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과(功)’보다는 ‘실(失)’에 머무르기 쉽다. 쌓아온 변화보다 부족했던 모습만이 도마 위에 오르고 더욱 오래 기억되는 것은 지방의회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오래된 관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비판의 이면에 놓인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결핍에 대해서는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을까. 지금까지 지방의회는 의원 개개인의 경험과 노력에만 의존했다. 지방의회만을 다룰 별도의 법령조차 없이 수많은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천천히, 조금씩 발전의 길을 찾아왔다. 이제는 단순한 집행부 견제·감시역에서 벗어나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직접 만들고 성과를 점검하며 지역의 미래를 그려가는 주체로 우뚝 섰다. 실제 경기도의회는 전국 광역 최초의 재난기본소득 조례, 학교 교복 지원 조례 등을 제정, 전국적 흐름을 선도했다. 이는 지방의회가 중심이 되어 사회적 복지의 기준선을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갈수록 다원화되고 세밀해지는 정책 수요와 지역 현안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역량도 함께 진화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길은 한낱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고, 더 깊이 있는 행정 견제에 나서기 위해서는 ‘의지’를 뒷받침할 ‘체계’도 필요하다. 경기도의회가 추진하는 ‘의정연수원’ 설립은 그러한 체계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의정연수원은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다. 경기도민을 위한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행정을 감시하는 전 과정에 필요한 전문성과 실무역량을 제도적으로 축적하기 위한 ‘기초체력’이다. 의원과 사무처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공간이자, 나아가 전국 지방의회가 함께하는 지방 의정 학습 생태계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들도 있다. 많은 변화와 개혁의 시도가 불신의 눈초리에서 시작되듯 일각에서는 의정연수원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그 실효성을 의심한다. 그러나 경기도의회는 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조례 정비와 조직개편 등을 통해 실행력을 갖춘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도전 없는 변화는 없다. 경기도의회는 지금, 지방의회의 다음 10년, 20년을 위한 책임 있는 도전을 시작했다. 새로운 길을 내는 이 도전이, 대한민국 지방의회의 더 큰 성장에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닭의장풀의 꽃말은 ‘시샘’이다. 시골의 닭장 근처에서 잘 자라는 데다 꽃이 닭 볏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달개비, 닭의꼬꼬, 닭의밑씻개, 닭개비, 닭이장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여름에 피는 꽃으로 꽃은 하루밖에 피어있지 못한다. 주로 씨앗으로 번식한다. 9월 이후에 잘 익은 종자를 따서 냉장고에 건조한 상태로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에 뿌리면 싹이 잘 나온다. 4~5월에 줄기를 마디 2, 3개씩 붙여 잘라서 모래에 꽂아두면 마디 끝에서 2주 정도면 새 뿌리를 내린다. 다소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지만 습지나 건조지 모두 잘 견뎌 심을 수 있는 공간 범위가 넓다. 농촌진흥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을 한 6.27대책이 발표된 후 급등하던 서울의 한강벨트 집값은 일단 멈췄다. 올해 상반기 서울 한강벨트 집값의 비정상 급등의 브레이크를 잡았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하고 싶다. 시장 분위기를 관망으로 돌림으로써 상승세를 꺾고 거래량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급 불일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에서 후속대책에 시장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후속대책이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으로 돌아서면서 다시 각자도생 모드로 돌아갈 것이고, 예상보다 더 알차고 좋은 내용으로 시장 수요자들의 불안심리가 안도감으로 전환이 되면 당분간 수도권 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릴 것인가, 계속 쉴 것인가 그 갈림길이 6.27의 후속대책에 달려있다. 6.27 대책이 초강력 대출 규제라 하더라도 그 유효시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다. 추석과 연말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기에 적어도 후속대책은 추석 전에는 나와야 할 것 같다. 좋은 대학교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드는 젊은 수요와 갈수록 커지는 서울과 지방 간의 자산 격차에 위기감을 느낀 지방의 자금까지 서울이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의 공급부족 문제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년 입주 물량이 올해의 3분의 1토막이 나기 때문인데 서울의 입주 물량 부족 현상은 적어도 3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 재건축, 재개발을 서두른다 하더라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준금리까지 내려가고 추경으로 유동성까지 증가하는데 서울 집값이 안 올라가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기간 불안감이 누적된 시장 수요자들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초강력 규제가 나왔음에도 현장 분위기도 생각보다 덤덤하다. 문의가 크게 줄었지만 그렇다고 급매로 팔자는 집주인도 별로 없다. 오히려 6억원 대출 규제 영향에서 자유로운 경기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살짝 움직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도 그럴 것이, 주택담보대출이 6억원이라는 돈은 연 수입이 1억원 정도 돼야 받을 수 있고, 월 300만원 정도의 원리금 상환액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맞벌이 부부 이상의 소득이 아니라면 힘들다는 의미다. 그리고 최근에는 주택 수를 늘리기보다 ‘똘똘한 한 채’가 최근의 추세였기 때문에 다수의 실수요자는 큰 타격감을 받지는 않는다. 당황스럽던 마음도 한 달 정도 지나가면 다 적응을 한다. 필요한 사람은 6억원 이하 대출을 받아 입주하면 되고, 기존 주택에서 갈아타려는 분들은 팔고 갈아타면 된다. 대출한도가 좀 부족하다면 면적을 줄이거나 다른 아파트를 찾아도 되고 여의치 않으면 안 사고 기다려도 된다. 거래량 감소, 상승률 둔화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지만 지속적 집값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집이라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의 안식처이자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나의 노후 준비이자 내 자녀의 인생이 달린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결코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 6.27대책 다음에 나오는 후속대책이 중요하다. 어차피 입주 물량을 당장 늘릴 수 없다면 종부세는 살짝 올리고 양도세는 한시적으로 감면을 해줌으로써 매물이 나오면서 부족한 공급을 메워줄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3기 신도시 포함 공공택지의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을 상세히 공유하고 민주당은 못 할 것으로 생각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전격적으로 폐지해서 공급을 늘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서울의 인구와 자본을 분산할 수 있도록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와 수준 높은 대학교, 대형병원을 육성하는 프로젝트까지 더 한다면 불안심리는 잦아들고 한번 믿고 기다려보자는 신뢰가 커질 것이다. 시장은 자극을 받을수록 왜곡이 되기에 처음 방향을 잡아주는 대책이 매우 중요하다. 재건축, 재개발은 방치하고 공공주도 개발이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은 공급 불안만 더 야기시킬 뿐이다. 전세대출을 막아 집값 상승을 잡겠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처음부터 전세대출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전세대출을 건드리면 부작용이 더 크다. 특히 사회 초년생들과 신혼부부들을 월세로 내모는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이 될 것이다. 서울 집중화를 방치해 인구분산에 실패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주택공급도 늘리지 못했으며 전세대출을 도입해서 전셋값과 집값을 올린 국가의 책임을 더 이상 국민 더군다나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에게 떠넘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집값이 내려가면 그것이 정의이고 도움이 된다?’ 집값이 떨어지면 부자들이 쓸어 담고 서민들은 더 힘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했다. 누구보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원하는 한 사람으로 제발 후속대책은 인위적인 수요 억누르기가 아닌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충실한 신뢰의 싹을 심어주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풋보리 내음 바람에 일렁인다 진녹색 옷을 입고 출렁이는 파도를 일으키며 보리 송아리 털 송송 누르스름히 익어간다 이삭 한 움큼 잡아 뜯어 구어먹고 보리 새싹 된장국, 떡, 처마 끝에 매달린 대바구니 보리밥 *확독에 보리 갈아 정성으로 밥 지어주신 어머니가 더욱 더 보고 싶다 지금쯤 고향에선 보리 타작 하겠다 *확독: 돌확(돌절구)의 방언 신영희 시인 ‘수원문학’ 신인상 당선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K. 이 영문자가 한국 문화의 진원으로 거듭날 줄이야.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만방에 드높이고 있는 K-바람. 유사 이래 최대의 문화적 확장임을 일깨우듯, 세계 곳곳에서 만나는 현지 외국인의 한국어 사용도 빈번하다. 특히 자국어 사랑에 진심이라는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마켓에서 본 ‘한글교본’은 즐거운 충격이었다. 돌아보면 K가 우리 문화며 국격을 높인 지는 꽤 됐다. 케이팝부터 드라마, 영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날로 우뚝해지는 위상에 덩달아 우쭐해진다. K뷰티와 K푸드로 통칭되는 간편식(라면, 김밥)이며 고급 미식이 세계인을 사로잡는 소식도 연일 신명을 올린다. 더러 외국에서 먼저 유행하고 국내로 인기를 잇는 제품도 있다니, 세계인의 반응이 그만큼 빠르고 넓다는 것이겠다. 그럼 우리의 고전은 어떠한가. 한국의 뿌리 깊은 정신의 고전도 그만큼 세계인을 매혹하고 있는지. 서양의 고전음악에서는 일찌감치 세계적 음악가를 많이 배출하며 K클래식의 위력으로 알려졌다. 그와 달리 우리의 고전인 국악은 비교가 무색할 만큼 인지도가 미미하다. 국외 공연에서는 판소리 등 국악만의 예술성에 매료당하는 외국인이 많다지만, 국내에서는 아주 소수만 즐기니 말이다. 상대적으로 더 외로운 고군분투가 ‘전통’을 달고 있는 한국적 예술(인)의 운명이자 현실인 것이다. 그런 중에 번쩍 외신을 타고 온 반가운 소식이 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한국의 문화 교류로 고전인 시조를 시랑 낭독하는 문화제를 열었는데, 거기서 시조를 직접 쓴 대학생 수상자가 나온 것이다. 프랑스 청년의 한글 시조를 화면과 지면에서 보는 순간 묘한 감동이 실려 왔다. 사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몇몇 뜻있는 이들의 활동에 힘입은 시조운동이 시작된 지 한참 됐고, 현지에서의 창작도 꾸준히 넓혀 왔다. 한국의 고전을 찾다 시조를 발견하고 향유와 함께 창작을 견인하는 시조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지금은 창작시조로 묶어낸 외국인의 시조집도 간간이 나오는 상황이다. 시조(時調)는 K문학의 종가로 불린다. 고려 말부터 한국적 정서와 삶과 자연을 노래해 온 민족 시가인 까닭이다. 근대 들어 창(唱)과 분리한 후부터는 가사만으로 현대의 정형시라는 양식적 정립을 다시 했다. 그런 시조 공부를 미국에서 시작한 배경에는 일본의 단형시 하이쿠가 있었다. 일본의 전통시인 하이쿠는 일찍부터 미국으로 들어갔고, 중등 과정에서 배우고 쓰며 일본 정신문화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그와는 좀 다른 전개지만 이제는 프랑스에서도 시조를 쓰는 젊은이들이 나왔다니, 놀라운 문화적 사건이다. 우리네 청춘들은 잘 모르거나 안 읽고 안 쓰는 시조를 어쩌면 외국인이 더 잘 쓰는 경우도 나올 수 있겠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국뽕’ 같지만, 한때 전국을 뒤흔들었던 광고 문구다. 국악에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덧대며 국민적 신명을 올렸다. K문화의 놀라운 확산 속에서 새삼 소환해 보는 ‘우리 것’의 기억이다. 찾아보면, 한복이나 국악 가미한 BTS 공연이 기록을 경신하듯, 우리 고전이며 시조가 함께할 길도 더 있을 테다. K라는 특별한 대문자에 한국 문화의 본류인 고전을 특별한 희망으로 또 얹어본다.
원삼면 죽능리 발전소 공청회가 열렸다. 반도체 산단 내 조성되는 시설이다. 14만7천926㎡ 크기의 LNG열병합발전소다. 발전용량은 1천50MW, 517.3Gcal/h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공장에 공급된다. 한국중부발전㈜와 SK이노베이션㈜가 사업시행자다. 지난 5월22일 1차 공청회가 예정됐었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이번 2일 공청회에서도 주민들의 집단 행동이 있었다. 용인 원삼면 9개리 주민들의 반대 표명이었다. 주민들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주민 동의 없는 환경영향평가 공청회 중단이 있다. 발전소 건립 계획 전면 재검토 요구가 있다. 환경·수질 등 정밀 조사 및 피해 예측 자료 공개 및 대안 마련도 있다. 이날 공청회에는 안성 주민 목소리도 있었다. 양성·고삼·보개면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다. 비대위는 고압송전선로 전력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원삼면 발전소는 잉여 전력 생산용이라는 것이다. 이를 판매해 수익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성시민의 반대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발전소 인근 보개면 등의 피해 우려다. 분진과 유해가스 등에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또 반도체 폐수, 온배수 방류 등도 문제 삼고 있다. 안성 고삼호수를 관통하도록 계획돼 있다고 주장했다. 안성 주민 의견이 배제됐다는 문제점도 강조했다. 이 부분은 안성시의회에서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사업시행자 측은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협의·조율을 거쳐 ‘최대한 사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에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것은 없다. 모두 절박하고 필요한 요구 사항일 것이다. 당연히 충분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모두가 궁금한 부분도 있다. 이날 비대위가 주장한 ‘잉여 전력’의 진실이다. 안성을 통과하는 고압송전선로가 전력을 공급한다. 이 전력만으로 산단 가동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공급량과 수요량을 비교해주면 된다. 사업시행자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일이다. 잉여 전력을 판매할 것이라는 비대위 주장도 그렇다. 산단 가동과 상관 없는 잉여 전력 생산용 발전소인가. 그렇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발전소 건립에 따르는 현실적인 피해는 있다. 이 피해를 강요하려면 그만한 당위성이 필요하다. ‘전력 장사’는 이 범주에 들지 않는다. 사업과 규모 등의 전면 재검토가 논의될 수도 있다. 반대로 산단 가동에 필수적인 시설이라면 어떤가.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력이 있어야 산단이 가동된다면 발전소는 건립돼야 한다. 협의와 조율의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 원삼 발전소 건립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잉여 전력 주장’의 실체가 설명돼야 한다.
당분간 추가 민생지원금 시행은 없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보면 그렇다. “일단 추가로 시행할 계획은 없다”고 명확히 했다. 그 이유로 녹록지 않은 재정 상황을 들었다. 효과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SOC 예산이 효과가 더 크다는 견해에 대해 “틀린 얘기는 아니다”라고 평했다. 다만 민생지원금의 소비진작, 소득지원 효과를 강조했다. 효과 전망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것보다 높을 것이다.” 많이 달라진 느낌을 줬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역력했다. 어려운 재정 상황과 연계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이재명 정부 첫 추경의 핵심은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전국민 1인당 15만원 이상 선택적으로 지원키로 했다. 13조여원의 재정이 투입된다. 22대 더불어민주당의 1호 당론이었다. 이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집권 초기 추경인 만큼 이 약속에 맞춰졌다. 그랬던 과정에 비하면 분명한 변화다. 민생지원금 지급을 할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우리 정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정부가 잘한다면 민생지원금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정의 경험도 소개했다. “(경기도민에게) 10만원을 지급한 경험이 있다”며 “골목상권 등에서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경기도는 지원금을 지역개발기금에서 차용했다. 경기도는 지금도 연 3천억여원씩 갚고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대통령이다. 선거 정국에서는 긍정적 부분만을 부각했다. 이제는 정권을 책임진 입장이다. ‘재정 부담’을 고백한 배경일 것이다. 이날 마침 주목을 끄는 통계 하나가 공개됐다.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꿔 쓴 차입금 실태다.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공개했다. 새 정부 첫달인 6월에만 18조원을 빌려 썼다. 세입과 세출의 일시적 시차를 메우는 수단이다. 정부가 쓰는 마이너스통장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도 늘 사용하던 자금이다. 다만 그게 첫달부터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말 빚 55조원을 전부 상환했다. 대선 기간 5월에는 없었다. 윤석열 정부 빚은 ‘0원’이었다. 지난달 26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이렇게 강조했다. “경제 위기에 정부가 손을 놓고 긴축만을 고집하는 건 무책임한 방관이자, 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경제는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과감한 재정 투입을 예고하는 듯한 연설이었다. 일주일 만에 확 달라졌다. 재정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추가 지원금 지급이 없음을 밝혔고, 파급 효과의 다변성도 인정했다. 옳은 판단 아니겠나. 이 판단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일촉즉발의 남북관계가 그랬다. 한반도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이 터졌다. 그러다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할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이른바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이 열리고 중국과 극적으로 화해가 이뤄졌다. 소련과도 접촉해 상호 전략무기제한협정을 맺었다.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대만이 축출됐고 그 자리에 중국이 이름을 올렸다. 그때 한국의 한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찾았고 파격적인 선언문이 나왔다. 1972년 7월4일 오전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이름으로 발표됐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사상과 이념, 제도 등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고도 했다. 적십자회담 추진과 서울~평양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도 합의됐다.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 개방과 신뢰 회복 등의 원칙도 담겼다. 6·25전쟁 이후 지속됐던 상호 적대도 청산하고 그동안 금기시됐던 용어들을 삽입하고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루는 단계에 이르자고도 했다. 한반도의 장밋빛 미래가 제시된 셈이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명쾌했다. 그런데 과연 그 계획은 지속됐을까. 선언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으로 버려졌다. 그해 7월부터 북한의 위협은 재발됐다. 남북 관계는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전보다 더욱 험악해졌다. 같은 해 10월 한국에선 계엄령이 선포됐다. 국회도 해산됐고 유신헌법이 제정됐다. 제3차 국민투표로 제4공화국이 출범됐다. 반전은 이후로도 수십년 동안 계속됐다. 질곡의 현대사는 그렇게 거듭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남북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양측의 뼈를 깎는 통찰과 노력이 없으면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그게 역사가 보여 주는 냉혹한 교훈이다.
올해는 윤달이 있는 해다. 윤달은 본래 윤월(閏月)로 ‘더하다, 보태다’의 ‘윤(閏)’에 한글로 월(月)을 표기한 한자와 한글이 혼용된 표현이다. 그래서 윤달을 잉여의 달, 추가된 시기로 여기며 민간과 종교에서 특별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왜 이런 특수한 시기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 지금과 같이 일상의 대부분을 양력으로 보내고 태어날 때부터 양력만을 사용해온 세대에게 음력도 다소 낯선데 윤달은 더욱 생소하고 자칫 종교적인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윤달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선조들이 이 땅에 정착하고 생활환경을 꾸리며 만들어낸 지혜로운 시간법이다. 우리는 예부터 농사를 생계의 중심으로 삼아온 농경사회다. 그렇다 보니 태양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시간과 천문과는 다르게 달과 별을 중심으로 시간과 날짜를 계산했다. 그러나 태양의 주기에 의해 생기는 사계절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모두 중요시하다 보니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계절과 천문의 움직임에 상세하고 정밀한 계산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다. 이 태음태양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이십사절기는 양력으로 하지만 농사를 비롯해 민간의 의례에 관한 건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는 큰 차이가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윤달이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7.3일이다. 그러나 지구도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에 속도에 차이가 발생하게 돼 태양을 돌고 있는 지구를 다시 달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5일이 된다. 그리고 29.5일에 열두 달을 곱하면 354일이 되는데 양력의 1년인 365일과 약 11일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양력과 음력의 1년의 시간차를 극복하기 위해 2, 3년마다 한 달을 더 넣게 되는데 이것을 ‘치윤법(置閏法)’이라 한다. 즉, 윤달은 양력과 음력을 동시에 사용하며 그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치윤법의 산물이다. 이는 일상의 농사와 의례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해낸 선조들의 지혜인 것이다. 이 치윤법에 의해 2025년에 윤달이 있게 된 것이고 양력 7월25일이 음력으로 두 번째 6월인 윤달이 된다. 이처럼 윤달은 같은 달이 두 번 있게 되기에 예부터 이 시기에는 그동안 소홀히 했거나 하고자 했던 것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해 왔고 특히 종교계에서는 윤달맞이 법회나 기도회를 열어 자신과 인연들의 공덕을 쌓고자 한 것이다. 이번 7월의 윤 6월에 자신의 주변과 인연들을 보다 살펴보고 그동안 놓쳤던 것이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챙겨 다시금 해본다면 선조들이 만든 지혜로운 시기에 자신을 보다 발전시키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지혜로운 우리의 윤달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6월3일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 한 달여 동안 지역구인 동탄의 지역 현안을 점검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현주소를 치열하게 따라잡는 데 몰두해 왔다. 지난 6개월간 계엄의 상처를 수습하고 정치질서를 회복해 나가려는 국내 정치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세계는 이미 인공지능(AI)과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AI, 로봇, 반도체 등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자는 한 가지 불안을 느꼈다. 우리가 정치권에서 지난 십수 년간 치열하게 벌여온 수많은 논쟁이 이 거대한 기술 전환의 흐름 앞에서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전란을 겪고도 예송논쟁에 몰두했던 사대부들은 성리학 해석의 우열을 가리는 데만 열중했고 조선은 국제 정세의 흐름에서 고립됐다. 조선 후기 내내 그 흐름이 이어진 뒤에는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게 됐다. 필자는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지금도 아마추어 수준이나마 코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AI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는 바이브 코딩이라는 최신 조류에 맞춰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고 있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문명 자체의 전환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주요 논쟁은 복지였다. 보편적 복지인가, 선별적 복지인가의 논쟁으로 표심이 갈리고 정당은 경쟁했다. 그러나 필자는 확신한다. 앞으로 십수 년간 우리 정치가 직면할 가장 중요한 의제는 ‘인간 소외’와 ‘대량 실업’이다. AI가 예술, 작문, 상담, 분석까지 대체하는 시대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특히 반복적이고 중간 숙련도가 필요한 다수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위협받고 있다. 판교와 테헤란로의 프로그래머 신규 채용이 ‘절벽’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급감했다. 복지, 부동산, 조세 등 다른 모든 정치적 쟁점을 작게 보이게 할 대량 실업의 위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온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는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대량 실업과 인간 소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해 민주·진보 진영은 기본소득이라는 담론을 제시해 왔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고통받을 이들을 위한 복지적 보완책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고 일자리를 갖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보장할 수 있다는 달콤한 구상은 누구에게나 지속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귀에 익은 개념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 진영 역시 기술 대전환 시대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의 현실이다.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정치권은 ‘검찰 정치’와 ‘검투사 정치’에 매몰돼 왔다. 상대를 구속하고 방탄하며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미래는 정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조선의 사화를 떠올린다. 정적을 숙청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던 정치는 결국 조선을 반으로 쪼개 쇠락하게 만들었다. 그 역사는 반복되곤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다. 정치는 권력을 쥐기 위한 투쟁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변화는 이미 눈앞에 와 있고 미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