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온몸으로 항거하다 장렬하게 순국한 故 최태현 목사의 건국훈장 애국장 수상이 반세기 이상의 망국의 한을 넘어 유가족에게 수여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7일 고 최 목사의 3남인 최희만옹(71·평화통일자문회의 LA지역 고문)에게 부친의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달했다.
故 최 목사의 건국훈장 애국장은 지난 77년 故 최 목사의 형님인 최옥만씨가 서훈을 신청, 국가에서 공적을 인정해 추서했지만 최옥만씨가 도미(渡美)한 뒤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숨지는 바람에 22년이란 통한의 세월이 지난뒤에야 유가족들이 훈장을 수상하는 감격을 안게 됐다.
특히 故 최 목사의 애국의 길을 연구해 온 삼육대 이종근 박사는 지난 9월 27일 제9회 평화통일자문회의 참석을 위해 내한한 최희만옹에게 서훈을 신청할 것을 제의, 서훈신청자료를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가 22년전 이미 포상 사실을 알게 됐고 국가보훈처도 늦었지만 고인이 된 故 최 목사의 유가족에게 훈장을 수여하게 됐다.
故 최목사는 현 삼육대학교 이사장이자 교단장(한국 안식일교회)으로서 1908년 을사조약에 반대하고 1910년 일제가 한국을 병탄해 나라를 잃자 1941년까지 전국 각지를 순방하면서 기독교도들에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에 선봉이 되라며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했다.
1941년 전국선교사총회에서 대회장으로 선출되자 전국교계에 신사참배 거부를 지시하고 항일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1943년 2월 4일 일제경찰에 의해 피체됐다.
故 최 목사는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사참매 거부지시 취소, 기독교 선교사 모임 해산 등의 일제의 강요를 끝까지 거부하고 그 부당성을 강조하다가 1943년 6월 2일 인사불성의 사경을 헤매다 12번째 실신끝에 순국했다.
한국 안식일교회사상 첫 순국자였다.
故 최 목사의 순국후 교회가 강제 해산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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