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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서당(溪西堂)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몇 년 전, 천 년 고찰 봉화 축서사에 법력 높은 큰스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친견하는 길이었다. 시골길 왼편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몽룡 생가.’ 아니 이몽룡이면 춘향전이고, 춘향전하면 전라도 남원인데, 웬 이몽룡 생가? 궁금하지만, 한동안은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 경북 봉화라는 지명조차 서울 사람에게 설다. 기껏해야 송이 축제요, 좀 안다는 사람도 청량사, 많이 알면 축서사나 무여스님을 기억하는 정도다. 드디어 인연이 닿았다.봉화 지평리 계서당 창녕성씨 종택, 조

문화 | 김구철 | 2019-11-13

보길도의 윤선도나 다산 초당의 정약용은 명문가의 준재니 별로 궁금할 게 없었다. 소쇄원은 달랐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 대대로 신선놀음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문인인 양산보라는 약관 열일곱 청년이 구상해 10년 만에 지었다. 열다섯에 상경해 조광조의 제자가 되고, 열일곱에 문과에 급제하나 나이 적다고 합격장을 받지 못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열일곱에 출세를 접고 은거를 결심하고 당호까지 ‘소쇄’라 정했다니, 여간 조숙한 인물이 아니다. 화순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은 중죄인 조광조를, 낙향해

문화 | 김구철 | 2019-11-05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택, 영광 매간당 고택으로 드는 마을 어귀, 솔숲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광은 서해가 10㎞ 상간이니 동고서저(東高西低)가 분명하다. 10㎞ 떨어진 동쪽 태청산(590m)을 제외하면, 100~200m의 나지막한 산들이 동남북으로 에워싼 길지, 먼 북쪽에 불갑천이 동에서 서로들을 휘감아 흐르는 길지, 뒷산의 정기가 모여 약간 부풀어 오른 언덕에 연안김씨 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매화꽃이 떨어진 형국(梅花落地)의 길지이며, 학(鶴)의 형상이란다.김영(金嶸)이 16세기 중엽에 입향하면서 집터를 잡고 고종 초에 집을 세

문화 | 김구철 | 2019-10-29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포근한 이천 들녘 한가운데 길로 잠깐, 왼편으로 깔끔한 신축 양옥들이 이어진다. 길이 끝나는 안쪽 널찍한 터에 큼지막하고 단정한 고택이 두 채가 나타난다. 조선말 안동 김씨 세도를 대표하는 인물 김좌근 고택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살지 않았다. 그의 묘소를 관리하는 재사 겸 별채로 쓸 겸 양자 병기가 공력을 들여지었다. 이 집과 좌근-병기 부자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관계는 최근 영화 ‘명당’으로 꽤 알려졌다.세도 정치에 참여한 안동 김씨들은 ‘안동’ 김씨라 불리지 않았다. 서울 ‘장동(壯洞)’에 몰려 살며 자신을

문화 | 김구철 | 2019-10-23

정자는 계곡물이 휘돌아 흐르는 큰 바위 위에 날아갈 듯 서 있다. 바위와 물과 노송의 기괴한 조화, 자연과 정자의 아름다운 조화, 귀한 터와 명저의 조화, 선현과 후학의 지적 대화. 자연과 인간이 겹겹이 어우러지는 곳. 정자와 노송과 바위는 높고, 계곡도 물도 숲 그늘도 깊다. 때마침 태풍 미탁이 지나간 직후라 용문산에서 내려온 석간수는 계곡에 넘칠 듯 바위를 때리며 울부짖는다. 숲과 계곡, 바위와 정사를 합쳐 명승 51호 경북 예천의 ‘초간정 원림’이 된다. 초간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낙향해 공부하던

문화 | 김구철 | 2019-10-08

내하전차기복 후불지개 지금상순차도철 여차이망기무사자 특행이奈何前車旣覆 後不知改 至今尙循此塗轍 如此而望其無事者 特幸耳앞 수레가 이미 엎어졌는데 어찌 뒤에도 고칠 줄 모르고, 엎어진 바퀴 자국을 따른다.이러고도 무사하기를 바라니 요행만 믿는 노릇 아닌가?- 징비록 녹후잡기(錄後雜記)에서하회(河回)는 ‘물돌이’의 이두식 표기다. 안동에서 하회마을이라는 표현을 쓰면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경주 양동도 양동 마을이 아니라 그냥 양동이다. 하회는 낙동강이 마을을 크게 한 바퀴 휘감아 흘러 만든 마을이다. 경북 예천 ‘회룡포’나 단종이 귀

문화 | 김구철 | 2019-09-24

방촌(傍村)은 통일신라 때 정안현, 고려 때 장흥부의 치소였다. 조선조에 장흥 위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해, 오늘날 12뜸에 위씨 110가구가 살고 있다. 작은 마을에 팔경이라면 과한 느낌인데, 방촌 팔경 두 대목만 소개한다. 2경 상잠만하(觴岑晩霞), 저녁밥 짓는 연기가 방촌의 주산 상잠산에 띠 허리를 두른다. 8경 금당귀범(錦塘歸帆), 고깃배가 해질녘 황혼의 기운을 받고 만선으로 돌아온다. 풍요로운 고장이다. 장흥 관산읍은 고려 말 원나라가 왜를 정벌할 때 조선소였다. 천관산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수 만 그루 베어 신월마을에서 90

문화 | 김구철 | 2019-09-10

접근성과 희소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다. 인간은 천성이 간사해 쉽게 접근하면 귀한 줄 모른다. 한편, 인간은 천성이 게을러 접근하기 어려우면 알려 들지 않고, 귀한 줄도 모른다. 이래저래 인간은 귀한 줄 모르고 산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회덕 동춘당이 딱 그렇다.대전시 대덕구 도심 한복판, 접근성은 더할 수 없이 높다. 그러나 동춘당 선생의 학덕은 범접하기 어렵다. 건물 동춘당은 접근성이 높아 귀한 줄 모르고, 인물 동춘당은 접근하기 어려워 역시 귀한 줄 모른다. 아, 건물도 사람도 동춘당이니 헷갈리기 십상이니 건물은 그냥

문화 | 김구철 | 2019-08-27

경기(京畿)란 서울 근처의 땅을 말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왕경 오백 리 이내의 땅을 기(畿)라 했다고 한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 오백 리면 거의 대전까지니 비현실적이다. 그냥 서울 근교 이백리 정도로 잡으면 얼추 현재의 행정구역상 경기도 그리고 현대인의 지리적 감각과 비슷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출세한 이들은 중앙에서 활동하다가 서울 근교, 즉 기내(畿內)에 집을 마련해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농경 사회였던 조선조에는 그런 경우가 훨씬 많아 한양 근처에 집과 농장을 마련해 정착한 다음 일가붙이를 불러들여 집성촌을 이루곤 했다.

문화 | 김구철 | 2019-08-20

남양주 진접읍 내곡리는 한밭들과 유연이들 두 너른 들이 왕숙천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자리, 천견산(天見山:393m, 천겸산이라 된 지도도 있다) 줄기 남쪽 끝자락의 마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한밭들’을 치면 진접을 비롯해 양평, 이천, 여주, 충청도 제천, 경상도 문경, 상주, 달성(화원, 옥포 2곳), 고령, 합천(가회, 초계, 관평 3곳), 밀양, 고성, 함안, 전라도 남원, 영광, 함평 등 전국에 모두 20군데가 넘는다. 고유명사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좀 넓어 보이면 ‘한밭들’이라 이름 붙인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유

문화일반 | 경기일보 | 20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