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전멸·지자체 재정 휘청·공직자는 녹초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재입식까지 3년, 농가 피눈물
재난 극복 ‘도움의 손길’ 절실
27일 파주시 적성면은 고요했다. 9월 초까지 돼지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동네였다. 9월23일과 10월1일 두 차례 확인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적성면 돼지 농가의 삶을 바꿨다. 이 동네를 비롯한 파주시 사육 돼지 11만 마리가 모두 땅에 묻혔다. 텅 빈 돈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한숨 소리와 ‘매주 수요일은 방역의 날’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방제차량의 엔진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곳에서 만난 농장주 A씨는 양돈업만 40년째다. 인생에서 돼지가 전부였던 A씨는 ASF 발병 농가가 아님에도 예방적 살처분에 따라 2천200여 두의 돼지를 전부 매몰해야만 했다. A씨는 “힘듦을 애써 말하면 뭐하느냐”며 “재입식이 빨리 이뤄져 농장이 정상화가 돼야 하는데 아직 발병 원인조차 모르니 입식 시기도 모른다. 대부분 농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하루빨리 재입식이 시작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ASF가 경기도를 덮치고 50일간 추가 발병 농가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사상 초유의 방역 대란 속에서 경기도가 초토화됐다. 32만 두의 돼지가 사라지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농가, 갑작스럽게 1천억 원의 방역 비용을 부담하게 된 지자체, 장기간 방역 체계로 녹초가 된 공직자까지. 경기북부를 휩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17일 연천군 백학면에서 전국 최초이자 경기도 내 첫 ASF 발병에 따라 경기지역은 두 달 넘게 비상체계를 가동 중이다. 도내에서만 9건의 ASF 농가(파주시 5곳, 김포시 2곳, 연천군 2곳)가 확인, 이에 따른 돼지 처분 물량만 32만 두다. 경기북부 돼지가 총 63만 두였던 만큼 절반 이상이 두 달 새 없어진 셈이다. 특히 예방적 살처분 과정에서 처리된 양주시 돼지를 제외하고 발생 지역인 파주ㆍ김포ㆍ연천은 돼지가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ASF 사태가 종식되고 재입식까지 최소 3년이 예측됨에 따라 양돈업에 종사했던 이곳 주민은 생계가 막막하다.
이와 함께 지자체 재정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돼지열병 TF가 경기도와 공식 집계한 재정 지원 수요(생계 지원금, 살처분 보상금, 매몰 비용)만 1천795억여 원에 달한다. 살처분 매몰 비용을 따로 보면 연천군 293억 원, 파주시 198억 원, 김포시 82억 원 등으로 확인됐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연천군의 경우 한해 군정 예산(3천622억 원) 8%를 갑자기 부담하게 된 것이다.
방역에 전념했던 공직자는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권고에 따라 방역 강도가 낮아졌지만 아직 도내 80여 개의 통제 초소 및 거점 소독시설이 운영 중이다. 특히 정신적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살처분 작업에만 공무원 870여 명이 투입됐다.
도 관계자는 “오늘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등 아직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살처분 매몰 비용이라도 전액 지원하는 등 적극적이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유보적이다. 경기도 차원에서도 농가와 지자체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여승구ㆍ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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