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여년 전 옛 수원의 원래 읍치(邑治)는 현재의 화성군 태안읍에 있었다.
조선조 제22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부 지금의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화산으로 천장하면서 오늘날의 팔달산 밑으로 읍치를 옮긴 것이다.
정조는 수원 새 읍치의 터를 팔달산 밑으로 정하면서 수원부 주민들의 이주비용으로 균역청(均役廳)의 金 10만냥을 하사했는데 구 읍치에 있던 민가의 철거 및 신읍치로의 이주는 현륭원(융능)이 천봉되던 정조13년 1789년 8월부터 시작돼 10월 천장일 이전에 완료하였다.
삼국시대 이래 화산 수원읍성 아래 자리잡아 살던 안녕리 주민들을 수원 팔달산 아래 유천마을(현재의 세류동)로 이주시킨 것이다.
정조는 수원읍치를 옮기면서 수원부에 갇혀 있던 모든 죄수들을 사면, 석방하였으며 신읍에 거주할 농민들에게는 향후 10년간 稅를 면제해 주도록 했다.
정조는 이어 1794년 정월 영중추부사 채제공(蔡濟恭)을 성역(城役)의 총리대신으로 임명하여 같은 해 2월 28일 정식으로 성역을 착공했다. 1794년 착공한 화성은 1796년 9월 완공됐다.
화성성역과 더불어 성안 팔달산 아래에는 행궁과 관아를 설치했는데 이때 건립된 행궁이 지금 복원중인 화성행궁이다.
요즘 4·13 총선을 앞두고 오산시·화성군을 한데 묶어 인구 1백만명이상의 수원광역시를 만들자는 방안이 수원시의회를 중심으로 추진되자 수원시 장안·팔달·권선 3개지역구의 각당 후보들이 앞다퉈 이 문제를 선거공약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화성군과 오산시가 이에 동의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수원 읍치로 수원읍성과 융능·건능, 용주사가 있는 태안읍은 수원시 행정구역에 편입됐으면 좋겠다.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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