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사건으로 장애 얻은 40대 가장
“이 추운 날씨에 아빠가 밖에 나갔어. 엄마, 아빠가 어디 간거지?”
자정이 다 된 시간 잠들어 있던 엄마를 흔들어 깨운 건 어린 딸이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밖으로 나간 것 같다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는 당황한 채 3년 전 사고 이후 아빠의 분신과도 같았던 가방부터 찾았다. 아빠는 악몽의 그날이 있은 후부터 가방을 제 몸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방은 집안에 고스란히 있었고, 아빠의 외투 하나만 없어졌다. 휴대전화와 지갑, 신경자극 조절기도 모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엄마가 불길한 마음에 열어본 휴대전화에는 남편이 남긴 ‘미안해. 내가 너무 힘들어’라는 문자 메시지만 있을 뿐이었다.
8시간쯤 지난 다음날 아침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 J씨(향년 44세)가 자택 인근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비보였다.
어린 아들과 딸은 지난 2018년 1월을 기억한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들어온 날이었다. 당시 사고로 J씨는 전치 18주 진단을 받았다. 방광이 파열돼 20㎝가량 복부 개복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한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영구 장애가 생겼다는 우울감과 공황장애로 좀처럼 아빠는 방을 벗어나지 않은 채 생활했다. J씨는 자신을 ‘가족의 짐’이라고 여기며 자학하기도 했다.
3년 전 용인의 한 아파트 상가 화장실 앞에서 묻지마 폭행 사건이 발생(본보 2018년 8월27일자 6면)한 뒤 일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J씨는 지난 10일 오전 7시40분께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묻지마 폭행 이후 J씨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둘러댔다. J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아이들이 아빠의 속사정과 그간 겪었던 고통을 알리는 만무했다. 엄마를 비롯한 J씨의 유가족은 아이들에게 ‘하늘 나라’로 떠난 아빠의 부재를 차마 알리지 못했다.
2018년 1월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화장실 앞에서 J씨는 지나던 B씨와 어깨를 부딪혔고, B씨에게 1시간 가까이 심한 폭행을 당했다. 이후 J씨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정상적인 부모 역할을 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의 병까지 얻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4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최근까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던 J씨. 여느 가장이면 새로운 해를 가족과 맞이 하며 행복한 연말을 보낼 아빠는 수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다 지난해 12월27일 밤 지인들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날 폭행 사건으로 모든 걸 잃었다. 삶을 내려놓을 테니 남은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지방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J씨의 아내는 “남편은 가방과 신경(자극) 조절기를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기저귀를 담고 소변량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날은 집에 모든 것을 두고 나가 불안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동시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싸한 느낌을 받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억울함이라도 털어내고 편히 가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2018년 8월 기자와 어두운 방 안에서 만났던 J씨는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J씨는 그 슬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고 있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상담 ☎1577-0199, 생명의전화 ☎1588-9191, 청소년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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