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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조계지 경계계단(淸·日租界地 境界階段)은 인천 중구 전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적건조물로 2002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됐다.이 지역은 1883년 일본 조계(租界)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租界)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약 12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본 조계지 경계계단은 중앙에 석조 계단이 형성되어 있고 양단을 중심으로 급한 경사인 점을 감안하여 계단참을 두고, 조경식재 공간을 마련하여 공간의 이용적 측면과 인천항 경관을 여유롭게 즐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8-05 20:04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1674∼1720) 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하사하여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한양으로 진출하였다고 한다.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은 널벽으로 좌우 벽에 널문을 3개씩 설치했다. 앞면은 벽이나 문이 없이 개방되어 있는데 흔적이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8-04 19:40

김안정 묘 및 출토 묘비(金安鼎 墓 및 出土 墓碑)는 인천광역시 서구 원당동에 있는 무덤으로 2008년 인천시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됐다.고려문신인 김문적의 7대손 김안정은 보익대부와 삼사좌윤을 역임한 풍산 김씨 김포파 중시조이다. 그의 장남은 자량으로 오조의 판서, 홍문관 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차자 자순은 계공량 군기시 직장 및 통훈대부 통례원을 역임하였다.본 묘비는 1634년 7대와 8대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풍우에 비문이 마멸된 것을 1786년 현재의 비를 세우면서 묘역에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3년 12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29 19:43

법화사터는 남한산성 북문 근처의 법화골 벌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절터에는 여러 건물터와 불상, 석탑조각,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으며, 절터 아래쪽으로 부도가 남아있다. 건물터로는 대웅전터와 산신각터로 추측되는 공터가 있고, 대웅전터 오른쪽으로 머리와 팔 등이 부서진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이 있는데 훗날에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건물터 아래로는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벽이 조금 남아있는데, 절을 처음 지을 때 함께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이 돌벽 아래로 약간 떨어진 곳에 3기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앞에서 보아 왼쪽의 것은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28 20:09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9호인 반남박씨 대종중 묘역은 반남박씨 8세부터 14세까지의 열 분이 계신 선영이다. 그들은 사직공 병문(秉文), 상주공 임종(林宗), 교리공 억년(億年), 정랑공 조년(兆年), 유사공 집(緝), 도정공 응인(應寅), 사마공 동기(東紀), 호군공 동위(東緯), 좌참찬 동선(東善)과 그 아들 정(炡)이다. 정께서는 인조반정때 정사공신으로 금주군(錦洲君)의 훈호를 받았다. 본 묘역의 문화재, 서포공 박동선의 신도비문은 논산의 명현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1707년에 짓고 글씨는 이렴(李濂)이 썼으며, 금주군 박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22 19:50

김용환 작가의 는 학생잡지 월간 에 연재돼 큰 인기를 얻었던 장편 서사물 만화다.현재 보관되고 있는 책은 단행본 3권(1953년, 1954년, 1955년)으로 출판한 작품으로 ‘그림얘기책’ 형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칸이 나뉘고 말풍선이 등장하는 형식적 진보를 보여줬다.만화구성과 구도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의 계기를 마련해 한국 현대만화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조잡한 단행본과는 다르게 고급종이에 80쪽이 넘는 분량으로 무선제본된 ‘고급책자’형태로 제작됐다.조사대상인 유물은 컬러표지에서부터 흑백본문까지 훼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21 20:04

의령남씨 종중 묘역(宜寧南氏 宗中 墓域)은 인천 서구에 있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0호이다.의령남씨 부정공파 두장 공 계 문중 묘역에 있는 남정화의 묘, 남정의 묘, 남두장의 묘 등 3기의 묘는 묘표, 묘갈,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등 조선 후기의 석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시대 사대부 묘역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남정화 묘의 망주 석은 한 쌍으로 밑면이 팔각형 기둥이고 맨 꼭대기의 공 모양은 끝이 뾰족한 연꽃 봉오리 형태이며 가장자리는 구슬 모양의 무늬를 둘렀다.남정 묘의 묘표는 꽃으로 만든 모자를 쓴 것과 같은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15 20:19

부채를 든 자화상은 춘곡 고희동(高羲東ㆍ1886~1965)이 1915년 여름날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며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밝은 황토색 바지(삼베 바지로 추정)와 흰색 상의를 입은 젊은 남자를 그린 유화작품이다.유족이 보관하던 작품을 197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하여 훼손된 오른쪽 부분(인물의 왼쪽 팔부분)을 보수하고 전체적으로 먼지를 닦아내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그린 작품으로서 인상주의 화풍을 수용한 1910년대 미술가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문화재청 제공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14 20:08

강화 정족산성진지(江華 鼎足山城陣地)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지로, 2014년 인천시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됐다.정족산성진은 정족산 사고를 수호할 목적으로 조선중기 이후 설치된 국방시설이다. 1907년 방화로 전체 소실되어 평탄지로 있던 곳을 2008년 발굴조사하여 11개소의 건물지를 포함 대규모 유구가 발굴됐다. 1870년대 이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족산성진」 지도에 표현되어 있는 내사, 진사, 포량고 등의 건물지와 담장시설, 문지 등을 대부분 확인했다. 발굴된 일부 건물지의 경우 정족산성진 설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08 19:56

영조어필벼루는 뒷면에 영조(1694~1776)가 71세 때 자신의 연표를 친히 짓고 써서 새긴 특별한 벼루다. 연표 내용은 가로 2칸, 세로 10칸으로 구획한 직사각형의 표 안에 매우 작은 글씨로 새겨 넣었는데,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이란 글자가 있어 영조가 직접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해오는 벼루가 가끔 있지만 이처럼 왕과 관련된 명확한 기록을 가진 벼루는 매우 희귀하다. 명문도 왕이 아니면 새길 수 없는 내용이다. 더구나 왕의 글씨를 그대로 새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0-07-07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