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낯설지 않게”… 수원청년봉사회 이지영 회장, 구청장 표창 수상

수원지역에서 어르신 대상 디지털 교육을 꾸준히 펼쳐온 청년 단체가 지역 사회의 디지털 포용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 수원청년봉사회(회장 이지영)는 지난달 26일 지역사회 공헌을 인정받아 수원시 장안구 구청장 유공표창을 수상했다고 2일 밝혔다. 이 단체는 수원 지역 최초로 고령층을 위한 정기 디지털 교육 봉사를 시작한 청년 자원봉사 조직이다. 수원청년봉사회는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를 보다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사용법 ▲키오스크 이용법 ▲모바일 앱 설치 및 활용법 등 실용 중심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경로당이나 아파트 등 고령자 밀집 지역을 직접 찾아가는 ‘찾아가는 교육’ 형태로 운영하며 접근성을 높였다. 현재 약 20명의 청년 봉사자들이 매월 2~3회 정기적으로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디지털 교육을 확대해 지역사회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이지영 회장은 “디지털이 낯선 어르신들이 스스로 스마트기기를 다루게 되는 순간, 그 변화의 과정을 함께하며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봉사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청소년 범죄 예방, 가정에서부터”…수원중부경찰서, 보호자 맞춤형 범죄예방 교육 실시

경찰이 최근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 예방에 가정 내 보호자 역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수원중부경찰서는 2일 청소년경찰학교에서 보호자를 위한 맞춤형 범죄예방 교육 ‘THE 맑음’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최근 청소년 범죄가 저연령화되는 상황에서 딥페이크, 사이버도박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한 역할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학교폭력·소년범죄 예방법 ▲자녀와의 대화법 ▲가상현실(VR) 기반 학교폭력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 보호자들이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됐다. 교육에 참여한 한 보호자는 “자녀 보호를 위한 세부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경찰관이 직접 설명해 주니 공감과 이해가 잘됐고 청소년 범죄 예방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는 기회였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수원중부경찰서 관계자는 “보호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해 추가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는 각 학교를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빛수원] 수원에 애국과 교육의 씨앗을 뿌린 독립운동가 임면수

어두운 시대는 의인을 불러낸다. 나라의 명운이 흔들리던 구한말 수원 지역에서 애국계몽 활동가이자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임면수(1874~1930) 선생도 그중 하나다. 광복을 위해 헌신한 임면수 일가의 기록과 이를 기억하기 위한 수원의 노력을 들여다본다. ■ 시대의 어둠을 밝힌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임면수는 151년 전인 1874년 6월 수원군 수원면 북수리 299번지에서 출생했다. 조선 말기 수원의 지역 유지 집안에서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한문 공부를 하고 자랐다. 하지만 성인 이후에는 실용적인 근대 학문 수용에 뜻을 두었다. 서른살 만학도로 1903년 수원 양잠학교를 졸업하고, 일어 공부를 위해 사립 화성학교를 다니며 1905년 4월 1회 졸업생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서울 상동교회에서 운영한 중등 교육기관 상동청년학원의 야간학교를 다닌 임면수는 수원지역 애국계몽 활동가로 명망을 떨쳤다. 고향인 수원에서 인재를 기르겠다는 의지로 수원지역 유지들과 힘을 합쳐 삼일학교 설립에 기여했고, 삼일학교 교감과 교장을 역임하며 사립학교 설립 운동을 후원하는 등 교육활동에 헌신했다. 특히 1907년에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수원으로 확산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이하영, 김재구 등과 함께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해 이를 자비로 인쇄한 뒤 경기도 각 군에 배포하고 대한매일신보에 게재해 의연금을 모았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은 임면수 활동의 전환점이 됐다.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신민회를 중심으로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뜻을 모았고, 이에 동참한 그는 만주로 망명을 결행했다. 1912년 2월,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그는 독립을 위한 무장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만주로 망명한 수원 출신 독립인사는 임면수가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만주에서 임면수는 주로 임필동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신흥무관학교의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기 위해 동포들을 순방하며 동분서주하고, 경학사와 부민단 등 만주 한인 자치 조직에도 참여했다. 또 1910년대 중반에는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약했다. 결국 임면수는 1920년 해룡현에서 일본군 토벌대에 체포돼 조선으로 추방당했다. 철령으로 압송되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1921년 길림시내에서 다시 활동을 하던 중 밀정의 고발로 길림 영사관에 체포돼 평양 감옥으로 압송됐다. 임면수는 고문과 매로 전신이 마비된 뒤에야 풀려나 반신불수가 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은커녕 거처할 방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뒤에도 사회와 교육을 위한 헌신을 지속했다. 아담스기념관 건립에 직접 감독관으로 참여해 삼일학교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등 교육가로 활동했다. 끝내 광복을 보지는 못한 채 1930년 11월29일 56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 독립운동 명문가가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임면수는 애국계몽운동가 및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 독립운동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 사재를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삶을 바쳤다. 임면수는 민족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쓰는데 아낌이 없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참변으로 동포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임면수는 모금 운동에 동참하고, 수원부 야소교회의 기부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1907년엔 수원에서 삼일학교 모금운동이 펼쳐졌는데, 이때에도 임면수는 기부에 참여했다. 또 삼일학교가 재정문제를 겪던 1908년에도 임면수는 기부에 적극 동참해 삼일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에 열의를 보였다. 특히 만주로 망명할 당시 희사한 부지에는 1913년 삼일여학교가 세워졌다. 임면수 본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먼저 임면수의 부인인 전현석(1871~1932)은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임면수보다 세 살 연상으로, 1892년 결혼한 그는 가산을 정리하고 독립운동에 뜻을 품은 남편 임면수를 따라간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뒷바라지를 했다. 하루 저녁에만 5~6차례 밥을 짓고, 아픈 동지에게 약을 달여 주고, 독립군의 무기를 맡아 두고, 해진 옷을 기워주는 등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독립운동자로서 선생 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면수와 전현석의 5남 2녀 중 장남 임우상(1893~1919) 역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임우상은 약관의 나이로 부친을 도와 군자금 모집을 했고,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임우상은 1919년 수원으로 돌아와 김세환 등을 비밀리에 만나 군자금을 모아 서간도로 돌아가던 중 혹한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 수원이 기억하는 임면수의 곧은 기개와 정신 1980년 대통령표창으로 독립유공자 등록됐던 임면수는 더 많은 업적의 발굴과 인정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수원 지역사회에서 임면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노력도 꾸준했다.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그의 유골은 1964년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이후 현충원으로 이장돼 영면에 들었다. 대신 삼일동산에는 임면수의 호를 딴 ‘필동관’이라는 건물이 들어서 후학이 양성되고 있으며, 묘비는 수원박물관 야외로 옮겨져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았던 2015년에는 수원에서 임면수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됐다.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조직됐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민 성금 모금이 진행됐다. 총 1억원에 가까운 성금으로는 동상을 설치했다. 현재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임면수 동상이 바로 그것이다. 2018년 광복절을 앞두고 수원시청 로비에 마련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도 임면수가 헌액됐다. 지난해에는 임면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임면수를 기억하는 노력이 더해졌다. 수원박물관은 ‘필동 임면수,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라는 기획으로 찾아가는 전시회를 열었다. 임면수의 직계 후손인 임병무씨가 기증한 자료들이 주로 활용됐다. 수원박물관 관계자는 “독립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바친 임면수 선생과 같은 순국 선열들이 있기에 광복 80주년인 오늘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서부서, “청소년 올바른 성장 위해”…선도심사위원회 위촉

수원서부경찰서가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기 위해 선도심사위원을 위촉했다. 수원서부경찰서(서장 김태영)는 경미 소년범 대상 처분 및 지원을 위해 2025년 선도심사위원회 위원 위촉식을 진행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위촉식을 통해 선도(법률)분과 14명, 생활지원분과 3명, 의료분과 2명 등 분야별 전문가 총 19명이 선정됐다. 선도심사위원회란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및 형사소송법을 기반으로 한 제도다. 경미 소년범을 대상으로 피해 정도와 죄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훈방·즉결심판·입건 등 처분과 지원을 의결하는 심의기구다. 특히 올해부터는 ‘우범송치’에 대해 제한적·보충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선도심사위원회 의결 후 송치하는 제도로 강화됐다. 이를 위해 의결 시 반드시 법률관련 전문가가 참여해 우범사유·우범성에 대한 개별 심리 등을 진행해 전문성 및 객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또 수원서부서는 위기청소년 및 선도심사위원회에 의뢰된 청소년들의 보호자를 대상으로 자녀의 특성에 맞는 선도·지도 방법에 대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김태영 서장은 “선도심사위원회 위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반성과 선도의 기회, 합당한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수원범피 '정기총회' 실시…2025년 사업 계획, 예산안 의결

수원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사장 이순국·이하 수원범피)가 강력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를 돕는 데 뜻을 모았다. 수원범피는 25일 수원지방검찰청 대형홀에서 ‘2025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는 이순국 이사장을 비롯한 수원범피 운영위원 20여명과 이동현 수원지검 형사3부장검사 등 피해자 지원 전담 검사가 참석했다. 정기총회 1부는 2024년 사업 실적과 예산 집행 승인을 시작으로 2025년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안)을 원안대로 의결·통과시켰다. 수원범피는 지난해 범죄피해자들에게 약 4억원의 경제적 지원과 방문 심리치료 프로그램, 의료지원 연계 등 총 7천727건의 지원 활동을 했다. 이어진 2부에서는 조영준 삼성전자 수원지원센터장(부사장)을 신규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 참석자와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동현 검사는 격려사를 통해 “지난 한 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범죄피해자들을 위해 헌신해 온 운영위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올 한 해도 강력범죄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 이를 통한 사회의 통합과 재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해주시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순국 이사장은 “2025년 한 해에도 범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수원지역의 범죄피해자 및 가족들에 대한 원스톱 피해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원범피는 범죄피해자의 실정을 이해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상담 및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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