 막걸리도 있고, 찻집도 있고, 친구도 있고, 여기저기 당기는 골목길이 있어 좋다. 뻔뻔한 민낯으로 그림 걸어 놓고, 남의 그림도 들여다보며, 그간의 소사가 늘어가고 넋두리는 자꾸만 팽창한다. 예술이라는 턱도 없는 주제는 뻔한 빙자지만 그래도 모른다. 누군가는 시퍼런 눈을 부라리고 역사를 지배할 명작에 인생을 저당 잡을지도. 그래서 예술의 안주는 칼칼하다. 한 잔, 두 잔 따라다니는 안주가 메마를지라도. 나의 그림과 너의 그림은 자존심 있는 영업비밀이다. 그냥 네가 좋고, 다시 볼 수 있는 너의 뒷모습이 좋다. 불현듯 바라보는 해후의 미학에 걸터앉기 편한 인사동의 마루가 좋다. 카페인 같은 그리움 삭여 움푹 파인 가을 고독에 부어 담는다. 이곳저곳 골목에 등이 내걸리면 불빛에 아른거리는 고단한 삶의 향수, 나는 작별한다. 어깨에 외로움 얹고, 낙엽이 눈발처럼 나뒹구는 종로로 접어들며.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을 그렸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은 국가등록문화 유산이지만 몇 해 전 담을 걷고 개방했다. 아름다운 석조 건물은 시민들이 쉽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고 손바닥 정원을 거느리게 됐다. 교실에서 낙엽 그리기 구도와 채색법을 설명하고 밖으로 나왔다. 흐리고 소슬한 날씨에 올해는 단풍색마저 좋지 않지만, 낙엽에 누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소풍 같다고 즐거워한다. 햇빛이 좋으면 빛에 반사된 단풍은 화려한 발색을 내는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수채화가 된다. 스케치 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념사진은 인생의 순간을 채집하는 추억의 집합이며 삶을 엮는 진지한 양식이다. 사진에 담긴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질지라도 그리움이란 아름다운 형용사는 변할 수 없다. 다음 주엔 가을빛이 밝아 빛의 색을 충만히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빛에 호박고지와 깍두기 무를 발에 말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호박고지찌개와 양념 향 가득한 무청김치가 있는 상차림은 최고의 밥상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생일을 위해 부분 탈곡한 윤기 있는 햅쌀밥에 뽀얀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을 차려 주신 어머니가 그립다. 정성 가득한 그 밥상은 나의 가슴에 차려진 영원의 성찬이다.
오랜만에 수강생들과 보통리로 스케치를 떠났다. 먼 여행이 아닌 교외이지만 도시를 벗어난다는 것은 휴식과도 같다. 물 위에 뜬 연잎은 아직 푸르고 그 위로 가끔 오리들이 튀어올라 무겁게 날고 있다. 저수지 둘레길을 돌며 스케치 소재를 살핀다. 멋진 주택들이 전망 좋은 언덕에서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다. 소설 속 같은 빨간 집, 텃밭을 단정히 가꾼 모습이 풍성해 보인다. 굵직한 무와 억센 열무, 엄청나게 큰 작두콩, 속이 꽉 찬 배추도 싱싱하다. 모든 잎이 조금씩 색을 잃고 있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자연도 인간도 광합성 에너지를 비축해야 할 시점이다. 길가의 고들빼기, 들깻잎이 그윽한 가을 내음을 선사한다. 이즈음은 고들빼기김치와 깻잎, 김치를 담글 때다. 골목엔 양념 냄새가 가득했다. 아랫목엔 삭힌 감과 우물가엔 삭힌 깻잎이 옹기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저수지와 건너편 전원주택들을 바라보며 각자 맘에 드는 풍경을 스케치했다. 밖을 나오니 마음들도 한결 새롭고 그림도 즐겁고 재미있어 보인다. 시월의 마지막은 늘 우수적이다. 문득 이런 가을의 시 한 편이 스친다. “모든 나무의 선 그 흔들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이 시월/무사 무사의 이 침묵/아침 거품 물고 도망하는 옆집 개소리/하늘을 들여다보면/무슨 부호처럼/떠나는 새들/자 떠나자 무서운 복수로 떼지어 말없이/모든 기억이 캄캄한 곳으로.”-황동규 ‘철새’ 중에서
가을비 질어도 빛은 영글었다. 길가에 핀 나팔꽃, 맨드라미, 봉숭아꽃도 아직 초등학교 화단처럼 남아 있다. 마음의 행로는 넓어 우주의 끝, 하나님의 은혜, 아바타의 심장까지 간다. 바람과 햇살에도 탑승할 수 있고 너의 곁에 나의 꿈을 심을 수 있다. 노란 잎이 가을 편지를 날린다. 가을이야말로 시적 산문이다. 오늘 수업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그려 보는 시간이다. 일상이 담긴 마을 풍경을 원했다. 파리바게뜨와 멋진 스파게티집이 있는 상가를 그리는 분, 우리가 함께 갔던 생선구이집이 있는 골목, 알록달록한 축대와 돌계단이 있는 집 등 다양한 그림이 나왔다. 그림을 들고 각자 재밌게 설명한다. 자신의 그림이 왜 그려졌는지에 대한 답에 전제를 둔 것이다. 그중 가장 깊은 이야기를 새긴 그림을 발견했다. 부족하지만 순수한 내면에 많은 색과 정을 담은 그림이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담아낸 송춘삼님은 자신의 옛집을 설명하면서 슬픔을 삼켰다. 지금은 사라진 남수동 작은 집에 부모 형제가 함께 살았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를 겸했다는 엄마의 집은 그래서 더욱 못 잊을 추억이다. 69세 고령에도 엄마는 늘 엄마인 것.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요즘은 은퇴해 전국을 다니며 멋진 풍경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신다. 이맘때 엄마는 초가지붕 위에 걸린 박을 갈라 박국을 끓이셨다. 가을 뭇국과 함께 가장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엄마의 손이 무척 그립다.
어느새 가을이 깊었다. 무엇이고 시작은 끝이 닿아 있다. 사랑 끝에 이별이 닿아 있듯, 삶 끝에 죽음이 닿아 있듯 놓을 수 없는 끈이 인생이다. 가을이 봉숭아 꽃씨처럼 빛을 터뜨린다. 빛보다 빠른 건 없다. 빛은 형체 없는 세월 같다. 가느다란 허리의 가을 깃 따라 단오 카페에 발길을 내렸다. 예쁜 간판 곁에 연극배우 표수훈 사장과 디자인을 전공한 조민경 부부의 흑백사진이 다정히 걸려 있다. 표 사장은 상시 꺼내 놓은 미소로 반겼다. 은은한 향이 흐르는 커피잔에 정이 서렸다. 어제의 시 축제와 한데우물제를 꺼낸 그의 이야기는 잘 차려진 밥상처럼 풍미가 돋았다. 한데우물가와 마을 안내소 행궁 사랑채엔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한 한옥과 한데우물이 가장 큰 스토리텔링이 됐고, 근처의 후소 오주석 선생의 옛터도 멋진 문화공간이었다. 노란 가을빛이 찻잔으로 쏟아졌다. 어제의 한데우물제는 밥과 국과 맛난 반찬으로 시민들에게 봉사했다고 하며 남창동 시인 최동호 교수의 한데우물 발원문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행사는 K.S 국제 시 시상식도 있었다는데 골목에 시화전도 열리고 있었다. 표 사장의 마을 사랑은 특별했다. 남창동(南昌洞)이 창성을 의미한다고 하여 번성의 꽃 능소화를 마을 꽃으로 퍼뜨리려는 진지한 노력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카페 옆에 심어 놓은 능소화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었다. 후대까지 생각하는 그의 마을 사랑은 무르익은 가을빛이었다.
자영업자가 힘들다. 빈 가게가 너무나 많다. 인터넷 세상이고 배달의 시대이니 가게 월세 내고 인건비 배달비에 힘들 수밖에 없다. 급등하는 원자재와 고금리는 더욱 견뎌내기 힘든 상황이다. 매교동 거리는 대부분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지만 급격한 아파트와 오피스텔 상가 등의 유입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지나가는 이 거리가 아직 익숙하고 정겹다. N작가는 미술학원과 함께 떠났고 신혼예식장도 사라졌다. 그 대신 거리 끝에 새로 들어서는 중앙침례교회는 대형 교회의 위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이 마을을 지배해도 사람은 추억을 입고 살아간다. 시골 막걸리가 아파트에 밀려나 부근에 새 둥지를 틀었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이 그대로이니 단골은 따라가는 것이다. 춘천 메밀막국수도 재개발로 밀려나 근거리의 팔달산 자락으로 옮겼다. 의자에 홀로 앉아 현금을 받는 할머니는 아직 그 자세 그 표정으로 엄숙히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모두가 현재의 자리를 질경이처럼 끈질기게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 바람이 점점 식어 소슬히 흐른다. 문득 가을 시 한 편을 꺼내 본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가을이 비로소 스며든다. 여름 불볕은 속수무책 쌓인 분노 같았다. 규정하기 어려운 계절은 기습적이다. 분잡한 책장을 바라보다가 눈에 띄는 시집 하나를 펼쳤다. 무르익은 감잎 향이 책갈피를 타고 흐른다. 행간은 짧고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지난 열정들이 마음 한쪽을 흔든다. 불면의 시간은 차라리 반납해야 했다. 나는 문득 이런 시를 끓어오르는 애심처럼 읽었다.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어느새 나는 네 심장으로 들어가/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너에게’ 비장한 결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을은 잊힌 추억을 불러오지만 흩날리는 낙엽처럼 작별한다. 흩어진 스케치를 모으다가 향교 앞 다정마트를 발견했다. 가게 안의 방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준 후 백 원짜리 동전을 거슬러 주던 주인 아저씨가 떠오른다. 미닫이창 사이 어두운 방엔 액자에 담긴 가족사진이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다. 언젠가 지원 사업이 있었던지 정감 있는 낡은 간판이 새것으로 바뀌더니 이젠 아예 사라졌다. 이웃집 춘천막국수도 뜯겨나가고 정 때 묻은 흔적들은 모두 공터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추억을 새끼 캥거루처럼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 꿈 같다. 그럴까. 먼 훗날 나 없는 세상에서 내가 놓아준 나의 분신 같은 작품들도 누군가의 추억 속에서 숨 쉴 수 있을까.
여름이 가고 가을이 밀려온다. 불덩이 같은 열기가 아연판처럼 비틀어진 옥탑방 지붕을 관통해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가을바람이 화실 문으로 들이닥친다. 여름 내 밀쳐둔 것들이 익숙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간혹 콩국수가 먹고 싶어 남문시장에 간다든지 어반스케치 수강생들과 마음속 풍경을 찾는다. 서 있기조차 힘든 더위에 사생은 불가능하다. 이런 날은 전망 좋은 카페가 제격이다. 남수문 건너 성곽 자락을 걸었다. 놀라운 풍경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남수동은 어반스케치의 보고다. 오래된 한옥, 빨간 고추가 익어 가는 텃밭, 조용하고 단정한 골목길, 슬레이트 지붕이 얽혀 있는 낡은 집, 어느 소도시의 마을 같다. 작은 집들을 개조해 만든 카페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성곽길 중턱에 메이븐이라는 카페가 웅장하게 서 있다. 실내는 넓고 다소 조용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나의 작은 이상향이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긴 테이블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각기 다른 풍경을 그린다. 커피도 마실 수 있고 다양한 브런치를 즐길 수도 있다. 오후 1시가 돼서야 그림을 모아 놓고 평가를 마쳤다. 진지하고 건강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수업을 종료한 이후는 나도 수강생과 동급 자연인이다. 나는 유목민처럼 걸어 매향 통닭에 선착했다. 온몸이 전율 가득한 시원한 생맥주에 통닭 살이 더해졌다. 함께 피우는 이야기꽃이 인생을 무르익게 한다. 가을 수수밭처럼.
외갓집 가던 여름방학, 미루나무 허리에서 매미가 종일 울어 대고 그 나무 뻗쳐 올라간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 올랐다. 뽀얀 먼지가 버스의 꽁무니를 따라가던 신작로 옆 냇가에서 송사리 잡던 기억도 일기장처럼 그립다. 팔월의 야외 스케치는 칠보산 자락 도토리 농장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모두 나왔다. 시집 ‘별을 심는 농부’를 쓴 이진욱 시인이 일군 농장이다. 그는 대기업의 유망한 일꾼이었으나 자신의 인생관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이 길을 택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사랑도 있고, 진정한 일도 있고, 땀의 가치도 있다. 나는 그의 촌소년 같은 수수한 인간미가 좋다. 자작나무라 불리는 그는 나의 야간 학교에 한 분기를 마쳤다. 입구에 멋진 자신의 서체로 환영의 팻말을 세워 놓았다. 사발 위의 보리밥 같은, 행복을 심는 호미 같은, 흙으로 쓴 시 같은 방(榜)을 두레마을 촌장처럼 걸어 놓은 것이다. ‘칠보산 그리다. 농장에 묻다. 시간을 그리다, 나누다-칠보산 도토리 농장’. 우리는 나무 그늘에서 닭들이 콩밭을 헤집고 다니는 자연을 그렸다. 칸나, 들깨, 군데군데 호박 넝쿨 올라간 곳에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허공에 솟은 솟대와 가을배추가 돋아난 황토밭 이랑에 농부의 물 비가 내린다. 산들바람, 풀바람이 그 어떤 인공의 바람보다 시원하다. 스케치북이 질경이 푸른 풀밭에 서로가 서로를 맞대어 누웠다. 인생의 녹음 아래서 너와 나의 색을 넝쿨처럼 이어.
어떤 사물이나 진리를 생각과 분석으로 깨친 심오한 경지이거나 형이상학적 높은 해석으로 사물의 실상을 비춰 관찰하는 인식을 관조(觀照)라 할 수 있다. 미를 직접적으로 알고 깨닫는 미학 또한 관조다. 나는 관조적으로 사물을 통찰할 참된 지혜를 가지지 못했다. 관조는 대상을 바라보아 깊은 사고의 힘으로 도달하는 심미적 깨달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자는 거대하지 않고 소박한 단아함이 있다. 남도여행을 마무리하며 꼭 보고 싶었던 곳이 광한루다. 남원은 오래전 가족과도 작가들과도 왔던 곳이지만 바쁜 일정에 추어탕만 먹고 지나쳤다. 태조 때 황희가 유배됐을 때 지은 것이라니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는 전란이 잦아 대부분의 문화재가 불타고 원형대로 보존된 게 드물다. 광한루도 정유재란 때 소실돼 인조 16년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누각에 있는 83점의 편액과 말만 들어도 힘이 느껴지는 김종직, 정철, 정인지, 강희맹 등의 시가 있으니 내공 쌓인 곳이다. 무엇보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무대라니 분위기가 다소 로맨틱하다. 연못 가운데 방장정이라는 정자가 우아하게 광한루와 조응하고 있다. 가을바람 소슬히 불면 이 정자에 올라 춘향가를 들으며 사랑의 절정과 해피엔딩의 안도를 고요히 관조하고 싶다. 그러나 난 아무래도 떠나야 한다. 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의 하나, 연인 또는 타인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관조의 옷고름을 매만지며.
휴가라는 용어에 무관심한 세월을 보낸 지 오래다. 망설임 끝에 사돈 내외와 남도여행을 하게 됐다. 차를 준비한 두 분은 이미 앞좌석에 앉아 시종 화기 어린 대화를 주고받았다. 앞좌석은 남자, 뒷좌석은 여자이면 좋을 성싶지만 분리된 어색함의 합리화로 가끔 맞장구를 쳤다. 평소 배려심 많은 바깥사돈은 나와 이미 백두산과 남도여행을 함께해 온 터였지만 이런 동행은 처음이다. 어쨌든 호텔 룸에서 한잔 술도 나누며 나는 상주 모심기 노래 한 대목도 헌정했다. 여수 동백섬과 보성 녹차밭, 남원 광한루까지 여행하며 전라도 음식도 맛보고 좋은 풍경도 즐겼다. 올라오는 길에 들른 화순읍 화보로 기장떡 마을에서 정겨운 골목과 마주했다. 흙돌담집도 추억이 깃들었고 빈집 공터도 한여름의 푸른 하늘, 흰 구름과 조화를 이뤘다. 이곳에서 사 온 기장떡 보자기를 야간반에 풀었더니 멋쟁이 홍성호님이 냉커피까지 사 와 출출한 저녁 교실이 한결 푸근했다. 풀과 나무가 있는 전원 풍경을 주제로, 화순의 기장떡 마을을 함께 그리며 좋은 색에 물들여 가기를 바랐다. 오늘은 박정란님의 그림에서 화려하지 않아도 느낌 있는 순수함을 발견하고 기뻤다. 채색한다는 말보다 물들인다는 의미에 정란님은 마음 전환을 했다고 한다. 직장생활도 잘하고 공동체에도 모범적인 그녀의 진지한 발전에 내 마음도 순수로 물든 듯하다. 봉숭아꽃물처럼 내면으로, 깊은 내재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