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한복 만들기’ 도전

사각사각한 비단 스치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설날이면 입던 한복이 생각나서다. 시골에 살던 어릴 적, 동생과 같이 빨간색 한복을 맞춰 입고 마당에서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큰아버지와 고모들, 형, 누나, 동생들이 내려왔다. 오래간만에 친척들을 만난다는 즐거움과 한복을 입었다는 두근거림이 동시에 겹쳐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장을 보려고 시장을 찾을 때 한복 집이 보이면 눈길이 가고 걸음을 잠시 멈추게 된다. 오색빛깔로 화려함을 뽐내는 한복에서부터 중후하고 기품있는 멋을 드러내는 한복까지 모두 아름답다. 고운 자태의 녹의홍상(綠衣紅裳)을 볼 때면 결혼 후 신부가 한복을 입고 아침밥을 차려주는 꿈도 꿔본다. 장가갈 때가 된 모양이다. 다가오는 설, 한복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한복연구가로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한복 만들기에 마지막 과정인 고름을 달기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다. ■ 기품과 멋을 입는 우리옷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찾았다. 한복 만들기뿐 아니라 우리옷의 의미와 바르게 입는 법을 알고자 한복연구가인 박창숙 혼품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선택했다.한복은 모양과 형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복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연구가라는 표현을 쓴다. 옷을 입는 사람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고 어떤 소재를 써야 하는지, 어떤 수를 놓고 어떤 무늬를 찍을 것인지 연구하기 때문이다.협회 입구에 도착했을 때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박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협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지나 한 층 내려가니 박 대표의 연구실이 있었다. 연구실에는 다양한 옷감과 한복들이 가득했다. 한복 만들기에 앞서 한복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박 대표는 “일반적으로 한복이라고 하면 바지와 치마, 저고리를 생각하는데 우리 선조는 때와 지위에 따라서 격식을 차려 옷을 갖춰 입었다”며 “우리옷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한복 만들기에 시작”이라고 설명했다.풍성한 옷감으로 온몸을 감싸게 한 한복은 예의범절을 중시한 우리 조상의 유교적 도덕관이 숨어 있다. 색에 배합에서도 시각적인 조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신(四神) 사상과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랐다. 특히 한복은 앞 중심이 트여 있어 안감이 보이기 때문에 안감과 겉감의 색깔 배합에도 신중을 기했다.한복은 기본적으로 정예복, 준예복, 약예복, 기본예복 등으로 나뉘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따라서도 옷이 달라졌다. 정예복으로 남자는 도포, 여자는 당의를 입는다. 도포는 소매가 넓은 것이 특징이고 옷의 뒤가 터져 있어 말을 탈 때 편하도록 만들었다. 당의는 사대부가 여성의 예복으로 소매 끝에 흰 천으로 덧대는 특징이 있다. 준예복으로 남자는 답호를 여자는 장유를 입었고 약예복은 남녀가 모두 배자를 입었다. 한복의 소재와 명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답호는 소매가 없고 겉에 띠를 둘러 입는 것이 특징이고 장유는 긴 저고리라는 의미로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이다.배자는 답호와 마찬가지로 소매가 없는 조끼 형태지만 답호보다는 길이가 짧아 활동하기 편하다. 기본예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저고리, 바지, 치마로 이뤄진 한복을 의미한다. 외출 때는 남녀가 모두 두루마기를 입었다. 관례복으로 남자는 난삼을 여자는 장배자를 착용했다. 결혼식 때는 영화나 드라마의 혼례장면에서 볼 수 있는 청단령(남자), 녹원삼(여자)을 입었다. 상중에는 참최복을, 제사 때는 천담복을 입었다.■ 옷감 선택부터 신중… 色을 입는 우리옷한복에 대해 배우고 나서 본격적인 한복 만들기를 시작했다. 한복 만들기에 첫째는 바로 옷감 고르기다. 한복의 옷감은 계절에 따라서 봄ㆍ가을, 여름 비단과 여름 복(伏) 중에 입는 모시, 겨울에 입는 양단 총 4가지로 나뉜다.옷감을 고른 후에는 옷을 입을 사람에 맞춰 색깔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한복은 색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김새와 낯빛에 따라 색을 고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그는 “요즘 사람들은 한복을 화려하게만 입으려고 하는데 사람의 얼굴색에 따라서 어울리는 옷이 다르다”며 “색깔의 선택에 따라 사람의 기품이 달라지기 때문에 색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한복의 색깔은 크게 붉은색, 푸른색, 갈색 3종류로 나뉘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은 노랑이 섞인 따뜻한 붉은색이었다.설명을 들은 후 노랑이 섞인 붉은색 배자를 입고 작업을 시작했다. 소재와 색 선택 후에는 모든 한복 만들기 과정이 같았다.우선은 치수를 재고 옷감을 재단한다. 재단한 후에는 남자는 품을 넓게 잡아 바지를 만들고 여자는 치마 윗부분에 주름을 잡아 치맛말기를 한 후 바느질을 하면 된다. 저고리는 고름이 달릴 가슴 쪽 앞길과 등 쪽 뒷길을 만들고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는 배래를 바느질해 소매를 붙인다. 그다음에는 깃과 흰 동정을 달고 끝으로 고름을 달면 한복이 완성된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바느질이었다. 가위로 재단한 후에 바느질을 잘 못하면 옷감이 울어 비뚤배뚤한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 꼼꼼히 바느질을 해야 해 재봉틀로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양장과는 차이가 컸다. 비단이 겹쳐진 고름을 달 때는 엄지손가락이 뾰족한 바늘 머리에 눌려 금세 빨개졌다.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중간에 실이 엉키는 일도 생겨 실을 모두 잘라내고 다시 바느질을 해야 했다. 남자의 준예복인 답호를 입고 있는 모습 ■ 잊혀져가는 우리옷 자랑스러운 명맥… 세계로 뻗어나가다한복을 만들면서 잠시 쉬는 동안 박 대표가 사용하던 가위를 봤다. 한복 업계 입문할 때부터 쓴 가위라고 하니 30년은 된 듯하다. 그는 종로를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주단(紬緞, 명주와 비단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게를 봤고 그때 비단 색감에 매료돼 한복 업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귀띔해줬다. 검은색이었던 가위 손잡이는 이미 칠이 다 벗겨져 가위 날과 같은 색깔이 됐다. 요즘은 전동 가위 등 편한 제품이 많이 있지만, 오랫동안 손에 익은 가위는 이것 하나뿐이어서 여전히 이 가위만 쓴다고 한다. 국민의 눈에서 멀어진 한복을 다시 마음속에 밀어 넣으려는 한복 명장의 고집과 우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반평생을 한복 연구가로 지낸 그가 가진 가장 큰 불만은 사람들이 우리옷을 입지 않고 우리옷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복을 입는 사람이 드물고, 입더라도 격식에 맞춰 입지 않는 일이 많은 문제를 해결, 한복을 제대로 입는 문화를 만들고자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를 지난 2012년에 만들었다.지금 가장 중점을 두는 우리옷 알리기 활동은 전 세계 28개국에 있는 전통문화원에 한복을 전달하는 일이다. 이미 지난해 필리핀, 벨기에, 스페인, 중국 북경 등 4곳의 전통문화원에 한복을 전달했다. 올해는 3월 20일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와 일본 오사카, 중국 상해에 한복을 전달할 예정이다. 또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한복에 대해서 알고 제대로 우리옷을 입도록 하려고 기준서도 제작했다. 기준서에는 언제 어떤 한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정보를 담았다. 그림으로 한복을 입은 모습을 표현했고 한복 입는 순서부터 옷감의 소재, 한복 부분에 대한 명칭 설명도 자세히 알려준다. 쉽게 틀리는 고름 매는 방법과 대님 매는 법도 그림으로 설명해서 따라하기 쉽다.한복 만들기를 마친 후 완성된 채 걸려 있는 한복을 바라보니 한 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한복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과 수고에 대해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박 대표는 “우리옷, 한복은 알면 알수록 아름다운 옷인데 요즘 사람들은 한복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한복을 더 사랑해주고 자주 입어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정현기자사진=김시범기자

[1일 현장체험] 프로야구 kt wiz 전력분석원

“똑, 똑.”노크 후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 너머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지난 시즌 내내 봐 왔던 그 얼굴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임대현씨, 지난해 11월 익산 마무리캠프에서 도움을 받았던 이성권씨, 그리고 이곳의 책임자인 심광호씨까지. 이들은 프로야구 kt wiz의 전력분석원들이다. 그렇다. 기자가 찾은 이곳은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내 전력분석실이었다.“일일체험 때문에 왔습니다.”“어서 오세요. 스프링캠프가 코앞이라서 할 일이 많으실 거예요.”“무엇을 하면 될까요? 신입사원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부려주세요.”“일단 일을 하려면 배우셔야죠. 이쪽으로 오세요.”■ 프로야구 전력분석원의 세계지난 시즌 리그 사상 최다인 736만529명의 관중이 모인 프로야구의 발전은 과학적인 분석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수준 높은 기술을 갖추게 됐다. 흔히 야구를 정적인 운동이라고 한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격렬하지 않다. 반대로 한 번의 폭발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또 상대와의 수 싸움이 가장 많은 운동 중 하나가 바로 야구다.그 핵심이 전력분석이다. 프로야구에서 상대를 어떻게 파헤치고 얼마나 치밀하게 경기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조범현 kt 감독은 이런 전력분석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령탑이다. 매일 300~500장에 달하는 전력분석 보고서를 읽고, 공부한다. 또 이를 자신만의 데이터로 만든다. 그가 지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꼼꼼한 감독을 모시는 전력분석원 입장에선 그만큼 할 일이 많은 셈이다.“하루는 감독님께서 심판 조에 따른 승률을 뽑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말 그대로 ‘노가다’였는데 자료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혼났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힘들었어요.” 임대현 전력분석원의 폭로(?)다.전력분석원들이 꾸미는 보고서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만 제공되는 게 아니다. 선수들도 이들 전력분석원이 만든 보고서와 영상을 통해 경기를 복기하고, 공부한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은 “예전 같으면 정답을 주는 역할이었다면 현재는 답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문제지를 주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쉽게 말해서 선수들에게 팁을 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영상과 ‘고군분투’감독 및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보는 보고서와 영상은 전력분석원들의 땀이 곁든 결과물이다. 현재는 비시즌이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반 직장인과 같은 리듬이지만, 시즌 중에는 밤을 지새우며 보고서와 영상을 만든다.전력분석원들은 자료와 영상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임무가 있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은 모든 자료를 담당한다. 경기를 보며 상대에 대한 자료를 취합한다. 상대 선발의 볼 스피드와 구질, 볼 배합, 최근 컨디션 등 자세한 분석 사항을 정리해 선수단에 배포한다.이성권 전력분석원은 영상 담당이다. 모든 경기 영상을 녹화하고 필요한 자료를 뽑아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팀 미팅에서 선수단에 공개되곤 한다. 임대현 전력분석원은 연봉 고과 산출이 주 업무다. 시즌 중 조범현 감독 옆에 자리해 기록에 열중하는 인물을 TV중계를 통해 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임대현 전력분석원이다.이들 외에도 원정 경기를 담당하는 손정훈, 김동영 전력분석원이 있다. kt가 다음 6연전에서 맞붙을 상대팀을 미리 보러 다니기 때문에 선수단과 따로 움직인다. 원정분석원들은 상대 투수들의 퀵모션 시간을 체크하고, 경기 내용을 기록한다. 경기가 끝나고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 많게는 수십 장을 써야 하기에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이들은 현재 휴가 중이라 이날 얼굴을 볼 순 없었다.전력분석원들은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있는 이맘때면 각 팀의 새 얼굴을 분석한다. 새로이 영입된 외국인 선수와 신인들이 분석대상이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이 기자에게 한창 바쁠 때라고 이야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력분석 맛보기… 화면가득 빼곡한 그래프 향연심광호 전력분석원은 설명을 끝마치고,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HDMI 포트를 이용해 대형 TV와 연결했다. TV화면에는 kt 투수 조무근의 투구 분석표가 담겨 있었다. 승패와 평균자책점 등 클래식 스탯부터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GO/FO(땅볼/뜬공 아웃 비율) 등 2차 스탯이 빼곡했다. 조무근이 구사하는 구종과 카운트 별 비율 등은 그래프로 그려져 있었다.“kt가 스포츠투아이와 협력해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처럼 자동 구축되는 시스템이죠. 저희는 이걸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선수단에 건네요. 예를 들면 카운트 별로 어느 공을 던졌을 때 타자들에게 집중공략 당하니 투구 패턴의 변화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식이죠. 조무근 같은 경우는 초구는 직구, 이후 슬라이더를 던지는 경향이 짙은데 보통 슬라이더가 많이 공략당하곤 하죠. 이런 점을 귀띔해주는 거예요.” 심광호 전력분석원의 말이다.이날은 삼성 라이온즈의 새 외국인 투수 앨런 웹스터에 대한 분석이 있었다. 전력분석원들이 모두 대형스크린 앞에 모여 웹스터의 투구 영상을 살폈다. 공 하나, 하나에 분석이 오갔다. 웹스터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임대현 전력분석원은 웹스터의 커브에 대해서 “저 정도면 낙차가 상당히 큰 편”이라며 “쉽게는 공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kt 새 외국인 투수 슈가 레이 마리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기자가 마리몬이 던지는 투심패스트볼의 높은 피안타율을 지적하자 임대현 전력분석원은 “그러면 못 던지게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은 “그래도 방망이에 맞는 비율인 Contact%가 95%에 달한다는 건 제구가 어느 정도 된다는 의미”라면서 “구사 비중을 조정한다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훈련 지원’ 불철주야kt는 오는 15일 미국 애리조나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스프링캠프라고 일컫는 이 해외 전지훈련이 시작되면 개막 직전까지 쉴 틈이 없다. 스프링캠프를 사실상 시즌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전력분석원들도 이 전지훈련에 따라나선다. 현지에서 이뤄질 연습경기를 분석하기 위함이다. 선수들의 훈련에 따르는 허드렛일도 이들의 몫이다.“공부터 시작해서 배팅볼 기계까지 옮기고 세팅하는 것도 전력분석원들이 돕고 있어요. 선수들이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잖아요. 우리 전력분석원들도 모두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배팅볼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이 덧붙인 설명이다.전력분석 외에도 허드렛일을 거들어야 하기 때문에 스프링캠프 출발 전까지 챙겨야 할 장비가 한둘이 아니다. 분석에 필요한 카메라, 초시계, 노트북은 물론이고 공까지 준비해야 한다. 전력분석원들은 틈틈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도 이 일을 도왔다. 야구공을 정리하고 몇몇 짐 꾸러미를 쌌다.전력분석만 해도 벅찰 텐데 이런 허드렛일까지 거드는데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심광호 전력분석원은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그래도 감독님을 비롯한 선수단이 ‘수고했다, 고맙다’라고 말 한마디 건넬 때 큰 힘을 얻곤 한다”며 “그 정도면 이 일을 하는 데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조성필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연말 나눔전도사 ‘구세군’ 도전

‘땡그랑 땡그랑’ 매년 성탄절 즈음이 되면 청아한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12월 추위만큼이나 얼어붙은 도시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구세군 종소리다. 빨간 외투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새하얀 입김과 청아한 종소리.그리고 자선냄비는 이미 12월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선생님과 부모님의 권유에 빨간 자선냄비에 1천원을 넣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어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구세군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이 겨울이 더 지나기 전,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기회를 갖고 바쁜 취재업무 속 성탄절도 즐길 겸(?) 1일 구세군이 돼 보기로 했다. ■ 빨간 옷을 입고 금색 종 들고 “기자님,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아! 그리고 날씨가 추울 테니 단단히 챙겨입고 오셔야 할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난 20일 오후 3시께 수원역 광장. 주말을 맞아 수원역을 찾은 가족과 연인들 사이에서 수원구세군교회 교인들과 함께 빨간색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모금을 시작했다.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등 강추위가 몰아닥쳤던 주중에 비해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장시간 바깥에 서 있어야 하니 단단히 준비하고 오라는 목사님의 말에 기자는 네 겹의 옷을 껴입고 수면 양말에 핫팩까지 준비했다. 선배 기자들은 ‘히말라야 가냐?’라고 놀려댔지만, 뭐든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1일 구세군체험은 빨간색 구세군 외투를 입고 교인들이 가르쳐 준 ‘종 흔들기’로 시작했다. ‘이 작은 종 흔드는 게 뭐 그리 힘들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1㎏ 가까이 되는 종을 위아래로 흔드는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자 금세 손목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소리는 기대하던 ‘딸랑딸랑’ 소리가 아니라 뚝뚝 끊기기 일쑤였고, 잔잔하게 울리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30분가량이 지나자 익숙해져 이제 종 흔들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기자를 쭈뼛쭈뼛하게 하는 것이 남아있었다. 바로 종소리를 듣고 쳐다봤지만 이내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외면하던 행인들이었다. 구세군을 보고 무심코 지나쳤던 지난날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한 손에는 종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호소했다. ■ 캐럴과 함께 ‘신나는 모금활동’어색하고 뻘쭘했던 시간이 흐르자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크리스마스를 맞아 수원구세군교회 악대가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를 위해 등장한 것. 10명의 중·고·대학생으로 꾸려진 악대는 빨간색 재킷을 맞춰 입고, 쑥스러워하는 기자와 달리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악기를 설치했다. 사실 이들은 어린 나이지만 같은 교회를 다니며 벌써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매년 구세군 모금현장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베테랑들이었다. 악대가 ‘징글벨’, ‘크리스마스 맘보’ 등 캐럴을 신나게 연주하자 기자 혼자 쓸쓸하게 종을 흔들었던 방금과는 달리 현장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악대의 연주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수원역 한복판에 멋진 캐럴이 울려 퍼지고 광장 앞 AK플라자 외벽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이 들어오자 마치 크리스마스 축제에 온 듯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흥겨운 캐럴을 흥얼거리면서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구세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금세 악대 앞을 둘러싼 관객이 생겼고,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악대 앞에 서서 연주 도중에는 종을 흔들지 말라는 가르침에 기자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자선냄비를 지켰다. 연주의 힘일까, 기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미는 아이들, 삼삼오오 친구들과 쇼핑을 나와 사랑의 손길을 더하는 학생들, 퇴근길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 어른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선냄비를 향한 기부가 잇따랐다.자선냄비에 시민들의 사랑이 더해질 때마다 기자는 ‘감사합니다’ ,‘고마워’라 말하며 그 따뜻한 마음을 함께했다. 하지만 얇은 재킷 하나만 입고 차가운 날씨에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 연주해야 하는 탓에 두 시간가량의 연주를 마친 악대의 손과 얼굴은 금세 빨갛게 얼어버렸다. 어린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서만 완전무장한 채 서 있던 기자는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불평은 커녕 악대원인 하은별씨(23·여)는 “언니 춥죠, 이거 가져요”라며 오히려 기자를 걱정하면서 손에 핫팩을 쥐여줬다. 또 박동현씨(20)도 “누나 고생하셨어요,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라며 수줍게 다가와 셀카 한 장을 찍기도 했다. 이웃을 사랑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친구들의 마음씨에 이들과의 추억이 마음속 한편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 나눔의 의미… 올해는 우리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찬바람이 거세져 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며 힘들어졌다. 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힘든(?) 이유는 한 가지 또 있었다. 사실 함께 모금 활동을 한 이보람씨(24·여)와 손장재씨(26)는 서로 너무나도 아끼는 연인이었다. 매년 구세군모금 자원봉사를 한다는 여자친구를 따라 다른 교회에 다니는 손 씨가 따라나선 것. 두 사람은 종 흔드는 것이 힘들까 서로 흔들겠다며 사랑싸움(?)을 하기도 했다. 부러워하던 기자가 ‘주말인데 데이트 안 하고 이곳에 있으니 싫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일도 하고 이렇게 같이 있는 게 데이트죠, 이따가 끝나고 데이트 할거에요’라며 더 부럽게 만들었다. 어느새 발이 꽁꽁 얼었고 무릎도 시려 왔고 몇 시간째 서 있으니 앉고 싶어졌다. 또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바로 옆에 세워진 노점상에서 호호 불어가며 어묵을 먹는 이들을 보며 그야말로 ‘한입만’하는 생각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눈 판 것도 잠시 4~5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다가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자선냄비에 쏙 집어넣었다. ‘고마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말해주자 아이는 쑥스러운 듯 엄마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는 엄마의 권유에 수줍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답한 뒤 떠났다. 이날 구세군교회의 모금 활동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뤄졌고, 총 모금액은 57만5천200원이었다. 그동안 ‘저 자선냄비에 누가 기부하기는 할까?’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아직 이 세상에는 이웃을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가슴이 뭉클한 기분이었다. 1일 구세군이 돼 보니 기부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 빨간 냄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구세군을 만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1일 구세군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진경 기자사진=김시범기자

[1일 현장체험] 수원 중국요리전문점 ‘고등반점’ 주방보조

수원역에서 수원여자고등학교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중국의 성을 연상케하는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45년의 전통을 이어온 고등반점이다. 고등동 대표 중국집으로 인근 경기도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났다. 지금은 다른 지역까지 입소문이 퍼져 점심·저녁시간만 되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곳에서 기자가 주방 보조 체험을 위해 찾아가 보았다. ■ 시작부터 만만치 않네… 진땀나는 주방 입성기 낮 12시40분. 가게는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다.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직원들은 분주했다. 쉴 새 없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옮기고 바쁘게 움직였다. 입구 바로 앞 주방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 위에 올려진 냄비가 맛있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난 오후 1시. 주방은 여전히 바빴다. 주방 직원 7명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끊임없이 음식 주문이 밀려들어 왔다. “짜장 둘, 짬뽕 하나요” “탕수육도 있습니다” 홀 직원이 주문한 음식이 적힌 메모지를 주방 한편에 붙이고 돌아갔다. 이 와중에 기자가 주방을 둘러보자 불 앞에서 볶음밥을 만들고 있던 김길태 총 주방장(50)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오후 1시30분은 넘어야 덜 바빠요. 지금은 주방이 가장 바쁜 시간이니까 일단 창고에서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라며 주방 안쪽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10평 남짓한 주방 안쪽에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복도형 창고가 있었다. 문을 열자 앞치마와 한문으로 고등반점이라고 적힌 위생복이 걸려 있었다. 주문받은 탕수육에 소스를 붓고 있는 모습.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김 주방장은 바쁜 손을 잠시 멈추고 그릇이 수북이 쌓인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설거지해보셨죠? 손님들에게 나갈 그릇이 부족한데 빨리 닦아주세요”라며 빠른 손놀림으로 시범(?)을 보여준 뒤 한 손에 수세미를 쥐여줬다. 설거지는 간단하게 3단계로 나뉜다.첫번째, 손님이 다 먹은 그릇을 홀에서 받고서 잔반을 일명 ‘짬통’에 버린다. 두번째, 가로 170㎝·세로 50㎝의 물이 가득 찬 싱크대에 그릇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 바로 옆에 설치된 식기 세척기에 넣는다.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위기에 봉착했다. 밀려든 손님에 그릇이 부족해졌다. 김 주방장은 “정 기자!”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손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 단무지·춘장 종지부터 탕수육 접시까지 닥치는대로(?) 닦아라! 멀고도 먼 ‘주방보조의 길’ “그릇이요! 그릇이요!” 홀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이 그릇을 가져다줄 때마다 내뱉은 말이다. 그들이 양손 가득 가져온 그릇은 어느새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주방에 입성한 지 20분. 100여개의 그릇을 닦았다. 단무지와 춘장을 담은 작은 종지부터 탕수육 그릇까지.손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밀려드는 그릇에 깔릴 것만 같았다. 결국 그릇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이자, 보다 못한 홀 직원이 싱크대에 그릇을 밀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가볍게 보던 설거지가 정말 어려웠던 순간이었다. 오후 2시. 바쁘게 돌아가던 주방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제야 정신없이 그릇을 닦던 손을 멈출 수 있었다. 이미 기자의 몸은 설거지 후유증으로 음식물이 튀어 엉망이 됐다. 위생장갑없이 설거지 하던 손은 벌써 거칠어져 있었다.김 주방장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내밀며 “중국집 주방 어때? 정말 바쁘지. 점심시간은 숨 쉴 겨를도 없어. 저녁시간은 이거에 딱 2배”라고 말했다. 이어 김 주방장은 주방 구석구석을 돌며 소개해줬다. 주방은 하나의 요리를 두고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재료 다듬기부터 칼질, 설거지, 면 뽑기, 조리 등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또 1시간 만에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김 주방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다. 한국말이 서툴지만, 이들은 중국에서 10년 이상 요리에 몸을 담았던 경력자들이다.철판을 맡고 있는 형건군씨와 조리장 유경빈씨는 이미 총 주방장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데다 튀김에 궁서충씨, 면발 뽑기에 우붕씨와 막내 손립금씨는 젊은 나이지만 미래가 촉망되는 요리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새삼 10평 남짓한 주방이 대단해 보였다. ■ 설거지, 또 설거지… 어느 역할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김 주방장의 주방 소개가 이어지면서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방은 또다시 분주해졌다. 양파와 파 등 각종 재료가 주방으로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건군씨는 사각형 모양의 대도를 꺼내 재료 손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재료들을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보던 것을 눈앞에서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장인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랄새도 없이 김 주방장은 설거지 마무리 작업을 지시했다. 닦고 또 닦았다. 기계에 그릇을 넣고, 종류마다 분류해 정리했다. 작업은 30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주방 보조였지만 실제로 주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설거지와 재료 옮기기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방에서는 어느 하나라도 빼놓으면 안 된다고 한다. 김 주방장은 “설거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릇이 못 나가고, 재료 준비 못 하면 음식을 못 만들어요. 주방에 들어온 이상 쓸모없는 사람은 없어요. 정 기자가 짧게 도와줬지만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우리 주방에서 일할 생각 있으면 얘기해요. 비록 막내지만…”라고 했다. 이때 김 주방장의 말을 듣고 문득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중국 요리의 대가로 소개된 이연복 셰프와 그의 제자를 자칭하는 만화가 김풍. 그 둘의 관계처럼 김길태 주방장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은 순간이었다. 정민훈기자 사진=김시범기자

[1일 현장체험] 광명전통시장 초보 일꾼

대형마트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전망도 어두워 상인들의 한숨이 깊다. 더구나 현대적인 시설 및 주차공간이 부족해 쇼핑족의 외면을 받고 있는 전통시장의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 전통시장의 도전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의 옷을 입고 이케아, 코스트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등 굴지의 거대기업과 승부수를 띄운 광명전통시장 한복판 서 뜨거운 정을 느끼며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지난 7일 이른 오전 7시. 광명지역 및 서울 구로구, 부천지역의 고객을 대상으로 상권을 형성한 광명전통시장에 첫 발을 디뎠다. 이항기 사장(왼쪽)이 막 삶아낸 뜨거운 돼지머리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그 옆에서 뜨거운 김을 참아내며 기자가 손질을 거들고 있다. ■ 수작업으로 만드는 ‘편육삶기’부터 도전!“닭발 얼마예요?” 기자는 “아주 맛있어요. 3천 원밖에 안 해요” 중년의 아주머니를 대상으로 첫 판매에 나섰다. 장사시작 전 이른 오전 7시부터 깨끗이 손질해 잘 삶아진 돼지머리고기를 대형 솥에서 꺼내는 만만찮은 작업이 앞섰다. “뜨거워요! 맨손으로 돼지머리를 만지면 화상입어요. 맛있는 만큼 작업도 힘들어요”라는 27년차 베테랑 부부상인(돼지상회·사장 이항기)의 따뜻한 충고 한마디에 힘입은 기자는 신안 천일염이라고 표기된 포대자루에서 소금을 퍼 연기 펄펄 나는 돼지머리에 간을 하고, 손질했다. “저희야 직접 삶아서 잔칫집이나 고사에 필요한 곳에 배달을 하니깐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지요. 하지만 이케아, 코스트코, 롯데 아울렛 등이 들어오면서 공산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너무 힘들어해요”라며 이웃집을 걱정하는 이 사장 부부의 모습에서 시장상인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궁무진 먹거리 행렬… 실수연발 ‘진땀’“백종원씨가 다녀간 빈대떡 집이 맞아요!” 뜨거운 철판위에서 빈대떡을 부치는 ‘원조 광명할머니 빈대떡’ 이귀순 씨에게 손님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기자는 할머니를 돕기위해 “고기가 많이 들어간것이 8천 원이쥬~!”라고 손님한테 전했다. 이 할머니는 “그놈 눈치도 빠르고 귀여운 점백이일세~”(웃음)라며 한바탕 손님들과 웃음꽃이 피었다. 뜨거운 기름에 신경이 쓰일 만도 한데 일일이 손님들에게 대답을 다해주는 할머니의 센스에 기자도 세월의 연륜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 코스는 ‘죽’(서울 마님죽).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기세등등하게 뛰어든 기자는 새알이 둥둥 뜬 큰 솥에 팥죽을 휘휘 크게 원을 그리며 젓는데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안경애 사장(광명시장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의 핀잔. “이거 함부로 젓는 것이 아니예요. 잘못하면 밑이 눌어붙어 탄내가 나 못 먹어요”라는 안 사장의 말에 기운이 빠진 기자는 풀이 죽었다. 광명전통시장 상인분들은 못 하는 게 없는 진정한 ‘달인’들이라는 생각이 체험 내내 머릿속에 박혔다.■ 여기저기 초보일꾼 찾는 목소리~ 바쁘다 바빠!수산물 판매업소인 ‘인천소래수산’에서 “뭐 도와드릴 일이 없나요”라고 묻자, 옆 가게에서 벌써 소문(?)을 들었는지 “아침에 들어온 김장용 생새우를 먹어보라”는 임성택씨. 오래 씹으라는 말대로 씹기를 계속하자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꼈다.대형마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살아있는 ‘맛’이었다. “바지락이나 들어주고 다른 데 가서 도와줘요! 또 봐요”라며 삼촌처럼 친근한 임 사장의 가게서 나와 상인분들을 거들자 어느새 체험 막바지에 들어섰다. ■ 전통시장도 이제 ‘배송시대’… 편리한 장보기 “전통시장에서 무료배달을 해준다는 말은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무게와 부피에 따라 요금을 정해놓고 배달해 드려요. 하지만 그마저도 많이 있는 일이 아녜요” 광명전통시장 배송센터 이융재 팀장은 배송 자체가 흔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더구나 오토바이를 타고 짐을 나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전통시장에 배송센터가 존재한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해 아쉽다고. 그나마 대형 마트에 없는 품목인 떡 종류와 이불 배달 때문에 명맥은 유지한다는 이 팀장의 모습에서 헛헛함이 느껴졌다.어서 빨리 활기가 넘치는 호시절이 오길 바랐다.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어 시킬 일이 없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팀장은 “우리 광명전통시장, 앞으로 많은 손님들 찾아오시도록 좋은 글이나 많이 써주세요”라고 호방한 웃음으로 당부했다.■ 우리 경제 책임지는 상인들에게 새삼 고마움체험을 마치며 시장주변 청소라도 도울 요량으로 박스를 주섬주섬 주워 옮기려는 차 한 아저씨가 불호령을 내렸다. 박스를 빼앗듯이 가져간 아저씨는 ‘그거 내 박스요’라고 말해 기자의 얼굴은 민망함에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루하루 치열한 삶의 순간을 살아내는 전통시장 상인들에 고마움을 느낀 하루였다. 건강한 겨울, 신명나는 겨울을 나시길 기원하며 다시 한번 글쟁이로서 삶도 치열하게 살아내야겠다고 새삼스러운 다짐을 했다. 광명=김성훈기자사진=김시범기자광명전통시장은…광명시 광명동에 위치한 가로형 전통시장으로서 광명지역 및 서울 구로구와 부천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수도권 도시철도 7호선 광명사거리 역과 맞닿아 있다. 일일 5천여 명이 방문하며 1천여 명의 상인들이 수십 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6·25전쟁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광명전통시장은 410여 개 의 점포(노점 포함)와 농수산물축산물의류공산품음식점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는 업소들이 들어서 있다.또 비가리개와 고객쉼터 등을 갖춰 현대화된 전통시장으로 내년도엔 주차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한편, 지난 10월 여수에서 열린 ‘전국우수시장 박람회’에서 광명전통시장은 전통시장 활성화와 지역경제에 기여한 공으로 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다.

[1일 현장체험] 불법 광고물 단속반원

현대인들은 광고물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와 신문,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단순히 길거리만 걸어다녀도 현수막과 간판 등 무수히 많은 광고물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도심 곳곳을 수놓고 있는 현수막 등의 광고물 대부분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자체에서 허용하고 있는 지정된 게시대 이외는 현수막 등 광고물 부착이 금지돼 있으니 도심 곳곳을 수놓고 있는 광고 대부분이 사실상 불법인 셈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 광고물 공해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매일 도심 곳곳을 누비는 이들이 있다. 불법 광고물 단속반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흰 눈발이 흩날린 26일 매일 같이 불법 광고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불법 광고물 단속반원들의 하루를 체험해봤다. 26일 불법 현수막 수거반원 일일체험에 나선 기자가 현수막을 제거하고 있다. 26일 오전 9시 불법 광고물 단속반원 일일 체험을 위해 의정부 시청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부쩍 쌀쌀하다 했더니 설상가상으로 눈발까지 흩날리기 시작한다. 꽤나 만만치 않은 일일 체험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쳤다. 이날 일일 체험을 소개해 준 건축과 공무원은 “오늘 날씨가 꽤 쌀쌀하네요. 최근에 인원이 충원돼 크게 힘들진 않겠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크니까 조심하세요”라며 은근히 겁을 줬다. ‘현수막 떼는 일이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고 하니 괜스레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불법 현수막 수거 차량에 올랐다. 큰 화살표 경고 등이 설치된 4인용 트럭 안에는 불법 광고물 수거 주무관과 사회복무요원 2명이 타고 있었고 빨간 목장갑과 두꺼운 커터 칼 등의 작업용 도구가 놓여 있었다. 이날 작업을 함께할 수거 반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 “불법 광고물 수거는 얼마마다 한 번씩 나가나요”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봤다. 그러자 “토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나갑니다. 매일 나가도 하루 평균 100~150개씩은 수거하구요. 많을 때는 300개를 넘어설 때도 있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불법 광고물이 많겠지 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에 ‘광고물의 홍수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본격적으로 시작된 불법 현수막 제거 작업은 단순했다. 운전을 맡은 주무관이 불법 현수막이 설치된 장소에 차를 바짝 갖다대면 나머지 사회복무요원 2명은 재빨리 불법 현수막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긴 뒤 재빠르게 내려 커터 칼로 줄을 뚝뚝 끊어 현수막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작업 자체는 단순했지만 불법 현수막이 붙어 있는 지점을 눈으로 빠르게 스캔한 뒤 재빠르게 차를 갖다대고 현수막을 제거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좀처럼 끼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일사불란했다. “현수막이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복판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동작이 빠르지 않으면 안 돼요. 도로를 가로막는다고 뒤에서 경종을 빵빵거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지요. 그래도 원래 두명이 하던 일인데 최근에 한 명이 충원돼 훨씬 수월해 졌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수차례의 작업을 견학한 뒤 직접 내려 현수막 제거 작업을 시도했다. 단칼에 현수막 끈을 절단해버리는 사회복무요원들의 능숙한 칼솜씨와는 달리 전봇대 등에 칭칭 감긴 줄은 좀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수차례 칼을 비비적거리고서야 겨우 현수막 끈을 잘라낼 수 있었다. 또 잘라낸 현수막을 손으로 휘휘 저어 순식간에 감아버리는 능숙함은 생각보다 흉내내기 어려웠다. 허둥대는 기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봉수(33) 사회복무요원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시죠.줄을 단번에 잘라야 작업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요. 줄을 팽팽하게 잡고 칼날을 빠르게 움직여 잘라내세요”라고 조언했다. ‘역시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오전 9시에 시작한 작업은 12시까지 계속됐다. 단속 반원들은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작성한 불법 현수막 제거 지도를 따라 코스를 차례차례 밟아나가고 있었다.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거리에 나붙은 불법 현수막은 하나 둘 사라져갔고 차량 뒤에는 수거된 현수막이 수북이 쌓여갔다.덜컹거리는 차안에서 거리에 나붙은 불법 현수막을 발견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불법 현수막을 제거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좀처럼 차멀미를 하지 않는 체질임에도 머리는 지끈거리기 시작했고 따뜻한 차안과 추운 밖을 오가길 반복하다보니 졸음이 밀려왔다. 이날 반나절 동안 수거한 불법 현수막은 대략 100여 개. 아파트 분양이 집중되는 시기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하니 불법 현수막 작업이 얼마나 고된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제거작업을 벌이는데도 또 매일 이렇게 나오나요”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자 “제거할 줄 알면서도 계속 붙이는 업체들이 많아요. 특히 아파트 분양이 집중될 때는 한 아파트 사무실 당 현수막을 붙이는 팀만 100여 개가 가동된다고 하더라구요. 3명이서 수백여개 팀이 내다 붙이는 불법 현수막을 모두 제거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의 매일 불법 현수막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죠”라고 말했다.일일 체험을 마무리하며 단순하지만 고되고 피곤한 작업을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매일 반복한다는 생각을 하니 불법 현수막 제거 반원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매일 지루하면서도 피곤한 작업을 반복하는 이들이 있기에 도시 미관이 깔끔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의정부=박민수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초보 전통장 명인 도전기

‘쿡방’이 대세다. 출중한 요리실력은 기본이요, 잘생긴 외모까지 더한 남자 셰프들이 여심을 파고들고 있다. 이제 남자도 요리를 해야 하는 시대. 부끄러운 얘기지만, 기자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끓는 물에 면과 수프를 넣고 3분 동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라면이 전부다. 그야말로 요리 불능이다. 같이 살아주는 아내에게 그저 고마워해야 할 따름이기만 하다. 이번 체험에서 멋지게 파스타 같은 외국 요리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전국이 시끌벅적한 김장철이기도 한 만큼, 초보 전통장 명인(?)으로 하루를 살아봤다. ■ 앞치마·고무장갑 완전 무장… ‘된장남’ 변신시냇물이 흐르는 조용한 시골 마을 길을 따라 최근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위치한 국가지정 전통식품업체인 (주)상촌식품을 찾았다.업체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수백 개의 장독에 입이 딱 벌어졌다. 상촌식품 대표이사이자 지난 2010년 대한민국 식품명인(어육장 제조부문)제 37호로 선정된 권기옥 명인(83)이 반갑게 맞았다. 상촌식품은 신선한 국산 원재료에 전통방식 그대로 어육장을 비롯해 각종 장류와 장아찌류를 생산하는 업체. 오늘의 임무는 된장 담그기와 수백 개의 장독 관리 등이다. 거울 앞에 서서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서 고무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난 뒤에야 명인을 따라 가공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자가 메주를 항아리 안에 넣기 위해 수레를 옮기고 있다. “맛있는 장을 담그려면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겠죠. 메주는 국내산 대두 중 경기도 혹은 강원산 햇콩으로 제조된 것이며, 소금은 천일염을 사용해야 해요. 수돗물도 그냥 사용하면 안 되고 정수하거나 여건이 안된다면 물을 그릇에 받아 24시간이 지난 후 사용해야 되요. 항아리도 광택이 나지 않아야 한답니다.”처음부터 쉬지 않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시원하게 쏟아내는 명인.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메주와 소금, 물의 양의 조절이란다. 재료는 메주 1말(6장)과 천일염 5㎏, 숯, 대추, 마른 홍고추, 그리고 항아리.명인을 따라 항아리 안에 3분의 2가량 메주를 여러 개 넣은 뒤 물과 소금을 4대1로 맞춘 소금물을 부었다. 남은 소금물은 햇볕에 장물이 줄면 수시로 보충해주어 항상 항아리에 소금물이 가득해야 한단다. 이렇게 해야 곰팡이가 끼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정성·기다림의 결정체… 명인 20년 노하우 섭렵 이어 항아리 주둥이를 무명 헝겊으로 덮고서 야물게 동여놓았다. 익는 과정에서 파리 등 벌레의 접근을 원천 방지하기 위해서다. “밤에는 항아리 뚜껑을 덮어놓고, 햇볕이 있는 낮에는 뚜껑을 열어 약 두 달간 익혀야 해요. 아파트에서도 햇볕만 잘 드는 곳이라면 장을 담글 수 있다”라고 설명하는 권 명인. 메주에 소금과 물을 부어 발효시킨 뒤 국물을 떠내면 간장이, 남은 메주는 된장이 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익는 과정에서 파리가 접근하면 벌레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서 매일 매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든다’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옛 선조의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 밖에 있는 온실하우스로 나가 볼까요?”명인을 따라 밖에 있는 온실하우스에 따라나섰다. 장을 담근 항아리 수백 개가 하우스마다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온실하우스는 마치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와 흡사한 모습으로 유리로 둘러싸인 높다란 천장과 옆으로는 통풍할 수 있도록 방충망이 설치돼 있었다. 이는 항아리를 바깥에 놔두면 파리가 꼬이기 때문이란다. 항아리마다 ‘어육장’ ‘된장’ ‘간장’ ‘고추장’을 나타내는 품목과 언제 담갔는지 날짜 등 자신마다 정보를 기록한 표가 달렸었다. 20년이 다된 오래된 장들도 눈에 띄었다. 보통 항아리에 들어간 이후 고추장은 1년, 된장과 간장은 2년 후에 맛을 볼 수 있단다.명인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자신의 주 무기(?)인 어육장이 담긴 항아리 독을 열어 보였다. 그냥 된장이 담긴 독인 줄 알았지만, 손을 깊숙이 넣고 휘휘 저으니 오랜 숙성으로 흐물흐물해진 각종 고기와 생선이 감췄던 모습을 드러냈다. 어육장은 조선시대부터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즐겨 먹던 최고급 장으로 말 그대로 고기와 생선을 메주와 함께 담가 장이 될 때까지 묵혔다 꺼내 먹는 일반인은 다소 생소한 귀한 장이다. 그야말로 육해공의 재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이번에는 간장 독을 열어 보았다. 그것도 20년이 다된 독이었다.검고 윤기가 좔좔 흘렀고, 풍겨오는 향은 푸근했다. 맛을 봐도 좋다는 명인의 말에 손가락으로 콕 찍어 혀에 대보았다. 시중에서 파는 간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했다. 과연 일반 간장보다 풍미가 진중한 이유가 있었다. 귀한 재료들의 맛과 영양이 듬뿍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 잊혀져가는 전통장… 다시금 소중함 깨달아다음 임무는 항아리 관리. 기자는 직원들과 함께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기 위해서다. 수백 개의 항아리 관리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오늘 장 담그기 체험을 해봐서 알겠지만, 우리의 전통 장은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귀한 것이랍니다. 외국 셰프들은 우리의 간장과 된장을 맛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죠. 그런데 정작 이 귀한 것을 우리 한국인들은 잘 모른 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일반 장맛에 길들어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며 언젠가는 우리의 전통 장이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명인.그 역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전통 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뒤 무작정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도 장에 대해서라면 할 일이 많다는 명인은 전통 장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과 사랑은 물론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이날 하루 소중한 체험을 마치고 상촌식품 정문 밖을 빠져나오면서 투박한 항아리 안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어 탄생한 전통 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전통 장은 그야말로 정성과 기다림의 결정체였다. 바로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의 산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용인=권혁준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 학생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꿔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슈퍼맨처럼 빨간 망토 하나만 걸치고 하늘을 날 수 있다거나 우주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아이언맨 슈트가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땅에 발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 아쉬울 때가 많다.요즘처럼 비행기 타는 일이 흔치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친구들끼리 서로 호들갑을 떨면서신기해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구름 속을 헤엄쳐다니는 비행기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더 먹고 드디어 비행기를 처음 타게 됐을 때의 그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청룡열차를 탄 듯한 짜릿함도 있었고 하늘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의 편안함도 있었다. 매일 비행기를 타는 조종사나 승무원들은 직업이라는 차원을 떠나 매일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래서 체험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조종사나 승무원이 되보려는 욕심을 부려봤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무자격자(?)인 기자가 비행기에 승무원 등의 신분으로 동승하려면 최소 3개월 이상 교육을받아야 한단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했던가. 비록 직접 하늘을 날면서 조종사나 승무원이 되볼 수는 없었으나 인하공업전문대학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더욱이 인하공전의 항공운항과(승무원 교육전공)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일류인데다 여학생들 뿐이라고 하니 복 받은 체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학교를 찾아갔다.■ 첫째도 둘째도 ‘미소’■ 머리부터 발끝까지 ‘승무원 변신’■ 피나는 연습으로 완성되는 ‘승무원의 자세’

[1일 현장체험] 수원 ‘하얀풍차’ 제과점 제빵사

어린 시절 하얀 밀가루가 깔린 넓은 스테인리스 작업대에서 반죽을 가지고 노는 날이 많았다. 과거 제과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때다.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자고 있는 아들을 어루만지던 아버지 손에는 항상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축축한 반죽 탓에 깊게 패인 손주름에는 버터와 이스트(빵을 발효할 때 쓰는 효모) 향이 배어 있었다.빵을 사려고 제과점을 찾을 때마다 아들을 깨우던 아버지의 거친 손에서 맡을 수 있었던 익숙한 향기에 가슴이 설렌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빵공장(제과점에서 빵을 만드는 장소)에 들어가시면 늦은 밤에나 나오셨다. 이 때문에 유년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는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좁은 빵공장에서 반죽을 치대고, 더운 오븐 앞에서 빵을 굽고 있는 모습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과 온종일 쉴 틈 없이 가족을 위해 빵을 만들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이참에 제빵사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 밀가루 묻은 작업복… 옛 추억이 새록새록 지난달 26일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있는 제과점 ‘하얀풍차’를 찾았다. 일률적인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보다 특색을 갖춘 일반 제과점을 선택했다. 하얀풍차는 1992년 개업해 현재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과점이다. 정문에 도착하니 작업복에 밀가루를 한가득 묻힌 김영일 기술상무가 맞이해줬다. 김 상무는 하얀풍차에서 빵을 만드는 과정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다. 김 상무는 “바쁘니까 빨리 이동하죠. 작업복 입고 위생모 쓰고 공장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빵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거예요. 충분히 각오하고 따라오세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빵공장으로 이동하려고 매장에 들어가자 손님들로 북적댔다. 하얀풍차는 오전 6시부터 시작해 밤 9시까지 계속해서 빵이 나온다. 매장을 지나 빵공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어렸을 때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준비된 작업복을 받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작업복은 직원이 입었던 옷이어서 밀가루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옷을 다 입고 거울을 보니 예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위생모를 쓰고 빵을 만들기 위해 빵공장으로 들어갔다. 모두 “안녕하십니까”라며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맞이해줬다.제빵사 모두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반죽을 위한 계량을 하는 등 바빴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는 직원부터 빵을 빚는 직원까지 모두 고객을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빵을 만드는데 피해를 주지 않고자 옆에 있는 제2공장에서 빵을 만들기로 하고 이동했다. 오후에 만들 고르곤졸라에 쓸 반죽을 만드는 것이 첫 임무였다. 밀가루, 올리브유, 설탕, 물 등을 계량해서 넣었다. 같은 맛을 위해 저울에 1g 단위까지 맞춰 정확하게 계량했다. 계량한 후 재료를 반죽해주는 기계에 부었다. 갈고리 모양의 반죽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죽을 시작했다. 따로 분리돼 있던 재료가 기계 안에서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반죽이 돼 갔다. 기계를 끄고 넓은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얻은 반죽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그 친숙한 모습이었다. 김 상무는 “반죽이 마르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고객에게 드릴 빵이니까 굼뜨고 서투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다그쳤다. 반죽한 빵을 바로 숙성기로 집어넣었다. 만득이 빵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넣기 전 빵을 반으로 가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끊임없는 제품 개발… 전국 1등 ‘만득이빵’ 위엄 빵을 사려고 제과점을 찾는 고객이 몰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빵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빵 반죽을 마치고 만득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득이는 하얀풍차에서 가장 유명한 빵이다.모 방송사에서 개최한 전국 유명 경진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촉촉한 빵 속에 양배추, 양파, 피클과 돈가스 패티가 들어가 있어 기존 빵과 확실한 차별화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료가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에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맛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하얀풍차에서 대표 빵으로 내세울 만했다. 빵은 공기가 충분히 들어가 포근하고 촉촉했고 안에 들어간 채소 재료도 신선했다. 돈가스 패티까지 들어가 있어 씹는 맛까지 잡을 수 있었다. 김 상무는 “괜히 방송에 나가고, 투표해서 1등 하는 게 아닙니다”라며 “손님들도 처음에는 모양에서 의문을 갖다가 맛을 보고 나중에는 꾸준히 사러 온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하얀풍차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만득이 빵을 내놓게 된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을 위해서다. 주온영 하얀풍차 사장이 사라져가는 일반 제과점이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맛있는 빵을 특별하게 만드는 차별화를 대안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얀풍차의 빵은 일반 제과점과 다르다. 가장 인기있는 만득이부터 빵 안에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 있는 화이트롤까지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이다. 만득이를 만드는 가장 첫 단계는 밀가루 반죽을 100g 단위로 맞추는 것이다. 일정한 양을 맞춰 빵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름 3㎝의 밀가루 반죽은 발효과정을 거쳐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면 손바닥만 하게 커진다.다 구워진 빵은 반으로 자르고 속을 채웠다. 빵이 말랑말랑해서 반으로 가르기가 쉬웠다. 가른 빵을 가지런히 놓고 나서 제빵사들이 줄줄이 서서 양배추, 양파, 돈가스 패티, 당근, 피클, 특제소스를 넣자 하얀풍차 대표 제품인 만득이 빵이 완성됐다. ■ 노인·아이들도 부담없이 즐기는 빵 속 비밀은? 고르곤졸라를 만들기 위해 숙성시킨 빵 반죽을 꺼내고 잠시 쉬려고 빵공장 밖으로 나갔다. 김 상무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벽면에 ‘하얀풍차는 천연발효종을 사용합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김 상무는 “우리 하얀풍차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일반 제과점에서 사용하는 화학용 이스트는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사용한다”며 “이 때문에 우리 빵은 어르신과 아이들 모두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하얀풍차의 모든 빵에는 천연발효종이 들어 있어 소화가 잘되고 속이 더부룩한 현상이 없다. 천연발효종은 사과에 있는 미생물이 반죽을 발효시킬 수 있는 상태까지 키운 것으로, 빵 반죽에 공장형 이스트, 화학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드는 전통적인 제빵법이다. 천연발효종 외에도 하얀풍차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기술이전 받아 쌀발효종을 이용해 쌀빵을 만들고 있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이전한 기술은 노화지연 효과가 우수한 쌀 발효액종ㆍ쌀빵 제조기술이다. 이 기술은 발효기술을 이용해 밀가루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쌀의 가공성을 높여 쉽게 딱딱해지는 기존 쌀빵의 단점을 보완했다. 쌀발효종으로 만든 빵을 직접 먹어보니 밀가루 빵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큼한 맛이 나지 않아 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일일제빵사로써 마지막으로 할 일은 구워진 빵을 꺼내는 일이었다. 오븐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열기가 가시자 향긋한 빵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빵을 꺼내려고 오븐용 대삽을 빵 밑에 밀어 넣고 빵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열기와 삽 무게 때문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 만들어진 빵을 바닥에 떨어뜨릴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무사히 쟁반으로 옮길 수 있었다. 김 상무는 “오늘 아침부터 밀가루를 계량하고 반죽하고 모양 만들고, 굽고 꺼내기까지가 제빵사의 하루 일과다”라며 “빵을 쉽게 사먹고 남기면 버리기도 하지만 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제빵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고양 ‘아람누리 도서관’ 사서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간이자, 중추적 사회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시민들은 도서관에서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 공연 등 각종 문화 활동을 즐긴다.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며 삶의 여유를 누리고자 오는 시민들도 있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힐링의 공간이다. 또한 유치원생부터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해, 각 연령층에 맞는 특성화된 서비스도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중추적 사회기관인 도서관을 움직이는 핵심 일꾼은 ‘사서(司書)’이다. 이들은 ‘서적을 맡아보는 직분’이란 사전적 의미는 기본이고 책 수리, 공연 기획, 각종 행정 업무 등도 맡고 있다. 가을 햇살이 눈부셨던 지난 28일 음악도서관으로 특화된 고양시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일일 사서 체험을 했다. ■ 사서의 첫 번째 임무는 ‘정보 제공’아람누리 도서관 로비에서 이은진 일산동구도서관과장에게 사서 역할에 대해 짤막한 강의를 들었다. 이 과장은 사서의 첫 번째 임무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보 제공’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서는 자기개발이 중요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시 사서직 1호·사서직 사무관 1호’란 별칭 때문인지 이 과장의 말에는 왠지 믿음이 갔다. 이 과장은 고양시 도서관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가 첫 근무를 한 1990년에는 시청 문예회관 책자료실이 전부였는데, 현재는 시립도서관 16곳이 시민들을 맞고 있다. 택지개발에 따른 기부채납 방식으로 시립도서관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이다.이 과장은 “한 시민이 생명과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떤 책을 봐야 하는지 물었을 때 사서는 곧바로 답변을 해야 된다”며 “학교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몇 번째 서가에 있습니다’가 아니라 ‘이런, 이런 책을 보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라는 정보 제공이다.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혹시 나에게 이용객이 이런 질문을 해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하지만 오늘 나의 1일 사수인 김주희 주무관(사서직)을 소개 받고 이 고민은 사라졌다. 누군가의 질문을 받으면 “김 주무관이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이라며 답변을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 도서 대출·반납·정리 “바쁘다 바빠”사서 경력 8년차 베테랑인 김 주무관은 아람누리 도서관에서 종합자료실, 책누리 서비스, 단체대출, 도서택배 서비스, 장애인자료실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를 따라 2층 종합자료실로 들어갔다. 먼저 도서관 사서의 기본 업무인 책 대출, 반납 코너에 앉았다. 50대 중년 여성 회원이 책을 빌려가겠다며 휴대폰에 저장된 모바일 회원증을 제시했다.김 주무관 설명에 따라 모바일 바코드에 기기를 대자 컴퓨터 모니터에 회원 자료가 떴다. 이어 책에 붙은 바코드를 기기로 찍은 뒤 대출과 반납 날짜를 체크했다. 아람누리도서관 대출기간은 14일이고, 7일간 연장이 가능해 최대 대출기간이 21일이다. 종합자료실 데스크를 벗어나 앞치마와 장갑을 끼고 책 정리에 나섰다. 반납된 책을 서가 제 자리에 꽂는 작업이다. 장갑이 번거로워 끼지 않으려고 하자 책에 세균 등이 묻어 있어 장시간 책을 만지면 손이 상한다고 김 주무관이 귀끔해줘 장갑을 꼈다.반납된 책은 청구기호(분류번호, 저자기호 등)에 맞춰 제 자리에 비치해야 되는데, 초보자인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국십진분류표에 따라 정리된 서가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에 걸쳐 될 일이 아니라도 생각해 북트럭(반납된 책을 서가에 비치하기 위해 쌓아 놓은 기기) 운전대를 잡았다. 북트럭을 몰고 종합자료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책을 정리하는 김 주무관을 도왔다. 책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뒤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사서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 권 책 분류… 망가진 책은 수리까지?대출된 뒤 반납된 책 중 밑줄이 그어진 곳과 낙서, 손상된 부분을 확인해 수선하는 작업이었다. 연필로 낙서된 곳은 지우개로, 볼펜은 화이트로 지웠다. 일반 소설류보다 토익, 토플 등 어학류 서적에 낙서가 많다고 한다. 반납된 모든 책을 일일이 점검하다 보니 지우개, 화이트 소비량이 많아지고 그만큼 팔 근육도 강화(?)된다고 한다. 이후 장기 연체자에게 책 반납 독촉 문자와 전화 거는 작업을 지켜봤다. 김 주무관은 “6개월 이상 연체한 장기 회원들에게 전화를 하면 스팸으로 저장돼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며 “도서관 책은 반드시 반납해 모든 시민들이 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오전 업무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오후의 주된 업무는 고양시립도서관이 시민들을 위해 2014년 4월부터 시행한 ‘책누리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고양시립도서관 모든 자료를 이용자가 원하는 도서관에서 대출·반납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대화도서관에 빌린 책을 도서관까지 가지 않고 지하철이나, 다른 도서관에 반납하면 책누리 서비스팀이 수거해 대화도서관에 반납해주는 서비스이다. 또한 예약을 통해 아람누리도서관에 있는 책을 화정도서관에서 받아 볼 수 있다. 아람누리도서관은 책누리 서비스 본부 도서관이라, 차량 두 대가 덕양과 일산 지역에서 수거해 온 책을 분류해 각 도서관으로 다시 보내는 작업이 이뤄진다. 쉽게 설명하면 택배 집하장 같은 곳이다. 차량 두 대에서 수거해 온 차량을 일일이 도서관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단순 작업이지만 혹시나 도서관이 다른 책이 포함되면 다시 손이 가야 돼 정신을 집중해 분류작업에 임했다. 이날 시립도서관 16개소와 지하철역 6개소에서 수거된 책은 3천여 권이 넘었다. 전날 도서관 휴무날이라 평일보다 많았다고 한다.책누리 서비스 마치고 어린이자료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책 대출과 반납, 정리 등을 했다. 어린이자료실인 관계로 책 손상이 많을 것 같고, 이럴경우 어떻게 수리하는지 궁금했다. 이곳 관계자의 ‘같은 책을 복사해 붙인다’는 답변이 신기할 정도였다.■ 도서관의 ‘꽃’ 사서… ‘골치’ 민원인 대응 고충도지난 2007년 개관한 아람누리 도서관에는 김 주무관을 포함해 4명의 사서가 근무 중이다. 김 주무관은 “업무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책이 있는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참 멋진 직업 같았다.김 주무관 말처럼 손만 뻗으면 책이 있고, 근무 시간 내내 음악이 흐르는 공간(음악특화 도서관이라)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은 아마 사서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서란 직업의 장점은 여기까지였다.책 반납, 연체 등과 관련해 민원인이 언성을 높이며 인격모독성 발언을 할 때는 회의도 느끼는 사서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도서관 사서는 팥빵의 팥 같은 존재 같았다. 팥빵에 팥이 없으면 팥빵이 아니듯, 도서관에 사서가 없으면 제대로 운영될 도서관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고양=김현수기자사진=오승현기자

[1일 현장체험] K리그 챌린지 수원FC 선수

요즘 축구 미생들의 꿈을 향한 질주를 그린 KBS 예능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기자가 놓치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다.기자도 그들과 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장래희망’ 란에는 어김없이 ‘축구선수’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비록 크고 작은 부상으로 선수의 길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때면 못 다 이룬 꿈에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한다.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바로 1일 체험. 평소 1일 체험을 하게 된다면 꼭 축구선수를 하노라고 다짐을 해왔기에 1일 체험을 하라는 말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단, 하루만이라도 축구선수라는 이름으로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규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프로구단을 섭외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다행히 평소 취재를 통해 친분을 쌓았던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 수원FC 구단과 조덕제 감독의 배려로 체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정규리그에 출전할 수도, 수십 년간 실력을 쌓아온 선수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체험을 통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많은 노력을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준비 없인 승리없다! 경기분석·점검 ‘필수’부푼 기대감을 갖고 수원FC의 홈구장이자 숙소가 자리한 수원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오후 1시께 구단 프런트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선수들이 모여들자 회의실 불은 꺼졌고, 잠시 후 지난 홈경기 영상이 상영됐다.‘말로만 듣던 비디오 분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감이 몰려왔다. 푸른 잔디 위에서 공을 찰 것이라는 기자의 상상이 어긋나서다. 처음에는 단지 지루한 축구 중계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는 선수들의 말에 귀기울여보니 지루한 영상은 곧 흥미진진한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뒤바뀌었다.경기 상영이 끝나자 양종후 코치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양 코치는 사전에 준비한 영상 자료를 반복 재생하며 경기 중 잘못된 점을 지적해줬고,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피드백을 이어갔다. 양 코치는 “선수, 코칭스태프가 함께 비디오 분석을 했던 과거에는 자연스레 지적 사항이 많아지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며 “요즘에는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 위해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따로 비디오 분석을 한 뒤 중요 사항에 대해서만 지도자들이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디오 분석이 전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게 양 코치의 설명이다.비디오 분석이 끝나자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1시간여 앞으로 다가온 훈련을 준비했다. 단연 선수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 곳은 의무실과 체력단련실이었다. 기자가 의무실 앞을 기웃거리자 김동영 의무 트레이너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먼저 의무실을 찾은 선수들의 테이핑이 끝나자 김 트레이너는 “무리해서 다치면 큰일나요”라며 발목에 테이프를 감아줬다. 선수들에 비해 근육을 잡아주는 강도를 낮췄다고 했지만 발목에는 압박으로 인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기자가 의무실을 빠져나온 이후에도 선수들의 발길은 계속됐다. 선수들의 경우 경기나 훈련에 앞서 부상을 예방하기 위한 테이핑은 필수 코스였다.선수들의 연이은 행렬을 뒤로 한 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출신인 시시 곤잘레스와 함께 체력단련실로 향했다. 기자를 보며 해맑게 웃어 보인 시시를 따라 15분가량 지속된 워밍업만으로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대부분의 선수들은 훈련 전·후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신체를 단련하고 있다고 한다. 탄탄한 근육을 만들기 위함도 있지만 훈련 전에는 간단한 준비운동은 물론 신체 밸런스를 조절하며, 훈련을 마치고 나면 풀어진 근육을 다시 잡아주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숨막히는 훈련! 중요한건 역시 ‘기본기’본 훈련이 진행된 오후 3시 수원종합운동장. 선수들을 따라 그라운드를 밟았다. 가벼운 러닝과 준비운동을 마치자 운동복을 갖춰 입은 조덕제 감독이 “오늘까지 템포 러닝이다”라고 외쳤다. 여기저기서 기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템포 러닝은 골대와 골대의 약 100m 구간을 정해진 시간안에 주파하는 러닝 훈련으로 쉽게 말해 체력 강화훈련이었다. “기자님 오늘 날을 잘못 잡으셨네요”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던 선수들이 “나는 3분”, “에이 그래도 5분”이라며 기자의 한계 시간을 예상했다.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멀리했기에 선수들의 말을 듣곤 지레 겁부터 먹었지만 다행히 조 감독의 배려로 선수들보단 짧은 거리에서 훈련에 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운동장 여기저기서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선수들은 힘들다는 불평보다는 ‘파이팅’을 외치며 사기를 북돋웠고, 나 또한 선수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텨냈다. 왕복 20세트의 템포 러닝이 끝나자 패스와 롱킥을 비롯한 기본기 훈련이 시작됐다. 십여 년 이상을 축구공만 달고 산 선수들이지만 모든 운동이 그렇듯 가장 중요한 기본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이어 공·수로 나뉘어 기술훈련이 진행됐다. 조 감독의 눈을 피해 잠시 숨을 골랐다. 아니나 다를까 “홍 기자, 체험을 왔으면 수비훈련도 해봐야지”라는 조 감독의 말에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조 감독이 높게 차주는 공의 낙하지점을 찾아 연신 헤딩으로 공을 걷어냈다. 강한 스핀이 걸린 공 때문인지 이마는 마치 무엇으로 얻어맞은것 처럼 얼얼했다.기자가 공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찾지 못 할 때마다 조 감독은 “경기 중 언제, 어떻게 공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비수가 제공권 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실점으로 이어진다”고 불호령을 내리며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온몸이 ‘천근만근’… 긍정적인 ‘마인드’ 선수들 보며 뿌듯조덕제 감독의 총평을 끝으로 훈련은 마무리됐다. 오랜만에 정신없이 뛰어서일까. 온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함께 운동한 것을 핑계 삼아 평소 통제됐던 선수단 숙소에 발을 디뎠다. 선수들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나왔지만 기분이 썩 상쾌하지 않았다. 시민 프로구단의 열악함은 취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33명의 선수들이 6평 남짓한 12개의 방에 나뉘어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앞섰다.기자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던 것은 선수들의 자세였다. ‘비좁은 곳에서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남들이 볼 땐 열악하지만 우리에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운동장 안에 있다 보니 언제든 마음껏 운동할 수 있어 좋다” 등 긍정적인 답변만 돌아왔다.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리그 우승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수원FC. 단 하루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펼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지금은 비록 팬들의 관심이 적은 K리그 챌린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수원FC가 리그 우승은 물론 클래식(1부) 승격을 통해 수원 삼성과 국내 최초의 지역더비를 성사시켜 한국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기대해본다.홍완식기자사진=오승현기자

재난안전 숨은 일꾼… 소방헬기의 엄마 되다

드넓은 바다를 품에 안은 도시, 수많은 섬이 저마다 매력을 자랑하는 도시 인천에는 도서지역 주민의 안전과 산악사고 및 재난 등에 대비한 소방항공대가 있다. 산 정상에서 들것에 실린 중상환자를 호이스트로 구조하거나 도서지역 응급환자를 내륙의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많은 역할을 수행 중인 소방 헬기를 보유한 곳, 바로 소방항공대이다. 구조·구급대원이 접근하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소방항공대는 언제나 시민의 안전을 지키며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소방항공대 헬기의 조종사는 물론, 그 안에 함께 탑승하는 구조·구급대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작은 사고에도 대형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헬기의 특성상 정비사는 헬기 조종사와 탑승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다. 일일 체험으로 소방 헬기 정비사를 택한 이유도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방대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소방대원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도서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항공대원이자, 소방항공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 헬기 정비사를 한 번 체험해 보자. 굳은 결의를 하고, 지난 6일 영종도에 있는 소방항공대를 찾았다. ■ 조종사·정비사·구급·구조대원 17명 ‘불철주야’지난 1995년 10월 발대한 인천 소방항공대는 항공대장을 비롯한 운항(조종사) 6명, 정비사 3명, 구급대원 3명, 구조대원 4명 등 17명이 근무 중이다. 3교대 근무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1일 근무인원은 5명(운항 2명, 정비 1명, 구조·구급 1명씩)이다.소방항공대의 주요 임무와 역할은 인명구조 및 응급환자 이송(의사가 동승한 응급환자의 병원 간 이송 포함), 화재 진압, 장기이식환자 및 장기 이송, 항공 수색 및 구조 활동, 공중 소방 지휘통제 및 소방 필요 인력·장비 운반, 방역·방재 업무 지원, 재난관리 관련 업무 수행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특히 인천은 지역 특성상 유·무인도 162곳의 해상임무를 수행 중이며, 주·야간에도 수시로 도서지역 안전을 위해 비행을 해야 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최근 3년간 소방항공대의 운항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2013년 환자이송 68건, 산악구조 43건, 산불진화 4건에 소방항공대 헬기가 투입됐으며, 비행시간은 327시간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292시간의 비행을 통해 환자이송 113건, 산악구조 53건, 산불진화 11건을 수행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265시간을 비행하며 환자이송 105건, 산악구조 19건, 산불진화 13건에 투입됐다.최근에는 소방항공대 소속의 윤관식·유홍길 소방경이 임용 후 1천 시간 무사고 운항 공로를, 배재복 소방위는 10년 이상 무사고 정비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시장 표창을 받았다.■ 단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는 ‘소방헬기’ 점검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의 눈을 사로잡은 ‘AW-139’ 기종은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늠름함을 한껏 뽐냈다. 인천에는 백령도 등 내륙과 먼 거리에 있는 섬이 있어 중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소방 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천소방본부는 지난 2013년 항속 거리가 798㎞인 헬기 AW-139를 도입했다. 기존에 있던 소형헬기 벨 230은 항속 거리가 450㎞에 불과해 편도 295㎞인 백령도를 왕복(기상 조건에 따라 착륙하지 못하고 기지로 복귀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왕복 거리로 운항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에게 주어진 임무는 12년 경력의 정비사 박순율 소방장(34)의 지도로 진행된 육안 검사였다. 헬기는 만약의 사고로도 큰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어 상시 정비를 해줘야 한다. 또 운항시간에 맞춰 노후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 헬기 제작사의 대행 업무를 맡은 정비업체로부터 일정시간마다 종합 정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체험 도중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점검해 볼 수 없었고, 로터 부위와 헬기 앞부분의 전자기기 쪽만 육안 검사를 할 수 있었다.그렇다 해도 점검 항목만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복잡했다. 또 각종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과정에서 박 소방장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갔을 정도다.육안 검사를 하는 동안 박 소방장은 작은 소리로 AW-139와 대화를 나눴다. 박 소방장은 “어제는 잘 지냈니?”,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등 AW-139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자식을 대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박 소방장의 모습을 보며 어수룩한 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도 AW-139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잘 생겼니?”, “인천 섬 중에 어디가 가장 아름답니?” 등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AW-139는 특유의 늠름함을 과시할 뿐 육안 점검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박 소방장은 “매일 같이 소방 헬기를 정비하다 보니 마치 자식과 같은 존재가 됐다”며 “헬기에 탑승하는 다른 대원의 안전은 물론, 정비사도 매번 헬기에 함께 탑승하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비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 출신 우수 인재로 구성된 ‘인천 소방항공대’소방항공대원은 업무 특성상 군인 출신이 많다. 위급상황에서 안전하게 헬기를 조종하려면 일정 시간 이상의 경력이 필수인 데다, 군대 이외에 헬기 관련 경험을 쌓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관이 드물기 때문이다.특히 헬기 조종사가 되려면 육·해·공군별로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소정의 시험을 치르고 항공학교 과정 등을 이수해야 한다.또 소방항공대 소속 구조·구급대원이 되려면 인명 구조교육 과정 및 특수항공교육을 받아야 한다. 헬기에서의 구조·구급 기본 업무 자체는 육상과 큰 차이가 없지만, 대원 본인이나 환자가 헬기를 타고 내릴 때 안전부터 산악·수난 구조 시 기본 절차 등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방항공대 내 구조대원 상당수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특수부대 출신인 것은 물론, 구급대원이 항공 응급이송에 대한 전문지식과 1급 응급조치사 자격을 갖춘 우수 인재로 구성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이와 마찬가지로 헬기 정비사도 군대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으로 이뤄져 있다. 일일체험 도우미로 나선 박순율 소방장도 군에서 헬기 정비사로 5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박 소방장은 군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전역 후 해경에서 6년간 근무했으며, 인천 도서지역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헬기의 정비를 위해 올해 소방항공대로 이직했다.박 소방장은 “군에서 근무하는 동안 헬기의 결함을 미리 발견해 상을 받은 경험도 있다”며 “헬기 조종부터 정비까지 다양한 경험을 군대에서 쌓을 수 있었다. 소방항공대원 대부분 군인 출신의 훌륭한 인재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긴급현장 ‘1인 다역’… 주민 생명 지킨다는 ‘자긍심’ 소방항공대 구조 활동의 90% 이상은 산악 인명구조다. 계곡 골바람과 수십 미터에 달하는 암벽 등은 사고를 당한 환자만이 아니라 소방항공대원에게도 위협 요소가 된다. 대원들이 위험한 만큼이나 소방항공대의 기동성은 산에서 특히 유용하다. 암벽, 돌멩이, 나뭇가지 등이 산재한 산악지형 특성상 헬기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사고 현장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제 시행과 등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악 사고는 20% 이상 늘었다. 특히 산악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4~6분 이내에 생사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신고 접수 후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항공대원의 긴장감은 생명의 무게와도 같다.위험한 현장만 골라 다니고, 매우 급한 현장에서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등 소방항공대원의 업무는 고되지만, 그들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보람 덕에 대원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다.박상일 소방항공대장은 “모든 대원이 정비사를 믿기에 안심하고 헬기에 탑승할 수 있다. 헬기 정비사는 조종사와 구조·구급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1등 공신”이라며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도서지역이나 산악지형에서 일어난 위급 상황에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헬기 정비사는 물론, 모든 대원이 항상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기자사진=장용준기자

[1일 현장체험] 성남시 시민 순찰대 대원

간혹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누가 내 택배 좀 안전하게 받아줬으면, 벽에 못을 박아야 하는데 누가 전동드릴 좀 빌려줬으면, 야근하고 밤늦게 퇴근할 때 누가 마중 좀 나왔으면…. 바쁜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 또는 상상들이다.아주 사소한 일이고, 누군가에게 손을 빌리기엔 약간 뻘줌한 부탁이기도 하다. 생각과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성남시다. 성남시에 가면 시민순찰대가 있다. 이름 그대로 시민들이 시민을 순찰한다.순찰대의 주업무는 여성 안심귀가, 아동 등ㆍ하교, 택배보관 및 전달, 생활공구 대여, 취약계층 집수리, 순찰 등이다.기존 시청, 주민센터, 경찰서, 소방서 등의 관공서에서 소화할 수 없는 아주 디테일한 시민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저 단순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살피는 ‘순찰(巡察)’하는 수준의 ‘돌아봄’을 뛰어넘는다. 눈으로 ‘보고(see)’, 손과 마음으로 ‘돌봄(care)’한다. 이는 그냥 과찬이 아니다.지난 9월 23일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행복사무소에서 1일 시민순찰대원으로 변신해 직접 활동 후 얻은 결론이자, 느낌이다.■ 창설 두달만에 총 1천126건 서비스 제공9월 23일 오후 2시, 태평4동 행복사무소(수정구 시민로 229-1)에 도착했다. 시민순찰대원들의 보금자리인 행복사무소는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태평4동 행복사무소에는 현재 공개모집을 통해 임기제 공무원으로 선발된 12명과 일자리사업 참여자 5명 등 총 17명의 대원들이 3교대로 근무 중이다.기자의 1일 체험을 도와줄 정진홍 대장(62)은 퇴직 후 시민순찰대에서 인생 제2막을 시작한 케이스다. 그만큼 책임감이 남다르다. 또 20~60대 다양한 연령층의 대원들을 아우르는 포용력이 뛰어난 대장이다. 무엇보다 시민순찰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올해 수정구 태평4동을 비롯해 중원구 상대원3동, 분당구 수내3동 행복사무소에 시범운영 중인데 현재 태평4동이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남 본시가지에 해당하는 태평4동의 지역적 특성이 시민순찰대의 역할과 딱 맞아 시민들의 수요가 많습니다. 그만큼 대원들이 고생이지만 행복감도 큽니다.”정 대장의 말처럼 태평4동 행복사무소는 9월 23일 기준 ▲여성 안심귀가 62건 ▲택배보관 및 전달 26건 ▲생활공구 대여 41건 ▲취약계층 23건 ▲순찰활동 640건 ▲기타 334건 등 모두 1천126건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7월 말 창설돼 두 달동안 꽤 많은 활동을 한 것이다.정진홍 대장, 강재호(26), 이정우(23) 대원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첫번째 미션은 수정구 남문로 125번길 19-1에 거주하는 박준섭씨의 부엌 형광등을 교체하는 것.기자는 해당 주소지를 찾아가는 그 자체가 미로같이 어려웠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은 아직도 옛 달동네의 풍경이 남아 있는 곳으로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이 까마득하고, 20평 부지에 연립주택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서 집 찾기가 어려운 지역이었다.허나, 대원들에겐 식은 죽 먹기. 대학생같은 외모의 강재호 대원은 두 아이의 아빠답게 형광등 교체를 뚝딱 해치웠다.박씨네 형광등 교체 후 바로 시민로 257번길 1번지를 찾아갔다. 강금복 할머니는 순찰대원을 먼저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곧 추워지는데 밖에 있는 보일러관좀 스티로폼으로 싸달라고 행복사무소에 전화했는데. 아이고 고맙기도 해라. 보일러 얼고 터지면 나같은 노인네는 겨울이 무서워.” 대원들은 강할머니의 겨울을 책임져줄 보일러관을 스티로폼으로 꼼꼼하게 싸면서 불편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할머니를 안심시켰다.그 다음 태평4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주민센터에서 추석을 앞두고 소외계층에게 나눠주는 쌀 배달을 돕기 위해서다. 목적지는 남문로 121번길 28번지 이재준(77) 할머니댁. 이 할머니는 뇌졸중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했다. 순찰대원이 10kg 쌀을 들고 방문하자 “이렇게 착한분들이 있으니 나같이 없는 사람이 살 수 있는거여. 고맙소.”라고 연신 감사인사를 전했다.오후 4시, 행복사무소로 급히 복귀했다. 백성권씨가 전동드릴을 대여하러 오기로 한 시간이었다. 백씨는 “전동드릴의 경우 꼭 필요하지만 사용횟수가 많지 않고 가격이 부담돼 예전엔 공구상가에서 돈을 주고 빌려 썼는데 행복사무소에서 생활공구를 빌려 집 고칠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 성남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성남시민이라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공공성 강화 핵심사업에 맞는 ‘투철한 사명감’ 무장오후 5시부턴 2반장 양병환(35) 대원, 이선자(45ㆍ여), 서종윤(58) 대원과 함께 본격적인 지역순찰을 시작했다.정신없이 바빴던 오후와 달리 저녁 순찰은 다소 여유로울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언덕배기 골목길이 문제였다. 그냥 평지를 순찰하는 것과는 달리 체력소모가 컸다.종아리가 땡기고 오후 2시부터 쉬지 않고 걸은터라 피곤이 확 몰려왔다. 유도 5단ㆍ태권도 4단ㆍ합기도 2단의 ‘만능 스포츠맨’ 양병환 2반장은 산다람쥐처럼 날렵했다. 대신 골목골목을 꼼꼼하게 살피고 동네 어르신들과 일일이 인사하는 등 친화력이 뛰어났다. 영장산 정상까지 순찰하고 다시 행복사무소까지 내려오는 1시간30분 동안 대원들은 흐트러짐이 없었다.오후 6시 40분경, 골목길을 걷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다급하게 순찰대원을 불렀다. 술취한 어르신이 머리를 바닥에 쿵하고 쓰러진 것을 학생이 목격하고 일으켜 세우던 찰나였다.마침 어르신의 집을 알고 있다는 주민을 만나 대원들은 어르신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다.이처럼 대원들의 업무는 사소하다. 맨홀 뚜껑 열린 것도 신고하고 독거노인 건강도 확인하고 청소년 계도도 하고, 취약계층 샤워기 호수도 교체해 준다. 그야말로 전천후 활약을 하고 있다.시민순찰대는 생각했던 것 보다 바쁘고, 힘들고, 다리 아픈 삼중고의 직업군이었다. 젊다고, 체력이 좋다, 스펙이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무엇보다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창설한 성남시 민선 6기 안전부문 ‘공공성 강화’의 핵심 사업인 시민순찰대의 창설 이념에 맞는 마인드와 봉사정신이 중요하다.태평4동 행복사무소 정진홍 대장은 “우리 시민순찰대원은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주민 생활불편 사항을 해결하고 24시간 방범활동, 그 외에도 주차질서계도 및 쓰레기 불법투기 계도 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태평4동이 살기 좋은 행복한 마을만들기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시민순찰대가 앞장서겠다”고 밝혔다.성남=강현숙기자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한국가스공사 인천기지본부 안전 점검원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스다. 전기와 함께 난방은 물론 요리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다. 이 가스를 인천은 물론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24시간 땀 흘리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가스공사 인천기지본부다. 가스공사 인천 송도 액화천연가스(LNG)인수기지 등으로도 불렸다. 집에서 가스 밸브만 쉽게 열면 언제나 가스레인지를 통해 나오는 가스이기에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겨울철엔 전국적으로 가스 사용량이 많아 전력만큼이나 공급관리가 중요하기에 인천기지본부가 맡은 책임은 막중하다. 비록 영하 165℃라는 상상도 가지 않는 초저온 액화된 상태로 보관되는데도, 가스라는 단어가 주는 특성상 폭발 등 위험이라는 단어가 쉽게 떠오른다. 이 때문에 인천기지본부의 키워드는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 세 번째도 안전이다.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지난 10일 수도권 도시가스 공급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인천기지본부의 안전 점검원으로 변신해, 기지 곳곳을 돌며 안전을 점검해봤다. ■ 매일 아침마다 안전실천 무지개 구호! 무사고 다짐 국가지정 1급 보안시설답게 철통 같은 경계망을 뚫고 들어간 인천기지본부. 정문에서부터 안전팀 담당자들과 동행, 기지로 들어갔다. 기지라는 단어보다는 공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라도 모를 폭발사고를 염려해 정전기를 방지하는 옷을 입고, 안전모와 안전화 등까지 착용하자 긴장감이 몰려왔다. 안전관련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되기 전 팀원들과 함께 안전실천 무지개 구호를 외쳤다. 빨라야 5분! 여유있게, 주변 정리정돈 철저, 노련해도 원칙 준수, 초보자는 기본 충실, 파수꾼되어 안전 점검, 남보다 먼저 안전 실천, 보호장구 착용 생활화 이 구호는 매일 아침 인천기지본부 근로자들이 외치는 구호다. 바로 TBM (Tool Box Meeting)으로 불리는 아침조회다. 공구상자를 갖다 놓고 동그랗게 모여 안전을 다짐한다 해서 TBM으로 명명됐다. 그날 작업사항과 위험사항에 대해 토의하고, 위험 발생시 조치 및 행동사항에 대해 설명한 뒤 조회 마지막에 이 구호를 외친다. 인천기지본부가 매일매일 실시하고 있는 중요한 안전장치 중 하나다. 현장 입구에 있는 무재해기록판은 다시 한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무사고를 기원하게 한다. ■ 무색무취의 가스 물 샐 틈? 가스 샐 틈없는 점검 인천기지본부에 들어와 새삼 안전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기를 한참. 드디어 현장 점검에 나섰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기화송출설비 시설이 있는 곳이다. 바닷물을 끌어와 냉각된 액화가스를 기체로 기화시키는 해수식 기화기와, 직접 열을 가해 기화시키는 연소식 기화기 등 기화 설비 수십여대가 있다. 설비의 파이프 등 수많은 조임부분 하나하나에 가스를 감지하는 장비로 가스누출 직접 확인했다. 가스는 무색무취이기에 이 같은 장비는 안전점검엔 필수다. 설비 곳곳에도 가스를 감지하는 장치가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작은 가스 누출을 사전에 막으려고 사람이 직접 안전점검을 매일, 그것도 수시로 하고 있다. 게다가 혹시라도 가스누출이 의심된다면, 100만분의 1까지 가스 감지가 가능한 장비로 재차 확인한다. 1개 기화송출설비에 수많은 점검 포인트를 모두 살펴봤는데도, 극도의 긴장감 때문인지 안전모 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기화송출설비에 혹여나 녹슨 곳이라도 있는지 살피는 것도 안전팀의 임무다. 모든 설비엔 화재에 2시간 이상 버틸 수 있도록 녹색의 방화도료가 발라져 있다. 방화도료가 없으면 화재 발생시 설비를 받치고 있는 쇠기둥까지 모두 녹아 설비 자체가 무너지면서 가스 누출로 이어져 큰 위험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 부두에서 관로 지나 탱크까지 펌프파이프 너트 돌리고~ 돌리고 기화송출설비 점검을 마치자 LNG선이 정박하는 부두로 향했다. LNG선이 정박해 있지 않은 날에 맞춰 안전점검이 이뤄진다. 액화가스가 부두에서부터 탱크로 이동하는 관로가 무려 1.2㎞ 길이에 달한다. 이날 LNG선과 연결되는 부분부터 점검에 나섰다. 먼저 자주 사용되는 펌프와 주변 파이프를 먼저 육안으로 살핀다. 혹시라도 너트 등이 풀려 있으면 가스 누출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다. 대부분 너트까지 도료와 페인트가 발라져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자주 쓰이는 곳은 직접 몽키스페너로 하나하나 돌리며 확인했다. 부두 점검이 끝나자 도보로 관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 관로를 따라 탱크로 이동해 저장되는 액화가스. 비록 거대한 관로가 영하의 온도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다중으로 쌓여 있고, 마무리는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지만 관로의 이음새 부분은 꼭 점검해야 할 포인트다. ■ 작은 실천으로 대형 사고재해 예방 안전, 지나칠 정도로 강조돼야 안전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인천기지본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정전기 방지 옷은 필수 착용이지만, 손에 장갑 착용은 금지다. 자칫 정전기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천기지본부에서 쓰이는 모든 자동차 배기구엔 불꽃방지망이 달려있다. 특히 모든 차는 경유차다. 휘발유 자동차는 엔진에 있는 점화플러그로 구동되는 방식이기에 작은 불꽃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자동차가 운행 중에 불꽃을 일으키지 않도록, 인천기지본부 내 모든 곳에선 시속 30㎞가 제한속도다. 특히 인천기지본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손에 꼭 들어오는 작은 책 Q가 하나 있다. 이 책은 각종 위험작업 안전기준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이다. 작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QR코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작업을 비롯해 용접작업, 화기작업, 고소작업, 밀폐공간, 굴착작업, 중량물 인양, 염산 유해물질, 염소처리실, 가성소오다 저장설비 등 다양한 작업시 필요한 내용을 볼 수있는 QR코드가 담겨 있다. 작업 또는 교육시 해당하는 작업을 찾아 페이지를 열면 간단한 안전에 대한 설명과 함께, QR코드를 볼 수 있다. 이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그 상황에 맞는 안전기준 등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다. 또 개인보호구 착용법 및 관리감독 방법, 화재 및 폭발사고나 지진해일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치요령과 연락처 등 실제 현장에서 꼭 필요한 맞춤형 정보가 가득하다. 이 Q 소책자는 인천기지본부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전국 기지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인천기지본부의 한 관계자는 가스는 초저온에서 액체 상태로 보관되고 외부에 공급될 때만 기체가 되기 때문에, 인천기지본부는 굉장히 안전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전 근로자가 철저하게 상시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면서 가스 누출은 물론 불꽃 방지 등 작은 안전부분부터, 비상상황 발생을 대비해 철저한 보완 시스템 등을 갖췄다. 인천기지본부가 절대 위험하지 않은, 그리고 너무나 안전한 시설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근로자가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우기자 사진=장용준기자

[1일 현장체험] 방문간호사(Visiting Nurse)

지난해 2월,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가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죄송하다는 쪽지를 남긴 채 죽음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알려지며 세간에 충격을 안긴 이 사건은 우리사회 뿌리 깊이 만연한 복지사각지대 해소라는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사건 이후 여야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법안을 발의하고, 일선 지자체에서도 앞다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1년6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발견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도 많은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역 곳곳을 누비며 어려운 노인을 직접 발굴, 방문해 병간호는 물론, 식단관리, 말벗을 해주며 자식보다 더 자식같은 존재로서 희망을 잃은 노인들에게 한 줄기 빛이 돼 주는 방문간호사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를 잊고 산 기자가 봉사를 겸한 방문간호사로서의 직업체험을 해 보고자,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남양주시보건소로 발길을 옮겼다. ■ 걷고, 뛰고, 타고 바쁜 일과에 주의사항 숙지까지 진땀 오전 9시, 하루 동안 체험을 도와줄 권은미 선임 방문간호사와 보건소 사무실에서 시작된 첫 업무는 내소 대상자를 점검,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루 평균 7곳 이상을 방문해야 하는 간호사에게 수혜자들의 부재는 헛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건강관리 필요대상 △탈북자 및 다문화 가정 △지정대상자 등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대상자의 특성을 파악한 뒤 밴드, 연고, 영양죽, 칫솔, 영양제 등 필요한 물품을 챙겨 바로 현장으로 출발했다. 읍면동 별로 1인당 2곳의 지역을 배당받은 간호사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사용하지만, 차가 없는 직원들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근무를 이어가기 때문에 걷고, 뛰고, 버스를 이용하며 바쁜 하루 일과가 계속된다. 이동 중에도 권 선임 간호사는 계속해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걱정하는 마음에서라도 먼저 가족 얘기를 꺼내는 등 무리한 대화는 절대 금물이었다. 수혜자 상당수가 사고로 자식을 잃었거나,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상처 가득한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또 혈압ㆍ혈당 등 몸 상태 체크는 물론, 필요(요구)사항을 유심히 듣고, 식생활 건강을 위해 냉장고를 살피며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지급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 상태도 꼼꼼히 살피고, 우울증 해소를 위한 바깥활동도 유도해야 한다는 말을 곁들였다. ■ 방문 간호사 언제오나 혈압혈당 체크위생관리까지 척척 재촉된 발걸음 끝에 금곡동의 한 허름한 노부부의 집에 도착했다. 수혜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방문간호사들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김 간호사와 실제 신임 간호사로 소개된 기자를 보며 노부부도 아들, 딸처럼 기쁘게 맞이했다. 김윤희 간호사가 당부한 대로 가장 먼저 혈압ㆍ혈당을 체크하고, 집안 위생 등을 살핀 기자는 노부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 의지한 채 살아가는 이 노부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월 25만 원을 지급받고 있지만, 30만 원짜리 월세에 살며 하루하루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대장암에 당 수치가 500을 웃돌면서 병원 입원이 시급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설명하며, 병원을 연계해 무료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설명했다. 4남매를 두고 있지만 이들에겐 십 수년째 찾아오지도 않는 다 소용없는 존재였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 아쉬운 첫 방문을 마치고 또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더 있고 싶어도 기다리는 수혜자를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 초보 간호사 등장에 경계심 마음 연 노인 효도하라 당부 이어 방문한 인근의 한 독거노인 집. 5평 남짓한 공간에 캐캐한 냄새 조차 느끼지 못하며 혼자 살고 있는 이 노인은 평소 사람구경도 잘하지 못해 방문간호사가 유일한 희망이다. 새로운 간호사인 기자를 보며 경계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노인은 이내 반말을 섞어가며 친딸처럼 살갑게 대하는 김 간호사의 능숙한 언변(?)에 긴장을 놓고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다. 이 노인 역시 하는 말은 자식 다 소용없다라는 것이었다. 씻는 것도 자원봉사자가 제공하는 이동목욕 차량에 의지해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이 노인 역시 수십 년간 자녀 뒷바라지를 하며 대학도 보내고 남부럽지 않게 키웠지만, 몸이 불편하고, 더이상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연을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야기에 동조하며 앞서 했던 건강 및 위생상태를 점검한 기자는 어머니께 잘하라는 노인의 진심어린 당부에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또 다른 집으로 향했다. ■ 근무활동 일지 작성 DB구축 비로소 업무 종료 한 가구를 더 방문하고 오후에 보건소로 복귀한 기자는 권 선임 간호사와 이날 하루 동안 대화 내용, 건강 및 심리 상태 등 근무활동일지를 작성해 DB를 구축하고, 소모품 대장에 이날 지급된 물품을 기재하는 일이 진행했다. 또 발굴한 독거노인, 추가된 질병 등 특이사항을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권역별 희망케어센터와 공유함으로써 병원을 연계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일로 이날 일정이 마감됐다. ■ 열악한 근무환경 보람 하나로 견디는 방문간호사들 실질적인 방문으로 그 누구보다 복지사각지대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꿰뚫으며 지역보건의료의 꽃이라 불리는 방문간호사는 사실 기간제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족쇄에 묶여 약 갖다 주는 배달꾼으로 가장 천대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수십년간 병원에 근무하며 수간호사까지 했던 한 방문간호사는 적은 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틀 속에서도 이 직업을 놓지 않고 있다. 바로 보람 때문이란다. 상처 가득한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이다. 7명의 인원이 수천 명을 상대하면서 간호사와 노인들의 만남은 2~3개월에 단 한 번에 그치게 되고, 계약 종료로 전담 간호사마저 바뀌게 되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수혜자들이 더욱 힘들고 위험해 질 수밖에 없다. 인근의 서울시는 최근 단계적으로 방문간호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며,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나서고 있다.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양주=하지은기자 사진=오승현기자 찾아家는 건강-생활 돌봄 서비스란? 남양주시, 만성질환 노약자 선별 맞춤형 통합보건복지서비스 제공 남양주시는 찾아家는 건강-생활 돌봄 서비스 일환으로 방문간호사를 도입한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 관리대상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노약자 중에 만성질환 관리와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을 선별, 가구 방문을 통해 맞춤형 통합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지역 내 전체 인구 63만6천256명 가운데 복지대상자는 9만384명(14.2%)이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 6만7천875명(10.7%) 중 독거노인 수는 1만3천699명에 달한다. 지난 해 동안 보건소와 각 권역별 4곳의 희망케어센터에 배치된 총 7명의 방문간호사가 관리한 인원은 총 2천56세대, 2천352명이다. 1인 당 200~400여 명의 노인을 케어하고 있는 실정이다.

[1일 현장체험] 수원시 가사홈서비스 Yes 생활민원처리 기사

빰빰빰, 빰빰빰~ 빰빰, 빠빠바바마 빰빰빰~, 맥가이버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30대를 훌쩍 넘어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라는 대사와 함께 일명 맥가이버칼, 클립 하나만으로 탈출도구를 만들고 폭탄을 제조하는 맥가이버의 활약을 보며 우리는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꿨다. 미국 TV드라마였던 맥가이버 시리즈는 지난 1992년 막을 내렸지만, 23년이 지난 2015년 우리 주변에는 맥가이버와 같이 어려운 문제를 뚝딱 해결해 주는 평범한 영웅들로 가득하다. 맥가이버 서비스라 불리는 수원시 가사홈서비스 Yes 생활민원처리반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영웅 중 하나다. 나 역시 1일 현장체험을 통해 슈퍼맨, 배트맨처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슈퍼영웅이 아닌, 맥가이버와 같은 평범한 영웅에 도전했다. (물론 고생만 하고 맥가이버들에게 민폐만 끼쳤지만) ■ 하루 5~6가구 방문 아침부터 바쁘다 바빠! 수원시청 인근 임시주차장 내 위치한 가사홈서비스 Yes생활민원처리반은 오전 8시부터 분주하다. 수원시 휴먼콜센터를 통해 미리 접수한 생활불편 민원에 대해 출동할 멤버를 구성하고 동선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 2인 1조로 움직이는 Yes 생활민원처리반은 하루 5~6가구를 방문해 생활불편 민원을 해결해야 하기에 수혜자 집을 방문하는 동선이 중요하다. 이동원 반장이 동선 등을 검토하는 사이, 나머지 6명의 맥가이버들은 주차된 특장차량과 창고 등에서 수리 등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이 특장차량에는 없는 것 빼놓고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이동하는 철물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맥가이버와 비슷한 말총머리의 오흥석 기사는 수리를 하러 방문하는데, 부품이나 도구가 없어 못 고치는 일이 발생하면 안돼요라며 도구점검을 지시했다. 하지만 도구 다루는 손재주가 아내보다도 없는 터라 평소 어떤 도구가 어떤 용도에 사용되는지도 몰랐던 내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자는 생각에 도구 및 물품상자를 특장차에 나르며 초보 맥가이버로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 생활 속 민원 뚝딱뚝딱~ 뭐든 고쳐드립니다 Yes 생활민원처리반은 맥가이버처럼 뭐든지 뚝딱 해결한다. 전구와 콘센트, 노후전선안전기 교체, 전기선 연결 등의 전기설비는 물론, 가전통신제품 점검 및 수리, 수도꼭지와 배관 막힘, 에어컨과 보일러 등의 전문적인 영역까지 점검수리한다. 또 못을 박는다거나 창문틀과 타일을 보수하고 도배까지 서비스하는 등 못하는 게 없을 정도다. 이날 처음 방문한 곳은 세류동에서 손자들을 키우며 거주하는 A할아버지(73) 댁이었다. 요구 사항은 방충망 교체였으나 1명이 방충망을 교체하는 사이, 나머지 1명은 집 안에서 다른 불편사항이 없는지 확인하고 점검해준다. 주민이 요구한 부분 외에 선풍기와 TV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뚝딱 수리해 주는 식이다. 오흥석 기사는 막상 방충망 설치를 하러 와도 눈에 보이는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드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대웅 기사가 TV를 손보는 동안 오흥석 기사와 방충망 작업을 시작했다. 방충망 작업 전 창틀에 낀 먼지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 휴지와 걸레를 가지고 창틀에 낀 먼지를 싹싹 씻어내자 오흥석 기사가 전문용어로(?) 쫄대를 들고왔다. 노란색 쫄대를 창틀에 대고 길이를 잰 뒤 니퍼로 잘랐다. 어 생각보다 쉽네라는 생각도 잠시, 좁은 창틀에 몸을 기대고 잘라진 쫄대를 붙이는 것도 일이었다. 혼자 낑낑거리며 겨우 쫄대를 붙이고 방충망을 창 크기에 맞춰 잘랐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방충망은 잘 안 잘리고. 방충망 하나 다는 것도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파란색 쫄대에 방충망 모서리 부분을 말아 창틀에 부착된 노란색 쫄대에 꽂아 넣는 작업을 마치고 나니 맥가이버 역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됐다. ■ 신속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고마워요~ 맥가이버 오후에 두 번째로 찾아간 집은 장애를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B할아버지(70)의 거주지였다. 귀여운 강아지 2마리가 맥가이버들을 반겨줬던 이 가구는 화장실 수전 수리를 부탁했다. 이번에는 김대웅 기사와 함께 싱크대 수리에 나섰다. 이전 서비스로 하수 배관은 교체됐지만 상수 배관 교체를 원하신 것. 화장실 한편에 쭈그려 앉아 렌치로 꼭꼭 잠겨 있는 너트를 풀고 나니 김대웅 기사가 새로운 배관과 수도꼭지를 건네줬다. 싱크대 밑이 하도 좁은 터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을 집어넣어 어찌어찌 설치를 완료했다.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기뻐하기도 잠시, 김대웅 기사는 완벽하게 해야 해요. 서비스를 받으시는 분들이 고령이나 몸이 불편해 직접 만지지 못하시거든요라며 직접 마무리 작업을 했다. 수전 작업이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방과 주방에서는 오흥석 기사가 혼자서 방충망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보조만 하기로 했다. 방충망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진이 빠질 대로 빠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자의 꼼수(?)를 웃음으로 넘긴 오흥석 기사는 금세 창문 2곳에 방충망을 설치했다. 그사이 김대웅 기사는 불량 콘센트까지 교체한 상태였다. 모든 수리를 끝마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연방 고맙다고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동원 반장은 저를 포함해 반원 모두가 전기나 설비, 가스 등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던 전문가들이라면서 많은 가구를 찾아가 민원 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신속하고 완벽하게 작업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 4시께 사무실로 돌아와 창고 물품을 정리한 뒤 이른 조기퇴근을 하며 기자에게 7인의 맥가이버들이 농담을 건넸다. 오늘 도배 일정이 없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맥가이버는 TV로 보는 것이 제맛(?)이다. 안영국기자 사진=오승현기자 취약층 든든한 해결사 수원시 가사홈서비스 YES 생활민원처리반 수원시는 지난 2011년 영통구가 시범적으로 하던 가사홈서비스를 2012년부터 장안구와 권선구, 팔달구 등 수원 모든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 서비스는 가정 내 불편사항(배관수리보일러수리도배방충망설치전기작업 등)을 경제적 이유와 노령, 거동불편 등에 제때 교체하거나 수리를 하지 못하는 사회취약계층의 삶의 질 향상과 주거안정을 도모하고자 생활불편사항을 해결해 준다. 앞서 수원시는 2012년 수원시 생활민원 처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뒤 Yes 생활민원처리반 발대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섰다. 지난 3년 반 동안 모두 1만3천건 이상의 서비스(연 평균 4천건)를 제공했다. 이순자 수원시 시민봉사과 휴먼콜센터팀장은 서비스 초기에는 범위나 대상 등 우려 사항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사업초기 9개월 만에 3천200여건의 민원을 해결했고 매년 3천~4천건의 민원요소도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실적도 증가하고 있는데다 수혜가구의 만족도 역시 98%가량 나오고 있다며 이에 맞춤형 서비스로 SNS 문자 홍보는 물론, 민원사항 외 불편사항을 발굴 처리하는 등 원스톱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일 현장체험] 공항철도 정비사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 치고 지하철을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대중교통망으로 자리매김한 지하철은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교통수단 중 하나다. 인천국제공항이 터를 잡은 인천지역에는 타지역에 없는 특별한 지하철이 있다. 바로 지난 2007년 3월 첫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다. 1단계 구간(인천공항역~김포공항역 간 37.6㎞)이 개통한 이후 2010년 12월 29일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 간 20.4㎞) 개통과 공덕역(2011년 11월 30일), 청라국제도시역(2014년 6월 21일)이 차례로 문을 연 공항철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곳의 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개통한 용유 임시역을 이용하면 인천의 대표 해변인 을왕리해수욕장을 갈 수 있어 레저 철도로 젊은 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꺼번에 수천 명을 수송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교통수단인 만큼 정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만 했는데, 우연히 거대한 전동차 정비를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공항 이용객뿐 아니라 인천시민의 발인 지하철을 정비하는 모습을 두 손과 두 눈으로 체험하기 위해 인천시 중구 영종도에 있는 공항철도(주) 차량기지로 향했다. ■ 차량기지 검수고 현장 들어서다 차량기지 정문에 도착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처음 찾아간 곳은 검수고, 자동차로 치면 경정비를 하는 곳이다. 전동차 경정비는 크게 4천㎞, 10만㎞ 정비로 나뉜다. 마치 우리가 자동차를 몇 ㎞ 운행했을 때마다 엔진오일 갈고 에어컨 필터 갈듯이, 전동차도 주행거리에 따라 필요한 정비과정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중정비로 분류되는 주행거리는 60만㎞, 120만㎞, 180만㎞ 등으로 급격히 올라간다. 일반 차량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다. 출퇴근 시간을 포함, 지하철 운행이 주간에 몰리다 보니 차량정비는 자연스럽게 야간에 집중된다. 낮에는 하루 운행을 마치고 대기 중인 전동차나 정비 중인 전동차 4~5대가량이 기지에 정차해 있다. 김동민 검수반 대리는 경정비는 크게 주간정비와 야간정비로 나눈다며 공항철도가 다른 운영기관에 비해 운행거리가 2~3배 긴 만큼 정비주기가 빨리 돌아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 전동차 정비, 첫째도 둘째도 안전 제일 지난 2006년 입사한 김동민 대리는 2007년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와 역사를 함께 써가는 정비 베테랑이다. 김 대리로부터 차량기지 전반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들은 후 4천㎞ 정비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정비체험에 나선 전동차는 인천공항 급행열차. 인천공항을 출발, 불과 43분 만에 논스톱으로 서울역에 도착하는 열차다. 4천㎞ 정비는 △기능(실내)점검 △옥상점검 △하부점검 등 3개 파트로 나뉜다. 직원과 함께 가장 처음 들어선 곳은 전동차 기관실.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가 근무하는 곳으로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컨트롤타워다. 모든 조작은 열차 내외부 안내방송과 함께 시작된다. 작업 중인 다른 동료에게 알리기 위해서란다. 익숙한 손놀림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김 대리와 달리 기자는 모든 행동이 어수룩했다. 펜 기자의 비애일까, 나도 모르게 땀이 삐질삐질 났다. 기능점검은 열차가 가진 모든 기능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출입문을 여닫는 것은 물론 전등 하나하나 세심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기관실 점검이 끝난 뒤에는 모든 객실을 돌아다니며 파손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옥상. 옥상점검 전에는 전동차에 흐르는 전류를 차단해야 한다. 전동차에 흐르는 전류는 무려 2만 5천 볼트. 정비사의 안내방송에 이어 전류를 차단한 뒤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김 대리는 전류도 그렇고 정비과정에서의 위험요인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이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하부 점검. 육중한 쇳덩이를 지탱하는 발과 같은 역할인 만큼 보다 철저한 점검이 요구되는 곳이다. 기자는 현장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전동차 하부를 들여다보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세계가 펼쳐졌다. 하부라고 바퀴만 있지 않았다. 기어박스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십 종류의 부품박스까지, 이 큰 쇳덩이를 굴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이 자기 자리에서 맡은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걷는 것조차 힘겨운 기자와 달리 직원들은 능숙하게 연결부위를 점검했다. 함께 작업하던 직원은 하루하루 철저하게 점검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동차 점검에 이어 향한 곳은 전자반. 핵심 중의 핵심 부품인 회로기기를 정비하는 곳이다. 공항철도는 최근 프랑스산 제품 국산화에 성공, 안전은 물론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외국기술에만 의존하면 부품을 고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자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주현 과장은 부품 국산화를 통해 예산절감은 물론 보다 완벽한 정비가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 단 한명의 승객 안전까지 우리가 책임진다 정비체험의 마지막은 주공장. 이곳은 주행거리 60만㎞, 120만㎞, 180만㎞ 등 운행 기간이 긴 전동차 중정비 현장이다. 지난 2007년 1단계 개통과 함께한 전동차 1편성이 정비 중인 이곳은 앞서 보았던 경정비 검수고와 넓이부터 달랐다. 이곳 정비의 핵심은 세척. 무지막지한 크기의 부품들이지만 이곳에서는 거의 완전분해 상태다. 승객들이 늘 타는 전동차는 껍데기만 남은 채 정비를 기다리고 있으며 하부의 바퀴와 기어, 부품들은 죄다 완전분해 된 채 전문 정비사들의 손길을 거치고 있었다. 주공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강암 과장은 완전분해 공정이고 부품 하나하나를 분리해 세척하는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보통 1개월에 가까운 정비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작업은 정말 세밀하게 이뤄졌다. 이곳 직원들은 세심한 정비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마음가짐 속에 결코 서두르는 일 없이 맡은 정비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전자기계장비들과 씨름하고 있는 정비원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평소 지하철 이용에 불만만 늘어놓았던 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됐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정비원들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어느덧 안전 강조가 일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매스컴에서는 실체도 없는 안전만 강조해 온 것은 아닐지. 안전은 결코 한글 단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소중한 진리를 눈과 손으로 체험해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양광범기자 사진=장용준기자

[1일 현장체험] 얘들아, 밥 먹자! 똘망똘망 눈망울… 미소가 절로~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여기저기서 농가들의 시름 소리가 들려왔다. 고온으로 가축 폐사 피해가 발생하고, 농장에서 작업하는 농민 일부는 열사병을 앓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한창 더위와 씨름하고 있을 축산농가에 가 직접 일손을 돕기로 했다. 이왕이면 일손이 절실한 농가를 방문하는 게 보람있는 법. 그러던 중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가 활발히 지원하고 있는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짜 영농도우미는 될 수 없는 탓에 최근 용문농협을 통해 이 사업을 지원받은 엄관철씨(58)의 축사에서 일손을 돕기로 했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펑펑 울며 소와의 조우를 꿈꿨던 도시녀가 영농 도우미로 변신한 지난 18일 축산농가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 쉽지 않은 소들과의 하루작업 10분 만에 땀 범벅 넓디넓은 논밭을 지나 소규모로 축가를 운영하는 엄 씨의 축사를 찾았다. 양평에서 나고 자랐던 엄 씨는 7년 전 대기업에서 퇴사 후 고향으로 귀농한 자칭 초보 농민이다.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꾼 엄 씨는 자신이 축산농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강아지도 애완견이라고 키우는데 소라고 못 키울까하는 생각에 소규모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엄 씨를 따라 축사에 들어가니 21마리의 어미소와 아기소가 한여름을 이겨내고 있었다. 똘똘한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는 소들은 어미소(번식우) 13마리, 생후 3~6개월 된 송아지 5마리, 아직 3개월이 채 안 된 아기소 3마리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소들에게 혼잣말로 인사를 건네며 신고식을 치렀다. 축사의 한여름은 다른 때보다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한다. 천장에는 대형 팬 두 대가 열기를 식히려고 쉴새 없이 돌아갔지만, 역부족이다.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는 소에게도 힘든 법. 하루에 두 세 번씩 물을 뿌려주며 더위를 이겨내도록 돕고, 영양분을 보충하려고 사료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우선, 소들에게 사료를 먹이려고 사료를 준비했다. 엄 씨는 여름철이면 가공사료와 직접 배합해 만든 특별사료를 준다. 여름철엔 기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해주려고, 직접 심은 옥수수의 대를 잘라 사료에 섞어준다. 볏짚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영양소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사료를 준비한 후, 소들의 식사자리(?)를 깨끗이 치우기 시작했다. 사료를 놓을 자리에 놓인 볏짚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다시 축사 안에 버리며 깨끗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볏짚을 쓸어담아 몇 번 축사 안으로 던지는 작업을 반복하자 벌써 팔이 저려왔다. 내가 볏짚인지, 볏짚이 나인지. 시작한 지 10분 만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옆에서 보던 엄 씨는 아이고, 기자님 이런 거 처음이라서 쉽지 않을 텐데하며 웃었다. 사료를 내려놓는 순간, 소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하나 둘 몰려들었다. 하지만, 가축의 세계에도 연장자 우선 법칙이 있었다. 서열대로 이 축사에서 가장 연장자인 5살 소에게 먼저 사료를 놓아주고서, 차례대로 사료를 배식했다. 5분이 조금 지났을까. 어느새 사료가 놓여 있던 자리가 말끔히 비워졌다. 자리가 깨끗해지니, 또 이 작업 할 건 없겠지라고 생각한 찰나, 엄 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제 소들이 계속 먹을 볏짚을 다시 깔아놔야 해요. 여기에 와서 볏짚 단을 뜯고 다시 깔아놓자고요. ■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으로 농가 한시름 덜어 한낮이 되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소들은 축사 안에 주렁주렁 달린 미네랄블록을 핥으며 소금을 보충했다. 미네랄블록은 1개당 단가가 1만 원에 달한다. 엄 씨는 지역 한우협회 차원에서 공동으로 물건을 들여온 것을 사 30%가량 싼값에 사들이지만, 이 역시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루에 두세 번 물을 뿌리는 작업도 이어진다. 현대식 농가는 클러스터가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지만, 이곳에선 모두 수작업이다. 엄 씨는 사료를 배합하려고 사료 배합기를 사용했다. 농업의 부산물인 쌀겨를 사료와 반반 섞어 조금이라도 사료 값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엄 씨는 지난해 12월 이 사료배합기를 사용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4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축사 일을 대신할 일손이 절실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축사가 걱정됐던 엄 씨는 영농도우미를 신청해 한시름을 놓게 됐다고 했다. 고령화된 농촌사회에서는 연로한 농민들이 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다.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은 농민이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일을 못할 때 농협에 신청하면 인력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영농도우미와 가사도우미가 있다. 영농도우미는 80세 이하 농업인이 사고로 2주 이상 상해진단을 받았거나 질병으로 3일 이상 입원했을 때 최대 10일까지 인력비를 지원해준다. 영농도우미는 1일 임금의 70%를 국고로 지원하며 이용농가는 30%를 부담하면 된다. 가사도우미는 질병 등으로 몸이 불편한 농민의 가정 등을 방문해 가사를 돌봐주는 서비스다. 경기농협은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을 지원하고자 올해 영농도우미 2억2천만원, 가사도우미 1억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올들어서는 지난 7월말 기준 총 1천258농가에 영농가사도우미를 지원했다. 인력수요가 많은 용문농협에서는 지난해 75명, 올해 현재까지 43명의 농민이 이 지원을 활용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최영준 조합장은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이 혹여나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마을을 일일이 다니며 좌담회를 열고, 알리면서 농민들이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다 보니 이웃들이 서로 필요할 때 도와주는 품앗이 효과도 생겼다고 한다. ■ 한국 축산업의 든든한 버팀목한우농가 하루 엿본 값진 체험 사료를 주고, 중간마다 더위를 식히는 작업을 하고, 사료를 배합하는 과정을 끝내면, 내부청소를 한다. 말 그대로 소똥을 치우는 작업이다. 장화를 한 번 더 고쳐 신고, 소똥을 담을 손수레를 끌고 축사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똥을 치우러 가는 걸 알아차린 건지 소들은 기자가 들어서자마자 똥을 싸댔다. 기자의 입에서 음메~ 소리가 절로 났다. 자신 있게 축사로 들어갔지만, 소똥을 치우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커다란 삽으로 소똥을 모으고, 담아 달구지에 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한 번에 뜨는게 관건이었다. 축사 오른편에 가득 쌓인 소똥을 치우고, 왼쪽에 가니 오른편에 있던 소들이 다시 똥을 쌌다. 왼쪽을 치우고 나니 다시 왼쪽에 있던 소들이 똥을 싼다. 소들과 한참을 씨름하니 엄 씨의 말이 들려온다. 씨름 그만 하고, 이제 나오세요. 적당히 소똥도 있어야 축사죠. 축산농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엄 씨는 언제 오를지 모를 사료 값과 변동하는 소 값을 항상 예의주시 해야 하고, 최근 각종 FTA로 한우 경쟁력이 밀리지 않을까 우려도 크지만,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소규모 초보 축산농민이지만, 우리나라 축산농가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다고 한다. 무더웠던 여름날 축산농가에서의 일손돕기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작업이었다. 하지만, 현장체험을 끝내고서 머릿속에는 정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사료를 먹이고, 길러내고, 보살피는 이 모든 작업은 축산 농민들이 감내하는 값비싼 정성이었다. 한국의 축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오산 ㈜닉스월드 폐현수막 가공·생산공정 사원

운전을 하거나 길거리를 다니면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게 현수막이다. 특히 교차로나 사거리 등 시야가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은 지자체 행사를 알리는 것에서부터 개업 안내, 아파트 분양, 사원 모집 등 내용이 다양하다. 이들 현수막은 정보제공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량으로 설치돼 일부 지자체에서는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34주 동안 거리에 붙어 있다 떼어지는 길거리 현수막들. 용도를 다한 폐현수막은 지자체에서 회수해 대부분 소각 등을 통해 처리되고 일부는 재활용된다고 한다. 폐현수막을 이용해 로프와 장바구니, 앞치마 등 다양한 리폼제품을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는 정보를 수소문해 (주)닉스월드라는 기업을 찾았다.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내에 공장을 둔 (주)닉스월드 방문해 폐현수막의 가공과 생산공정을 체험했다. ■ 폭염 속 마음가짐 굳건 본격 작업 시작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일 오후 1시께 (주)닉스월드를 찾았다. 공장 앞마당에는 폐현수막을 가득 실은 트럭에서 하역작업이 한창이고, 한편에선 젖은 현수막을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병한 이사의 안내로 공장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공장 현황과 작업 공정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생산 제품들을 살펴보았다. 김 이사에 따르면 1년에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현수막은 대략 5천t으로 대부분 소각 처리되고 재활용되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2011년 오산 가장산업단지에서 창립한 (주)닉스월드는 폐현수막 재활용 업체로는 전국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기술력과 규모를 갖췄다고 한다. (주)닉스월드는 오산시 및 인근의 화성안산평택시 등에서 수거한 폐현수막을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쳐 천로프, 줄넘기, 청소용 마대, 앞치마, 시장바구니 등 10여 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한 천로프와 반사로프는 그 쓰임새가 광범위해 (주)닉스월드의 주력 생산품. 여름용 작업복인 티셔츠로 갈아입고 로프를 생산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체험해보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보기보다 쉽지 않을 겁니다라는 김 이사의 염려 섞인(?) 조언을 들으며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 7단계 공정 거들다 보니 어느새 땀으로 흠뻑 10여 명의 직원이 작업하는 공장 안은 바깥 기온이 워낙 높아서인지 상대적으로 덜 더웠다. 하지만 로프를 꼬는 기계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요란했다. 로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총 7단계의 공정을 거치는데 현수막에서 PP끈과 고정목을 분리하는 공정이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PP끈 분리는 현수막 56장을 겹쳐놓고 가위를 이용해 고정목에서 PP끈을 제거하는 작업인데 가위가 잘 들지 않아 두 번, 세 번 힘을 줘도 PP끈이 끊기지 않았다. 첫 작업부터 낭패가 찾아왔다. 기자의 낑낑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주성 공장장이 가위를 잡는 방법과 PP끈을 자르는 요령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몇 번의 시연을 해준 후에야 한 번의 가위질에 PP끈을 자를 수 있었다. 김 공장장과 함께 10여 분 남짓 작업을 했는데, 바닥에는 잘려나간 PP끈이 수북이 쌓였고 이를 마대에 담아 옮긴 후에 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다음은 고정목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PP끈을 제거한 현수막 10여 장을 포개놓고 현수막과 고정목 사이에 쇠 자를 대고 칼로 자르는 작업이다. 이 작업 역시 직원들은 단 한 번의 칼질로 고정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가는데 23번 칼질을 반복하기를 몇 차례 한 이후에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작업에 방해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계속된 수작업으로 어느 사이에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할 만하죠?라며 수건을 건네는 김병한 이사의 농담 섞인 위로를 들으며 다음 공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이사는 지금까지 체험한 작업이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입니다. 보통 현수막 1t을 작업하는데 56명의 직원을 투입,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라며 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현수막은 가지런하게 정리된 것이라 작업이 수월했지만, 현수막끼리 엉킨 상태로 들어오면 작업하는 데 시간이 배로 들어가 어렵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 버려지는 폐기물이 생활 속 안전 일등공신으로 PP끈과 고정목을 제거한 현수막은 50장씩 포개서 정리한 후 낱개의 현수막을 일렬로 연결하는 재봉작업을 한다. 이 작업 역시 보기에는 단순하고 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재봉틀에 앉으니 손과 발이 따로 움직이고 몇 번을 시도한 후에야 23장의 현수막을 연결할 수 있었다. 재봉작업까지 마친 현수막은 다음 공정부터는 기계에 의해서 작업이 진행된다. 일렬로 연결된 현수막은 로프를 만들기 위해 폭이 약 7cm 단위로 재단을 하는데 이 작업은 열선재단기가 맡는다. 열선재단기에서 7cm 단위로 재단돼 둥글게 말려 나온 현수막은 두 단계를 거쳐 최종 완제품인 천로프로 재탄생하게 된다. 먼저 1차 가공공정으로 7cm 단위로 재단된 현수막 3개를 한데로 꼬는 연사가공을 통해 로프의 낱줄을 만들고 이 낱줄을 2차 가공해 최종적으로 천로프를 생산한다. (주)닉스월드에서는 10mm24mm 단위의 다양한 천로프를 주문 생산하는데 12mm와 16mm 로프가 주력 생산품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천로프는 공원산책로, 울타리, 부지경계, 놀이터, 골프장 코스관리용 등으로 납품된다. 특히, 천로프에 특수 코팅된 반사천을 접목해 만든 반사로프는 낮에는 햇빛을 반사, 어두운 곳에서 조명을 받으면 빛을 발산하는 특징으로 건설 현장이나 행사장, 공공장소, 위험지대 등에 설치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 사회적기업 목적 실천 정직한 땀방울 값진 체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현수막이 도대체 어떻게 처리되나?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폐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공장에서 4시간 정도의 체험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주)닉스월드에서는 폐현수막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냥 현수막이라고 부른다. 김 이사에 따르면 남들이 볼 때 기한이 지난 현수막을 그저 못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나 폐기물로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로프를 생산하는 소중한 원료이자 재료이기 때문이라고.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한 (주)닉스월드는 사회적 기업으로의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이나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도 함께 실현하는 기업을 지향하는 착한 기업이다. 처음 공장을 찾았을 때 거슬릴 정도로 요란했던 기계 소리가 체험을 마칠 즈음에 열정과 정직한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생각에 마치 신명나는 노랫가락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오산=강경구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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