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라 노여심 해맑은 날에는 풀밭이 좋아라. 풀밭에 피어난 꽃들이 좋아라. 꽃반지를 만드는 엄마의 콧노래가 예뻐라. 꽃다발 만들어 오빠! 부르는 누이의 목소리가 참 예뻐라. 서로를 아끼는 그 마음 예뻐라 휴일을 맞은 가족이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풀밭을 보자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며 좋아한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코로나19 걱정도 없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솜털처럼 보드랍다. 꽃반지를 만드는/엄마의 콧노래가 예뻐라.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풀밭에 앉아 꽃반지를 만든다. 젊은 날 남편과 연애하던 생각을 하면서. 즐겁다 보니 어느새 콧노래까지 나온다. 기분이 좋을 때 엄마는 꼭 콧노래를 부른다. 주방에서, 거실에서, 베란다에서. 오늘은 엄마의 콧노래가 유난히도 맑고도 곱다. 한참 뛰놀던 아이들이 숨찬 얼굴로 풀밭에 앉는다. 꽃다발 만들어/오빠! 부르는/ 누이의 목소리가 참 예뻐라. 누이동생은 오빠에게 꽃다발을 주고 싶다. 엊저녁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말다툼한 게 마음에 걸려서다. 갓난아기일 땐 바쁜 엄마 대신 참 많이도 저를 업어주던 오빤데. 예쁜 꽃으로 꽃다발을 만든다. 그 손에 햇살이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엄마는 꽃반지를 만들고, 어린 딸은 오빠에게 줄 꽃다발을 만들고. 어디선가 찰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나들이 나왔던 사진작가가 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미소와 함께 필름에 담는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눈길 신난희 우리 집은 106동 1004호 은지네 집은 맞은편 206동 1004호 자꾸자꾸 쳐다봤더니 눈길 따라 반질반질 공중에도 길이 났다 아파트란 곳은 어찌 보면 이웃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곳. 그러다 보니 마주치는 얼굴끼리도 모른 채 지나쳐버리는 게 일쑤다. 인사는커녕 그 흔한 미소조차도 없이 지낸다. 이 동시 속의 두 집도 그렇게 지내는 모양이다. 그런데 자꾸자꾸/쳐다봤더니//눈길따라/반질반질. 뭔가 달라진 모양이다. 그냥 보고 지나쳤으면 달라지지 않았을 게 자꾸 보니 달라졌다는 얘기다. 아, 그러고 보니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란 대중가요 가사가 생각난다. 보고 또 보면 나도 모르게 정이 든다는 얘기다. 어디 대중가요뿐인가? 짧아서 더욱 유명해진 나태주 시인의 풀꽃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했다. 공중에도/길이 났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 세상의 그 어느 길보다도 예쁘다. 꽃길도 예쁘지만 사람이 내는 눈길은 더더욱 예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늘부터는 우리 모두 눈길을 내는 사회가 됐으면 참 좋겠다. 아는 사람끼리는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눈길을 내자.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와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내는 눈길은 또 얼마나 곱겠는가. 잘 차려입은 사람과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이 내는 눈길은 또 얼마나 따뜻할 것인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코로나 풍경-2020, 어린이날 박경용 말귀만 살짝 바꾼 아리송한 거리 두기. 듬성듬성 혼자 앉기, 짝꿍도 멀리 하라네요. 하느님, 오늘 하루만이라도 짝꿍을 돌려주세요! 거리두기 어린이날 짝꿍 그리워요 참 살다가도 별일을 다 보겠다.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코로난가 뭔가 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1년이 넘도록 이 생고생을 하다니! 이 동시조(童詩調)는 코로나로 인해 짝꿍까지 멀리해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말귀만 살짝 바꾼/아리송한 거리 두기.//듬성듬성 혼자 앉기/짝꿍도 멀리 하라네요. 거리 두기란 신조어를 이 땅에 탄생시킨 이 전쟁 아닌 전쟁. 시인은 어린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눈물을 삼키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니 이보다 더 분통이 터지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함께 웃고 함께 뒹굴어야 그게 사는 즐거움이자 행복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오죽했으면 하느님,/오늘 하루만이라도/짝꿍을 돌려주세요! 하고 하느님께 빌었겠는가.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시인은 어린이들의 이런 간절한 소원을 동시조에 담았다. 동시조는 주로 어린이를 주독자로 예상하고 동심을 노래하는 시조다. 《쪽배》는 29년의 역사를 가진 이 땅의 동시조 모임이다. 이번에 큰맘 먹고 코로나를 주제로 한 동시조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인은 이 모임을 이끄는 수장(首長)이기도 하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이사하던 날 이수경 짐 나르는 아저씨가 화분을 달싹 드는데 왕거미 한 마리 툭 떨어지더니 부리나케 달려서 다른 화분 아래로 쏙 들어갔다. 말하지 말아야지 엄마한테는 하찮은 생명 하나라도 가벼이 보지 않는 마음 이사하는 날의 풍경을 담은 동시다. 짐 나르는 아저씨들의 분주한 손으로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이삿짐 차에 옮겨 싣는다. 가족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예전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게 요즘의 이사 풍경이다. 이 동시 속의 아이도 그렇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다가 화분 밑에 숨어 있던 왕거미를 본 모양이다. 자신의 은신처가 드러나자 화들짝 놀란 왕거미가 부랴부랴 다른 화분 밑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걸 본다.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이다. 말하지 말아야지/엄마한테는. 엄마가 알면 당장 왕거미를 잡아 죽일 건 빤하니 비밀로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못 본 척하겠다는 거다. 이 아이의 마음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이런 게 동심이다. 하찮은 생명 하나라도 가벼이 보지 않는 마음. 어린이 마음은 하늘의 마음, 아름다움 그 자체다. 아이는 그날 저녁 일기장에 이렇게 적을 것이다. 왕거미야, 아까 낮에 많이 놀랐지? 미안해. 제발 꼭꼭 숨어서 들키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아라. 알겠지?. 아이의 일기장은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아름다운 비밀 하나를 고이 간직한 채로. 윤수천 아동문학가
도봉산 가까이 박종현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따로 따로 산이 되어 마주보고 있다.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따로 따로 나무 되어 마주보고 있다. 그리운 사람은 가까이 가기가 오히려 어렵다. 왠지 쑥스럽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수백, 수천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가까이 가기는 쉽지 않다. 그저 마음속에 깊숙이 담아놓고 혼자서만 애를 태울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따로 따로 산이 되었다고 했다. 산이라도 되어야만 간신히 마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인가. 그리고 시인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따로 따로 나무라도 되어야만 간신히 마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 또한 얼마나 그윽한 바라봄이며 목마름인가.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도봉산을 통해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담았다. 박종현! 시인은 1976년 전남 광주에서 어린이 문예지《아동문예》를 창간하여 무려 44년간 이끌어 오다가 작년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라나 개인이나 어렵기 그지없던 70년대에,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어린이 문예지를 창간했던 그 용맹(?)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시인의 1주기를 맞으며 갖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린이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 시인 박종현! 도봉산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 시인 박종현! 그를 그리워하는 이 땅의 아동문학가들이 추모 문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귀하! 나, 박종현》.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도봉산 가까이 박종현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따로 따로 산이 되어 마주보고 있다.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따로 따로 나무 되어 마주보고 있다. 그리운 사람은 가까이 가기가 오히려 어렵다. 왠지 쑥스럽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수백, 수천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가까이 가기는 쉽지 않다. 그저 마음속에 깊숙이 담아놓고 혼자서만 애를 태울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따로 따로 산이 되었다고 했다. 산이라도 되어야만 간신히 마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인가. 그리고 시인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따로 따로 나무라도 되어야만 간신히 마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이 또한 얼마나 그윽한 바라봄이며 목마름인가.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도봉산을 통해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담았다. 박종현! 시인은 1976년 전남 광주에서 어린이 문예지《아동문예》를 창간하여 무려 44년간 이끌어 오다가 작년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라나 개인이나 어렵기 그지없던 70년대에,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어린이 문예지를 창간했던 그 용맹(?)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시인의 1주기를 맞으며 갖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린이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 시인 박종현! 도봉산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 시인 박종현! 그를 그리워하는 이 땅의 아동문학가들이 추모 문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귀하! 나, 박종현》. 윤수천 아동문학가
봄 마중 강수성 단추 하나 풀면 감기들 것 같고 단추 하나 잠그면 땀이 날 것 같아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 변덕스런 봄 마중. 소리 없이 다가온 봄 봄은 소리 없이 온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꼭 장난을 좋아하던 우리 셋째 누나 같다. 셋째 누나는 늘 그랬다. 무슨 일이든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깜짝 놀라게 하곤 깔깔 웃었다. 용무는 그 뒤의 일이었다. 누나는 그게 퍽 재미있었나 보다. 이 동시는 소리 없이 온 봄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봄인가, 겨울인가 제대로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단추 하나 풀면 감기들 것 같고//단추 하나 잠그면 땀이 날 것 같아. 맞다! 그러다 보니 옷도 어느 것을 입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럼에도 기분은 왜 이리 좋을까. 봄이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럴 수밖에. 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들이, 저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새싹들이 우리를 마냥 들뜨게 하지 않는가.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는 이제 서서히 몸을 풀리라. 봄의 진정한 의미는 겨울이란 침묵을 묵묵히 견뎌낸 데 있다. 그 힘씀이 저토록 찬란한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변덕스런 봄 마중. 봄 날씨는 고르지 않다. 장난스럽다 못해 심술궂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지 않은가. 단번에 오는 봄보다는 온 듯 만 듯한 봄이기에 얄밉다가도 사랑스럽지 않은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세상을 사는 데 앞을 보지 못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일 수밖에 없다. 길이란 길은 온통 어둠뿐인 데다가 곳곳에 장애물도 널려 있다. 이 동시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시간 이야기다. 안대를 하고/진우가 말하는 대로/진우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걸음을 떼어 놓을 수밖에. 여기까지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구절이다. 빼어난 시의 맛은 다음 구절에 있다. 나는 지금/진우 목소리가 아니라/진우 마음을 듣고 있다. 이 얼마나 깊고도 환한 울림인가. 길을 가는 것은 목소리가 아닌 마음이라는 것! 그건 곧 다음으로 연결된다. 믿으면/보인다. 시각장애인에게 지팡이(?)는 믿음 그 자체일 것이다. 지팡이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한 발짝이라도 뗄 수가 있겠는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앞이 어둠일지라도 내 몸을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동시는 시각장애인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불신(不信)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는 것이다. 왜 서로를 믿지 못하느냐고 꾸짖고 있는 것이다. 참 아픈 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겸손 신난희 자기 걸 주면서도 몸을 숙이는 주전자며 물병은 가진 걸 다 줄 때까지 몸을 숙이고 또 숙인다. 한 세상 살다 보면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도 삶의 교훈을 얻는 경우가 참 많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주전자와 물병에서 귀한 작품을 얻었다. 자기 안의 물을 남에게 주기 위해서는 몸을 숙여야 하는 주전자와 물병을 노래한다. 곧 낮은 자세다. 자기 몸을 숙여야만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 꼿꼿한 자세로는 줄 수 없다는 것. 겸손의 의미를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풀어놓았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4년마다 있는 단체장 선거에서 매번 떨어지는 후보가 있었다. 잘 생긴 얼굴에 높은 학력, 언변까지 뛰어난 그였지만 어쩐 일인지 매번 낙선의 고배를 맛봐야 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억울하다며 솔직한 말을 원했다. 그때 한 친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자넨 인사를 뒤로 받잖아!. 거만함이 그의 패배 원인이었던 것이다. 잘 생긴 얼굴, 높은 학력, 뛰어난 언변도 겸손만 못했다는 얘기다. 가진 걸/다 줄 때까지/몸을 숙이고/또 숙인다. 주전자와 물병을 다시 봐야겠다. 저 하찮아 보이는 물건이 그 어느 교과서나 강의보다도 커다란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한해가 저무는 끝자락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눈싸움 이화주 달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아 그런데, 주먹만한 요 폭탄 한 번 맞으면 웃음이 터져. 꽃잎처럼 웃음이 날아다녀. 운동장 가득 정말이야 눈 오는 아침 모두 모두 운동장으로 나와 봐.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흰 백설탕 같았다. 마음 같아선 혀를 있는 대로 내밀어 핥아먹고 싶었다. 겨울이 되어도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던 최근의 겨울은 얼마나 삭막했던가. 모처럼 내린 눈이 너무도 반가워 미끄러운 길도 마다하고 여기저기 쏘다녔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면서. 내 어릴 적엔 사흘이 멀다 하고 눈이 내렸다. 자고 나면 눈이었다. 우린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눈싸움을 하는 즐거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생님도 끼어들어 온 운동장이 전쟁터였다. 이 동시는 겨울 속의 동심을 노래하고 있다. 주먹만한 요 폭탄 한 번 맞으면/웃음이 터져. 꽃잎처럼/웃음이 날아다녀. 운동장 가득. 눈 폭탄은 웃음이었다. 맞으면 맞을수록 웃음도 덩달아 커졌다. 세상에 이런 폭탄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학교 운동장에서만은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운동장이 그립다. 눈 오는 아침/모두 모두 운동장으로 나와 봐. 목청껏 소리쳐 보고 싶은 요 구절. 정말이지 코로나가 얼른 없어져서 우리 어린 학생들이 맘 놓고 뛰놀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기왕이면 눈까지 내려 운동장마다 웃음 폭탄이 팡팡 터졌으면 춤을 추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대추 최지원 쪼글쪼글해지니 여기저기 불려다닌다 늙어서야 제대로 대접받는 대추 사람보다 낫다. 늙은 대추, 주름져야 더 값진 生 보면 볼수록 대추는 참 못생겼다. 우선 웬 주름이 그리도 많은지! 성한 곳 하나 없이 쪼글쪼글한 게 어디 가서 고생만 실컷 하다 온 게 틀림없다. 그런데 참 묘한 게 그 주름투성이 늙은 대추가 인기 만점이다. 전통찻집에 가면 대추차가 인기고, 삼계탕에는 으레 대추가 들어가야 맛이 난다. 어디 그뿐인가? 한약에도 대추는 상비약재(常備藥材)다. 그러니 견과류 가게에 가면 인기를 끌 수밖에. 쪼글쪼글해지니/여기저기/불려다닌다. 맞다! 세상엔 이런 경우도 다 있다. 젊었을 적엔 별 볼일 없던 대추가 쪼글쪼글해져서야 불려다니니 말이다. 늙어서야/제대로/대접받는 대추//사람보다 낫다. 시인은 대추를 보면서 슬며시 부끄러웠을 것이다. 대추는 늙을수록 값이 오르는데 사람은 늙을수록 값이 떨어지니 말이다. 부끄러운 건 시인만이 아니다. 요 시를 읽었다는 M교수는 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윤형, 나도 동감이오. 우리 인간들은 왜 늙을수록 값이 떨어지는지. 지금 내 얼굴이 대추보다 더 붉소!. 나는 즉시 M교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에이,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 대추보다야 낫지! 시인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니까. 문자를 보내고 거울을 보니 내 얼굴도 대추보다 더 붉은 게 아닌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외등1 진복희 어둠을 밝혀 앉은 어머니 하얀 이마 종종걸음치는 나를 맨 먼저 알아채고 서둘러 담장 밖으로 긴 목을 빼고 섰다. 밤길을 가는 이에겐 가로등만큼 고마운 게 없다. 골목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옆집 아저씨처럼 언제나 듬직하게 서 있는 가로등. 시인은 가로등을 어머니로 보았다. 그것도 어머니의 하얀 이마로 보았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이 골목집이어서 가로등에 대한 고마움이 그 누구보다도 더했다. 어쩌다 가로등이 고장이라도 난 밤엔 무서움에 줄달음을 쳐야 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 그런 날엔 골목길이 왜 그리도 껌껌하고 길던지! 종종걸음치는 나를/맨 먼저 알아채고/서둘러/담장 밖으로/긴 목을 빼고 섰다. 늦은 밤, 자식의 무사 귀가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여기 있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어머니는 외아들인 내가 제아무리 늦어도 결코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으셨다. 꼿꼿하게 앉으셔서 반야심경을 읽고 계셨다. 해서 나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늦을 수가 없었다. 시인의 어머니도 그러시지 않았나 싶다. 어둠을 밝혀 앉은/어머니의 하얀 이마는 자식을 걱정하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 진다. 세상에서 나를 그렇게 걱정해주는 이가 어머니 말고 누가 있을까? 이 동시는 자식 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배추가 하는 말 구옥순 소금물에 푹 담겨 봤니? 울며 몸무게를 반쯤 줄여 봤니? 마늘에게 톡톡 쏘여 봤니? 고춧가루에게 벌겋게 터져 봤니? 김장독에 갇혀 껌껌한 땅속에서 한 달간 지내봤니? 어때! 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있다. 그건 바로 매우면서도 상큼하게 입맛을 돋워주는 김치다. 그만큼 한국인과 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겠다. 이 동시는 배추가 김치로 변모하는 과정을 퍽 유니크하게 보여준다. 소금물에 담겨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 건 물론, 마늘과 고춧가루에 시달림을 받아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끝내는 김장독에 갇힌 몸으로 껌껌한 땅속에서 견뎌야만 하는 김치의 그 혹독한(?) 시간을 시에 담았다. 그래서 그런지 동시치곤 참 맵다! 어때!/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이 동시의 결미인데, 매운 김치를 입 안에 넣었을 때만큼이나 얼얼하다. 직장 관계로 외국에 나가 몇 해 동안 지내다 온 K는 다른 건 다 견딜 수가 있었는데 김치 없이 먹는 밥상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치 때문에 한국 생각이 간절했다는 말도 했다. 곧 김치=조국이란 공식을 제시한 셈이다. 어느새 올해도 김장철을 맞았다. 요즘엔 김장하지 않고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다 먹기도 한다지만 김장은 아직도 한국 고유의 풍습으로 전해지는 유산이다. 이 또한 이 땅에 태어난 기쁨이 아니겠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압력밥솥 서재환 생쌀에서 구수한 밥까지 한달음에 달려와서 -종착역 다 왔습니다! 신호를 보냅니다. 칙- 치익- 딸랑! 딸랑! 딸랑!...... 우리 집 증기기관차. 가족의 소중함 우린 아무나하고 밥을 먹지 않는다. 간단히 마실 수 있는 차(茶)라면 몰라도. 밥을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먹는다면 그건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밖에 없다. 이 시는 밥솥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압력밥솥은 말 그대로 밥을 압축해서 쫀득쫀득하게 해준다. 그냥 밥보다 훨씬 맛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밥솥이 그냥 밥솥이 아니라 특별 밥솥이듯이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특별 관계란 것이다. 오래전 고교 동창생 딸의 결혼식에서 축시를 낭독한 적이 있었다. 그날 축시의 제목이 「따뜻한 밥」이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 그러니 서로에게 영하의 날씨에도 식지 않는 따뜻한 밥이 되어달라는 내용의 시였다. -종착역 다 왔습니다!/신호를 보냅니다.//칙- 치익- 딸랑! 딸랑! 딸랑!....../우리 집 증기기관차. 이 시의 결미 부분이다. 압력밥솥을 증기기관차라고 표현했다. 수증기를 푹푹 내뿜으며 힘차게 내달리는 저 증기기관차. 이 시는 압력밥솥을 통해 험난한 삶의 파고를 힘차게 헤치며 내달리는 가족의 힘을 보여준다. 이 시의 매력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저녁 허호석 오리가 뒤뚱뒤뚱 집으로 간다. 연못도 뒤뚱뒤뚱 집으로 간다. 함께 놀던 산그늘도 뒤뚱뒤뚱 집으로 간다. 세상에는 평화로운 풍경이 참 많다. 연못의 오리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 위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저 오리를 보라. 코로나19로 어수선하고 불안한 요즘 간곡히 바라는 건 바로 저런 평화로움 아니겠는가. 오리가/뒤뚱뒤뚱 집으로 간다. 집처럼 편안한 곳이 어디 있을까? 집은 언제라도 받아주고 품어주는 곳.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곳. 힘든 삶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곳. 이 동시는 오리를 내세워 집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못도/뒤뚱뒤뚱 집으로 간다./함께 놀던 산그늘도/뒤뚱뒤뚱 집으로 간다. 오리가 집으로 가니 함께 놀던 산그늘도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것도 뒤뚱뒤뚱 간다고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가. 아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우리네 삶도 그와 다를 게 없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그 포근하고 행복한 마음을 어디다 비기랴. 그 평화롭고 즐거운 저녁을 요즘처럼 간절히 바라는 때도 없었지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말한다. 따분하게만 여겼던 지난날의 평범한 일상이 못내 그립다고. 그 시절로 돌아만 간다면 더 바라지 않겠다고. 온종일 물에서 놀다가 뒤뚱뒤뚱 집으로 가는 오리가 바로 우리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 동시를 골랐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바늘귀 문성란 고 작은 바늘 몸에도 꼭 필요한 구멍 하나. 말하는 입 아닌 받아주는 귀. 말을 담는 그릇 귀 입과 귀는 정 반대의 일을 한다. 입은 말하는 기능을 가졌고 귀는 듣는 기능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입은 말은 하되 듣지 못하고, 귀는 듣기는 하되 말을 하지 못한다. 왜 신은 이렇게 상반되는 두 개의 구멍을 인간에게 준 것일까? 짐작건대, 제대로 말을 하고, 제대로 들으라는 뜻에서 그런 건 아닐까? 이 동시는 입도 입이지만 그에 앞서 귀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고 작은/바늘 몸에도/꼭/필요한/구멍 하나. 시인은 바늘귀를 통해 인간인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말하기에 앞서 먼저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시 속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그 흔한 논쟁의 장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여 벌이는 논쟁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는 오로지 자기주장만 펴는 이들의 말 홍수에 우린 모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논쟁이나 토론의 기본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임에도 귀는 놔두고 입만 내세웠다. 말하는 입 아닌/받아주는/귀. 그렇다! 귀는 말을 담는 그릇이다. 신이 인간에게 굳이 귀를 달아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중한 구멍을 왜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가! 윤수천 아동문학가
국 김민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국을 먹을 때마다 웁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엄마는 국을 끓일 때마다 웁니다. 할머니들이 국에 엄청 매운 걸 넣었나 봅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사람이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길을 가다가 문득,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음식을 먹다가 문득...반대로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이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그 많은 사람 속에서 자기를 기억해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로 평생을 산다. 누군가를 잊지 못하며 산다. 이 동시는 국-어머니-눈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는 국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엄마는 국을 끓일 때마다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두 사람은 자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들이/국에 엄청 매운 것을 넣었나 봅니다. 하는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엄청 매운 것으로 표현했다. 엄청 맵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어떤 인연으로든 만났으면 엄청 매운 것을 넣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와 자식 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승과 제자 간에도, 친구 간에도, 이웃 간에도...그러다가 우는 사람만 쏟아져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눈물은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눈물은 사람을 정화하고 세상을 청결하게 해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송충이와 정조대왕 은결 애달프게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서 어느 날 정조대왕, 캄캄한 뒤주 속을 헤매는데 송충이가 사각사각, 솔잎을 먹는구나 아버지 산소의 솔잎을 먹다니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마라 정조대왕 호통에 송충이 알아듣고 자취를 감추었다 정조대왕,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깊은 효심, 솔잎처럼 푸르게 변함이 없어라 정조대왕은 효성이 지극한 임금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뒤주에 갇혀 짧은 생을 마감한 부친 사도세자를 애달피 여겨 100리 길을 마다않고 산소 찾기를 즐겨 행했던 효자였다. 이 동시는 그분의 효심을 노래한다. 아버지 산소의 솔잎을 먹다니/다시는 이곳에 나타나지 마라/정조대왕 호통에/송충이 알아듣고 자취를 감추었다. 소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를 향해 호통을 치는 정조 임금과 이를 알아듣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송충이. 이쯤 되면 미물인 송충이까지 정조대왕의 효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효심은 인간이 지닌 아름다운 정신 가운데 하나다.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 마땅한 일이로되 실행에는 적잖은 노력이 수반된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부친을 뵈러 100리 길을 마다않고 찾았던 정조 임금의 효심은 본받을 만하다. 수원은 효원의 도시이자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서 수원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일 년 열두 달 내내 그치지 않는다. 정조대왕 이제 볼 수 없지만/그 깊은 효심, 솔잎처럼 푸르게/변함이 없어라. 시인의 마지막 연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간곡한 당부라는 생각이 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손녀와 할아버지 임병호 은희와 할아버지가 공원길을 걸어갑니다 세 살배기 은희가 걸음을 멈추고 꽃들을 가리키며 아이, 참 이쁘다! 합니다 아니, 은희가 더 이쁘지요 할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진짜? 하늘 땅땅만큼! 은희와 할아버지가 손뼉을 칩니다 나풀나풀 춤추던 노란 나비가 은희 머리 위에 앉았습니다. 촌수로만 따지자면 할아버지와 손녀는 쪼끔 먼 사이다. 둘의 사이에 엄마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함으로 따지자면 엄마 아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엄마 아빠한테 하지 못하는 어리광을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는 얼마든지 부릴 수가 있고,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주기 때문이다. 이 동시는 손녀의 어리광과 할아버지의 유머스런 사랑을 이야기하듯 보여준다. 공원에 나온 할아버지와 손녀 은희가 꽃을 보며 나누는 대화가 산들바람처럼 간지럽다. 여기에 노랑나비까지 날아들었다. 꽃보다 예쁜 은희란 할아버지의 말에 진짜? 하며 되묻는 손녀의 저 앙증스런 물음이 얼마나 귀여운가. 여기에다 하늘 땅땅만큼! 하는 할아버지의 저 대꾸가 또한 맛소금이다. 나풀나풀 춤추던 노란 나비가/은희 머리 위에 앉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에 화답이라도 하듯 은희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는 이 동시를 빛내주는 배경이자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자유시와 시조에다 동시까지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쓴다.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은 수원 토박이 시인이다. 손녀를 키우며 느낀 회포를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렸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별쟁반 한은선 밤하늘이 보석 상자를 열면 호수는 별을 담는 쟁반이 된다 여름밤은 별밭이다. 온 밤하늘의 별들이 다 쏟아져 나온다. 마치 별들이 잔치를 벌이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엔 밤하늘의 별을 따겠다고 장대를 들고 뒷동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꼭 한 뼘이 모자랐다. 그래서 다음날엔 장대 끝에 막대기를 매달아 들고 올라갔지만 여전히 한 뼘이 또 모자라는 것이었다. 이 동시를 읽으며 필자와 같은 어린 날의 추억을 떠 올리는 이도 있을 줄 안다. 별은 먼 곳에 있어야 아름답다. 그리고 별의 바탕은 어둠이어야 한다. 밤하늘이/보석 상자를 열면. 시인은 별을 보석 상자로 보았다. 꿈과 이상을 지닌 보석 상자! 호수는/별을 담는 쟁반이 된다. 호수는 누구일까? 세상의 어린이란 어린이는 모두 호수가 되지 않을까?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만을 지닌 어린이! 그 어린이만이 별을 안을 수 있다. 별쟁반이란 제목도 참 신선하다. 별을 담는 쟁반, 이 얼마나 참신한가. 시인은 새로운 발상에, 새로운 언어를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상상력과 창의력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맑아야 한다. 이슬 같고 풀잎 같은 마음이라야 시의 세상과 통할 수 있다. 올 여름은 쟁반 하나씩을 들고 별을 담으러 산으로, 들로 나가보는 건 어떨는지. 윤수천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