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당신을 위한 노래’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옆 화랑유원지에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가 장막을 거두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3달이란 야속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엔 여전히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세상은 이제 서서히 슬픔에서 헤어나고 있지만, 그곳의 시간은 여전히 4월16일에 멈춰있다. 단장지애(斷腸之哀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자식 잃은 슬픔)로 이제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이들을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 세명이 지난 13일 안산문예의전당 무대에 섰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명창 안숙선, 해금주자 강은일이 그들이다. 공연명은 당신을 위한 노래였다. 여기서 당신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해 슬픔을 공유한 사람일 것이다. 예술단 해금플러스와 함께 검정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강은일은 베이스와 기타, 피아노, 퍼커션 등 양악기와 피리, 가야금 등 국악기의 절묘한 조합을 이끌어가며 관객을 차분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에 젖어들게 했다. 안숙선 명창은 춘향가와 흥보가 일부를 들려줬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듯, 조용복 고수의 취임새에 맞춘 판소리 한자락에 관객들은 어깨춤도 추고, 흐뭇한 웃음도 지어보였다. 마지막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무대였다. 그녀의 바흐 연주는 교과서적인 차가움으로 시작해 갈수록 뜨거움이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이설의와의 브람스 협주는 시종 부드러운 어조와 격한 어조를 오가며 두 악기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이어진 커튼콜 속에 그녀는 두곡의 앙코르를 선보였다. 이중 내 영혼 바람되어 협주가 필자를 울렸다. 안타깝게 스러진 영혼을 달래듯 차분하게 하모니를 이끌어간 그녀는 연주를 마치고 하트를 그려보였다. 첫 출연자 강은일은 집을 나서면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겠노라 다짐했는데 분향소를 다녀오고는 내 음악으로 위로가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며 그냥 함께 울다 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안산을 할퀸 세월호의 슬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다만, 이날 음악회를 통해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란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프라임필 ‘희망ㆍ사랑ㆍ나눔 콘서트’ & 세종국악관현악단 ‘국악과 함께 夏- 영화이야기’

이토록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무료공연이 또 있었나? 지난 4일 군포시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된 프라임필오케스트라의 희망사랑나눔 콘서트는 유료 공연도 쉽사리 주기 힘든 감동을 선사했다. 그들이 보여준 무대는 금전적인 가치를 따질 수 없었다. 감동은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멘델스존 협주는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좌중을 전율케 했다. 테너 김상진은 가곡 목련화(김동진 곡)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소프라노 김수연의 고음역대 창법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마지막은 두 성악가의 축배의 노래(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아리아)로 장식됐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조명이 들어왔지만, 한동안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듯했다. 여자경 지휘자는 계속된 커튼콜 속에 요한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추가로 선보였다. 열정의 마에스트라는 객석을 보고 지휘했고, 관객도 박수로 연주에 동참했다. 다음날인 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종국악관현악단의 국악과 함께 夏-영화이야기는 입장료 1만원이 아깝지 않은 정도의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다양한 영화음악이 국악 관현악으로 선보여졌다. 뮤지컬 배우 장은주와 성악가 유애리가 초청됐고, 세종국악관현악단원도 이들과 함께 각자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다만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해보였다.국악과 양악이 동시에 등장했지만, 콜라보레이션은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대중에 익숙한 곡들이 이지혜 단원의 편곡으로 초연됐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즐거워했다. 어찌됐건, 지난 주말 군포시민들은 클래식과 국악 앙상블을 누렸다. 무료의 감동과 1만원의 가치를 실현해 보이는 예술단을 가진 군포시민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남아공 우분투 정신 드러낸 ‘드럼스트럭’ 첫 내한공연

아 유 레디(Are you ready준비됐나요)? 지난달 30일, 오산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선 풍만한 체구의 흑인 여성이 걸쭉한 목소리를 뽑아냈다. 관객들은 네 대신 예보(Yebo남아프리카공화국식 영어로 yeshello와 같다)!라고 화답했다. 이윽고 무대와 객석에서 퍼커션이 울려 퍼져, 장중이 하나가 됐다. 이를 주도한 풍만한 체구의 여성은 남아공을 대표하는 타악 예술단 드럼스트럭의 마스터 티니 모디스(Tiny Modise)였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는 그녀였다. 마녀가 요술을 부리듯 팔을 활짝 펴고 열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객석에서 퍼커션 연타가 쏟아졌고, 팔을 아래로 떨어내자 북소리도 뚝 하고 멈췄다. 발을 한번 구르니 북소리가 잇따랐다. 산 만한 엉덩이를 왼쪽으로 흔들자 왼편 관중이, 오른쪽으로 치자 오른편 객석이 반응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쩜 그리 호흡을 척척 맞추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처럼 드럼스트럭의 첫 내한공연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광란을 실감케 했다. 티니 모디스를 위시한 7명의 단원은 큰 젬베, 짐바브웨 드럼 등 다양한 퍼커션을 선보였다. 국악도, 양악도 흉내 낼 수 없는 아프리카 특유의 퍼커션 리듬이 객석을 열광케 했다. 아프리카 전통춤도 눈을 즐겁게 했다. 허리를 잔뜩 웅크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팔다리를 현란하게 흔드는 연기자들의 춤에 어깨가 절로 덩실댔다. 라이온킹 OST 인 더 정글(In The Jungle)로 잘 알려진 남아공 민요 인붐베(Inbumbe) 등의 아프리카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신나는 공연에서 절제는 요구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 객석에는 젬베(Djembe)가 놓였다. 우승컵처럼 생긴 나무통에 한쪽만 가죽을 씌운 이 타악기는 높고 경쾌한 소리가 나 듣는이를 흥분시킨다. 관객이 직접 젬베를 연주하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흥이 넘친 누구는 무대로 뛰쳐나가 퍼포머들과 함께 춤을 췄다. 공연장 전체가 아프리카 정글 속 부족마을로 탈바꿈했다. 남아공을 하나로 응집한, 함께 있어, 내가 있다(Im because we are)란 어구로 대변되는 우분투(Ubuntu) 정신의 일면이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앙상블 디토 리사이틀 ‘디어 아마데우스’

한 소설의 제목처럼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냉정이 지나치면 침체되기 쉽고, 열정만 앞세우면 방종으로 흐를 수 있는 법이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음악회든, 연극이든 연기자가 절제미와 화려함이라는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무대 위에 담아냈는지, 둘 사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지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8일 군포시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앙상블 디토의 리사이틀 디어 아마데우스(Dear Amadeus)는 출중한 연주력을 기반으로 냉정과 열정의 조합을 한번에 보여준 무대였다. 리처드 용재오닐과 스테판 피 제키브, 마이클 니콜라스, 다니엘 정 등 현악 4인방은 그래미상 수상(2011)에 빛나는 파커콰르텟과 함께 모차르트의 세레나데와 현악 5중주, 현악 3중주 등을 연주했다. 바이올린만 4대에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심지어 팀파니까지 동원된 세레나데는 각자의 개성보다는 절제된 하모니를 이루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팀파니 연타로 시작된 세레나데는 비단결을 보는 듯 매끈했고, 9인의 협연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하나의 선을 이뤘다. 그 자체가 하나의 레가토(legato음과 음 사이가 끊지 않고 원활하게 연주하는 기호)였다. 파커콰르텟 멤버에 리처드 용재 오닐이 가세한 현악 5중주에서도 절제 속의 앙상블은 계속됐다. 다니엘의 바이올린이 주 멜로디를, 김기현의 첼로가 무게중심을 잡아준 가운데 각 연주자의 원활한 시선 교환이 환상의 호흡을 실현하고 있었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앙상블 디토 멤버의 개성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프로그램 제목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즐기다란 뜻의 이탈리아어)는 모차르트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본정신이자, 디토의 정체성이었다. 무대에 오른 다니엘과 리처드, 마이클은 때로는 서로 대화를 나누듯, 때로는 경쟁하듯 화려함의 극치로 질주해나갔다. 연주가 끝나고, 이들의 활이 허공에 멈춰서자 객석에서는 브라비(Bravi)란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자신에게 보낸 편지 같은 이번 연주를 저승에서 들었을 모차르트의 감상평이 자못 궁금해진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차세대 명인들의 신명나는 무대 ‘2014 젊은 소리’

지난 21일 한국 전통음악의 본산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 음악회 2014 젊은소리은 차세대 한류를 이끌어갈 국악의 미래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무대였다. 이날 세종국악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을 선보인 10명의 국악 신예들은 공연을 마친 뒤 최고의 무대는 아니어도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고 입을 모았다. 표정에서는 환희가 흘렀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아직은 배운 것보다 배울 게 더 많은 20대 국악인에게 첫 공연의 소회는 어쩌면 가슴 벅찬 만족보다는 뭔가 모자란 듯한 아쉬움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첫 무대는 800석의 장중을 가득 메운 관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야금 주자 최민아(중앙대 4년)는 박범훈 선생의 새산조를 연주했는데, 한가로이 현을 오가던 손가락이 속도를 더해갈 수록 필자를 소름돋게 하고 있었다. 배고운(전남대 졸)의 탱고를 위한 댄스 오브 더 문라이트 연주는 2줄의 해금이 이토록 다채로운 음정속도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아쟁 협주곡 아라성을 연주한 윤지훈(중앙대 3년)과 가야금 협주곡 찬기파랑가를 선보인 진미림(추계예대 4년), 대금 협주곡 대바람소리를 들려준 양영렬(단국대 3년), 파미르고원의 수상곡을 연주한 박열기(중앙대 4년)도 관객에 남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던 이나라(한양대 대학원 졸), 장효선(중앙대 대학원 수료), 정은지(이화여대 대학원 재학), 류지선(중앙대 졸)은 구성진 서도민요를 한자락 뽑아내며 관객들의 추임새를 이끌어냈다. 미래의 국악 명인이 될 이들에게 파릇파릇하달 정도로 싱그러웠던 이날 협연 자리가 좋은 추억이자 동기부여로 남길 바란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무용으로 다시 태어난 ‘오원 장승업’

커튼콜마저 눈부셨다. 경기도립무용단이 지난 30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한 퍼포먼스 화풍은 날 것 그대로의 초연이었다. 30명에 가까운 단원들은 첫 무대의 중압감이 무색하게 기획부터 상연까지 약 3개월여 동안 피땀 흘리며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한 조선 말기의 취화선 오원(吾園) 장승업의 근성, 예술혼이 박영일 수석단원의 독무를 통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장승업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화공과 무채색 계열의 난초와 대나무 수묵화를 온몸으로 그려낸 남성단원들의 군무는 흡사 잘 길들여진 야생마를 연상케 했다. 박력이 넘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여성 단원들은 전반의 흑백 속에 매화와 난초의 채색을 서서히 입혀갔다. 맑은 물에 떨어뜨린 붉고 노란 물감이 아지랑이를 그리며 물 전체를 물들이듯 말이다. 각 무용수들이 손끝 마디까지 온몸으로 표현한 전통회화와 무용의 만남은 관객의 넋을 서서히 빼앗아갔다. 일부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전반의 조화가 주는 감동을 해칠 수는 없었다. 특히 매화군무는 갸냘프면서도 처연하지 않았으나, 필자의 눈꼬리에는 스스로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있었다.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광경이었다. 배경을 수놓은 매란국죽(梅蘭菊竹사군자) 영상과 국악이 곁들여진 음향효과는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환상적인 무대 연출에도 불구하고, 무대 운용상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화선지를 연상시키는 휘장이 좌우로 오갈 때마다 마치 기름을 덜 친 기계가 움직이듯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또한 공연 후반 클라이막스를 남겨둔 암전은 관객에게 공연이 끝났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암전,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 객석에서는 어색한 박수가 나왔다. 커튼콜에서 나와야 할 박수가 공연 도중에 나와 무용수들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된 순간이다. 무용단은 매 기획공연을 거듭할 수록 한국 전통무용, 즉 우리만이 갖고 있는 넌버벌퍼포먼스로서 세계의 무대에서 승부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무대가 상연한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동유럽 자존심' 체코필...기대 큰 만큼 아쉬움도 커

지난 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달 중순 쯤이다. 문화계의 한 지인이 기자라면 이런 음악회는 꼭 챙겨보라고 조언해서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 공연날만을 손꼽아왔다. 그리고 한달여의 기다림 끝에 공연을 봤다. 기대가 크면 아쉬움도 큰 탓일까? 총평부터 하자면, 솔직히 따분했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로 시작한 도입은 황홀했다. 플룻으로 시작해 바이올린을 위시한 현악의 물결치는 향연은 필자의 마음조차 요동치게 만들었다. 동유럽 클래식의 본고장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열정이 사후 130년이 지나서도 내 심장을 주무르는 듯 했다. 한창 필자의 기대감을 높이며 시작한 공연은 두번째 프로그램을 맞아 집중도가 반감되기 시작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인데, 고전주의 음악을 접하면서 항상 지루함을 느꼈던 경험도 부담이 됐지만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연주란 데에 스스로 방점을 뒀다. 더욱이 협연자는 고전주의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히는 영국의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였다. 무대 위에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졌고, 루이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전반적인 연주는 단조로웠고, 루이스의 힘찬 타건을 동원한 열정있는 연주에도 불구하고 좌중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처럼 보였다. 하이라이트로 적잖이 기대를 모았던 2부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6번도 별다른 감흥을 주진 못했다. 118년 전통의 오케스트라가 눈앞에 있었지만 필자의 눈은 자꾸만 시계를 향하며 러닝타임인 41분을 재고 있었다. 그나마 본 프로그램 후 주어진 2개의 앵콜(스메타나 Skip Dance오스카르 네드발 Valse triste)는 현란한 기교 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필자의 좁은 음악적 식견이 감상의 흥미를 제한했는지는 모르겠다. 프라하에서도 만나기 힘들다는 체코필의 연주. 언젠가 다시 들을 기회가 생긴다면 보다 깊은 감동으로 누리고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사랑 노래한 기적의 목소리… ‘감동 물결’

칸초네(canzone). 분명 칸초네였다. 이탈리아의 감성이 묻어나는 가곡. 이탈리아 가수들의 노래. Mi Rubi Lanima(내 마음을 앗아간 그대)Ti amo(사랑해) 등이 이 장르에 속한다. 이탈리아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칸초네를 영국인 가수 폴 포츠(Paul Potts)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들었다. 24일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상연된 폴 포츠의 콘서트에서는 이탈리아 가곡 Un Amore Cosi Grande(위대한 사랑)가 울려퍼졌다. G.M.페릴리가 작곡한 이 곡은 샹송이나 칸초네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곡이다. 발음은 완벽했고, 목소리는 심금을 울렸다. 베니스음악학교에서 언어 및 성악교육을 받으면서 맺힌 그의 열매가 이번 무대에서 농을 터뜨리고 있었다. 칸초네의 향연은 한 곡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성악가 베냐미노 질리의 Non Ti Scordar Di Me(날 잊지 말아요)와 Un giornoPer Noi(우리를 위한 시간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에서 그의 기량은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1부 마지막 소프라노 김민형과 와인잔을 맞부딪치며 부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는 관객들의 어깨춤까지 들썩이게 했고, 2부 4번째 프로그램인 E Lucevan le Stelle(별은 빛나건만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는 그의 음악적 깊이를 여실히 드러났다. 영국인 폴 포츠는 총 19차례의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서툰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란 말을 잊지 않았다. 앵콜곡에서도 관객을 위한 서비스는 계속됐다. 그가 서툰 우리 말로 더듬더듬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객석에 적잖은 감동을 선사했다. 앵콜은 계속됐고, 그는 이날의 마지막 앵콜곡으로 브리튼즈 갓 텔런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우승 반열에 올려놓은 가곡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 객석의 절반이 기립했고, 몇몇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원전 충실하면서도 파격적인 폴란드 연극 ‘맥베스’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이 누군가를 해치면서까지 충족시켜야 할 지경에 이르면 탐욕은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종국엔 인간성을 파괴한다. 지난 14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상연된 폴란드 오폴레극장의 연극 맥베스는 오물처럼 흘러넘치는 탐욕의 본성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영국의 대 문호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대표작을 외형적으로 비틀고 있는 이 연극의 무대 및 스토리 연출은 3류 깡패들의 암투극을 담은 느와르 영화를 방불케 한다. 배경도 과거 중세시대가 아닌 외산영화 대부 시리즈나 화양연화, 국산작 비열한 거리 사생결단에 등장하는 현대 환락가와 뒷골목으로 옮겨 왔다. 그래서 관객들이 느끼는 현실감은 더욱 리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구어체를 그대로 가져왔다. 공연 내내 배우들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폴란드어로 -간간히 아빠 안죽었어 X발 꺼져 등 우리말이 나오긴 하지만- 연기했지만, 무대 양쪽에 배치된 모니터상 한영 자막을 통해 공연의 내용은 원전에 충실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는 마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왕권이란 대업을 다투는 가신그룹의 암투극과 3류 조직폭력배들이 두목자리를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 사이에 차이점이 대체 무엇이냐는 연출자의 조소를 시사하는 듯 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권모술수는 물론 심지어 정적을 숙청하는 현 정치권의 암투와 동네 깡패 두목이 되기 위해 졸개들이 벌이는 패싸움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끝간데 없는 탐욕이란 공통분모에서 크게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작품에는 살인, 강간, 매춘 등을 거의 날 것 그대로 형상화한 퍼포먼스가 적나라하게 연출된다. 심지어 오럴섹스까지 등장한다. 오폴레극장의 다음 순회공연은 터키에서 예정됐지만, 맥베스는 아니다. 아시아 초연작이었던 오폴레의 맥베스가 언제 다시 내한할지는 알 수 없으나,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긴 관객이라면 파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감상하기 바란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서커스 같은 실내악 ‘살뤼살롱’

정말,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지난 10일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독일의 여성 4인조 실내악단 살뤼살롱의 무대 말이다. 한번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게 실내악이다. 객석에서 프로그램북에 나열된 곡을 세며 언제 끝나나 시간을 재고 앉았을 정도로 몰입이 안 되는 공연도 많다. 반면 살뤼살롱은 실내악도 이렇게까지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는 예능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등의 4중주로 편성된 이들의 연주는 자못 진지하게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하고 싶다며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시작한 피아졸라의 천사의 부활은 내내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숙제(?)를 마친 4인방은 빠르고 섬세한 연주가 돋보이는 헝가리 무곡을 시작했다. 공연 중반에 첼로 주자인 소냐 레나 슈미트의 얼굴에 장난기가 비치더니 몸을 뒤로 꺾고 첼로를 연주한다. 그러더니 모두가 몸을 활처럼 뒤로 꺾었다. 그때부터는 무대위에서 서커스판이 벌어졌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안겔리카 바흐만과 이리스 지그프리트가 첼로 연주자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활로 연주를 함께 하는가 하면 팔을 뒤로 꺾어서 활을 켜는 등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이어갔다. 그런데 음정하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샐 곳 없이 탄탄한 연주력이 뒷받침된 묘기였다. 그들의 5번째 멤버 오스카(인형)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남성연주자의 모습을 한 이 인형은 단원 중 한명이 팔로 조종하면서 피아노 연주나 첼로 연주를 하도록 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앵콜곡에서는 안네 모니카 폰 트바르돕스키의 신기에 가까운 피아노 누워서 치기와 바이올린처럼 첼로 연주하기 등 서커스의 절정을 이루더니 마지막에는 이날 협연에 참여했던 오산 물향기 엘시스테마 오케스트라와의 아리랑 협연으로 관객에게 보답했다. 물론 모든 실내악 공연이 엔터테인먼트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는 클래식 문외한도 정통 실내악과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도립무용단 ‘우리춤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

무대 위에 11개의 목련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진짜 꽃잎이 아니다. 하늘거리는 아이보리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원을 그리며 엎드러져있는 모습이 마치 그래보였다. 잔잔한 가야금산조와 함께 무대 한가운데 조명이 떨어졌고 그곳에서 꽃잎 한떨기가 일어나 부드러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윽고 다른 꽃잎들도 서서히 일어섰다. 이들은 서서히 산들바람에 흩날리듯 춤사위를 이어갔고, 속도를 더하다가 다시 잔잔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 살포시 엎드러졌다. 꿈속에서 한떨기의 꽃을 본 듯한 이 작품은 지난 1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아늑한소극장에서 상연된 시리즈 공연 우리춤 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에서 경기도립무용단이 처음 선보인 수련몽이다. 지난달 시작된 시리즈 공연 우리춤 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는 우리 전통 넌버벌퍼포먼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은 화려한 궁중복색을 차려입은 9명의 단원의 격조있는 춤사위와 발디딤새로 시작해 남성 단원의 박력있는 양손 북연주가 함께하는 진도북춤으로 분위기를 한껏 격앙시켜나갔다. 모두 전통무용이다. 한의 정서를 하얀수건으로 표현한 살풀이 춤과 꽃부채 군무가 인상적인 부채춤, 우리 여인의 흥을 장고로 표현한 장고춤 등 도립무용단의 레퍼토리도 인상적이다. 수련몽과 함께 이번 공연에서 첫 선을 보인 창작무 신(神), 춤내림에서는 전통무용의 현대적 해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립무용단의 박지혜 수석단원과 남정은, 최민정 단원이 출연한 이 작품은 신의 뜻을 거스르려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는 한 인간의 모습이 서사적으로 그려졌다.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어우러진 몽환적인 연주와 방울소리,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 등을 배경으로 한 3인무는 무속세계에 귀의하기에 앞선 인간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었다. 공연은 남성 무용단원 5인의 신명나는 타악 연주가 어우러진 모듬북 공연으로 좌중의 박수갈채를 자아내며 막을 내렸다. 지난달 동남아시아 3국 초청공연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실천해보인 도립무용단의 이번 시리즈 공연은 오는 7월12일과 8월30일, 9월20일 등 3차례의 일정을 앞두고 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 리뷰] 연극 ‘날숨의 시간’을 보고

주인공이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18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된 연극 날숨의 시간을 관람하고 나온 한 북한출신 관객의 말이다. 경기도립극단의 초연작인 작품은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북한 출신의 주인공 미영미선 자매가 사선을 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결국 화류계에 몸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시시한 한복을 입은 두 자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서서히 암전되는 장면은 이들의 인생역정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따른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해피앤딩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인생이란 게 마냥 해피할 수도 없는데다, 애초부터 북한이탈주민이 꿈을 접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작정하고 보여줄 요량이었다면 이들이 꿈을 성취하는 모습은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극중 주인공들의 삶은 억세게 좌절을 거듭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물정에 어두워 돈을 모았다가 사기를 맞기도 하고, 사장과 동료들의 냉대로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은 이처럼 첩첩산중 같은 북한이탈주민의 삶에 주목한다. 극의 초반부는 탈북과정의 세밀한 긴박감을 묘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1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 역 배우들이 객석의 암전 속에서 무대를 기어오르며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새벽기습을 위해 참호에서 조심스레 뛰어오르는 일련의 분대와 같은 인상을 준다. 조심스레 무대로 들어온 이들은 총소리가 난무하자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리기도 하고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대화를 최소화한 마임 연기로 탈북과정을 보여준다. 무대는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덧마루만으로 구성됐다. 아무런 꾸밈 없이 여기저기 층층이 놓인 덧마루들은 때로는 산악이나 밀림, 은신처로 활용됐고, 때에 따라선 보트, 트럭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채 층층이 쌓여진 덧마루들은 배우들의 격한 움직임 속에 덜컹거리며 불안한 모습이었다. 배우들이 연기 도중 덧마루가 쓰러지거나 잘못 헛디뎌 다치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인 것은 필자 뿐은 아닐 것이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경기필 부활 알린 성시연 단장 취임연주

과연 성시연이었다.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울려퍼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연주는 그녀의 지휘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공연이었다. 단 한곡의 심포니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으나, 성 단장은 1시간30분의 러닝타임 동안 20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하나로 응집해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보무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흡사 전장에 나서는 투사와 같은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이윽고 지휘봉을 든 그녀는 장엄한 현악 연주로 대장정의 서막을 알렸다. 관객들은 연주 내내 숨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깊은 몰입에 빠져들었다. 25분이 소요되는 첫 악장 연주가 끝나자 장중에는 오랜 시간 참았던 숨을 터뜨리는 듯한 한숨과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소프라노 이명주와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100여명의 국립합창단서울시립합창단과 함께 입장했다. 줄곧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두 히로인은 짙은 자주빛과 눈부신 은색 드레스로 죽음과 생명의 대비를 시각화시켰다. 이들은 4악장부터 공연 후반부까지 신성에 대한 원초적 갈망과 최후의 심판, 영생 등을 독창과 합창으로 들려줬다. 클라이막스에서는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어우러진 앙상블이 단연 돋보였다. 금관악 파트 단원 서너명이 줄곧 반쯤 열려있던 무대 출입구를 수시로 오갔다. 퇴장한 단원들의 무대 뒤 연주는 마치 먼 곳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를 연상케 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연출이다.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높이 날아오르리라란 가사로 시작된 종국에 이르러서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두 솔로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연주가 끝나자 공연 내내 숨죽였던 좌중에서는 힘찬 기립박수와 함성이 연신 터져나왔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던 성 단장도 5번째 커튼콜에서는 미간을 펴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취임 연주에 대한 부담감을 훨훨 날려보내는 미소였다. 지난해 7월 지휘자 공백 사태로 돌연 취소된 이래 숙제처럼 남아있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말러교향곡은 이렇듯 성대한 부활로 마무리됐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세계의 관문에서 울려퍼진 ‘국악의 향연’

조금 지난 일부터 얘기를 꺼내려 한다. 지난해 12월27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국악 송년음악회가 열렸었다. 사노라면이란 주제로 소리꾼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함께 무대에 올랐었다. 소리 인생 20년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의 반열에 오른 7집 가수 장사익. 그를 도립국악단의 무대에 세우기 위해 조경환 국악단 기획실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까지 찾아가는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는 전석 매진이었다. 국악단의 웅장한 연주와 장사익의 찔레꽃 처럼 살았지하는 절절한 노래자락을 듣던 수많은 중장년들이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둘은 관객의 머릿속에 환상의 콤비로 각인됐다. 그리고 3개월. 지난 26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의 오픈 무대인 밀레니엄 홀에서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다시 만났다. 개항 13주년을 맞아 열린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의 첫 무대였다. 인천공항은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지난 공연이 지역민을 위한 자리였다면, 이번은 세계인을 상대로 국악의 우수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반드시 정돈된 프로시니엄일 필요는 없다. 탁트인 무대에서 국악의 향연이 공항 터미널에 널리널리 울려퍼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공연은 국악단원들의 관현악 연주만으로 구성된 아리랑으로 막을 올렸다. 간드러지는 해금 소리로 차분하게 시작된 연주는 절정으로 갈수록 속도와 웅장함이 더하더니 종국에는 김응호 악장의 가는 대금소리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났다. 김미영 단원의 해금 협주곡 추상은 절로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윤은화 단원의 목금 연주는 공항을 자연 속으로 탈바꿈시켰다. 오색 한복을 입고 등장한 명창 최근순 선생 등 단원 5명은 긴아리랑, 창부타령, 경복궁 타령 등을 들려줬다. 능수능란한 발림과 아니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하는 가사 속에 좌중은 어깨춤을 들썩거렸다. 그리고 하얀 도포차림의 장사익이 등장하자 객석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공연장 주변 바인더에도, 윗층 난간에도 군중들이 빼곡이 몰려들었다. 그가 티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인생으로 운을 뗀 뒤 봄날은 간다, 찔레꽃을 연달아 부르는 사이 객석 분위기는 클라이막스로 끓어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 토해내는 장사익의 절창(絶唱)과 국악단의 열정 넘치는 연주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기력을 쏟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 장사익에게 김재영 지휘자가 손수건을 건넸다. 앵콜이 쏟아졌고, 국악단과 장사익은 아리랑으로 화답하면서 장중은 하나가 됐다. 넋을 잃고 협연을 지켜보던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도 음정을 흥얼거리거나, 엄지를 추켜세우며 브라보를 연발했다. 그렇게 장사익과 도립국악단은 국악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 페스티벌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

시간이 정지한 듯 했다. 대공연장을 가득 메운 1천여 명 관객은 숨을 죽인 채 파이니스트 손열음이 안내하는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의 세 개의 악장 속으로 침잠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둘러싸여 있어도 특유의 개성과 빛을 잃지 않았던 이날 무대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공연장의 무대와 객석은 꽉 차고 넘쳤다. 차분함과 열광이 함께 했던 이날 공연은 개관 기념 페스티벌이 열리는 8일 밤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으며 뉴욕 필, 체코 필, 도쿄 필 등 세계적인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녀였다. 이 같은 명성으로 음악계 인사는 물론 클래식 애호가와 시민의 폭발적 관심으로 950개의 객석은 이미 만석을 이뤘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2부 곡으로 연주된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의 세 개의 악장 이었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던 1부곡 거슈윈, 프렐류드 No.2 안단테 콘 모토 에 포코 루바토, 라벨, 쿠프랭의 무덤과는 사뭇 달랐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1912년 작곡한 이 곡은 당대 러시아 발레단의 천재 기획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위한 발레곡이었다. 영혼을 지닌 불행한 광대 인형 페트루슈카의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살린 높은 난이도를 지닌 난곡 중 난곡으로 평가받는 곡이다. 러시아 춤으로 시작해 페트루슈카의 집을 거쳐 사육제의 주간으로 끝을 맺는 이 곡은 무한한 기교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손열음을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날 2부 공연의 끝 곡으로 고도프스키,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와인과 아가씨 그리고 노래 왈츠 교향적 변용이 흘렀다. 이날 정규 공연이 끝나고 사제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무대도 이어졌다. 4차례에 걸친 커튼콜에 화답하듯 손열음은 리스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 제3곡 라 캄파넬라 연주를 마친 뒤였다. 관객의 박수에 끌리듯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온 손열음은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장을 가지게 된 수원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드리며, 이 곡을 평생의 은사인 김대진 수원시향 지휘자에게 바친다고. 그 뒤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객석의 분위기를 봄의 기운으로 이끌었다. 열정적이면서도 차분한 공연이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공연리뷰]낭만의 도시 ‘프라하’ 뜨겁게 달군 수원시향

박수는 좀처럼 멎을 줄 몰랐다. 지난 11일 밤 10시30분. 체코 프라하 드보르작홀을 가득 메운 1천200명의 청중이 하나가 돼 손벽을 쳤다. 이윽고 김대진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자가 무대 중앙에 섰다. 두 시간 동안 이어온 공연을 끝낸 뒤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퇴장했다가 다시 무대 앞에 나와 인사하길 벌써 3차례나 반복한 다음이다. 드디어 앙코르를 들려주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곧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모음곡 백조의 호수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이 낭만의 도시, 체코 프라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7일 오스트리아 빈 무직페어라인과 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태리 문화원 공연을 마친 3번째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서다. 전체적인 레퍼토리는 앞선 무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1부 협주곡 협연자의 변화가 있다. 지난 공연에서 신들린 기교와 화려한 미감을 선보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에 이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소옥이 새로운 협연자로 나선 것. 이날 수원시향과 김소옥이 함께 선보인 협주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35다. 전체 연주 시간 중 3분의 1가량이 바이올린 독주일 정도로 상당한 기교와 체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곡이다. 짙은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김소은은 수원시향과 어우러져 공연을 매끄럽게 이어갔다. 장중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김소은의 화려한 독주가 서로 주고받듯 번갈아 흐르며 곡도 절정으로 치달았다. 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이 끝나자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연에 화답하는 듯 무대 밖에서 두 개의 꽃다발이 김대진 지휘자와 김소은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10분간의 인터미션을 거친 뒤 이어진 2부 공연은 지난 공연과 동일한 레퍼토리로 진행됐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 바단조 작품36. 이번 연주 역시 호연이었다. 연주를 이루는 현의 일사 분란함과 관의 노도 같은 폭풍은 4악장에서 폭발했다. 활 대신 현을 손으로 튕기는 주법인 피치카토가 지배하는 3악장에서의 리듬감은 춤추듯 지휘하는 김 지휘자의 제스처만큼이나 활달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에도 감동을 나누며 자리를 뜨지 못하던 관객은 기립박수와 앙코르를 환호하여 연주회의 감동을 표현했다. 이날 앙코르는 백조의 호수 정경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인형 꽃의 왈츠, 요한스트라우스2세의 피치카토 폴카 등 모두 3곡이 연주됐다. 앞선 공연보다 앙코르가 1곡 더 늘어난 셈이다. 이날 뜨거웠던 공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수원시향은 오는 12일(현지시각) 오후 7시 30분 독일 뮌헨 헤라클래스 홀 공연을 끝으로 유럽 4개국 순회공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체코 프라하=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공연리뷰]성시연 부임 첫 프리뷰, 중압감 속 열정 돋보여

분명 적쟎이 떨렸을 것이다. 지난 18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열린 경기필하모닉 프리뷰 콘서트 무대에 섰던 성시연 지휘자 말이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서는 첫 무대여서 중압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 프로그램이었던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을 마치고 관객의 박수 속에 솔로연주를 맡았던 정하나 악장과 성인선 비올라 수석을 따로 일으켜세워 소개하는 것을 잊었을 정도다. 성 지휘자는 솔로연주를 맡은 단원은 따로 소개를 하는게 에티켓인데 깜박했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따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면서 머쓱해했다. 하지만 이같은 중압감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지휘는 당당했다. 무대에 등장할 때의 당찬 걸음걸이에서부터 풍겨오는 카리스마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객석을 향해 질끈 묶은 머리채를 휘날리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가, 손을 낮췄다가, 때로는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원을 그리며 지휘봉을 휘젓는 그녀의 열정은 수십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의 연주를 하나의 하모니로 응집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것은 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였다. 그녀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플룻과 오보에를 중심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물흐르듯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늙은 마녀의 어린 제자가 장난기 어린 마법을 부리는 모습이 뇌리에 그려졌다. 이어진 모리스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에서도 성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섬세한 서술적 묘사는 계속됐다. 세번째 프로그램 모차르트의 교향곡 린츠부터는 경기필의 음악적 진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다. 교향곡 린츠는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린츠 방문하면서 시민의 환대에 부응해 4일만에 작곡한 곡으로, 이번 프리뷰 콘서트와는 경기필이 지휘자 부임 후 17일만에 보여준 곡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특히 후반부 현악 합주는 객석의 흥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교향시 돈주앙은 이 곡을 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경기필이 한해동안 보여줄 주요 레파토리의 시작으로 해석된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는 브라보가 연신 터져나왔다. 무대위의 단원들도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활대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화답했다. 이번 프리뷰 콘서트는 그렇게 축제로 마무리됐다. 오는 3월27일 예정된 경기필의 137회 정기연주회에서도 다시한번 축제가 이어질지가 주목된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화예술계에서는 퓨전이란 이름으로 고전문화에 대중적 요소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왔다. 서구사회에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와 대중음악이 만나 팝페라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3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된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지난 2005년 초연 당시 대중문화로 상징되는 비보이와 고급문화의 대명사 발레가 만났다는 점에서 강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 중 하나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시작돼 대중문화의 주요 장르로 자리잡은 힙합은 쉽게 관객의 집중을 흡입하듯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비보이가 결합하면 그 시너지는 더욱 폭발한다. 여기에 정적이면서도 우아한 동작의 발레가 결합해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우연한 계기로 비보이를 짝사랑하게 된 발레리나가 프리마돈나라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비보이의 세계에 합류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발레와 비보이의 대결에서 비보이의 완승을 선언한다. 작품 전반에서 발레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장면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고, 비보이의 현란함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한다. 분위기도 그렇다. 힙합광장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발레리나 연습실에만 들어서면 내면의 갈등이 가득한 고뇌만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의문도 든다. 비보이가 발레리나를 보고 사랑에 빠져 발레리노가 되는 스토리는 왜 안 될까? 무대 위에서 비보이들에 의해 웃음거리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발레리나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객석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휴대전화는 잠시 꺼달라고 요청하는 여느 공연과 달리 주최측은 공연 중 전화통화를 해도 좋다고 알린다. 심지어 공연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주면 감사하겠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힙합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을 프로시니엄 형태의 대극장에서 모두 담아내기에는 버거워보이는 아쉬움도 남는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바짝 좁힌 소극장이나, 마당극이 열리는 광장 형태의 공연장이었다면 더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감상 에티켓 아쉬웠던 주미강·손열음 듀오콘서트

관객들의 반응은 때에 따라서 무대에 선 연주자들을 더욱 신명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하지만, 몰입에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열린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의 듀오콘서트 판타지 포 투(Fantasy For Two)는 과연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공연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은 세계 클래식계의 거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기대주들의 만남이란 차원에서 문화계의 상당한 이목을 끌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7일 이후로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을 순회한 스케줄 탓에 피로가 쌓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연주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자아냈다. 하지만 관객의 호응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박수가 나와야 할 때가 있고 침묵을 지켜줘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통상 악장 간에는 출연자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박수를 치지 않는 게 에티켓이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번호 27번에서 느린 연주와 빠른 연주를 한꺼번에 소화한 첫악장이 끝나고 변주곡으로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악보를 살펴보고 피아노 의자 높이를 조정하는 인터벌이 긴 탓이었는지 갑자기 박수가 터져나왔다. 악장과 악장 사이 박수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후바이의 카르멘을 연주할 때에는 한창 연주가 진행 중인데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한창 곡에 몰입하던 연주자가 깜짝 놀랄 일이다. 팬심이 앞선 반응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있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계획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앵콜곡으로 바찌니의 고블린의 춤을 한창 연주할 때였다. 주미강의 바이올린이 텅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함께 연주하던 손열음도 무척이나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퇴장한 두 연주자의 뒤로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격려의 박수까진 좋았다. 그런데 박수 소리는 서서히 무대를 비운 연주자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결국 주미강은 곧바로 무대에 등장해 관객 앞에서 바이올린에 현을 연결해야 했다. 급하게 바이올린을 다루는 잰 손길이 오히려 애처럽게 느껴졌다. 앵콜곡 연주까지 끝난 뒤 커튼콜이 이어졌고 주미강과 손열음이 재등장했지만, 그 와중에 자리를 벗어나 출입구를 향하는 일부 관객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남겼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프로정신 보여준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열린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감색 스웨터와 반바지에 하얀 양말을 신은 말끔한 차림의 소년 합창단원 24명과 지휘자 끌로띨드 세베르가 무대에 올라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줬다. 그러다 1부 막바지의 샹송 메들리인 파리-파남므(Paris panam)를 부르던 도중 맨 뒷쪽 열에 서 있던 단원 한명이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 서 있던 단원이 부축해주려 했지만, 공연 중에 벌어진 일이라 합창단원도 관객도 모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연히 객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단원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대로 공연이 끝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를 본 세베르 지휘자는 합창을 중단하고 쓰러진 단원을 살펴보기 위해 단상 뒤로 이동했고, 당황하던 합창단원들을 눈빛과 몸짓으로 진정시켰다. 다행히도 119 구급대와 공연을 관람하던 경기도립의료원 의사가 단원의 상태를 살핀 결과 쓰러진 단원의 건강에 이상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불안한 기류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고 후에도 공연을 정상적으로 진행한 지휘자와 단원들이다. 세베르 지휘자가 다시 파리 파남므를 지휘하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관객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공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15분간의 인터미션에서도 관객의 관심사는 쓰러진 단원에게 초점이 맞춰졌던게 사실이다. 2부 공연에서는 단원 1명이 빠진 채 없이 진행됐지만 하얀색 성의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단원과 세베르 지휘자는 준비한 퍼포먼스와 합창곡을 무사히 소화해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세베르 지휘자는 공연이 끝나고 앵콜곡을 부를 때에는 쓰러졌던 단원을 무대로 다시 데려나와 인사를 시킨 뒤 마지막 합창에 참여시켜 관객들에게 또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능력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지휘자와 단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